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93화 (93/813)

〈 93화 〉 090+ 소도시 웨이포드

* * *

“…….”

쪽지를 가만히 응시하던 환인은 다시 접고 주머니에 넣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소유물이 도둑질 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흥분하든 침착하든 일단 분노할 것이다.

그 소유물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더욱더.

하지만 환인은 분노가 아니라 의문을 품었다.

분노? 할 필요가 없다.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고 이제 알게 되었으니 대비하다가 도둑놈을 잡아서 목을 자르든 머리를 쪼개든 하면 그만이니까.

‘누가 비상식량을 노리는 걸까.’

일단 웬나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적다.

올츠 호텔의 메이드들은 전부 목욕비를 자신이 내서라도 더 붙어있길 원하는 걸 환인도 알고 있었으니까.

이걸 알려준 것도 뒤에 있을 대가를 바라고 한 거겠지. 아니라면…….

“…….”

멈춰서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본 환인은 몸을 돌려 호텔로 돌아갔다.

웬나가 쪽지에 핵심적인 내용을 적어 보냈다면 일단 다른 정보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마침 어제 오전을 마지막으로 호텔의 목욕 봉사 업무를 하는 모든 여자를 두 번씩 안은 상황.

호텔 입구를 지키는 호위병에게 인사를 받으며 들어가자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직원들 말없이 꾸벅 허리를 숙인다.

환인이 올츠 호텔을 마음에 들어 한 이유 중에는 이런 분위기도 있었다.

손님들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 않는 것. 그러면서 무시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의 정복 차림 하인에게 말했다.

“306호에 목욕 서비스 부탁합니다.”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시중 하녀를 지명하시겠습니까?=

지구에서라면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절대 꺼내지 못할 내용이지만, 이 세상에서 남자가 여자의 시중을 받는 것은 절대 흠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받지 않으면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기 일쑤다. 저 사람, 겉은 멀쩡한데 속은 곯은 거 아냐? 하고.

“새로 오신 분이 있습니까?”

이미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환인이 묻자 하인이 공손히 대답했다.

=안타깝지만 어제 오전에 시중받으셨던 하녀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러면 처음의 아가씨로.”

=웬나 말씀이시지요? 준비시켜 올려보내겠습니다.=

“오늘은 느긋하게 하고 싶습니다. 시간은 넉넉히.”

=알겠습니다.=

객실로 돌아오자 침대에 드러누워 뒹굴뒹굴하던 비상식량이 고개를 들며 꾸우? 운다. 왜 벌써 돌아온 건지 의아한 눈치다.

후드 망토를 벗은 환인이 피식 웃으며 비상식량에게 툭 던지자 망토가 펄럭 펼쳐지며 비상식량을 덮어버렸다.

쿠엣~. 쿠쿠! 쿠우~

한동안 망토가 들쑥날쑥하더니 잠잠해졌다. 그대로 잠든 모양새다.

셔츠 제일 윗단추를 풀고 창밖을 보며 기다리고 있으니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열려있습니다.”

대답하자 문이 딸칵 열리며 은은한 미소를 띤 웬나가 먼저 카트를 밀며 들어오고 뒤따라 1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메이드 두 명이 자기 몸집만 한 물통을 들고 따라 들어왔다.

=긴 시간 지명 감사드려요. 웬나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인사한 웬나는 견습 메이드에게 능숙하게 지시를 내려 2분도 되지 않아 목욕 준비를 마친다.

꾸벅 인사한 두 어린 메이드 두 명이 객실을 나가기 전에 손짓해 부른 환인은 동화 1닢씩 팁을 주었다.

한국의 1만원에 해당하는 돈이지만, 이 세상에서 식품 영역으로 제한하면 거의 10만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팁을 받은 어린 메이드들의 표정이 환해진다.

=감사합니다!=

=가, 감사합니다아…….=

어린 메이드들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 메이드 캡만 벗은 웬나가 욕실 옆에서 배에 손을 올리고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기대감 때문인지 머리 위의 검은 포인트가 특징인 여우 귀가 연신 쫑긋거린다.

=환인 님, 목욕 준비가 끝났어요. 지금 바로 들어가시겠어요?=

“예.”

웬나의 시중을 받아 옷을 벗고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자 핏빛 돌맹이로 채 풀리지 않은 피로가 토도독 터져나가는 느낌이 밀려왔다.

저번처럼 자신의 젖가슴을 배게 대용으로 제공한 웬나가 환인의 목과 머리를 마사지하며 속삭였다.

