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5화 (75/813)

〈 75화 〉 074 가도??

* * *

자신의 앞에 앉아 긴장한 기색을 드러내는 보이시한 매력의 여자, 이실리테에게 물었다.

“넌 무슨 종족이지?”

“저는 인성족이에요. 소수에 속하는 종족이죠.”

성성??이, 원숭이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귀도 사람과 비슷하고 여관에서 반쯤 벗은 몸을 봤을 땐 꼬리도 없었지.

“전사 계열 직업자 전체를 통틀었을 때 너는 어느 정도지?”

=상, 상위 70%안에 들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등급심사를 받지 않은 지 오래 되서 몇 급인지는 몰라요…….=

=네가 보기에 브릴릿은?=

=4급 전사는 될걸요……?=

직업자는 보통 1급에서 시작해 10급이 가장 높은 급수라는 건 환인도 파악했다. 그런데 브릴릿이 4급이라면…….

이실리테는 직업자들 중에서 흔한 수준이고 브릴릿은 그래도 보통보다 약간 나은 정도인가.

환인은 좀 애매하다고 느꼈다. 표본이 좀 더 있다면 좋을 텐데.

“바르툴에 대해서 알고 있나? 놈은 몇 급이지?”

=어, 저는 미궁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미궁의 이형종은 잘 모르는데요. 그리고 같은 이형종이라도 급수가 다른 일이 꽤 있는 거로 알아서…….=

“…….”

환인은 탁탁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신체 단련과 훈련은 계속할 테지만…….’

이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근접전투를 위해 그쪽으로 신체를 단련하고 영혼 능력을 키울 것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무기술은 신체 단련 정도로만 하고 영혼 쪽에 모든 역량을 기울일 것인지.

그걸 위해 이실리테를 불렀던 건데 별로 도움이 안 됐다.

스사와 브릴릿에게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급한 것은 아니고 또 스사에게 심정적으로 너무 기대는 것도 좋지 않다고 환인은 생각했다.

그래, 기왕 하는 정보수집이라면 소도시 웨이포드에 도착한 다음 하는 게 낫겠지.

환인이 생각에 빠져든 것을 보고 방해하지 않으려던 이실리테는 문득 궁금증이 생겨서 몸을 꼼질거렸다.

‘하지만 스사는 하녀가 먼저 말 꺼내는 건 안된다고 했는데.’

본능은 그냥 물어보라고 찌르고 이성은 기겁하면서 절대 안 된다고 말린다. 그 갈등에 이실리테의 꼼질거림이 더욱 커졌고, 환인은 결국 그 기척을 무시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게 있나?”

이거 허락한 거지? 그럼 물어봐도 되는 거지?

=저어……. 주인님은 세 가지 방어술을 어떻게 익힌 거예요? 제가 보기에 영혼사님은 창술도 허접하고 운신법도 엉망진창이에요. 그런데 방어술은 진짜 무지막지했어요. 그게 이해가 안 돼서…….=

“방어술이라니, 뭘 말하는 거지?”

환인의 반문에 이실리테는 어이가 없었다. 방어술이 뭔지도 몰라? 이게 말이 되나?

=회피, 막기, 반격 세 개를 말해요. 레힐에 도착하기 전에 브릴릿하고 대련할 때 브릴릿을 완전히 뭉개버린 그거요.=

“…….”

이실리테는 환인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훑어보는 행동에 오싹, 공포를 느꼈다.

항거할 수 없는 포식자의 앞에 무방비하게 서있는 기분.

갑자기 왜 저런 눈빛을 보내는지 이해하지 못한 이실리테가 당황하고 있을 때 환인은 눈빛을 거두고 대답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배운 것은 정신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검도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배운 적 없어.”

=……진짜요?=

“창을 쥐어본 것도, 짐승이나 괴물과 싸워본 것도 3달 전이 처음이었다.”

=말도…… 안돼.=

상상 이상의 이야기에 이실리테는 놀랄 기운도 없어 힘없이 중얼거렸고,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몰래 엿듣던 브릴릿도 속으로 기함했다.

이게 진짜 천재인가? 아니 이걸 천재라고 할 수 있는 거긴 한가?

회피와 반격과 막기를 아무한테도 배우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펼친다고? 실전에서 수십 마리를 상대로?

