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80화 (80/813)

〈 80화 〉 078 도시 웨이포드로 가는 길

* * *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온다.

약간 붉은 기가 담긴 햇살은 침대 위에 나신으로 뻗어있는 세 명의 여성을 비추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환인의 눈에는 하나의 예술처럼 보였다.

=영혼사님. 여기 옷…….=

밤새도록 환인에게 괴롭힘당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촌락의 다른 여자 셋도 함께였기에 그나마 기운을 보존한 메라가 환인의 옷가지를 가져왔다.

“고맙습니다.”

환인의 옷가지 시중을 들던 메라는 어젯밤의 격렬한 정사를 떠올리며 서글픈 눈빛을 흘렸다.

하얀 알몸에 수없이 찍힌 키스 마크가 지금도 빨리고 있는 것처럼 찌릿찌릿하다.

수없이 얻어맞아 붉게 물든 엉덩이는 아직도 후끈거리고 몇 번이나 쥐어짜인 젖무덤은 환인의 억센 손아귀에 아직 잡힌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굵은 기둥이 여전히 박혀 있는듯한 착각이 드는 밑구멍.

남은 평생 두 번 다시 느껴보지 못할, 이제는 추억으로 묻어야 할 감각들.

옷을 다 챙겨입은 환인은 매력적인 세 여체가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한폭의 그림 같은 구도를 감상하다가 목에 걸고 있는 핏빛 돌멩이를 만지작거렸다.

에트브룩에서 마지막 밤. 환인은 무려 네 명과 동시에 관계를 맺는 기염을 토했다.

‘전부 핏빛 돌멩이 덕분이지.’

목걸이처럼 만들어 목에 걸고 있는 핏빛 돌멩이는 피부와 닿으면 피로와 활력을 점차 회복시켜주고 상처 재생 속도도 미약하게 증가시켜준다.

이러한 효과는 칼로리를 소비해서 신체에 적용되는데, 요점은 활력 회복에 정력도 포함되어있다는 것.

즉, 정력을 회복하느라 소비한 열량을 보충할 수만 있다면 하루종일 잠자리를 가져도 문제가 없다.

이에 대한 실험은 율캄에서 끝냈다. 옆에 고칼로리 음식을 놔두고 밤새도록 열락에 파묻혀 지낸 것이다.

물론 정력의 회복만 계속하다 보면 특정 영양소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자주 쓰면 몸이 축나니까 매일같이 쓸 수는 없는 방법이지만, 여성과 성관계를 통해 온기를 흡수해야 하는 환인에게 핏빛 돌멩이의 값어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나 다름없다.

사흘 사이 5년은 젊어진 듯 생기가 가득한 메라는 손자국이 남은 젖가슴을 어루만지다가 환인의 가슴에 안겨 슬픈 눈으로 말했다.

=영혼사님이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환인은 대답 없이 메라의 하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며 그녀의 이목구비를 살폈다.

‘진짜 젊어졌다. 눈 밑의 옅은 주름도 사라졌고 입가의 나잇살도 없어졌어.’

가슴의 탄력도 젊었던 시절로 되돌아온 듯, 맞닿은 가슴에 묵직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환인은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며 귀에 속삭였다.

“세상은 넓고 제가 가야 할 곳은 많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오히려 영혼사님처럼 큰일을 해야 하는 분께 제가 무슨 망발을 했는지…….=

메라는 지난 사흘이 정말 꿈만 같았다.

낮에는 매너 넘치는 스윗남. 밤에는 야성 넘치는 짐승남.

짐승 같은 그의 밑에 깔렸을 땐 자신은 남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한낱 암컷이라는 걸 자각했고, 낮에는 부드럽고 세련된 그의 말투에서 자신은 아이를 키우고 남자를 뒤에서 지탱해주는 훌륭한 여성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이런 남자를 겪었으니 앞으로 어지간한 남자는 시시해서 남자로 보이지도 않으리라.

메라는 환인이라는 멋진 남자와 뜨거운 밤의 추억을 얻었다는 만족감과 이제는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며 촌락 운용기금 대부분을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녀의 독단은 아니었다. 어제저녁, 촌락 사람들과 모여서 상의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에게 에트브룩 촌락의 좋은 이미지를 한껏 새겨넣기 위한 뇌물성 사례, 율캄의 촌장이 내렸던 결정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짐마차를 타고 에트브룩을 나온 환인은 메라에게 받은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반짝이는 열은화가 5장 들어있었다. 은화 50장 어치, 5000만 원이나 되는 거금이었다.