=환인님의 근육은 참 근사하네요. 다른 남자들의 징그러운 근육하곤 결이 다르세요.=

“루크랑 족 남자들과 저는 종이 다르니까요.”

=그걸 생각하더라도 우리 종족 남자들은 너무 우락부락해요. 크기만 크고 힘만 세면 다 해결되는 줄 아는 근육 뇌들이라니까요.=

눈을 감고 마사지를 받던 환인은 애교부리듯 투정하는 웬나의 이야기에 눈을 뜨고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엘카타의 청순가련하면서도 날카로움이 약간 느껴지는 얼굴과 정 반대, 색기와 요염함이 짙은 속눈썹에서 묻어나는 여우상이다.

눈이 마주친 웬나가 방긋 웃으니 입가에 보조개가 파이면서 눈물점이 강조된다.

“제 애완조를 노리는 자가 있다고요.”

=네. 호텔 뒤 골목에서 환인 님의 객실 번호와 녹색 쿠에를 언급하는 장면을 우연히 몰래 목격했어요.=

교태부리는듯한 표정이 대번에 진지한 얼굴로 바뀐 웬나가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경위와 그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대상들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음…….”

=뒷모습은 4층 객실 청소 담당 하인인 윌렉스였어요. 하인 대기실에서 환인 님의 애완조 이야기를 엿듣고 정보를 판 게 틀림없어요.=

“그 객실 청소 담당 하인과 대화하던 사람이 중심가 뒷골목의 피가죽 클랜 멤버라고요.”

=네. 그쪽은 우연히 얼굴을 직접 볼 수 있었어요. 자리를 떠날 때까지 커튼 뒤에 숨어있던 절 눈치채지 못했으니 제가 이야기를 엿들었다는 사실을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웬나의 이야기는 조리 있고 앞뒤가 다 들어맞았다.

남은 한 가지만 확인한다면 그녀의 말을 믿어도 되리라.

목욕을 끝내고 나온 환인은 쿨쿨 자는 비상식량을 바구니 침대로 옮긴 뒤 무려 6시간 동안이나 웬나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2시간동안 최소 10번은 절정에 오를 정도로, 비상식량이 자다 깰 정도로 괴롭히다 기절시켰고 그후 10분을 쉬게 한 뒤 깨워서 1시간을 더 괴롭혔다.

또 기절한 웬나를 이번에는 오르가슴으로 강제로 깨운 뒤 1시간 동안 쉴새 없이 갖은 체위로 그녀의 체력을 빼앗았으며 다시 기절한 웬나를 10분 뒤 또 깨워 또 40분 동안 진득하게 괴롭혔다.

마지막 40분은 그녀가 계속된 오르가슴에 뇌가 피로감과 쾌락에 절여져 제대로 사고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었다.

환인은 힘없이 늘어진 웬나를 모로 눕힌 뒤 한쪽 다리를 세우고 퍽퍽 거칠게 공격하며 여우 귀에 대고 속삭였다.

“혹시 피가죽 클랜이 이 사실을 알고 당신을 해코지할까 걱정됩니다.”

=흐극, 괜차…… 갠차나요, 끄으으….=

“왜 괜찮다고 하는 겁니까? 그들이 당신을 보고도 못 본 척 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 저 혼자, 혼자였으니까……아아아아!=

“제게 이렇게 신경 써준 이유가 뭡니까. 이 사실이 알려졌다간 당신에게 해만 될 텐데.”

=끄읏, 끄윽. 환인… 환인 님한테…… 흐어. 안, 안기고…… 싶어서……어으으응…!!=

“제게 안기고 싶어서라고요?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왜?”

=예뻐, 예뻐지고싶어서요고급창부가되거싶어서부자랑애인이아아아악! 끄아아아앙……!!=

21번째 오르가슴에 도달한 웬나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더니 짐승 같은 울음을 지르며 허리를 활처럼 휘고 부르르 떤다.

꺽꺽거리며 눈꺼풀 위로 눈이 사라진 얼굴로 눈물콧물 다 흘리던 웬나는 이윽고 죽은 것처럼 축 늘어져 아무런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으음.”

웬나를 완전히 완전히 실신시킨 환인은 그녀의 망가진 얼굴을 정리해주고 이불을 덮어준 뒤 욕실로 들어왔다.

촤아악­!

미지근하게 식은 물을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쓴 환인은 머리카락을 올백으로 넘기면서 속으로 웬나에게 캐낸 정보를 정리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웬나가 그 피가죽 클랜이라는 놈들과 작당해서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려 한 것은 아니었다.

