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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82화 (82/813)

〈 82화 〉 080 도시 웨이포드로 가는 길

* * *

‘피한다면 여유를 두고 움직여야겠군.’

동작이 커지면 필연적으로 스태미나 소비도 늘어날 테지만, 핏빛 돌멩이가 그런 원기 회복을 보조할 테니 중요한 건 자신의 집중력이다.

‘늦어도 15분 이내에 결착을 내야 한다.’

나가떨어진 이실리테와 쿠에는 전투 불능에 빠질 정도는 아니었는지 금세 허우적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중이지만, 충격 탓에 움직임이 굼뜨다.

끄워어어어억­!!

그걸 보며 포효하는 우르거의 눈에는 드디어 모기처럼 앵앵거리는 벌레 한 마리를 쳐죽일 수 있다는 희열이 섞여 있었다.

이실리테를 두 손으로 쥐어서 터트려 죽이기 위해 두 팔을 뻗고 눈에서 핏빛을 뿌리며 쿵쿵쿵쿵 달리기 시작한다.

그걸 막기 위해 브릴릿이 뒤에서 미친 듯이 창을 찔러대지만 우르거는 아랑곳하지 않는 상황.

마침 이실리테와 쿠에가 나가떨어진 곳은 자신이 있던 곳과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기에 환인은 우르거의 돌진 궤적을 향해 소리 없이 움직였다.

그사이 겨우 몸을 일으킨 이실리테는 우르거의 돌진을 목격하곤 이대로면 둘 다 죽는다고 판단, 100kg이 넘는 쿠에를 덥석 잡아 빙글빙글 돌리다 원심력을 이용, 있는 힘껏 던졌다.

쿠삐잇?!

그리고 자신은 그 반동으로 대형 트레일러처럼 돌진해오는 우르거를 피해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환인이 뛰어든 것은 그 시점이었다.

노란 새와 작은 동물에게만 시선을 주고 있던 우르거는 뭔가 거무튀튀한 게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는 것을 눈치챘지만, 그보다 몸을 던진 자그마한 것에 눈을 희번덕였다.

저 작은 걸 쥐어 터트리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우르거는 그허허 웃으며 방심을 드러냈고, 방심은 양쪽 발뒤꿈치에 어마어마한 고통이라는 대가로 나타났다.

끄와아악!!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 우르거는 무릎을 꿇으며 한쪽 팔로 땅을 짚고 남은 팔로 뒤를 후려쳤지만, 이번에는 겪어본 적 없는 끔찍한 고통이 팔을 들쑤셨다.

황급히 팔을 되돌린 우르거는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손을 보고 광포한 울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또 어떤 쥐새끼냐!!

‘아킬레스건은 효과적이었지만 팔은 아니군.’

휘릭­ 창을 회수하는 동시에 우르거의 시야에서 비껴난 환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발목을 자른 것은 효과가 즉각적이었지만 아쉽게도 팔은 그렇지 않다.

팔을 못 쓰게 만들려면 어깨를 잡아뽑거나 해야 하는데 어깨 깡패를 넘어 어깨 갑옷이나 다름없는 저걸 뺀다는 건 이실리테에게도 불가능한 일.

더욱이 팔의 근육을 다 잘라버려도 우르거는 자기 팔을 둔기처럼 휘두를 놈이다.

어깨 근육을 모두 잘라버리면?

‘아니. 죽이려면 다른 수를 써야겠어.’

꽈우우욱!!

창의 예리함은 충분하다. 환인이 새로운 계획을 위해 움직이려 하는 순간, 무릎 꿇은 채로 주위를 휙휙 돌아보던 우르거는 까만 쥐새끼가 자신의 발목과 손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걸 직감하고 피투성이가 된 팔을 쾅쾅 내려치기 시작했다.

‘무식하군!’

저러면 손에 극통이 치밀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우르거의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틈마다 흑창으로 살점을 발라주거나 눈에 보이는 굵은 혈관을 베거나 해서 출혈을 노렸다.

꾸어어어억?!!

