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84화 (84/813)

〈 84화 〉 082 소도시 웨이포드

* * *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군.’

율캄이나 에트브룩 사람들이 너무 순박해서, 스사 일행이 너무 상식적이어서 혹시 이 세계는 꽤 살만한 곳이 아닐까 생각했던 환인이었다.

=정말입니다. 저희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하 나참.=

하이에나 머리의 경비병이 비웃음 섞인 조롱을 흘리다가 정색한다.

=3급과 4급 전사 둘이서 5급 우르거를 잡았다는 말을 지금 믿으라고?=

=그것은…….=

=아 존나 말 많네! 시끄럽고 짐 싹 다 내려이씨! 너희들은 집중 검문이다!=

하이에나 머리의 고성에 이제나저제나 지나갈까 기다리던 사람들의 안색이 짜증으로 물들어간다.

검문을 맡은 경비 4명은 2인 1조로 검문 수색 중.

2개 조 중 하나가 묶이면 필연적으로 성문을 통과하는 데 시간이 두 배로 들테니까.

=아 뭐야 진짜……=

=빨리 들어가야 하는데 짜증 나네.=

=좀 빨리빨리 하지…….=

경비를 향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에게 향하는 비난의 시선. 환인은 후드를 벗고 경비병에게 무감정한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넌 또 뭐야?=

“제가 했습니다.”

=뭐?=

“우르거를 제가 잡았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하이에나 머리 경비병은 순간 짐칸의 우르거를 보았다가 플뢰처럼 반반한 면상의 남자를 한 번 보고는 누구나 알 수 있을 법한 비웃음을 얼굴에 띄웠다.

=야, 클랑아. 들었냐? 저분이 우르거를 혼자 잡으셨단다. 크크크크.=

=큭큭큭. 차라리 뒤에 3~4급 나부랭이들이 잡았다는 게 더 현실성이 있겠는데요?=

환인은 낄낄거리며 조롱을 일삼는 두 경비병을 묵묵히 응시했다.

이미 환인의 머릿속에는 눈앞의 경비병에게 큰 엿을 먹일 계획이 완성된 상태.

하이에나 머리 경비병이든, 그레이하운드 머리를 한 경비병이든 둘 중 하나가 특정 행동을 하는 순간 계획은 시작된다.

소도시 웨이포드 제1 북문의 경비를 맡은 선임 경비병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꺼림칙함을 느낀 것이다.

하이에나 머리 경비병이 눈알만 굴렸을 때 그 꺼림칙함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조롱에도 말없이 묵묵히 자신을 응시하는 검은 머리 남자의 반응도 그렇고……. 일행으로 보이는 저 치타 놈과 전사 여자들이 왜 자신들을 불쌍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거지?

짐칸의 짐꾼 같은 놈들은 숫제 성호를 그리면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대체 왜?

이대로는 기백에서 밀리겠다는 생각에 하이에나 머리 경비병이 이를 드러내며 고함을 지르려는 순간이었다.

“입.”

=이……!?=

이 새끼들, 하고 목청껏 소리 지르려는 순간 귀를 찌르고 들어온 한 글자에 하이에나 인간은 숨이 턱 막힌 것처럼 말문이 막혔다.

말을 꺼내려는 순간 더 큰 목소리에 가슴이 막힌 것처럼, 말을 하려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환인은 좀 더 지능적으로 그 수법을 사용해 하이에나 머리 경비병의 입을 막고 검지를 들어 조용히 입에 가져다 댔다.

=……??=

=……?=

침묵은 전염된다.

경비병 둘이 당황한 모습으로 조용해지자 짐마차 주변의 사람들도 입을 다물고, 삽시간에 동쪽 성문 앞은 부자연스러운 침묵에 잠겨 들었다.

환인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나지막이 말했다.

“힘의 증명만큼 쉽고 간단한 일은 없습니다. 두 분은…… 정말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

하이에나 머리 경비병은 짐승의 예리한 본능으로 뭔가 잘못됐다고 직감했다.

