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89화 (89/813)

〈 89화 〉 087+ 웨이포드 공동묘지

* * *

웨이포드에서 몇 안 되는 고급 창관은 근래에 들어 한 손님에 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그 남자 손님한테만 안기면 얼굴이 예뻐진다더라!=

=내 친구는 생리불순이랑 피부 트러블도 해소됐어!=

=광대뼈가 콤플렉스였던 걔 기억나? 그분이랑 세 번 동침했는데 광대뼈가 가라앉았대!=

처음에는 그저 헛소문이라고 여겼다.

그냥 좀 컨디션이 좋은 날이어서 화장이 잘 먹혔다거나 얼굴색이 좋아졌던 거겠지.

하지만 헛소문이 아니었다.

그 손님의 방문이 반복되고 그 손님을 여러 번 받은 창부들의 외모가 눈에 띄게 아름다워져 가는 것을 확인한 여자들은 마음이 절로 조급해졌다.

성형 비술을 받기 위해서는 1회에 작게는 3열은화에서 비싸게는 금화까지 지불해야한다.

비술을 받으면 고통도 고통이지만 비술이 얼굴에 잘 안착하지 않아 비용만 날리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런데 그 손님을 받으면 고통은 하나도 없이 눈에 띄는 미모 상승효과를 받을 수 있다.

더욱이 그 손님은 말로 표현 못할 만큼 독특한 매력이 넘쳐흘렀다.

털투성이 수컷들과 다르게 자신들, 여자처럼 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여자 같다는 게 아니다.

짙지만 날카로운 눈썹. 투명하리만치 무감정한 눈동자. 칼날처럼 오뚝한 콧날. 담담한 입술. 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

자신들이 알던 남자들과 다른 남자였다.

게다가 밤 기술도 뛰어나 그 손님에게 안긴 창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분한테 박히면서 동시에 그분의 목소리가 귀에 흘러들어오면 막막 뇌가 간질거리면서 마약이 뿜어져 나오는 거 같다니까?=

=물건? 그분과 비교하면 우리 루크랑 남자들껀 비루하거나 짜증 나기만 하지 뭐.=

=사정 직전에 주먹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도 없어, 불쾌하게 속에서 확장되지도 않아, 가시 같은 게 찌르지도 않고 두 갈래가 속을 뒤집는 불쾌감도 없어~.=

=우리 같은 창부한테도 존댓말을 써주시고~.=

=매너도 좋아.=

=정력도 좋고.=

=안 좋은 게 없는 듯?=

그 손님을 받으면 기분 좋은 것은 물론이고 몸에도 좋다.

잘 나가면 하룻밤에 열은화, 1000만 원까지도 받는 고급 창부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얘. 그 손님 오면 나한테 먼저 보내야 한다?=

=나비라 누나가 먼저 부탁했는데…… 그 손님 데려오면 동화 준다고 했어요.=

=고년이……. 보나 마나 손님 보내주면 준다고 했지? 난 먼저 선불로 줄게.=

창관에서 호객행위에 쓰고 있는 어린 급사에게 그 손님이 오면 먼저 자기한테 보내달라고 매수하거나.

=리시. 그건 안돼.=

=지배인 오빠. 왜 말을 못 알아들어? 그 손님을 받으면 내가 열은화를 내겠다니까?=

=……그 손님을 받으면 열은화에 더해서 자기 화대도 반납하겠다는 아이들이 줄을 서 있다고. 방금도 세라가 왔다 갔어.=

=뭐?!=

창관의 지배인에게 뒷거래를 요구했다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계집애들이 한 다스라는 말에 경악하는 일도 벌어졌고.

=알겠니? 그 손님이 가시면 몰래 뒤따라가서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만 보고 오면 돼. 그걸 나한테만 알려주면 이 은화는 네 거야.=

=……누나. 이러면 안 돼요. 손님 정보 캐는 거 마담한테 들키면 혼나잖아요.=

=혼나도 내가 혼나!=

=마리아!! 또 애들한테 수작 부리는 거니?!=

철썩!

=꺅!?=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손님 개인 정보에 관심 두지 말라고! 넌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아야, 아야얏! 잘못했어요. 마마! 캭!=

그 손님이 어디에 사는지 알아내려다 등짝을 맞으며 크게 혼나는 일도 벌어졌다.