고작 대여섯 번 내려쳤을 뿐인데 쥐새끼가 죽긴 커녕 두 팔에서 피가 철철 흘러넘치게 된 우르거가 자기 가슴을 쾅쾅 치면서 포효를 지른다.

그 순간 우르거의 다음 동작을 근육의 움직임에서 읽은 환인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슬라이딩? 태클? 아니 둘 다다!’

뒤로 피하는 것은 불가능. 좌우로 피해도 저 긴 팔에 걸린다.

환인은 허벅지가 터지도록 힘을 줬다가 있는 힘껏 뛰어올랐다. 직후 발밑으로 회색 덤프트럭이 후웅­ 소리와 함께 지나갔지만…….

꾸와왁!!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하듯 몸을 날렸던 우르거는 공중에 체공 중인 환인을 보고 사악하게 웃으며 몸을 돌리는 동시에 팔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이거면 저 쥐새끼도 핏덩어리가……?!

……까지 생각한 순간 왼쪽 눈이 까매지며 이어서 뇌가 불타는 듯한 통증이 우르거를 덮쳤다.

꽈우와와왁!!

와중에 오른팔을 후려치는 둔탁한 감각이 있었지만, 거기까지 신경 쓰지 못한 우르거는 왼쪽 얼굴을 부여잡고 미친 듯이 땅을 구른다.

눈이, 내 눈이!!

우르거의 행동을 전부 예상한 환인에게 대응은 어렵지 않았다.

슬라이딩 태클을 감지하고 뛰어오른 즉시 돌도끼를 우르거의 눈을 향해 투척했고, 3중 영혼 방패로 몸을 가리는 한편 느릿하지만 차츰차츰 다가오는 살기 담긴 팔뚝을 찍었고, 그 반동으로 회피에 성공한 환인이었다.

우르거의 살벌한 난동에 거리를 두고 환인을 지켜보며 난입할 틈을 재던 이실리테와 브릴릿은 그 곡예 같은 기술에 입을 쩍 벌렸다.

머리가 상황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우르거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너덜너덜해진다 싶더니 영혼사님이 어느샌가 오른쪽으로 돌아간……다했는데 점프했고 우르거가 그 밑에 있구나 하는 순간 어느새 우르거는 팔을 휘두르는 중…… 저놈 눈에는 언제 돌도끼가 박혔지? 영혼사님은 언제 저만큼 날아갔고?

잠깐 생각하는 사이 어느샌가 우르거를 난도질하고 있는 환인을 목격한 브릴릿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실리테! 왼쪽 발목을 맡아라!!=

=어?! 어어!!=

환인이 베어낸 발목을 아작내라는 뜻으로 이해한 이실리테는 약간 휘어진 대검을 도끼처럼 콱콱, 벌어진 상처에 내려찍었다.

내려찍을 때마다 피와 살점이 튀어 오르다 이내 누런 발목뼈가 드러나는 것을 보며 쾌재를 지른 순간.

퍽!

=꾸엑.=

우르거의 발길질에 재차 얻어맞고 튕겨 나갔다.

=저 멍청이가……!=

럭비공처럼 튕겨 나가는 이실리테를 향해 이를 갈던 브릴릿은 종잡을 수 없는 우르거의 발길질을 피하는데 온 신경을 쏟았다.

멍청이라고 욕했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자신도 저 꼴이 될 거다.

머리 위로, 몸 왼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우르거의 발길질을 볼 때마다 이마와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걸 영혼사님은 어떻게 다 피하신 거지? 아니, 정면에서 두 팔의 공격을 피하셨으니 이걸 피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을 텐데!

이를 악물고 우르거의 기동력을 끊어내기 위해 상처를 헤집는 한편, 우르거의 전체적인 모습을 눈에 담으려 애를 쓰던 브릴릿은 문득 환인이 마구잡이로 창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환인의 창이 우르거의 피부를 가르고 지나갈 때마다 엄청난 양의 피가 뿌려진다. 마치 어딜 베면 피가 많이 뿌려지는지 아는 것처럼…….

‘어떻게?’