환인은 이실리테가 저렇게 충격받는 것을 보고 그동안 스사의 호위들이나 이실리테가 가끔 뜨거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이유를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는 물리적인 강함이 존경받는 척도에 포함되는 건가. 그러면 이실리테를 조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어.’

쓸만한 조교 수단을 확보했다는 것에 만족한 환인은 이것저것 질문을 던져 그동안 지니고 있던 궁금증을 해소했다.

전사의 분류라던가 직업에 대한 정보, 강함, 각성하며 얻게 되는 직업의 종류, 이 세상의 분위기 등등.

질문에 아는 것을 성실하게 대답해주던 이실리테는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환인에게 질문했다.

=주인님은 왜 이런 걸 모르세요?=

“평범하게 갈 수 없는 장소에서 왔으니까.”

=거기가 어딘데요?=

“나 같은 외형적 특색을 가진 사람을 본 적 있나?”

=아뇨…….=

“모른다면 말해줘도 이해 못 하겠지.”

다리를 쭉 뻗은 환인은 흐음, 작게 콧숨을 내쉬면서 수십, 수백만 개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내 반응 속도와 반사 신경은 몇 급의 전사까지 통할까. 브릴릿이 4급 정도라면…… 넉넉잡아서 6급.’

좋은 소식이지만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7급, 혹은 8급 정도 되는 전사들은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에서처럼 날듯이 뛰어다니고 검기나 장풍 같은 것을 펑펑 쏴댄다고 하니까.

솔직히 충격받았다.

자신이 영혼의 힘으로 화살도 쏘고 보호막도 만들고 폭발도 일으킨다지만 이건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그런데 전사들마저도 그런 식의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다고?

=막 숨 쉬듯이 쏘진 못해요. 그런 건 대부분 비기나 필살기 개념이고 한 집단의 대장, 부대장급은 되어야 하니까…….=

약간 편집증이 있고 가급적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싸우길 원하는 편인 환인에게 그런 이야기는 위로가 되지 못했다.

‘아니, 그런 것보다 원거리 계통 직업자들의 위험성이 더 높군.

이실리테를 통해 얻은 정보는 직업의 분류도 있었다.

직업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로 근접 직업.

날붙이를 무기로 쓰는 자들, 전사.

둔기류를 무기로 쓰는 자들, 투사.

그 외 도둑계열이나 궁수, 추적자, 암살자 같은 기타 등등을 모아놓은 엽사.

두 번째로 술사 직업.

위상력이라는 힘을 다루며 불, 바람, 물, 땅, 나무, 번개, 빛, 어둠의 속성 법술을 쓰는 법술사.

같은 위상력으로 저주, 변이, 전이, 저주, 소환, 부여 같은 대상의 변화나 세상의 변화를 다루는 비술사.

세 번째도 술사 계통이지만,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한 신분 격차 때문에 따로 분류되는, 회복과 치유의 성술사.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환인이 가진 영혼사 같은 특이하고 특별하고 희귀한 직업들이 있다.

“아우라는? 각성했는데 아우라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있나?”

=네. 몇몇 특이 체질은 아우라가 드러나지 않기도 해요. 저도 용병단에서 일할 때 그런 사람을 한 명 봤고요.=

역시 체질 문제였나.

환인은 희귀 직업에 관해서 더 물어보았다.

법술과 전사의 능력을 같이 타고난 마전사라던가 전사와 투사의 특성을 함께 지닌 무예가, 무언가 제작에 특화된 기술가artificer라던가 피를 다루는 술사 등등.

=현자, 심연의 기사, 사령술사, 검성, 검희, 용투사, 비전궁사, 대변자, 광기의 지시자, 광전사, 장막의 주시자…… 알려진 특이 직업은 많아요. 인지도는 그중에서 영혼사가 최고예요. 외딴 시골 촌락의 꼬마애도 알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 직업 명칭은 누가 붙인 거지?”

=아주 옛날에 직업 분류로 문제가 끊임없이 생기니까 사대신의 종교 지도자가 모여서 특성과 아우라의 형태로 분류해 이름을 붙였다고 알고 있어요.=

아우라의 형태는 직업마다 다르기에 보면 알 수 있을거라고 이실리테가 설명해준다.

또한 특정 직업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직업에 관련된 무기를 사용 해야 일종의 보너스를 받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해당 무기를 쓴다고.

“보너스?”