잘 보니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 입고 있는 가죽옷이 평범하게 손에 넣기 힘든 수준의 세련된 복장이다.

보조석에 비스듬히 세워놓은 저 뿔 달린 지팡이도 뭔가 평범하지 않아 보였고 무엇보다.

‘저런 고상한 단어를 상인 나부랭이가 쓴다고?’

직업자도 아니면서 우르거를 홀로 잡을 실력자.

몇 번 들어본 적 없는 고상한 말투와 지식이 느껴지는 억양.

척 봐도 고가의 제품으로 보이는 복식과 기이한 느낌의 지팡이.

만약 저것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사기꾼 새끼라고 하면서 공무 방해로 지하 감옥에 처넣었을 텐데 저것들이 모두 모여있으니 머릿속이 엉키면서 상황판단이 잘되지 않는다.

아니, 머리는 함부로 대해선 안 될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상황.

사실 환인이 영혼사인 것만 밝히면 모든 게 해결되다 못해 웨이포드의 성주 앞까지 길이 프리패스로 뚫릴 일이다.

다시 말해 정치와 관여되기 전에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정보 수집을 먼저 하고 싶었던 환인이 스사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기에 이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평소였다면 환인이 영혼사임을 밝힐 것도 없이 평범하게 통과될 일이었다.

문제라면 일행을 담당한 검문병이 욕심 많은 하이에나 머리 경비병이었고, 시체가 다 처분하면 한 구에 금화가 몇 장이나 나올 우르거였으며, 그 시체를 용병이나 모험가, 탐험가 같은 전투 집단이 아닌 상인 일행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

즉, 트집 잡으면 은화, 어쩌면 자신의 몇 달 치 봉급인 열은화를 뇌물로 뜯어낼 수 있겠다는 하이에나 머리의 욕심이 불러낸 상황이었다.

스사는 경비병의 망설임을 알아차렸다.

이 이상 상황이 심각해지면 서로 간에 귀찮기 짝이 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환인도 바라지 않을 거로 생각한 스사가 재빨리 짐마차에서 내려 하이에나 머리 경비병을 살살 구슬렸다.

=잠시 이쪽으로 와서 이야기하시지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곤란한 이야기라……. 자자, 이쪽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이실리테도 쿠에에서 내려 스사의 뒤에 따라붙었다.

평범한 상태였다면 이게 무슨 개짓거리냐고 뿌리치며 주먹을 휘둘렀을 하이에나 경비병이었지만, 환인에 의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였기에 어어 하면서도 맥없이 끌려간다.

이실리테는 성문에 도착하기 전, 브릴릿에게 여러 차례 주의를 들었었다.

‘종자, 하녀는 주인의 앞에서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되고 주인의 직업을 막 입에 담으면 안 된다고 했어. 하지만 주인이 모욕받을 상황에서는 주인의 모욕을 막아야 한다고 했지.’

지금이 바로 주인이 모욕받는 상황이지? 마침 스사도 이 불쌍한 개 대가리를 조용한 곳으로 끌고 왔으니까…….

경비탑의 으슥한 곳에 도착한 스사는 무심결에 뒤를 보았다가 이실리테를 발견하곤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맡기라는 이실리테의 손짓에 긴가민가하면서도 살짝 물러섰다.

이실리테가 잔뜩 경계하고 있는 경비병에게 말했다.

=당신, 우리 덕분에 산 줄 알아야 해.=

=뭔소리야…….=

=아직도 모르겠어? 당신이 바보 같은 말실수로 나락에 떨어질 뻔한 걸 나랑 스사가 막아준 거라고.=

하이에나 머리 경비병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뭐? 나락으로 떨어져? 내 행동에? 저 사람 정체가 뭐길래? ……아아아아니 잠깐 나락이라고? 말 한 번 잘못했다고? 나락에?

=서, 서서서설마?=

=이실리테 씨.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아 목소리 낮춰! 다른 사람 듣겠어!=

=그분이 숨겨달라고 한 걸 그렇게 까발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진짜! 아이고, 당신을 믿은 내가 머저리지…….=

=믈흐즈믈르그…….=

대체 어쩌려고 이런단 말인가.