=오, 메라 촌장님도 선물을 주셨나 보군요.=

“저도 사람이다 보니 기분은 좋지만…… 반대로 돈이 목적인 여행이 될까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군요.”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그건 우리 촌락을 기억해달라는 뇌물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분들의 심정이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촌장이었어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거다.

‘설마 영혼과 직접 대면할 수 있게 될 줄이야.’

율캄을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영혼사님은 10일 조금 넘는 짧은 시간에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루어내셨다.

그것만 봐도 환인이 경외스러운 스사다.

이런저런 세파에 찌든 자신도 이럴진대 평생을 촌락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사람은 어떨까.

‘추종자가 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

요즘 스사는 환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혹시 영혼사님은 멀리서 전이 사고를 당해 그 삼림형 미궁에 떨어진 게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천인?人이 아닐까 하고.

그러면 걸어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미궁에서 나타났다는 거나 저런 천재성, 품위가 이해된다.

‘아윅크 호족 가문의 전사도 영혼사님을 가문에 초대한 거 같고 말이야.’

스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환인은 별 생각 없이 진주색 돌멩이를 쥐고 명상을 하고 있었고, 이실리테는 쿠에를 타고 짐마차 옆을 달리며 눈 밑이 조금 거뭇거뭇해진 얼굴로 환인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이실리테도 환인의 호위 겸 몸종이라는 이유로 촌장 집의 2층, 환인의 옆방에 머물렀었다.

그리고 매일 밤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말 못 할 여러 감정을 곱씹었다.

주인님은 내 몸에 관심이 없는 걸까. 저렇게 여자를 좋아하면서 그동안 어떻게 참은 거지? 남자는 보통 2~3번 하면 지치지 않나? 주인님은 어떻게 저렇게 밤새도록 하시지? 저러다 여자가 죽겠네. 몇 시…… 히익, 벌써 날이 샜어!

자신의 지식이 잘못되었을까, 쿠에를 움직여 짐마차 반대편으로 돌아간 이실리테는 브릴릿 옆에 딱 붙어 달리면서 물었다.

=브릴릿. 남자는 보통 두 번 정도 싸면 나가떨어지는 거 맞지?=

=…….=

이실리테는 브릴릿이 ‘이년이 제정신인가?’ 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발끈했다.

=아 왜!=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가 그딴 소리를 하고 다니면 네 주인님의 이름에 똥칠하는 거나 다름없다.=

=딴 데서는 이런 말 안 하거든? 너니까 묻는 거지.=

=내가 너와 그렇게 친한 사이던가?=

=니 애인이랑 내 주인님이 단순한 관계로 끝나지 않을 거 아냐. 우리도 좀 친하게 지내도 되지 않을까?=

=…….=

확실히 스사는 환인과 관계를 맺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사람 사이 인맥 같은 것은 잘 모르는 자신이 보아도 대단한 영혼사님인데 그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입 밖에 함부로 꺼내는 것이 아니다. 너는 체면과 품위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야겠군.=

=으…….=

=넌 품위 없는 도적 생활을 너무 오래 해서 감각이 뒤틀려있다. 도시에 도착하면 고급인재 양성기관에서 정식 하녀 교육을 받을 수 있게끔 부탁드려보지.=

=그, 그 정도로 심해?=

=말투나 생각하는 게 얼굴 반반한 창녀라고 하면 이해되나?=

=…….=

=지금 내가 보기엔 영혼사님의 몸에 똥이 묻어있는 것과 다름없어.=

=똥이 나란 거지?=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어서 브릴릿은 입을 닫았고 이실리테는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을 곁눈질하던 브릴릿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각성 직업자들은 미남미녀가 많다는 것을 증명하듯 이실리테도 입을 다물고 표정을 가지런히 하고 있으면 청순함과 약간 야성적인 느낌이 섞여 있는 준수한 미녀였다.

덩치가 보통 여자들보다 약간 더 크지만 그만큼 몸매도 잘 빠져서 어색하지 않다.

리치가 길다는 것은 전투에도 유리한 점이 많기에 평균 여성 신장인 브릴릿에게는 조금 많이 부러운 부분이었다.

더욱이 며칠 전부터 머리를 묶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게 또 이실리테의 분위기와 굉장히 잘 어울려서, 행동만 단정하게 다니면 호족까진 무리더라도 특권층의 둘째 부인이나 첩으로 들어가는데 부족하지 않을 수준.

‘그러니까 보석의 원석이라는 뜻이지.’

조금만 가공하면 아름다운 보석이 될 수 있는 원석.