피가죽 클랜이 비상식량을 노리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환인에게 안기겠다는 게 웬나의 귀여운 음모였던 거다.

이런 결론이 나오게 된 바탕에는 자신이 지난 3주간 고급 창관 순례를 한 것이 원인으로 존재했다.

세 곳 고급 창관의 여자들이 갑자기 눈에 띄게 아름다워졌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 원인에 ‘어떤 남자’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아랫입으로 좋은 걸 먹었으니 당연히 젊어지지~! 꺄하하하!=

=어후, 얼마나 몸에 좋은 걸 먹었길래 그런 소문이 다 퍼진담?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네. 쿡쿡쿡.=

소문을 들은 대부분의 여자는 그저 좋은 남자를 먹어서 몸이 좋아졌다는 우스갯소리 정도로 받아들였다.

창관의 창부들도 더욱 아름다워지고 싶은 마음에, 그런 기적적인 일을 자기들끼리 독점하고 싶은 마음에 자세히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소문을 철석같이 믿는 그룹이 있었다.

바로 올츠 호텔의 목욕 시중 서비스를 맡은 하녀들이었다.

이미 306호 손님과 잠자리를 가지면 예뻐진다는 사실은 그녀들 사이에서도 퍼질 대로 퍼진 이야기였다.

더욱이 306호 손님이 매일 밤 고급 창관을 방문한다는 사실은 올츠에서 근무하는 하인 하녀들 사이에 쫙 퍼진 이야기.

고급 사창가의 ‘어떤 남자’ = ‘306호 손님’.

이 공식을 알게 된 웬나는 우연히 목격한 장면을 바탕으로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306호 손님에게 자신이 본 것을 알려주며 자신을 여러 번 지목해달라고 귀엽게 요구한다.

물론 목욕비는 자신이 모두 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금보다 더 예뻐진다면 자신도 고급 창관에서 일할 수 있을 정도의 외모 등급이 될테지.

호텔 하녀로 일하는 것보다 수입도 월등히 높아질 거다.

호텔에서 하녀로 일해봤자 한 달에 쥘 수 있는 돈은 팁과 봉사 포함 대략 2은화 77동화 정도.

그 돈은 고급 창관의 창부 중에서도 최하급인 여자의 1회 화대 정도 밖에 안된다.

고급 창관에 들어가기만 하면 수입도 수입이지만 자신의 매력과 섹시함을 무기 삼아 중심가 부자들의 애인 자리를 노려볼 수도 있는 일.

즉 웬나는 부잣집 남자의 애인이 되고 싶다는 야망에 환인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이었다.

“큭큭큭.”

뒤늦게 자신을 중심으로 한 소문의 실체를 알게 된 환인은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흘렸다.

어쩐지 화려하게 꾸며진 사교장 같은 고급 창관에 들어설 때마다 홀에 나와 있던 창부들이 다들 부담스럽게 쳐다본다 싶더라니.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지만 아무튼.

씻고 나와서 창가에 앉아 바깥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회화 공부를 하고 있으니 웬나가 꿈틀거리다가 으응,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앗! 죄송해요, 죄송해요! 어떡해…….=

뒤늦게 자신이 행위 도중 기절했다는 것을 떠올린 웬나는 기절한 시간도 오래됐음을 깨닫고 사색이 되어서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쿠당.

=꺅!=

발이 풀려 객실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아으으.=

허리가 빠진 것처럼 하반신이 후들거린다.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욱신거리고 짬찌가 불난 것처럼 화끈거리는 걸 느낀 웬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환인이 공주님 안기로 웬나를 들어 욕실에 데려다주었다.

“물은 다 식었지만, 몸을 씻으면 좀 나아질 겁니다.”

=……죄송합니다아. 시중도 제대로 못 들었는데…….=

“괜찮습니다.”

좋은 인상을 준다는 계획이 텄음을 직감한 웬나는 풀이 죽었다.

‘먹으라고 죽을 떠줬는데도 먹지 못하는 병신같은 년아……. 아악! 아까워 죽겠네!’

안타까움에 욕조 속에서 발을 동동 굴리던 웬나는 인상이 더 나빠지기 전에 후딱 씻고 객실 정리를 하려다가 으잇, 작게 비명을 질렀다.

밑에 손을 가져간 순간 바늘로 쿡쿡 찌르는 고통이 밀려왔던 것이다.

뭔가 싶어 밑으로 시선을 주었다가 피가 몰린 것처럼 붉게 부어오른 자신의 성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와, 짬찌 좀 봐. 불어 터진 홍합이 됐네.’