올츠 호텔 내부에서도 비슷한 소문이 퍼졌지만 창관처럼 소동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306호의 손님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목욕 시중을 요구했고 매번 다른 메이드를 호출했기 때문이었다.

호텔 내에서 크고 작은 다툼은 벌점 요인이다. 괜히 신경전을 벌이다 벌점이 쌓이면 직장에서 해고되고 자신만 힘들어진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자기 차례가 돌아오는데 괜히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던 것

=그럼 편히 쉬세요, 손님.=

306호실의 목욕에 이어 유료 봉사 이후 향유 마사지 코스까지 끝낸 메이드는 더 있지 못해 아쉬운 표정으로 객실을 나섰다.

문을 닫기 전, 창가의 의자에 앉아있는 손님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메이드는 아쉬움을 묻으며 달칵, 문을 닫고 돌아섰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종일도 있고 싶은데.

‘으, 흘러내린다…….’

허벅지 안쪽을 타고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느낌에 허리를 곧추세운 메이드는 종종걸음으로 객실을 떠나갔다.

가운을 입고 창가에 앉아있던 환인은 문 앞의 인기척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일어서서 창문 밖으로 어둠이 내린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희뿌연 영혼 하나가 도시를 헤매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는 것이 들어왔다.

‘이제 고급 창관에 온기가 남은 여자도 거의 없으니 영혼을 보러 다녀야겠군.’

3주 가까이 하루에 두 명 혹은 세 명씩, 섹스 중독자처럼 창부를 안고 다닌 환인이었다.

세 곳 창관이 보유 중인 창부는 급을 가리지 않고 총 50명 정도.

그중 40명을 안으며 화대만 3열은화, 3000만원을 지출했다.

아깝진 않았다. 덕분에 웨이포드 뒷세계의 사정 같은 것도 들을 수 있었고 이곳에도 조폭이나 야쿠자, 삼합회, 갱 같은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막대한 양의 온기도 얻었다.

20일간 영혼 구슬 개수가 26개에서 35개가 되었으며 유지 시간도 35시간이 되었고 강령 지속 시간도 35분으로 늘었다.

여자들이 온기를 최대로 회복하려면 사람마다 다르지만 40일에서 60일 정도 걸린다. 이제 웨이포드에서 환인이 다시 창관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후드망토를 두르자 그 기척에 커다란 바구니로 만든 자기 보금자리에서 쿨쿨 자고 있던 비상식량이 깨어나 몽롱한 눈으로 쳐다본다.

쿠에……?

“별일 아니다. 계속 자라.”

쿠우…….

20일 가까이 객실에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한 덕분에 비상식량의 몸무게는 폭증 중이었다.

고롱고롱 코까지 골고 있는 비상식량의 날개 한 짝을 들어본다. 꽤 묵직하다. 이 정도면 4kg 정도 되지 않을까.

거위만 한 몸집으로 이만한 무게면 지금은 날지도 못할 거다.

‘녹색 쿠에는 4번에서 5번 정도 성장한다고 했지.’

웨이포드 중심가의 상업 구역에는 쿠에 시장도 있었다.

환인은 그곳에서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마실 것을 사주며 쿠에의 종류와 나이 보는 법, 성장 환경 등을 들어뒀는데 그중에는 녹색 쿠에의 성장 단계도 있었다.

알을 깨고 나와 깃털이 돋아나고 날아다닐 수 있게 되는 게 1차 성장.

이마의 뿔이 사라지고 덩치가 거위만큼 커지는 게 2차 성장.

늑대만큼 커지고 다리도 튼튼해져서 땅을 달릴 수도 있게 되는 게 3차 성장.

다른 쿠에들처럼 덩치가 다 자라는 게 4차에서 5차 성장이다.

‘수컷 늑대 몸무게는 40kg 정도. 하지만 비상식량은 조류니까…….’

대강 20kg에서 30kg 정도가 되면 성장하지 않을까.

마른 목욕 타월을 가져와 비상식량을 덮어주고 호텔을 나온 환인은 밤의 서늘한 바람이 몸을 휘감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계절이 변화하는지 밤바람도 더 이상 후덥지근하지 않은 날씨다.

환인은 손을 허리춤의 도끼 자루에 올리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가로수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작은 등롱을 단 이두 마차가 요란한 바퀴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여긴 한국처럼 밤길이 안전한 곳이 아니다. 중심가는 주기적으로 순찰하는 경비병들 덕분에 나은 편이지만, 일반 구역은 심심찮게 실종 사건이나 살인사건도 벌어진다고 한다.

