〈 104화 〉 101 빛이 닿지 않는 미궁
* * *
레심, 백려강과 저녁을 먹고 헤어져 올츠 호텔로 돌아온 환인은 1인실에서 체크아웃, 2인실로 옮긴 뒤 흑창과 돌도끼를 마저 점검하며 밤을 보냈다.
어제는 스사의 저택을 방문해서 미궁에 들어갈 예정임을 알렸고 제2 공동묘지도 방문해 아직 성에서 나오지 못한 이엘카타에게 편지도 남겼다.
최소 10일은 자리를 비울 예정인데 서로 연락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아쉬움이 남을 테니까.
‘아쉬움이라.’
명상과 정신 집중을 계속하고 있지만 짜증, 분노, 집착, 성가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 외에는 잦아드는 느낌이 없다.
오히려 훈련할수록 의외의 감정이 불시에 튀어나오곤 했다.
‘나도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는 건가.’
평범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이대로만 가면 어쩌면 평범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달칵.
=주인님?=
마른 수건으로 흑창을 거의 다 닦았을 무렵 욕실 쪽 문이 열리며 살짝 젖은 머리카락의 이실리테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나가도 괜찮을까요?=
“……?”
무슨 의도로 묻는 건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걸 보면 아직 평범함하고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생각한 순간, 대답이 없는 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는지 이실리테가 문을 완전히 열어젖혔다.
=나갈게요~.=
그리고 드러난, 앞모습을 하얀 수건 한 장으로 겨우 가린 몹시도 선정적인 자태.
평범한 사이즈의 수건임에도 좌우로 살짝 드러난 옆가슴이라던가 골반, 약간 젖어 몸에 달라붙은 바람에 슬쩍 드러나는 11자 복근과 1자 배꼽의 흔적.
그리고 수건의 길이를 대폭 잡아먹는 가슴 탓에 걸을때마다 수건 아래로 보일듯말듯 어른거리는 옅은 갈색의 음모.
환인은 눈을 감았다.
작은 발소리가 앞을 지나가는 것을 들으며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옷은 어쨌지?”
분명 욕실로 들어갈 때 옷과 속옷을 가져가는 걸 봤는데.
=속옷이랑 다 챙겼는데 비상식량이 날갯짓하다가 쳐서 떨어트리고 그 위를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더럽혀졌어요.=
“…….”
사고라고 하니 탓할 마음도 들지 않는다.
이실리테는 자신의 침대 옆에 놓아둔 트렁크 앞에 쪼그려 앉아 속옷을 챙기는 한편,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채 마른 수건으로 검은 창대를 천천히 닦는 환인을 곁눈질했다.
‘네네유가 이야기해 준 반응이랑 전혀 다르잖아.’
40일간 4인실을 같이 쓴 견습 하녀들, 그중 특히 친해진 17살의 네네유는 이런 상황이 되면 남자의 반응은 둘로 갈라진다고 했었다.
음흉하게 쳐다보거나, 당황해서 눈을 피하거나.
그런데 주인님은 당황하지도, 음흉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수도자처럼 경건하게 무기를 손질하고만 있다.
음흉하게 쳐다보거나 당황하면 네네유가 가르쳐준 대로 주인님을 유혹해볼 생각이었는데…….
‘아직 기회는 많아! 앞으로 주인님이랑 쭉 함께 있을 테니까!’
사흘에 한 번 개방되는 대 욕탕에서 자신의 몸매가 200명의 교육생 중에서도 1, 2등을 할 만큼 뛰어난 것을 알게 된 이실리테였다.
주인님은 성에 보수적이지 않으시니 슬쩍슬쩍 노출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속셈으로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 여자라면 성관계를 통해 환인과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어 이득을 노리기 마련일 텐데 이실리테는 그저 환인과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길 바랄 뿐.
현재의 남남인 관계에서 좀 더 돈독한 사이가 되길 바라는 것뿐이다.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면서 속옷을 챙겨 환인의 앞을 지나쳐 욕실로 돌아가며 말했다.
=죄송해요, 주인님.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이실리테가 지나가면서 풍긴 체향이 쓸데없이 좋다고 생각하며 짧게 대답하는 환인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난 환인은 이실리테와 비상식량을 데리고 동이 터오며 어슴푸레한 도시의 길을 걸었다.
오랜만에 장비를 풀세트로 착용해서일까, 꽉 조이는 흑회색 마수 가죽 갑옷이 약간 풀어진 마음까지 단단히 조여 매는 느낌이다.
이실리테도 새로운 무기와 방어구가 마음에 드는지 90kg이 넘어가는 짐을 메고도 발걸음이 가볍다.