집중하고 있는 것은 드러누워 발악하는 우르거를 피투성이로 만들고 있던 환인도 마찬가지였다.

3중 영혼 방패 두 장과 무기 쳐내기로 직격은 피한 환인이었지만, 옆을 스쳐 지나가는 충격만으로 내장이 흔들리는 감각을 겪었다.

에프니스와 류히가 만들어준 가죽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피해는 더 컸을 것이다.

‘이 괴물이 5급이라고 했었지.’

환인은 확실히 이해했다. 자신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는 것은 5급이 한계라고.

6급이면 자신의 반사 신경으로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를 가졌거나 스치기만 해도 죽는 힘을 가진 괴물이 득실거릴 것이다.

꾸와아아악!!!

드디어 왼쪽 시력 상실과 발목의 고통에 적응했는지 우르거는 이때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흉악한 기세로 환인을 짜부라트리기 위해 발버둥 쳤다.

마치 악을 쓰는 아기처럼 엎드려 팔다리를 휘젓고 몸을 구르고 흙뭉터기를 집어던지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의 발목을 찍어대는 브릴릿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은 쥐새끼를 향해 고깃덩어리가 된 팔을 휘두르는 우르거는 홧병으로 죽을 만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슬라이딩 태클을 다시 할라치면 멀찍이 도망치고, 쫓아가려 하면 어느샌가 다가와 창을 번개같이 찔러댄다.

때릴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여서 팔을 휘둘러보면 자신의 팔에만 상처가 나고, 주먹으로 내려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팔의 살점을 듬뿍 떼어간다.

분노만으로도 몇 날 며칠을 날뛸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지만, 어째서인지 우르거는 점점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동족과 치고받고 싸운 다음 날처럼 온몸이 뻐근하고 무거워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눈앞도 침침하고 숨도 차다.

게다가 조금씩 머리가 멍해지면서 분노가 흐려지고 있었다.

잠이 올 때처럼 힘없는 느낌이다.

끄우어어…… 어어억.

그렇게 헐떡이던 우르거는 순간 등골이 오그라들 정도의 격통이 허벅지 사이에서 올라와 뇌를 헤집는 것을 느꼈다.

일순간 머릿속이 텅 비고 숨도 쉴 수 없었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웅크리며 고깃덩어리나 다름없는 두 팔로 가랑이 사이를 가렸다가 쿵, 앞으로 엎어져 벌벌 떨었다.

갑자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환인은 눈에 훤히 보이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한 줄기 바람처럼 우르거에게 달려들어 하나 남은 눈알을 통해 창을 찔러넣었고.

푸우욱­

끄, 커걱. 꺼어…….

1m 가까이 눈을 통해 밀어 넣어진 창은 우르거의 뇌를 헤집었다.

뇌가 곤죽이 되어버린 우르거는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다가 쿵, 쓰러져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후우.”

확실히 미궁에서 만났던 바르둘과 비슷하게 어려운 적이었지만, 어째서인지 희열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심장이 기분 좋게 뛰긴 했지만, 그냥 그 정도로 끝났다고 할까.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아마도 앞으로 편한 마음으로 즐겁게 싸울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겠지.

그때 꼴 좋다는 듯이 비웃음 담긴 이실리테의 목소리가 들려서 그쪽으로 걸어갔다.

=개새끼, 날 두 번이나 걷어찬 복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의미로 굉장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쌍코피가 터지고 입가에 핏자국이 남은 이실리테가 자기 머리보다 더 큰 피투성이 불알주머니를 들고 사납게 웃으며 우르거의 옆구리를 퍽퍽 걷어차고 있었던 것이었다.

머리로는 상황을 이해했지만, 묻지 않고는 못 배길듯한 기분에 이실리테를 질린 눈으로 쳐다보는 브릴릿에게 물었다.

“설마, 그겁니까?”

=예……. 생각하시는 게 맞으실 겁니다. 이실리테! 그만해라!=

브릴릿의 호통에 눈썹을 치켜떴던 이실리테는 환인이 옆에 서있는 것을 보고 언제 쌍심지를 켰냐는 듯이 활짝 웃으며 달려갔다.