그 때문에 호신을 위해 돌도끼를 차고 나왔다.

현재 환인의 돌도끼 투척 실력은 50m 거리에서도 백발백중.

창만큼 편하진 않지만 이런 좁고 긴 도로가 있는 도시에서는 돌도끼가 오히려 편하다. 후드 망토가 허벅지까지 가리기에 돌도끼를 허리에 차면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순찰 중인 경비대에게 걸리면 조금 곤란해지긴 하겠지만 정식 신분증이 있기 때문에 호신을 위해서라고 하면 문제 될 일은 없다.

지식과 상식을 수집하며 다니는 동안 신분증 발급에 대해서도 들은 게 있었다.

보통 도시급 행정관에서 신분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확실한 신원보증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는데 보증인이 없다면 10금화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과 함께 도시 내에 주택을 구매하거나, 아니면 행정관에서 내는 의뢰를 일정 횟수 수행해서 신용등급을 올려야 발급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아니면 영혼사같은 특수한 직업을 증명해도 되고.

그렇게 도시 한 곳에서 신분증을 발급받으면 그때부터 다른 도시에서도 별다른 인증 절차 없이 수월하게 신분증 갱신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즉 첫 번째 신분증을 발급받는 게 가장 어렵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이런 신분증이 없으면 어떤 도시에서는 상업 구역에도 들어갈 수 없고 미궁도 입장 거부를 당할 수 있다고 했다.

‘적지 않은 빚을 졌군.’

십자로에 도착한 환인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공동묘지로 향하는 길에 영혼이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해가 지고 2시간이 지나서일까. 인도에는 일정 거리마다 가로등이 있어 어둡지 않은데도 인적이 거의 없다.

‘이 시간이면 주점과 창관 거리에 거의 다 모여있겠지.’

옆의 3층 건물로 시선을 돌리자 창문마다 불이 켜셔있는 게 보인다. 귀를 기울여보면 가족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도 들린다.

“……?”

환인은 불현듯 가슴을 채우는 생소한 감정에 제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이 감정은 뭘까. 어째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생각나는 걸까.

기온은 변한 게 없는데 이상하게 호텔을 나왔을 때보다 더 춥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짧은 생각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실리테의 푼수 같은 분위기라도…… 보고 싶다고?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건가.’

환인은 다시 걸음을 옮기며 어제 앤플린드가 전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제 교육 3주 차에 들어선 이실리테는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무언가에 쫓기듯 필사적인 모습이었다는 부차적인 설명이 붙었지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교육을 잘 받고 있다고 했으니…… 남은 20일간 밤에는 도시의 영혼을 살펴보고 낮에는 미궁의 정보를 수집하면 되겠군.’

이실리테가 쓸 무식하게 튼튼한 대검도 스사를 통해 주문을 넣어놓았다.

방어구를 제작하기 위한 신체 사이즈도 앤플린드를 통해 손에 넣었으니 이실리테가 하녀 교육을 수료하고 나올 즈음이면 방어구도 완성되어있을 거다.

자신의 가죽옷도 디자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마수 가죽을 덧입는 식으로 방어력 보강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정은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런데 가슴을 떠나지 않는 이 감정은 뭐란 말인가.

‘……이 감정이 외로움인가.’

돌아가신 지 5년이 넘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고, 믿을 수 없게도 이실리테를 떠올리며 한 생각을 보면 이 감정은 틀림없이 외로움이었다.

환인은 한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갑자기 외로움이라니. 이 세상에 떨어진 뒤로 여러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 솔직히 혼란스럽다.

“…….”

그러나 그것도 일순간이었다.

눈을 감고 감정을 억누르며 몇 번 심호흡하자 익숙하지 않은 감정은 금세 가슴에서 사라졌다.

빠르게 감정을 털어낸 환인은 영혼이 들어간 공원 입구에 서서 멋지게 조형된 담 기둥의 금속세공 문패 속의 글자를 읽었다.

[웨이포드 제2 공동묘지]

“…….”

어둠 속 공원을 쳐다본다.

손질을 잘 받은 수목이 눈을 편안하게 만드는 환경을 꾸민다.

