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083 소도시 웨이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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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비술사 직업 협회의 부여 학파 건물이었다.
비술사는 주로 변이술, 전이술, 저주술, 소환술, 부여술 등의 오브젝트 조작 관련 기술을 다루는데, 여러 기술을 쓸 수 있는 만능형과 한가지 기술에 집중된 특화형이 있다.
그런 비술사 직업 협회가 도시에서 주로 하는 일은 마법적인 물품의 제조 및 판매와 관련 부산물의 매입.
청색 계통의 5층 높이 건물 두 채 중 작은 쪽으로 스사와 함께 걸어가던 환인은 10살부터 2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큰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인재 육성도 하는 건가.’
전원 아우라가 없는 것을 보면 무직자다.
직업자가 아닌데도 육성한다는 뜻은 곧 초능력보다 기술적인 요소도 중요한 직업이 비술사라는 뜻.
=부여 술사님들이 아무래도 돈을 가장 많이 버시다 보니 건물도 좋은 편입니다. 더욱이 이런 부산물 매입에도 가격을 후하게 쳐주시죠. 얼마나 잘 쳐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작은 건물 내부는 기이했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가구와 인테리어 물품들도 죄다 청색인 공간. 거기다 바깥에서 본 것보다 안쪽 공간이 비상하게 넓다.
“…….”
스사와 함께 오피스 빌딩의 로비 대기실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예상과 전혀 다른 인물이 1층 안쪽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키는 1m 남짓. 작고 토실토실한 느낌의 인토족人? 남자다.
환인은 그를 보자마자 피부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아까 본 것도 있고 해서 부여 술사는 아티잔 같은 기술가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실제는 아우라의 깊이가 브릴릿이나 이실리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사람이었다.
이퀄라이저 이펙트처럼 쿡쿡 찌르는 아우라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점차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환인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심호흡했다.
턱시도 비슷한 청색 상의만 입은 인토족 남자는 짧은 다리로 통통 뛰듯 달려와서 환인과 스사를 번갈아 보며 흥분한 기색으로 물었다.
=우르거 수컷의 사체를 통째로 가져왔다는 게 당신들인가?!=
=그렇습니다, 위아레이 6급 비술사님. 저는 스사라고 하는 행상인이고 이분은…….=
=그건? 그것도 있나? 있지? 있다고 말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할법한 토끼 인간이 까만 눈을 반짝이며 귀를 쫑긋 세우는 게 무척이나 귀여운 모습이지만, 성미가 급한지 이쪽의 소개도 듣지 않고 대답을 촉구한다.
환인은 그런 인토족을 보며 연신 팔뚝을 쓸어내리면서 소름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이거 곤란하군.’
그동안 피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까.
가까이 붙으니 심장이 더더욱 뛴다. 마치 눈 앞의 생물이 심장에 품고 있는 피를 요구하는 것처럼…….
=물론입니다. 여길 보시죠.=
자기소개조차 못했지만 스사는 물주가 무조건 최고라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청색과 금색 노끈을 풀어 커다란 주머니의 주둥이를 열었다.
=오, 오오~! 죽이자마자 적출한 뒤 보존 주머니에 담았군! 거기다 절정기의 고환이야! 상태가 완벽해! 아주 완벽해!=
주머니 속 내용물을 본 인토족 남자는 폴짝폴짝 뛰면서 크게 흥분했지만, 스사는 다시 잘 보란 듯이 주머니 입구를 더욱 크게 열며 인토족 남자에게 속삭였다.
=위아레이 비술사님, 잘 봐주십시오. 이건 산채로 잡아 뜯자마자 보존 주머니에 담은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위아레이 6급 부여 술사님이라면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 6닢!!=
6닢이라니, 설마 금화 6닢을 말하는 건가? 환인이 순간 멈칫했을 때 인토족의 입에서 확인 사살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금화 6닢 내지! 가져온 우르거 사체는 통으로 3닢 내겠네! 시세의 세 배야! 우리한테 넘기게!=
=역시 6급 부여 술사님다운 배포십니다!! 이제 이건 위아레이 비술사님 겁니다!=
=여기 있네! 그건 이리 주고! 아샤나! 아샤나!!=
인토족 남자는 상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반짝반짝 빛나는 금화 9장을 스사의 손 위에 떨어트려 주고는 데스크 쪽을 보며 고함을 질렀다.