=……그건 왜 물어본 거지?=

=어? 남자가 몇…….=

=설명하지 말고.=

=…….=

이거 말해도 되나? 품위라는 거에 문제가 되는 건데? 설명하지 말고 설명하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으음,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쥐어 짜내던 이실리테는 문득 지금 마음 쓰이는 걸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곳까지 사고를 진행했고 망설임 없이 물었다.

=난 지금까지 주인님이 그…… 그 건 줄 알았어.=

=그거?=

=그러니까 여자를 안 좋아하고…… 남자끼리, 그거 말이야.=

=아, 그거……. 웃기지도 않는 오해군.=

영혼사님이 호모라니.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걸까. 자신이 알기로 율캄에서만 육십이 넘는 여자를 품은 남자 중의 남자이신데.

으레 그렇듯 과장된 소문을 믿고 있던 브릴릿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실리테에게 가르쳐주었고 이실리테는 눈을 부릅떴다.

=그게 말이 돼? 21일 동안 60명하고 잤다고? 그거 사람이 아니잖아!=

=그만큼 남자다우신 거지.=

=…….=

생각해보니 그러네. 마지막 날은 4명하고 했으니까 21일 동안 하면 60명은 충분히 안으시겠네.

간단한 계산을 끝낸 이실리테는 다시 풀이 죽었다.

=근데 난 왜 거절하시는 거지?=

=……언제 그랬는데?=

=레힐 여관에서…….=

=싸가지 없이 굴 때였나.=

=아냐! 그땐 주인님한테 완전히…… 복종한 다음이었다구…….=

그 말을 들은 브릴릿의 머릿속에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이게 진실일까 잠깐 생각해보던 브릴릿은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가 한 말 때문에 그러시는 거 같은데.=

=내 말? 내가 뭘 말했는데?=

=우릴 습격했을 때 수절 어쩌고 하지 않았나. 네 입으로 그런 말을 했으니 영혼사님도 그것만큼은 존중해서 손대지 않으신 거지.=

=…….=

확실히 그런 말을 했…… 아. 그러고 보니 그때 주인님이 엄청 심란한 거 같던데 그래서였나?

그럼 어떻게 하지? 그때 한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절 안아주세요? ……그런 말을 내 입으로 어떻게 해!

끙끙 고민하는 모습에 브릴릿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스사의 말이 진짜였어.’

베갯머리에서 야생 암고양이 같던 이실리테가 여자아이로 변했다는 말을 듣고 설마 했던 브릴릿이었는데, 눈앞의 증거를 보니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되는 일이다.

자신도 스사라는 애인이 없었다면 반해서 따라가고 말았을지도 모를 만큼 영혼사님은 매력적인 남자였으니까.

솔직히 이실리테에게 조금 질투심도 있었다. 듣자 하니 벌써 투척술을 실력이 확 늘었다고 하지 않는가.

브릴릿도 이실리테의 투척술 연습을 보고 싶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혼자 비밀스럽게 하는 것 때문에 속앓이만 하는 상황.

기술의 중요성은 그녀도 이해하고 있다.

상급 무관??의 비기??, 8급 이상 호족 가문의 신기?? 같은 기술은 1인 전승으로만 이어지는 데다 만약 그러한 비기, 신기가 타의에 의해 누출되면 전쟁이 벌어진다.

실제로도 역사에 몇 번 신기의 도둑질, 전승자 살해로 인한 신기 상실을 원인으로 고위 호족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고 기록되어있고.

전투가 아닌 생활직의 간단한 기술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막대한 대가를 지불해야할 정도인 만큼, 이실리테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지만 상심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방어술의 일부라도 전수받는다면 이실리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지겠지. 나보다 더…….’

계속 생각하면 질투심이 더 강해질 것 같아 브릴릿은 생각을 접고 쿠에에게 박차를 가하며 말했다.

=정찰 다녀오지.=

행렬에서 멀어지자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 시원해진다. 작게 흔들리는 쿠에의 안장, 그리고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가슴속에서 싹트는 질투를 날려 보낸다.

굳어있던 얼굴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예리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언덕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온 브릴릿은 저 언덕 아래에 있어선 안 될 흔적을 발견하곤 얼굴을 경직시켰다.

바로 기수를 돌린 브릴릿은 짐마차로 빠르게 돌아가 스사에게 보고했다.