=네. 날카로움이 늘어난다던가 힘이 더 세진다거나 체력이 좋아진다거나 그런 거요.=

그렇지만 딱히 특성 무기를 쓰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했다.

그 보너스라는 게 엄청나게 큰 차이를 내는 건 아니라서 급하면 다른 무기를 쓴다는 이야기였다.

환인은 고민이 깊어졌다.

듣기만 해도 자신과 상극인 느낌의 직업이 다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강령으로 올라가는 어중간한 신체 능력. 영혼 구슬로 사용하는 어중간한 공격 기술.

브릴릿이나 이실리테의 신체 능력 차이만 보아도 심각한 수준이다.

술사들이 사용할 기술과 자신이 쓰는 기술의 위력은 월등하게 차이 날게 틀림없다.

만약 그런 자들과 훗날 싸우게 된다면…….

‘역시 혼자는 안돼.’

미궁에도 들어가 볼 생각이었던 환인은 재차 동료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실리테도 각성해서 직업을 가졌지만, 환인의 눈에는 스사나 이실리테나 다를 게 없었다. 적어도 크타치난 정도는 되어야 뒤를 맡길 수 있지 않을까.

왼팔에 맺힌 24개의 영혼 구슬을 바라보던 환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였다.

‘실력 있는 동료도 그냥은 구할 수 없다. 이쪽의 명성이 높아야 실력 있는 동료를 구할 수 있을 테지.’

그러기 위해서는 실적이 필요하다.

이실리테와 단둘이서라도 미궁을 경험해볼까 생각해봤지만, 자신도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이실리테. 넌 미궁에 들어가 볼 생각이 있나?”

=미궁……이요?=

“그래. 나 역시도 아직은 준비가 덜 됐지만, 준비가 끝나고 기회가 닿는다면 미궁을 들어갈 생각이다. 그때 너도 같이 들어갈 생각이 있는지 알고 싶군.”

환인의 눈치를 살피던 이실리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주인님이 가시는 곳은 가능하면 무조건 따라가긴 할 건데요……. 주인님이 준비가 덜 되었다는 건 이해가 안 돼요. 주인님의 전투 감각은 진짜 천재적이잖아요. 거기다 3~4급 강화 축복도 하실 수 있고 보이지 않는 폭발도 쓰시고요. 마법무구나 마도기로 신체 능력만 조금 더 올리고 회복 방법을 구하면 지금도 4급이나 5급 미궁에 들어가셔도 될 거 같은데요?=

“그 명사 앞에 붙인 급수는 강함의 등급인가.”

=……명사가 뭐예요?=

‘단어를 품사로 나누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 학력과 지식이 짧아 모르는 거라고 생각해야겠군.’

이실리테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간단히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1급이 제일 낮은 거고 10급이 가장 높은 거예요. 등급을 나누는 곳에는 대부분 쓰여요.=

환인은 비상식량이 무릎에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등을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단순히 강함으로 준비가 되었냐 되지 않았느냐를 따지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맨몸으로 들어갔다가 독을 쓰는 적을 만나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물리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는 적을 만나면? 때릴 때마다 이쪽이 피해를 입는 적은? 준비란 곧 대책이기도 하다. 준비의 중요성을 모르는 자는 어디서 자빠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

=……그…러네요. 제가 바보 같은 말을 했어요.=

도적 무리를 이끌던 두목답지 않게 순순히 지적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환인도 이실리테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고쳤다.

사람은 고쳐 쓰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고쳐서 쓸 이유가 없다는 게 환인의 생각이었다.

그 사람이 사라져도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굳이 사고치고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교화해서 쓸 필요가 있냐는 거다.

더욱이 완전범죄를 저지르지 못할 정도의 머리로 나쁜 짓을 한 인간이다.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같은 짓을 또 안 저지른다는 보장이 없다.

인간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자신이 나쁜 놈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욱 사람은 고쳐 쓸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주류였지만…….

‘법 제도를 뛰어넘는 제재 수단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더군다나 이실리테는 수백 명 중에서 1명 나올까 말까 하는 각성 직업자.

앞으로 꽤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다음 날 푸른 강을 따라 큰 문제 없이 이동하던 스사 일행은 초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촌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야트막한 산과 산 근처를 따라 흐르는 강가에 자리 잡은 작은 촌락이다.

“율캄과 느낌이 비슷하군요.”