=네, 토몬드님.=
=이 사람 따라가서 우르거 사체 챙겨놔! 보존방부처리도 해놓고!=
=네. 7번 창고에 보관해두겠습니다.=
=알아서 해!=
그 말만 남기고 인토족 남자는 우르거의 고환이 담긴 주머니를 들고 쏜살같이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환인은 심장이 뛰는 흥분도 잊고 인토족 남자가 사라진 계단을 쳐다보았다.
‘고작 괴물의 고환이 6억에…… 사체가 3억이라고?’
아니, 고작이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겠지.
괴물의 사체로 여러 가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우르거 같이 강한 괴물일 경우 그에 합당한 가치가 나올 것이다.
‘거기에 희소성 영향도 있었을 테고.’
환인은 아샤나라고 불린 회색 고양이 귀의 푸른 로브 여자를 따라가며 싱글벙글 주머니에 금화를 담고 있는 스사에게 말을 걸었다.
=가격이 상당하군요.=
=저도 평균 시세보다 더 잘 쳐주시리라 생각했었습니다만, 통 크게 3배나 쳐주실 줄 짐작도 못 했습니다. 하하하.=
그러면서 금화 9장이 담긴 주머니를 넘겨주는 스사다.
환인은 거기서 금화 한 닢을 꺼내 스사의 손에 올려주며 물었다.
“고환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시던데 중요한 시약 재료인가 봅니다.”
=아, 수컷 우르거의 고환은 최고의 정력제로 꼽히거든요. 그런데 저희 보수는 9 열은화입니다만…….=
“괜찮으니 받아주십시오. 그나저나 정력제입니까.”
뭔가 더 대단한 것을 만드는 재료인 줄 알았는데 정력제라니.
=예. 유명한 정력제는 많지만 수컷 우르거의 고환으로 만든 정력제가 최고로 꼽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효과도 효과지만 몸에 부담을 거의 안 주기 때문이죠.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은 다른 정력제는 못 쓸 정도거든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매우 적으니 자연히 가치가 오를 수밖에요.=
“그 정도입니까?”
=음. 위아레이 님께서 정제하신 우르거 정력제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수십 배는 더 비쌉니다. 시장가격으로 보자면…… 50 금화는 되겠네요.=
“……6닢을 50닢으로 불리는 비술이 여기에 있었군요.”
=하하하하.=
어깨를 으쓱하며 흐흐 웃는 스사에게서 특유의 우월감을 파악한 환인도 피식 웃었다.
“스사 씨도 써보신 적이 있나 봅니다.”
=어이쿠, 저도 남자입니다요. 두 개는 꼭 지니고 다닙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도 효과 톡톡히 봤다며 남자로서 뿌듯함이 드러나는 얼굴로 엄지를 척 치켜세우는 스사였다.
어떤 정력제인가 환인이 궁금해하니 스사가 품에서 작은 상자를 열어 보여주는데, 그냥 새끼손톱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무튀튀한 환약?藥이었다.
이 작은 환약 하나가 무려 5열은화, 5000만 원이나 한다고.
‘하나를 통째로 쓰는 게 아니라 100개로 나누어 파는 거군.’
굉장히 비싼 소모품이긴 하지만, 지구에서 텐프로 술집의 유흥비로 하룻밤에 억을 태우는 인간도 본 적 있는 환인이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하인을 통해 우르거 사체를 내려준 스사는 그 후 짧은 감정을 통해 우르거의 시체에 위상석이 없다는 정보를 가지고 돌아왔다.
위상석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았는데 스사가 먼저 설명해준다.
=이형종의 체내에서 발견되는 돌멩입니다. 마도구와 마도기의 재료 혹은 충전재로 쓰이죠. 간혹 발견되는 거대한 위상석은 감정을 통해 무기나 방어구의 코어로 가공하기도 합니다.=
“고가의 아이템이겠군요.”