스사는 입술을 깨물고 으르릉거리는 이실리테의 모습에 골치가 아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그걸 항복선언으로 받아들인 이실리테는 흥, 작게 코웃음 치곤 얼어있는 경비병에게 서늘한 분위기를 잡으며 조용히 말한다.

=내 주인님은 조용히, 정말 조용히 다니시는 걸 원해……. 당신도 알잖아? 그분들이 어떤 성향이신지.=

끄덕…… 끄덕끄덕끄덕!!

=주인님은 그뿐만이 아니라 정말 강하시기도 하신데다 그…… 알지? 그…… 한테 엄청나게 사랑받고 계신단 말이야. 응? 그런 주인님한테 말 한마디 까딱 잘못했다간…… 알잖아?=

덜덜덜.

=자, 이걸 받아.=

=허억, 잠깐…… 기다리쇼! 나, 나는……!=

경비병은 자신의 손 위에 떨어지는 열동화 한 닢에 흠칫 놀라 고개를 붕붕 저었다.

=쉬이이……. 괜찮아, 이건 우리가 사이좋게, 아~무일도 없이 웃으면서 기분 좋게 헤어지기 위한 거니까.=

=……!=

=당신은 이걸 받고 무사해서 다행이고, 우리는 별일 없이 통과해서 다행이고, 주인님이 번뇌에 휘말리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고, 응?=

=…….=

=당신만 입 꾹 닫고 주인님을 못 본 것처럼 보내드리면 끝날 일이야. 물론, 이후에도 당신은 주인님을 본 적이 없는 거지.=

=……저, 정말 그거면 되는 거요?=

=그럼 어쩌게? 그분께 저주받아서 죽어 나락으로 떨어지려고……?=

후들후들.

=날 봐. 나야말로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산 증인이야.=

=무, 무슨 말이요, 그게?=

=알면서 뭘 물어? 자꾸 초짜같이 굴 거야?=

하이에나 머리 경비병은 눈앞의 여자 차림을 힐끔거렸다. 지금 보니 호위라기보단 어디 도적질이라도 했나 싶은 차림새.

=……알…겠소.=

이실리테가 능수능란한 말재주로 썩어빠진 경비병을 구슬리고 달래고 으름장을 놓아 혼을 빼놓는 모습에 스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가 이내 이실리테의 전직을 생각해내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전직 도적 두목. 그리고 돈을 좋아하는 썩어빠진 경비병.

‘유유상종이라는 거겠지.’

자신은 알펜시스 상회를 언급하고 우르거의 습격을 슬쩍 흘리며 환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하려 했었다.

이미 좋게 상황을 끝내기에는 조금 멀리 나온 마당. 아무 일 없이 이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빽이나 힘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이실리테 씨가 잘 해결했군.’

경비병은 일단 웨이포드의 성주 휘하 소속인만큼 문제를 크게 키울 생각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 끝내는 게 좋다.

약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자신보다 일을 더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음을 인정한 스사는 성문으로 되돌아가는 경비병의 뒤를 따라가며 이실리테에게 엄지를 세워 보였다.

성문에서 벌어진 트러블은 심지에 불붙은 폭탄처럼 긴장감을 만들어냈지만…….

=통과.=

언제 그런 긴장감이 발생했냐는 듯이 별일 없이 끝났다.

되돌아온 하이에나 경비병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형식상 스사와 환인, 일행의 인적 정보를 파악한 뒤 통행세를 받고 통과시켰고, 그 뒤로 밀려있던 행렬도 밀린 시간을 보답해주듯이 빠르게 통과, 통과, 통과. 다 통과시켰다.

근처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는 건가 호기심에, 그리고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 짜증 내던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던 북문 앞은 언제나처럼 시끌벅적해졌다.

아랍, 혹은 유럽의 중세 시가지 풍경과 흡사한 거리로 들어선 환인은 주변 풍경을 살피며 물었다.