정갈하게 포장된 도로가 그런 수목 사이로 길을 내고 있으며 곳곳에는 달맞이꽃으로 보이는 꽃이 이름 모를 수많은 꽃과 함꼐 흐드러지게 펴서 은색 달빛을 받아 반짝인다.

여기가 공동묘지라고?

100번 양보해도 야외 식물원으로 보이지, 절대 묘지로는 보이지 않는다.

‘묘비가 어디에…… 아, 저건가.’

영혼 시야를 개방하자 새카만 어둠의 세계가 회색으로 걷혀가며 공동묘지가 한층 뚜렷하게 보인다. 그리고 묘비 같지 않은 묘비를 발견했다.

저 정도면 예술 조각품인데.

입구에 서서 Y자로 멋지게 뻗은 나무 아래 서있는 조각상과 그 위에 앉아있는 영혼을 보고 있는데 안쪽에서 불빛과 함께 누군가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심신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방울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그림자.

적색 나무를 깎아 제작한 등롱을 들고 지옥의 뱃사공 카론의 지팡이 같은 것을 짚은…… 달빛처럼 티 없이 하얀 후드 로브의 여자.

‘묘지기인가. 직업자는 아니군.’

후드 로브는 남자 수도사나 KKK단이 입을법한 그런 게 아니라 귀부인이 외출 시에 걸칠듯한 그런 디자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특별한 수목 관리인처럼 느껴진다.

환인에게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선 여자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후드 아래로 갸름한 콧날과 부드러운 입매, 선이 가는 턱선이 드러난다.

환인은 그것만으로 보통 아닌 미녀임을 짐작했다.

‘……음?’

문득 환인은 여자에게서 색계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인이 지금까지 본 사람은 남자도 포함해 전부 자신과 같은 연녹색이었다. 여덟 아인종 중 하나인 아드섹트라는 종족은 청자색이었지만 동물이 아니라 곤충으로 분류되는 과였으니 넘어가고.

‘아니군. 무채색계의 순수한 백색이다.’

피부도 하얗고 후드 로브도 하얗다 보니 착시가 들었다.

그런데 백색이라니, 사람이 아닌 건가 의심하고 있는데 후드 로브의 여자가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맑고 투명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다.

=이 늦은 시간에 어인 일로 찾아오셨나요.=

“지나가는 길에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있어 관조 중이었습니다.”

=…….=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만.”

=밤은 영혼의 시간. 그리고 이곳은 묘지입니다. 죽은 자의 안식을 방해하는 이에게 하늘길은 열리지 않아요.=

사분사분하게 말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듣던 환인은 문득 눈앞의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영혼을 입에 담지 않는다.

자신과 자주 대화를 하는 스사도 근 한 달에 이르는 여행 기간 동안 영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적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

보통은 쓸 일이 없는 단어기도 하지만, 환인 자신의 직업상 이야기를 종종 꺼낼 법도 한데 여태까지 그런 적이 없었던 거다.

그런데 눈앞의 여자는 영혼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것도 신념이 깃든 투로.

묘지기는 다들 이러는 건지, 아니면 자신과 같은 영혼사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어떤 종족이기에 색계통이 백색인지도.

“당신이 이곳의 묘지기가 맞습니까?”

=미흡하지만 영혼의 안식을 위해 노력하는 자입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 혹시 영혼사일까.

환인은 조금 더 나아가보기로 했다.

“그렇군요. 제가 보기에 지금 이곳에는 안식을 방해받을만한 영혼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조금 더 살펴보아도 되겠습니까.”

=…….=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눌 수 있을법한 문장을 꺼내자 하얀 후드 로브의 여자가 입을 다물었다.

“저 또한 영혼의 안식을 방해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으니 염려는 놓으셔도 됩니다.”

=…….=

표정이 보이면 좋을 텐데. 코 아래쪽으로는 감정을 알아보기 어렵다.

‘영혼사가 아닌 건가.’

만약 자신처럼 영혼을 볼 수 있다면 지금 한 말의 뜻을 알아들었을 거다. 아니라면…….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중에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양해를 구한다.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당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아닙니다.=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해를 끼칠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더니 여자가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며 입을 다부지게 오므렸다.

그 순간 환인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여자를 응시했다.

어깨 위로 아주 희미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직업자의 아우라는 아니었다.

비교하자면 영혼의 몸 주변을 채우고 있는 것과 흡사한 아지랑이였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