생각해보니 못해도 4시간동안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오르가슴을 느꼈다.

과연, 그만큼 하면 이런 꼴이 되는구나.

한 가지를 배운 웬나는 대충 몸에 물칠만 하고 남자의 흔적을 닦아낸 뒤 정규 하녀복을 단정히 착용한 다음 욕실과 객실 청소를 진행했다.

‘히익. 시트가 다 젖었어. 내가 이만큼이나 지린 거야?’

다행인 건 침대 매트리스는 멀쩡하다는 것.

웬나는 온몸이 욱신거리고 밑이 불난 것처럼 화끈거렸지만, 프로의 자세로 카트에서 새 시트를 꺼내 교체하고 바닥의 흔적도 깔끔하게 닦아낸 뒤 우아한 모습으로 차를 마시는 환인에게 배꼽 인사를 올렸다.

=정신을 잃어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 사과드려요.=

“아닙니다. 과하게 괴롭힌 듯 해서 오히려 제가 미안하군요.”

하아……. 이렇게 매너가 좋으니 하녀들이 너도나도 306호를 담당하고 싶어 하는 거지.

속으로 중얼거린 웬나는 유료 봉사를 완벽하게 하지 못해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중간까지는 정신을 붙잡고 있었던 거 같은데……!

봉사만 잘했다면 다음에도 자신을 지명해달라고 부탁했을 텐데, 속으로 중얼거린 웬나는 차마 염치가 없어 말도 못 꺼내고 객실을 나왔다.

“…….”

웬나가 나가고 조용해진 객실에서 슬슬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거리를 보던 환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스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선택지는 제외.

도와달라고 하면 스사는 두 팔 걷고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일로 그의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쌓아놓은 관계가 아깝다.

스사와 관계는 이런 사소한 부탁을 주고받는 사이보다 좀 더 중요한 순간에 긴밀히 활용하고 싶은 인맥이다.

거리가 조금씩 어둑어둑해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집 앞, 가게 앞의 가로등에 불을 켜기 시작할 무렵까지 생각에 잠겨있던 환인은 비상식량을 깨웠다.

“비상식량. 일어나라. 깬 거 알고 있다.”

잠은 거의 깼지만 바구니 침대를 나가기 싫어서 미적거리던 비상식량이 냉큼 환인의 가슴에 뛰어들었다.

20kg에 가까운 무게가 짓누르는 감각에 환인의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온다.

“윽, 이런 돼지 같은 녀석.”

쿠엣!

돼지라는 말에 비상식량은 자긴 안 무겁다는 듯이 날개를 퍼덕이는데, 쌀 한 포대가 품 안에서 날뛰는 느낌이어서 환인은 다급히 강령을 펼쳤다.

쿠엣, 쿠!

“널 어깨에 태웠다간 내 어깨가 빠질 거다. 그만 내려가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어깨에 올라오려는 비상식량을 달래서 내려놓은 환인은 후드 망토를 두르고 비상식량과 함께 호텔을 나왔다.

자신이 없을 때 비상식량을 노린다면 비상식량을 데리고 다니면 그만.

=엄마. 저기 새가 걸어 다녀.=

=어머? 진짜네.=

몸이 무거워져 날지 못하고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오는 비상식량을 오가던 행인들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녹색 쿠에는 외형이 일반 쿠에들과 꽤 다르다. 지식이 없는 사람들 눈에는 녹색 새가 개처럼 쫓아다니는 모습이니 신기할 수밖에.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당기면서 제2 공동묘지로 향하던 환인은 한 무기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흠.”

진열대에 단검도 배치되어있는 것을 본 환인은 무기점에 들러 적당한 대거 벨트와 투척 겸용 단검 5자루를 샀다.

만약 습격이 벌어진다면 돌도끼 하나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느껴져서였다.

‘짐승이나 괴물도 아니고 사람 상대면 단검으로도 충분하겠지.’

오른손에 돌도끼, 왼손에 단검을 들고 하이에른 상급 무관에서 봐두었던 이도류dual wield 교관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서너번 무기를 휘두르자 지켜보던 무기점의 여주인이 손뼉을 치며 감탄한다.

=돌도끼의 무게감과 단검의 예리함을 잘 살리는 훌륭한 솜씨 시네요. 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주인은 돌도끼를 살펴보더니 아까보다 더욱 크게 감탄했다.

=어쩜. 역시 힐란의 검은 나무와 짐락의 바위를 재료로 쓴 돌도끼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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