=예. 달걀 크기의 위상석이면 효과에 따라 대강 10금화에서 300금화까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 나기도 합니다. 물론 가공 전의 가격입니다.=
그 후 스사는 중심가에서 가격 대비 시설과 서비스가 좋은 고급 석조 호텔을 소개해주었다.
하루 숙박에 5열동화를 내야 하지만, 1층에는 숙박객 전용 레스토랑이 있었고 호텔에서 자체 경비guard를 고용해 숙박객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다 종업원들도 차분한 분위기여서 인기가 많다고.
“가드를 고용해야 할 만큼 치안이 안 좋습니까?”
=중심가부터는 호족님 직속 병사들이 치안을 확보하기 때문에 일반 치안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하 조직의 파벌 충돌이 존재해서 안전을 생각한다면 여기가 최선의 선택지입니다.=
“그렇습니까.”
5층 구조의 호텔 내부 인테리어는 밝은 회색조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고딕 느낌이 물씬 나는 디자인이었다.
2층부터는 일정 간격으로 유리창이 달려있고 천장에는 샹들리에까지, 복도는 양탄자를 깔아놓아 발소리를 없앴고 객실도 10평 2실 구성으로 시종을 데리고 투숙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무엇보다 환인의 마음에 든 것은 방마다 하루 1회, 목욕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서비스가 있다는 거였다.
지구의 호텔처럼 상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여관의 하인 하녀들이 끓인 물을 날라다 주는 거지만 아무튼.
“마음에 드는군요.”
10일 치 선금으로 중간 클래스인 3층의 객실을 선택해 숙박비를 치르자 스사가 미련을 드러낸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저희 집에서 머무셔도 괜찮은데…….=
“마음만 고맙게 받겠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적어도 도시를 떠나기 전에 많은 걸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불편한 점이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저희 집 대문을 꼭 두드려주십시오. 두 팔 걷고 나서겠습니다.=
“고마운 배려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오늘 저녁만큼은 저희 집에서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사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사람을 시켜서 집에 이야기해놓은 터라…… 제 아내가 환인 님을 위해 만찬을 준비해놓았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받아낸 스사는 희희낙락하며 저녁에 찾아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에트브룩에서 실어 온 짐이 그대로 짐마차에 실려있었으니 그걸 처분하러 간 거겠지.
객실로 돌아가자 이실리테가 가방을 정리하다 말고 일어선다.
“이실리테, 오늘 저녁 스사 씨의 초대를 받았는데 복장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는 것 있나.”
이실리테의 과거를 들었기에 별 기대하지 않고 물었는데 의외로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왔다.
=근처 양복점에 가시면 기성복으로 맞추실 수 있을 거예요. 예의는 모르지만 거기 직원한테 저녁식사 초대에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될 거예요. 근데 옷 사 입으시게요?=
“그게 예의가 아닌가.”
=가방에 있는 이 옷을 입으셔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봐도 호족 옷 못지않게 고급스럽거든요=
이실리테가 꺼내 든 것은 에프니스의 잡화점에서 구매한 옷이었다.
와이셔츠 비슷한 흰색 옷에 검은색 면바지와 닮은 옷. 율캄에서 산 뒤에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다.
중심가에서 오가던 사람들의 복장과 저 옷을 비교해본 환인은 딱히 문제없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비단처럼 촘촘하게 짜인 옷이니까.
하지만…….
=……?=
이실리테는 자신을 살펴보는 환인의 시선에 뭔가 이상한가 하는 눈으로 자기 몸을 내려다본다.
오래되다 못해 늘어지는 목깃, 단추가 떨어져 나가고 헤어져 가슴골이 그대로 드러나는 리넨 셔츠. 누렇고 군데군데 좀먹은 듯한 갈색 리넨 반바지.
환인의 눈에는 비루하기 그지없는데 이실리테는 뭐가 문제인지 인지를 못하고 있는 눈치다.
“네 옷이 필요하겠군.”
옷걸이가 훌륭하면 넝마를 입어도 상관없다지만, 이 세상 사람들의 미모는 상향평준화 되어있다.