=길에 습격당한 짐마차가 있습니다. 생존자는 0명으로 보입니다. 파괴된 마차의 모습을 보아 거대 괴물의 습격으로 판단됩니다.=

즉시 짐마차를 멈춘 스사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괴물의 숫자나 종류는?=

=멀어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브릴릿, 그대의 판단을 신뢰하니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말해주게.=

=……이블 팩션의 우르거 쪽 소행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허. 진짜로?=

=예. 전투의 흔적도 그렇고 짐마차의 짐이 모조리 박살 났습니다. 먹히거나 빼돌린 흔적이 없습니다.=

=끄으응……~~!!=

갑갑함을 있는대로 드러내며 머리를 벅벅 긁는 스사의 심각한 표정에 환인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블 팩션evil faction. 단어의 뜻만 보면 악의 파벌을 뜻한다. 하지만 단어의 사용 상황을 대입하면…….

‘악 성향 종족. 이 세계는 두 가지 성향의 파벌이 대립하는 구도인가.’

선good 성향은 4대 종족이라고 부르는 루크랑, 플뢰, 프라우드, 플라비우스겠지.

환인은 옆에 있는 이실리테에게 물었다.

“악 성향 종족은 뭐가 있지?”

=네? 어, 그러니까 오흄, 호브, 사낙, 우르거, 섀도어, 시어 프라우드, 리저드노트, 헬플럼이 있어요. 그외에도 많은데 그것들은 다 소수라서 종족이 아니라 괴물이나 비인류로 분류될 거예요.=

“잘 아는군.”

=용병이면 북쪽의 이블 팩션은 다 알고 있어야 하거든요. 아 맞다. 주인님, 7대 아인종은 아세요?=

“처음 듣는다.”

=그러니까 사비, 해비, 기플라, 암드룩스, 노티엔, 질리언트, 아드섹트에요. 특히 다른데서 온 주인님이라면 아드섹트는 괴물이라고 생각하고 공격할지 모르는데 절대 공격하시면 안 돼요.=

“어떤 모습이길래 그런 주의하라고 하는 거지?”

=주인님이 비상식량한테 먹이는 곤충 있잖아요. 그런 걸 사람 크기만큼 키웠다고 보시면 돼요.=

“……과연.”

마을 안이 아니라 밖에서 처음 본다면 공격해도 이상할 게 없는 외형일 거다.

=영혼사님. 대화중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예. 일단 사건 장소로 이동해서 확인해야겠습니다. 만약 정말 우르거의 소행이고, 근처에 아직 있다면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이니까요.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

브릴릿과 호위들의 안색을 보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스사의 짐마차는 시속 70km까지 낼 수 있다. 그런데도 도주할 수 없다는 말에 환인은 호기심이 걷잡을 수 없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거인형 괴물. 우르거. 달리기가 시속 70km 이상.

얼마나 강한 괴물일까.

짐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호위들과 이실리테도 주변 감시 체제를 기동한다. 환인도 비상식량을 날려 보내 감시를 명령하고 스사에게 물었다.

“우르거는 어떤 종족입니까?”

=음, 보통 다 자란 우르거는 키가 5m 정도 되는데……. 혹시 오흄은 아십니까?=

“모릅니다.”

=돼지 얼굴을 마구 때리면 비슷하게 생기지 않을까 싶은 놈들입니다. 덩치는 인상족과 비슷한데 우르거는 그런 오흄을 4배 가까이 키웠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힘은 비교할 수 없이 강하고 가죽도 어지간한 날붙이는 박히지도 않을 만큼 질긴데다 민첩성은 정말 끔찍할 정도죠.=

‘오흄이라. 미궁에서 본 회색 괴물을 말하는 건가.’

잠깐 생각하던 환인이 물었다.

“바르둘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입니까?”

=어……. 영혼사님은 바르둘을 한 번만 보셨나 봅니다.=

“종류가 많습니까?”

=아무래도 우리 루크랑의 대척점 같은 놈들이다 보니까요. 종류도 우리 루크랑만큼이나 많은 편입니다. 급수도 1급에서 9급까지 굉장히 다양하죠.=

“인랑족 남성을 닮은 바르둘이었습니다. 크기는…… 3m 정도 됐고 아우라를 감고 있었습니다. 얼룩덜룩한 늑대 수십 마리를 데리고 다녔고요.”

환인의 설명에 스사가 탄성을 지른다.

=허어, 그 말씀대로라면 5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요. 브릴릿,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일반 우르거라면 그 바르둘이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르거 히어로라면 그 바르둘이 다섯 마리라도 이기는 건 불가능하겠지요.=

“그럼 히어로가 아니길 바래야겠군요.”

=……?!=

=……!=

=헤……?=

히어로가 아닌 우르거는 이길 수 있다고 해석되는 발언에 스사와 브릴릿, 이실리테는 물론이고 짐칸의 일행들 표정도 괴상하게 변했다.

* *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