이 정도로 했으니까 주인님이 칭찬해주실 거야!

=주인님!=

“가까이 오지 마라.”

=네?=

“손에 쥐고 있는 그거부터 버려…….”

=버리시면 안됩니다아아악!! 그대로! 그대로 들고 계세요!!=

환인의 말에 곧장 우르거의 불알주머니를 팽개치려던 이실리테는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달려오는 스사의 모습에 멈칫했다. 버리지 말라니, 왜?

=흐억, 흐억! 그 고환! 멀쩡하고 싱싱한 젊은 수컷 고환은 하나에 금화 1닢이나 하는 어마어마한 시약 재료입니다! 여기, 여기 주머니에 얼른 넣으세요!=

=히익. 이, 이거 안에 있는게 금화 2닢이나 한다구?=

=수컷 우르거는 엄청나게 희귀한 놈입니다! 몸뚱이가 돈덩어리나 다름없어요!=

커다란 포댓자루 같은 것에 우르거의 불알주머니를 통째로 담은 스사는 곧장 금색 끈으로 꽁꽁 감고 그 위에 복잡한 글씨가 쓰여진 청색 끈을 3중, 4중으로 감는다.

그리고는 피 웅덩이를 만들어내며 죽어있는 우르거를 환한 얼굴로 보더니, 환인의 두 손을 잡고 크게 흥분하며 소리쳤다.

=영혼사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거의 혼자서 우르거를, 포악하기로 소문난 수컷 우르거를 이렇게 간단히 사냥하시다니요! 크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제 심장이 얼마나 뛰던지……!=

“브릴릿 씨와 이실리테가 먼저 우르거를 상대해준 덕분에 놈의 행동을 분석하기 쉬웠습니다. 특히 이실리테가 그걸 뜯어내지 않았다면 전투가 상당히 길어졌을 테지요. 꽤 애를 먹었을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헤헤헤.=

환인의 이유 있는 공치사에 브릴릿도 기쁜 기색을 억지로 숨기며 뿌듯해했고 이실리테도 철제 가슴막이가 엉망으로 구겨진데다 코피를 흘리는 낭패스러운 모습으로 의기양양해했다.

콕 찝어서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다니, 나도 잘 한 거 맞지? 하고 생각하는 게 훤히 보이는 모습이다.

=…….=

그런 그녀의 옆구리를 툭, 팔꿈치로 친 브릴릿은 손가락으로 코 밑을 가리켰다. 그 신호에 이실리테는 코 밑을 훔쳤다가 흠뻑 묻어나는 피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황급히 코 밑을 훔치며 헤헤 웃는다.

브릴릿은 그게 어이없었다. 우르거에게 두 번이나 맞았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몸은 괜찮나?=

=응? 어. 이정도야 뭐 가뿐하지. 처음은 내 검이 절반 정도 막아줬고 두 번째는 스친 정도였으니까.=

그 스친 공격도 평범한 전사였다면 피곤죽이 되었을 텐데.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브릴릿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젓는 것으로 흘려보냈다.

=자 그럼 사체 정리는 저희에게 맡겨주시죠! 크~ 영혼사님이 워낙 피를 잘 빼놓으셔서 크게 뒤처리랄 것도 없겠네요! 어이! 여기다! 이리로 와!=

스사는 짐마차를 모는 짐꾼에게 연신 손을 흔들며 얼른 오라고 소리쳤다.

우르거의 사체를 정리하는 스사는 말 그대로 신이 난 모습이었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짐칸 일부를 비우고 브릴릿과 이실리테의 도움을 받아 우르거의 사체를 짐칸에 구겨넣고, 부피 때문에 빼놓은 짐은 딘테의 쿠에에게 실었다.

단 하나의 상품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상인의 의지가 보이는 부분이었다.

그 뒤에는 우르거에게 습격당해 죽은 다른 상회 직원들의 시체를 천으로 둘둘 감아서 수습한 뒤 길 한쪽에 파묻고 표식을 세워놓았다.