“경비병과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하하……. 부끄럽게도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실리테 씨가 놀라운 수완으로 경비병을 구워삶았을 뿐이었죠.=

자초지종을 들은 환인은 짐마차를 지키듯 짐칸 옆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실리테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친 이실리테가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에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자 칭찬받았다고 여겼는지 헤헤 웃는다.

시선을 앞으로 돌린 환인은 각각의 건물마다 개성을 자랑하듯 창문의 형태도, 입구의 모양도, 벽의 모양도 전부 다른 풍경의 시내를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무난하게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

환인은 적당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어느 정도 트러블은 참지만, 그 수준이 일정 지점을 지나치면 환인은 말없이 판을 뒤집어버린다.

쥐를 잡으려고 초가집에 불을 질러버리는 인간이 환인인 것이다.

지구에서보다 더욱 편리하게 쓸 병기가 있는데 도시를 뒤집어버리는 일 정도는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게 환인의 판단이다.

‘영혼과 소통이 가능해졌다. 불만이 생기고 있는 영혼을 말로 구워삶으면 혼재로 변화할 수도 있어.’

말로 혼재를 정화하고 성불시키는 데 반대로 혼재로 만들 수도 있지 않겠나.

혼재라는 것은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 생화학 테러나 다름없다.

성공하기만 하면 도시가 혼란에 빠지는 건 물론이고 도시 자체가 망해버릴 수도 있으니까.

명색이 도시급이니 자신 외에 다른 영혼사가 있을 수도 있을 거라고 가정도 했지만, 경비병의 반응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닌 듯 하니 효과는 확실하겠지.

하지만…….

‘정보가 좀 더 필요해.’

테러도 사회에 대한 제반 지식이 있어야 좀 더 완벽하고 깔끔하게 저지를 수 있다.

지금 자신의 지식수준은 고작해야 초등학교 고학년, 잘 봐주면 중학생 수준밖에 안 된다. 지식의 확보가 급선무다.

그리고 영혼을 정말 혼재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도.

한 가지 주제에 꽂힌 환인은 수십만 명의 시민이 살아간다는 웨이포드를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멸망시킬 수 있을까 이리저리 꾸미다가 문득 그림자가 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도시 안에 성벽이 또 나타났다. 외성벽보단 낮지만 그래도 어엿한 성벽이다.

성벽을 목격한 순간 혼재를 이용한 웨이포드 전복 계획의 성공 가능성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래서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는 거다.

‘외성벽에서 내성벽까지 거리가 거의 1km…… 인구수가 약 20만이라는 게 거짓말은 아니겠군.’

내성벽 관문의 경비는 외성벽의 성문과 질이 달랐다.

외성벽의 경비들도 사슬갑옷에 장창과 검, 방패를 착용한 정규병 스타일이었지만, 내성벽의 경비는 철제 판금갑옷을 걸친 기사 수준이었다.

태도도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짐의 종류를 파악하며 우르거의 사체도 확인했지만 내성문 경비병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검문 절차를 진행한다.

=그쪽도 통행증을 제출하십시오.=

=어이쿠. 경비병님, 저분은 저희 스사 상회가 보증하는 분입니다요. 이 길로 신분증 발급과 종속 계약을 맺으러 행정관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예.=

=신분증입니까? 음……. 알겠습니다. 임시 통행증을 발급해드리겠습니다. 기한은 내일 저녁까지이니 그사이 통행증 발급 신청을 마무리 지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임시 신분증 발급 비용입니다.=

=확인했습니다.=

은은한 황색을 띠는 금속패를 받아든 환인은 철저하게 업무적인 태도로 움직이는 경비병에게 목례한 뒤 스사와 함께 다시 짐마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절차를 마치고 내성으로 들어온 환인은 외성쪽과 분위기가 또 다른 것을 느꼈다.

일단 건물의 층고가 외성쪽보다 1~2층은 더 높았고 건물 재질도 고급스러웠으며 분위기도 시장통 같던 외성과 다르게 부촌 느낌이 물씬 났다.