=비상식량. 내 곁에 꼭 붙어있어야 해?=
쿠엣.
=지금부터 가는 곳은 무서운 장소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
쿠에~.
서문 밖에 도착하니 전사의 아우라와 법술사의 아우라를 몸에 휘감고 있는 두 명을 발견했다.
무광 처리가 된 백색 철판 갑옷에 장검을 패용 중인 레심과 푸른색 후드 망토를 걸치고 녹색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든 백려강이다.
자신들처럼 미궁으로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두 사람.
이유라면 레심 때문이다.
백려강은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앞트임이 있는 평범한 푸른색 후드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로브 자락 사이로 드러나는 갈색 가죽 갑옷도 무난한 것이었기에 눈길을 끌지 않았다.
하지만 레심은 척 봐도 고가로 보이는 백색 가죽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백색 철판 흉갑과 백색 철판 완갑에 백색 철판 장갑, 백색 철판 각갑을 착용한데다 어깨에도 멋진 숄더 케이프를 걸치고 있다.
검집도 백색조에 검 자루도, 날밑crossguard도 죄다 하얀색이고 두상도 짙은 회색 모피의 인랑족이다 보니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아, 환인 님! 여깁니다!=
“…….”
이쪽을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레심의 모습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도 모여든다.
환인이 소리 없이 한숨을 쉬자 이실리테가 짐가방에서 회색 후드 로브를 꺼내 레심에게 건네주었다. 혹시 몰라 자신이 쓰려고 사놓은 것이다.
=이실리테 양, 이건 왜?=
=레심 씨는 지금 조용히 움직여야 하는 입장이시죠? 지금 무척 시선을 끌고 계시니 미궁 들어갈 때까지만이라도 쓰세요. 어제 새로 산 거라 한 번도 안 쓴 새것이에요.=
=아…… 네…….=
혹시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걸까 살짝 기대했던 레심은 풀죽은 강아지처럼 귀를 눕히고 로브를 갑옷 위에 입는다.
환인이 그걸 보며 말했다.
“파티 리더는 레심 씨가 하시지요.”
=음. 리더는 전열이나 후열의 멤버가 하는 쪽이 상황 판단에 좋지 않을까요?=
두 사람의 의견이 나뉘자 백려강이 자연스럽게 나섰다.
=환인 님이 리더를 맡으시는 것에 거부감이 없으시다면 환인 님께 부탁드리고 싶어요. 연륜으로도, 실력으로도 뛰어나시니까요.=
의뢰주의 지명이다. 환인은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레심도 백려강의 결정에 거부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가시죠.”
=예. 그런데 환인 님의 주무기는 창이셨군요. 생김새가 굉장히 독특합니다. 가죽 갑옷도 평범한 마수 가죽이 아닌 것 같고요.=
“직접 잡은 이형종에게 얻은 부산물로 제작한 겁니다.”
=과연. 특히 흑창이 무척이나 시선을 잡아끄는 느낌인데 재료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날은 성수의 어금니를 갈아서 만들었습니다. 창대는 힐란의 검은 나무가 통으로 쓰였습니다.”
=오! 과연…….=
레심은 신기한 무기를 발견한 전사처럼 흑창을 유심히 살피며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어쩐지 의뢰주보다 레심 씨가 더 신난 것 같군. 그런데…….’
짐이 안 보인다. 둘 다 잊은 것은 아닐 테고.
‘아공간 주머니인가.’
지금 이실리테가 등에 짊어진 정도의 부피가 들어가는 아공간 주머니는 부여된 옵션에 따라 가감이 있긴 하지만 대략 7금화 정도다.
200금화가 넘는 가치의 포션 세트를 들고 다니고 1박에 열은화가 드는 객실에서 머무르는 사람들이다. 아공간 주머니 정도는 당연히 가지고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백려강이 이야기한다.
=이실리테 양 짐이 굉장히 무거워 보이네요. 괜찮다면 제가 옮겨드릴게요.=
=와, 아공간 주머니도 있으신가 보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하지만…….=
=미궁에서는 짐을 한곳에 모으지 말라는 속담이 있거든요. 그리고 전 힘 위주의 검전사라서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러셨나요? 제 생각이 짧았네요.=
=배려해주신 거니까 전 기쁜걸요.=
=후후. 이실리테 양은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예쁘신 거 같아요.=
=아앗, 감사합니다…….=
금세 분위기가 훈훈해진 일행은 백려강이 말하고 이실리테가 대답하며 레심이 사이사이 끼어드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 도적 출신이셨습니까……?=
이실리테의 고백에 레심은 뜨악한 표정이고 백려강도 놀란 듯 살짝 입을 벌리고 있었다.