“이분들의 짐은 그냥 내버려 두고 가시는 겁니까?”

=챙겨줄 의무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희 짐칸에 자리가 있었다면 몰라도 우리 짐을 버려가면서 도와줄 의리는 없죠. 복수를 해준 것만으로도 알펜시스 상회주는 영혼사님께 감사해할 겁니다.=

“그 상회의 주인과 아시는 사이입니까?”

=예. 한때 우르슐 대상회에서 함께 일을 배우던 사이였죠. 지금 가고 있는 웨이포드에 알펜시스 상회 본점이 있습니다.=

오랜 상인 경력을 자랑하는 스사가 장담할 정도면 성가신 트러블에 휘말릴 일은 없을 것이다.

아주 약간 마음을 놓은 환인은 시선을 돌려 자신의 뒤에 둥둥 떠있는 떡대, 우르거의 영혼을 응시했다.

‘이놈은 왜 영혼 구슬화가 안되는 걸까.’

형태의 뚜렷함은 칼날 멧돼지의 영혼보다 더했다.

중급이던 칼날 멧돼지는 그나마 군데군데 흐릿한 게 보였는데 우르거는 그런 거 없이 약간 투명한 것과 밝은 회색인 걸 제외하면 생전 모습과 완전히 일치했다.

최하급 ­ 하급 ­ 중하급 ­ 중급으로 이어지는 영혼의 변화를 감안해보면 우르거의 영혼 등급은 환인의 추정으로 중상급에서 상급 사이.

그랬기에 우르거의 영혼을 자신의 몸에 강령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중급으로 추정하는 칼날 멧돼지의 영혼을 강령했다가 뜨거운 맛을 봤던 환인이다. 그때보다 영혼 능력이 더 성장했다지만 우르거의 영혼도 칼날 멧돼지보다 등급이 더 높아 보인다.

강령했다간 이번에는 뜨거운 맛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영혼 구슬화는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구슬화도 안되다니.’

이것도 자신의 영혼 기술 숙련도에 영향을 받는 걸까.

속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스사의 이야기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나저나 미궁의 오버플로우 범위가 굉장히 넓은가 봅니다. 5급의 우르거까지 출현한 걸 보면 지하 30층이 넘어가는 심층 미궁인 거 같은데, 행정관이 사후처리에 꽤 골머리를 썩이겠군요.=

“그렇습니까?”

=뭐, 미궁의 대충 견적은 나왔고 오버플로우가 벌어졌으니 미궁 안도 비교적 한산할 겁니다. 미궁을 부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문제는 풀려난 마수하고 괴물들이죠.=

스사가 지도를 펼쳐 손가락으로 집 모양 그림을 하나하나 짚는다.

=여기가 율캄이고 이~렇게 이동해서 여기가 레힐입니다. 그리고 이곳이 에트브룩, 여기가 웨이포드입니다.=

율캄을 시작으로 시계 방향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스사.

“이곳과 이곳, 이곳에서 공격받았으니 이즈음에 미궁이 있겠군요. 범위가 상당합니다.”

환인이 손가락을 짚은 곳은 서쪽 밀림이 그려져 있는 부근이었는데 스사도 동감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한동안 이쪽 상행은 자제해야죠. 영혼사님이 안 계셨다면 알펜시스 상회 직원들의 모습이 곧 저희들의 모습이었을 테니까요.=

“직업자를 호위로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보군요.”

환인의 질문에 스사가 힐끔, 저쪽에서 이실리테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브릴릿을 쳐다보고 말했다.

=사실 브릴릿은 특별한 경우죠. 보통은 높은 분들 경호나 호위 쪽으로 빠지지, 이런 노상 생활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이실리테 씨도 특별한 경우고요.=

=스사 님. 출발 준비 끝났습니다요.=

=알겠네. 영혼사님, 슬슬 출발하실까요.=

보조석이 자기 자리인 양 웅크리고 있는 비상식량을 밀어내고 자리에 앉은 환인은 다시 우르거의 영혼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대로 성불하게 두는 건 아쉬운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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