통행인들도 옷을 고급스럽게 입고 있었고 길을 오가는 마차나 짐마차도 훨씬 세련되었다.

무엇보다 지구의 도시처럼 구획이 정리되어있고 인도와 도로도 나누어진데다 길가에는 가로수가 가로등 같은 것도 있었다.

과장 보태 유럽의 오래된 도시에 서있는 느낌이다.

“여긴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공간입니까?”

=말씀대로입니다. 웨이포드는 구역이 세 곳으로 나뉘는데 가장 중심에는 당연히 호족이신 알드진 베레님의 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을 감싼 첫 번째 거주 구역이 고족 계급의 거주지입니다. 일체의 상업적인 용도의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고족 계급만의 저택지죠.=

첫 번째 구역의 용적은 촌락 정도. 그다음이 지금 들어선 미드타운midtown, 중심가다. 용적은 마을 정도.

=여긴 주거, 상업, 교육 및 협회의 세 곳 지구로 구분됩니다. 일종의 돈 많은 부자 동네죠. 무기, 방어구, 도구, 각종 상업점포는 일반 구역에도 있지만, 고급점은 중심가의 상업 지구에 있고 훈련소나 무관, 직업 협회, 직업 집단, 시정 건물도 이곳에 있습니다. 말 그대로 웨이포드의 중심가죠.=

“교육기관은 그것뿐입니까?”

=예? 음, 무관이나 훈련소, 직업 협회에 교육비만 내면 어지간한 교육은 다 받아볼 수 있습니다.=

환인은 기초 교육이나 의무 교육을 생각하고 물었던 것인데 돌아온 스사의 대답은 엉뚱한 것이었다.

이 세계 교육 의식은 중세 수준임을 파악한 환인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이러니 사람들이 영혼에 대한 신비나 환상을 품고 있는 건가.’

그때 스사가 붉은색 벽돌을 쌓아 마치 유럽의 고급 건물처럼 지어진 4층 대형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가 알펜시스 상회입니다.= 라고 설명해주었다.

확실히 1층에 짐마차들이 들락거릴 수 있도록 개방된 출입구가 있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게 택배 물류 센터와 비슷한 느낌이다.

“알펜시스 상회에 방문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하하. 그건 저 혼자 해도 되는 일입니다. 지금은 이 우르거 사체를 처분하는 게 먼저죠.=

그리고 마지막 구역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는데.

=일반 구역은 말 그대로 여기, 중심가에 들어오지 못한 모든 사람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일반 구역에도 나름 고급거리가 있지만, 여기에는 미치지 못하죠. 구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질이 나쁜 공간이 나오기도 하고요.=

외성문과 내성문을 잇는 대로 주변은 깔끔하고 수준도 괜찮지만, 대로에서 멀어져 외성벽쪽 구석으로 가면 빈민가가 펼쳐진다며 그쪽은 가급적 가지 마시라고 설명하는 스사였다.

설명을 유의 깊게 들으며 대로 풍경을 눈에 담던 환인은 문득 한 곳이 유독 시선을 잡아끌었기에 그곳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기는 공동묘지인가 봅니다.”

=어, 맞습니다. 어떻게 알아보셨습니까? 처음 웨이포드 중심가를 방문하신 분들은 화원으로 착각하시는데 말입니다.=

“영혼이 많이 보입니다.”

=……어, 음.=

뻘쭘한 듯 뺨을 긁적인 스사가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저긴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화원묘지는 중심가에 네 곳이 있는데 전부 해당 묘지에 안장된 분의 가족, 혹은 묘지기님과 무덤지기분들만 들어가실 수 있어요. 환인 님이 그…… 직업을 밝히시면 당연히 출입하실 수 있으실 테죠.=

환인은 대답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정보를 만족할 만큼 수집한 뒤에 직업을 밝히고 무덤을 방문하는 게 좋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조용히 밝힌 다음 기밀을 요구하거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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