=네. 주인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갱생하지도 못했을 테고 아직도 짐승처럼 살고 있었을 거예요. 주인님께는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크으, 환인 님은 여러모로 대단한 분이시군요. 그러고 보니 하이에른 상급 무관장의 따님께 청혼도 받으셨지요? 역시 멋진 남자에게는 멋진 여성들이 이끌리나 봅니다. 하하하.=
충격적인 이야기에 이실리테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지만 레심은 눈치채지 못하고 껄껄 웃는다.
환인은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고 이실리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자기가 없을 때 벌어졌다는 것에 충격받아 입을 다물었다.
‘아니 충격받을 일은 아닌가? 주인님은 멋지시니까 여자가 꼬이는 건 당연한 거고…….’
그나마 청혼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신 듯 담담하신 게 마음의 위안이 되는 이실리테였다.
‘……그래도 첩 자리 정도는 차지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 미묘한 변화를 눈치챈 백려강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지팡이 끝으로 레심을 발목을 콕, 찔렀고 레심은 즉시 움찔하면서 백려강의 눈치를 살핀다.
파티에 침묵이 잦아들었지만 미궁 병영의 성채가 코앞이었기에 어색해지지는 않았다.
수십 명의 사람이 북적이는 미궁 앞.
아직 어두컴컴해 불장대가 빛을 보태는 시간이지만 미궁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나오는 사람들, 부산물을 구매하기 위한 상인들로 미궁 앞은 인산인해였다.
=아가씨. 사람이 많아서 위험하니까 제 앞으로 오세요.=
=고마워요, 이실리테 양.=
=앗, 비상식량 어디가! 앞에 아가씨랑 같이 있어!=
쿠엣!
왜왜! 나 저거 구경하고 싶은데!
항의하듯 꽥꽥거리는 비상식량이었지만 이실리테는 알아듣지 못했고 비상식량의 보챔은 계속되었다.
결국 환인이 나서서 비상식량의 목에 목줄을 채워 이실리테에게 쥐여주고 나서야 얌전해진다.
“비상식량. 앞으로 함께 미궁에 들어갈 일이 많을 거다. 저런 것들도 자주 볼 수 있을 테니 지금은 얌전히 있어라.”
비상식량에 비하면 레심과 백려강은 얌전한 편이다.
고개가 이리저리 계속 움직이긴 해도 환인의 뒤를 잘 따라오고 있으니까.
크기를 키운 곰굴 입구 같은 미궁 출입구. 어두컴컴한 통로가 지하로 이어지는 입구의 출입 관리병 앞에 선 환인은 미궁 출입 허가증과 함께 열동화 네 장을 제출했다.
=리더는 환인 님, 일행은 3명과 1마리. 맞으십니까?=
“예.”
=미궁에서 발생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일행을 관리 못 한 책임은 리더에게 있으며 미궁 자체에 재해를 일으킨다면 웨이포드의 전 병력이 당신들을 추격할 겁니다. 숙지하셨습니까?
“예.”
=당신들에게 짐승신님의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다음!=
기계적인 태도로 응대하는 출입 관리병에게 허가증과 신분증을 돌려받은 환인은 일행과 함께 입을 쩍 벌린 미궁 입구로 들어섰다.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갈수록 주위가 급속도로 어두워져 간다. 저 아래쪽, 먼저 미궁에 진입한 파티의 불빛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실리테. 횃불.”
=네.=
칙, 칙 화르륵
뒤에서 불이 켜지며 노란빛이 매끈한 벽과 천장을 물들인다.
영혼 시야를 개방했기에 시야 확보에는 문제없지만, 다른 일행을 위해 횃불을 켠 환인은 앞선 파티와 일정 거리를 두고 천천히 뒤따랐다.
내리막길을 내려갈수록 동굴 특유의 기압이 귀를 짓누른다. 새벽녘의 차가운 공기와 다른 무겁고 건조한 공기가 주변을 채우며 후각을 자극한다.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에 비상식량도 부리를 꾹 다물고 타박타박 걸음을 옮기고 있다.
잠시 후 앞선 파티의 불빛이 다섯 갈래의 동굴 중 가운데로 사라지며 앞쪽이 어둠에 잠겨 들었다.
횃불이 주변을 밝혀주는 범위는 고작해야 10m 정도. 그 너머는 칠흑처럼 새까맣게 변했지만, 환인의 눈에는 회색빛 동굴의 윤곽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지하 미로형 미궁에서 영혼 시야가 얼마나 유용한지 새삼스럽군.’