그리고 직업을 가진 자들은 각성하며 신체가 한차례 최적화되는 과정에서 더욱 아름다워진다고 한다.
이실리테도 그에 걸맞은 미녀였지만 옷이 저래서야…….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이 부끄러울 것 같다고 생각한 환인은 이실리테를 데리고 호텔을 나섰다.
=잘 어울리시네요.=
양장점에서 새 옷을 입은 이실리테는 자못 어색한지 자꾸만 옷을 쓸어내렸다.
오픈숄더 타입 회색 블라우스에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는 가죽 코르셋으로 웨이스트를 조이고 하체에 달라붙는 흑갈색 가죽바지에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진회색 가죽부츠.
갈색 머리카락을 목 언저리에서 뒤로 묶은 모습은 양장점 주인이 설명한 ‘잘 나가는’ 여자 모험가 스타일이었다.
물론 넝마 같은 속옷도 웨이포드 및 상급 도시인 성도 파르히스트에서 유행하고 있는 타이 & 슬림 타입으로 바꿨다.
=이이이이런 끈쪼가리를 어, 어떻게 입으라는 거야!=
=입는 방법은 간단해요. 팬티는 이곳 면을 밑에 대고 끈을 골반 좌우에 묶으면 돼요. 브래지어는 이렇게 앞에서 묶은 뒤에…….=
=그걸 물은 게 아니거든!?=
처음에는 이런 남사스러운 걸 어떻게 입냐고 난리를 쳐댄 이실리테였지만.
‘히익. 주인님이 노려보고 있어……!’
말없이 조용히 쳐다보는 게 어쩜 그렇게 무서운지. 환인의 무서운 시선에 입을 꾹 닫고 입을 수밖에 없었다.
속사정을 알았다면 환인으로서는 조금 억울했을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쳐다만 보았을 뿐이니까.
환인도 옷 위에 걸칠 수 있는 검은색 후드망토를 쓰고 웃는 얼굴로 손을 샥샥 비비는 주인장에게 말했다.
“주인장. 저 복식과 비슷한 것으로 두 벌 더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가져가시겠어요? 원하신다면 포장 배달도 해드려요.=
“배달이 좋겠군요. 올츠 호텔 306호로 보내면 됩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입구까지 따라 나와 허리를 굽히는 양장점 주인을 뒤로하고 돌로 포장된 길을 걷기 시작하자 이실리테가 비상식량을 품에 안고 주눅 든 모습으로 따라오며 중얼거린다.
=주, 주인님? 이거 엄청 비싼데 세 벌이나 사주실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일행이 누더기 꼴을 하는 건 용납 못한다. 앞으로 복장에 신경 쓰도록.”
=네, 네에.=
세 벌과 속옷 및 부츠, 그리고 자신이 쓴 양모 재질의 후드 망토까지 다 합쳐 18 은화를 지불했다.
한국 돈으로 한 벌에 600만 원이나 낸 셈이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품질이 현대인 시점으로 봐도 수준급이었으니.
장인이 한 땀 한 땀 꿰어서 만든 가죽옷은 지구에서도 수백만 원을 훌쩍 넘긴다.
블라우스에 가죽 코르셋, 가죽 벨트, 가죽바지까지 해서 500만 원이라면 나름 합리적인 지출인 셈이다.
=그래도 1은화면 서민은 한 달을 먹고살 수 있는데…….=
“우리가 서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환인의 짤막한 대답에 이실리테는 입을 꾹 다물었다.
우르거의 시체와 고환을 팔아서 9금화를 벌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리고 주인님은 자신이나 브릴릿이 도운 덕분이라고 했지만, 이실리테가 보기에 우르거는 주인님 혼자서 잡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불알을 뜯어내지 않았더라도 과다출혈로 죽게 만드셨겠지. 5급 미궁 이형종을 혼자 잡아내는 영혼사가 평범한 서민일리가 있나.
상점이 늘어선 거리를 걷던 환인은 쇼윈도에 검 종류가 진열된 무기점을 발견하고 이실리테에게 물었다.
“검전사면 모든 검을 쓸 수 있는 건가.”