목책 밖으로 펼쳐진 논과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짐마차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스사도 그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 근방의 촌락은 분위기가 대부분 비슷비슷합니다. 흔하기에 촌락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오면서 오버플로우의 영향을 받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무사해서 다행이군요.=

스사의 도착 소식을 듣고 모여든 촌락의 사람들은 상품이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이어진 레힐의 소식에 아쉬움은 순식간에 잊고 걱정을 드러냈다.

=어이고, 우리도 이럴 때가 아니라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마을이 공격받았다지 않나. 그 정도면 대책이 뭐야. 다 버리고 도망쳐야지.=

=이번에 아랫집 시티오가 전사로 각성했으니 걔한테 괴물 상대를 부탁하면 안 될까요?=

=어허 이 사람. 이제 14살인 애한테 뭘 시키려고 하는 건가. 그전까지 무기도 쥐어보지 않았잖어!=

=그래도 힘은 장사잖아요. 자경단 애들하고 힘을 합치면…….=

=쉬웠으면 레힐이 그리 공격당했겠나! 어허, 이 사람. 자기 자식 아니라고 싸움 통에 내보낼 생각인가!=

=아니이. 나는…….=

촌락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걱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에 스사가 진정하라며 다독인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공격을 받은 것은 5일 전이었으니까요. 여긴 무사했고 지금쯤 인근 도시에서 도착한 지원이 레힐과 이 근처의 안정화 작업을 개시했을 게 틀림없습니다. 곧 안전해질 거예요.=

=정말이우?=

=예에. 하지만 몇 마리 정도가 탈출해 떠도는 예도 있으니 당분간 밤에 목책의 문단속과 감시를 늘리는 정도는 해두는 게 좋겠지요. 며칠 머무르는 동안 우리 쪽 호위도 초병에 투입하겠습니다.=

=어휴, 정말 고마워요. 스사 씨와 거래를 튼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마에 염소처럼 뭉툭한 뿔이 있는, 원숙한 유부녀의 매력이 우러나는 중년 여성이 다가와 스사의 손을 잡고 고마움을 표시한다.

=앞으로도 품질 좋은 물건을 많이많이 만들어놓을 테니까, 부디 우리 촌락을 외면하지 말고 계속 방문해주세요.=

=뭘요. 올 때마다 메라 촌장님과 촌락 분들이 가족처럼 반겨주시지 않습니까. 덕분에 저도 올 때마다 즐겁습니다.=

=말만이라도 참 고마워요. 그런데…… 일행에 못 보던 분이 늘었네요. 새로 합류한 동료인가요?=

조금 떨어져 있는 환인과 이실리테를 보며 묻는 여촌장의 모습에 스사가 큰일 날 소리라며 손사래를 쳤다.

=어이쿠, 그런 말씀 마시죠. 저분은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머나.=

=이번에만 저희와 함께 잠깐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저기, 검은 후드를 쓰시고 지팡이를 든 분이 순례 여행 중이신 영혼사님. 그리고 그 옆의 대검을 패용한 전사는 영혼사님의 종자이자 몸종인 이실리테 씨.=

영혼사라는 말에 여촌장 및 촌락 사람 일동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스사가 과장되게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하며 목소리를 낮춘다.

=쉬이이……. 조용히, 영혼사님은 조용하고 엄숙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영혼이 안정되고 평온한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 어머. 그…러면 환영 인사도 좋아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영혼사님이 오셨으니 잔치라도…….=

=어이고 큰일 날 말씀을. 야단법석을 부렸다간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영혼의 안식을 방해하느냐고요!=

초능력의 훈련에 집중하고 싶은 환인에게 시골 사람들의 야단법석 환영 인사는 피곤하고 지칠 뿐인 일이다.

이번에는 조용하게 넘어가고 싶은 기분이라 촌락에 진입하기 전, 환인이 부탁한 것을 성실하게 실천하는 스사였다.

=정히 마음을 보이고 싶으시다면 약간의 술이나 음식 같은 것만 조용히 바치십시오. 그 정도만 하셔도 영혼사님은 만족하실 겁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마을의 영혼을 살펴보실 텐데 함부로 다가서서 인사하거나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냥 멀찍이서 고개를 숙이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시겠지요들?=

스사의 연기는 순박한 촌락 사람들에게 있어 명배우의 온 힘을 기울인 연기나 다름없었다.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서로 반드시 지키자는 듯이 시선을 나누는 촌락 주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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