=빛이 닿지 않는 미궁이라니, 정말 이름 잘 지었군요.=
용암 동굴처럼 매끈한 벽을 통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레심은 자기 목소리가 이렇게 크게 반향을 일으킬 줄 몰랐는지 찔끔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환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견을 조율한대로 대화는 3층에 도달할 때까지 자제하겠습니다. 3층까지는 거의 일방통행이나 마찬가지이니 빠르게 이동합니다.”
미궁 안에서의 철칙인 ‘사람을 피해라. 못 피한다면 그래도 피해라.’를 따르기 위해서다.
사전 조사 때 1층과 2층은 다들 빨리 지나가는 층이라는 이야기를 접했다. 나오는 이형종은 소형에 돈 안 되는 것들 뿐인데다 넓지 않아 사람들과 종종 마주치기 때문이었다.
보통 입구와 가까운 층에서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지만 세상일은 모른다. 그러니 7배 가까이 넓어진다는 3층으로 먼저 내려간다.
잠시 후 환인도 다섯 갈래로 나누어진 통로에 도착해 가장 오른쪽으로 들어섰다.
다섯 갈래 어느 쪽을 고르든 그 끝은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일방통행 길이다.
저벅저벅저벅…….
높이 2.5m, 폭 2m 정도의 좁고 매끈한 동굴 통로가 이어진다. 폐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황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폐쇄감을 주고 있다.
환인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미궁 초입 부분에 머릿속으로 의문을 띄웠다.
‘6급 삼림형 미궁은 푸른 기운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여긴 그런 게 없군.’
지하 동굴형 미궁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등급이 낮은 미궁이라서 없는 걸까.
그때 저 앞의 휘어진 통로 너머에서 쥐처럼 생긴 치와와 사이즈의 동물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1층에서 이형종을 만날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고 하던데 시작이 좋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시작부터 불길하다고 해야 할까.
속으로 짧게 생각한 환인은 망설임 없이 허리춤의 켈틱 돌도끼를 던졌다.
휘리리릭 콰직.
끅.
짧은 단말마에 백려강이 놀라 작게 숨을 토하듯 묻는다.
=무, 뭐였나요?=
“거대 쥐입니다.”
거대 쥐의 사체에서 빠져나온 영혼은 최하급.
이 거대 쥐가 작은 녹색 괴물이나 갈색 괴물과 강함이 비슷하다는 건가?
‘그건 아니겠지. 같은 중하급이라도 강함에 차이가 났었으니까.’
잠시 후 횃불의 범위에 들어온 거대 쥐의 사체에 레심과 백려강이 작게 탄성을 흘렸다.
아무것도 안 보였고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맞춘 걸까.
놀란 눈으로 도끼를 회수하는 환인을 바라보는 레심, 백려강과 다르게 이실리테는 별일 아닌 투로 거대 쥐의 사체에 호기심을 보이는 비상식량을 재촉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구불구불한 길을 나아가던 환인은 2층으로 내려가는 통로 앞에서 먼저 진입했던 파티와 마주쳤다.
=…….=
“…….”
직업자는 3명, 짐꾼은 5명인 노동자 파티다.
말없이 서로를 지켜보던 중 노동자 파티의 리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먼저 내려가시겠소?=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노동자 파티가 대여섯 걸음 물러난다. 환인은 즉시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2층부터는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최소 2개 이상, 많으면 7개까지 나오기에 다른 파티와 얼굴이 마주칠 가능성이 대폭 낮아진다.
약 40개의 계단을 빠른 발걸음으로 내려온 환인은 갑자기 확 넓어진 동굴을 빠르게 살폈다.
전방에 작은 기둥과 함께 보다 큰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보이고 왼쪽으로도 다른 방과 이어지는 길이 있다.
‘7번 방이 맞군.’
레심이 미리 구해두었다는 지하 2층 지도를 생각하며 왼쪽의 벽을 따라 이동한다.
“사전에 정해둔 대로 가장 가까운 3층 통로로 향하겠습니다.”
0.5m의 보폭을 계산하며 걷던 환인은 3층으로 내려가는 통로까지 정확히 108걸음에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54m. 격자무늬 한 칸에 3m라고 했으니 정확하군. 지도는 믿을 수 있겠어.’
레심이 횃불의 광원 안에 나타난 다음 층 계단을 보고 확인차 묻는다.
=3층 통로입니까?=
“예. 보폭으로 셈해본 결과 지도의 축척은 믿을 수 있을 것 같군요.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보폭이라니, 지도의 축척까지 계산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까지 생각을 못 했던 레심은 속으로 반성하며 이번 기회에 환인의 행동에서 많은 것을 배워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서 환인은 일견 그립기까지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6급 삼림형 미궁을 뒤덮고 있던 푸르스름한 안개. 그것이 계단의 중간까지 차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2층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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