=네. 검 종류면 다 쓸 수 있어요. 다른 무기도 쓸 수는 있지만요.=
“넌 뭐가 편하지?”
=아무래도 대검이 좋죠. 휘두르는 손맛도 있고요. 한손검은 꼬챙이를 들고 휘두르는 거 같아서 영…….=
전문성이라곤 1mg도 느껴지지 않는 대답에 환인은 무기점에서 고개를 돌렸다.
‘저런 손에 비싼 무기를 쥐여줄 필요는 없겠지.’
일반 주거 구역 대장간에서 투박한 양손검이라도 사주면 될 것이다.
진열되어있는 날이 번쩍번쩍 선 클레이모어를 보며 살짝 설렜던 이실리테는 무기점을 지나치는 환인의 모습에 살짝 시무룩해졌다.
그러다 와장창, 콰창, 무언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에 앞을 바라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돈 갚으라고 경고했을 텐데!? 우리 말이 우습게 들려?! 엉!!?=
콰장창!!
=아악! 제발! 이번 주 안으로 갚을 테니 제발 가게만은 부수지 마세요!=
=맨날 똑같은 소리는 집어치워! 사람이 좋게 말을 하면 들어야지,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엉!?=
우지끈, 쾅!
=…….=
이실리테는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이 표정을 날카롭게 바꾸고 가게를 부수고 행패를 부리는 자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한편, 저쪽에서 환인을 볼 수 없게 하려는 듯이 몸으로 가린다.
적색 염료로 물들인 듯한 가죽 갑옷을 입은 남자들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이실리테를 보곤 후드를 푹 쓴 환인을 힐끔 보더니 행패를 잠시 중단한다.
무언의 합의가 있었던 것 마냥 환인과 이실리테가 지나가길 기다린 남자들은 둘이 어느 정도 멀어지자 다시 가게를 부수고 여자를 때리며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퍽!
=아악!=
=우리도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알아?! 돈을 못 갚겠으면 가게라도 넘겨야지 이게 무슨 개짓거리냐고!=
남자들에게 매달리다가 얼굴을 맞은 여자가 눈물과 코피를 흘리며 애원한다.
=가게…… 가게 넘겨드릴게요. 제발 그만…… 흐흑.=
=하, 이 개 같은 년 말하는 꼬라지 좀 보소. 씨발년아. 원금 제외하고 지금 이자만 얼만지 알아? 130금화야, 130금화!! 이걸 가게 팔아서 다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머진 저, 저도 어쩔 수가…… 꺄악!=
퍽!
=진짜 말 하나하나 짜증 나네. 어쩔 수 없긴 왜 없어? 이 몸뚱아리로 갚으면 되잖아. 가게 팔아서 불어난 이자부터 메꾸고 이 몸뚱아리 굴려서 원금은 차곡차곡…….=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이실리테는 종종걸음으로 무심히 걸어가는 환인에게 따라붙었다.
‘주인님이 나서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다행이야.’
환인이 마냥 착하지 않다는 것은 여자의 감으로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실리테는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저런 놈들을 상대하려면 저 새끼 깡패들 뒤에 버티고 있는 조직과 싸워야 한다.
조직도 그 하나로만 끝나지 않는다. 싸우다 보면 동맹을 맺었거나 인맥이 있는 다른 조직도 덩달아 끌려오기 마련.
도시에서 저런 조직을 건드린다는 것은 자칫 웨이포드 내 뒷세계 모든 조직과 싸울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다.
주인님이 아무리 강하시다지만 몸은 평범한 사람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 떼로 몰려오면 아무리 주인님이라도 크게 다치실 수 있다.
그러니 주인님은 지금처럼 적당히 사람들한테 은혜나 베풀어주면서 있어 주시면 된다.
게다가 주인님은 자신한테만큼은 상냥하시니까. 아니라면 18은화나 되는 옷을 사줄 리가 없잖아?
‘가죽 코르셋을 너무 꽉 조였나?’
어쩐지 가슴이 조금 답답하다고 생각했지만, 주인님이 자신의 강조된 가슴을 한 번이라도 더 쳐다봤으면 하는 마음에 슬쩍 코르셋을 더 조이는 이실리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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