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073 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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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타치난이 떠난 후 부산물 채취 작업을 마무리한 스사 일행은 딱딱한 빵에 살짝 구운 육포로 점심을 해결한 뒤 바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다음 목적지까지는 대략 5일 거리.
=비상용으로 구비해두는 식수와 식량이 있어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다음 촌락에 도착할 수 있도록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짐마차의 바닥에는 가로세로 50cm 정도의 비밀 공간이 있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스사가 확보해놓은 공간이다.
그곳에는 보존 기간이 긴 건량이 채워져 있었지만, 9명이 5일간 먹기에는 조금 부족한 게 사실이었고 마수를 손질하며 대량의 고기가 나오긴 했지만 독성이 가득했기에 식용도 불가능.
“제 가방에도 식량이 있고 이실리테의 가방 내용물도 대부분 식량입니다. 같이 쓰시지요.”
=어이쿠, 아닙니다. 환인 님의 비상식량은 고가의 페미컨이지 않습니까. 조금씩만 아낀다면 다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
대화 중에 스사가 언급한 한 단어에 환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환인은 이 세상의 사람들이 말하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이 세상 사람이 말하면 아랍어 같은 게 귀에 들리지만, 머릿속에는 그 말이 번역되어 ‘인식’된다.
자신이 말하는 것도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을 보면 상대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삼림형 미궁에서 여자들을 구출했을 때는 상황이 상황이라서 신경 쓰지 않았고 그 뒤로도 뭐, 마법적인 현상 때문에 이런 거라고 대충 넘겼다.
대충 넘겼다고 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이다.
이 현상이 사라지면 곤란한 것은 자신이었기에 환인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말을 들으며 꾸준히 글과 말하는 법을 익혔다.
익히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자동으로 머릿속에 번역되는 단어를 기억하고 상대방의 말에서 어휘를 외우기만 하면 되니까.
덕분에 이 세상의 사람과 접촉한 지 2달이 넘은 현재.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읽고 쓰고 말할 정도는 되었다.
그런 환인의 귀는 스사가 ‘페미컨’이라고 말한 것을 정확히 포착했다.
스사는 율캄에서 자신이 구매한 식량을 ‘페미컨’이라고 했다.
지구에서도 고기 조각과 채소를 대량의 지방분에 녹여 굳힌 에너지바 형태의 식량을 페미컨이라고 부른다.
지구와 이쪽 세계가 똑같은 물건을 똑같이 ‘페미컨’이라고 부를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 세상은 뭘까.’
지구와 흡사한 음식.
지구와 흡사한 문화.
생각해보면 자신의 기초 상식이 통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상대와 인사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반가움을 표시할 땐 웃는다. 슬프면 울고 인사를 나눌 땐 악수도 한다. 감정표현도 비슷하고 생활 양식도 비슷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혼란스러워진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세상에 좀 더 익숙해진 다음 이 의문을 파헤치든가 하고.
이실리테가 구매해온 저가의 육포, 두 명이 두 달은 먹을 수 있는 양을 모두 제공한 환인은 다시 능력의 고찰에 빠져들었다.
영혼 구슬 보유 개수가 24개로 늘었을 때부터 영혼과 소통방식이 확장된 것은 율캄에서 영혼과 접촉하며 확인했다.
정령의 소리를 들은 것은 틀림없이 능력이 한차례 성장하면서 소통이 확장된 결과물일 것이다.
그런데 왜 어제 이후로 정령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역시 영혼과 소통에도 숙련도가 필요하기 때문이겠지.’
자신이 여태까지 해왔던 명상은 기술의 위력과 전체적인 영적 능력의 상승을 불러오는 거고, 영혼과 소통은 따로 훈련을 통해 숙련도를 늘려야 하는 거라면?
율캄을 돌아다니는 영혼과 대화를 시도할수록 그들의 의사를 조금씩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환인이었다.
과학적으로 납득할만한 증거는 없지만 어쨌든 그런 느낌을 받았다.
즉, 명상 훈련에 영혼과 소통하는 훈련도 해야 한다는 뜻.
“…….”
여기가 지구였다면 웹서핑과 구글링으로 영혼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으고 영혼과 관련된 서적을 닥치는 대로 구하며 지식을 탐독해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증명해나갔을 텐데 여기서는 그런 방식이 불가능하다.
‘서적 보관소라면 성도급 도시에나 하나둘 정도 있을 겁니다. 일반 서민들은 입장이 불가능한 고급 시설인데 영혼사님이라면…… 으음, 이용신청을 넣으실 수는 있겠지만 호족들에게 좀 시달리시지 않을지…….’
어제 혹시 이 세계에 도서관이 있냐고 물어본 데 대한 스사의 대답이었다.
결국 여기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추측과 추론, 그리고 두 가지 방법을 통한 검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
영혼 소통의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혼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공동묘지.’
흔들리는 보조석에서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있던 환인은 옆에서 고삐를 쥔 채 나른하게 하품하는 스사에게 물었다.
“스사 씨. 무덤지기, 묘지기를 하는 분들은 어떤 분들입니까?”
=예? 어, 그분들이야 고독하고 신성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지요.=
역시. 이 세계에서 죽음과 관련된 직업, 장의사나 풍수사, 묘지기 등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인 게 틀림없다.
잠시 생각하던 환인은 다른 것도 물었다.
“다른 마을과 도시의 묘지도 율캄과 비슷한 느낌입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곳은 경건하게 관리되고, 어떤 곳은 공원처럼 부드러운 느낌으로 관리됩니다. 공통점이라면 묘지를 관리하는 분들은 신실한 분이라는 거죠. 영혼사님들만큼은 아니지만 존중받는 분들입니다.=
율캄의 공동묘지가 포근한 느낌의 꽃밭처럼 꾸며진 것은 그 촌락이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
‘무덤지기도 지원해볼까.’
영혼사라는 것을 밝힌다면 그 일을 하는 것도 어렵진 않을 거다. 큰 도시의 묘지일수록 영혼도 많이 보이겠지.
일행은 단단히 다져진 길을 따라 하얀 구름과 함께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레힐을 탈출하고 사흘째.
탈출한 그 날 야습 이후 마수 떼는커녕 짐승 떼도 만나지 못했다.
먼저 출발했던 마차들도 횡액을 당하진 않았는지 길은 나뭇조각 하나 없이 깨끗하다.
=며칠 전의 습격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평화롭군요.=
“짐승은 다 도망쳤을 테고, 마수와 이형종은 레힐로 몰려가서일까요.”
=예. 원래라면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짐승의 공격을 받는 길인데 여태껏 조용했으니 틀림없을 겁니다.=
그리고 대화는 끊어졌고, 잠시 후 뒤에서 짐꾼들과 호위3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휴슥 씨. 레힐은 무사할까요? 마물이 엄청 모였던 거 같던데.=
=괜찮을걸? 파도에서 가장 많은 개체가 3급의 콘클리토였으니까 레힐의 무장과 수성 능력이면 전부 물리치진 못해도 버티기는 가능할 거고…….=
=전 마수를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엄청 소름 끼치게 생겼더라고요. 그런 게 수백 마리나 몰려들어도 멀쩡할 수 있다니, 역시 마을의 저력은 얕볼 수 없네요.=
=맞아. 우리 고향 촌이었으면 버티긴 커녕 하루아침에 쓸려나갔을걸.=
짐꾼들은 짐마차에 가득 쌓인 가죽에서 지방질을 일일이 긁어내고 있었는데 심심했는지 마물의 파도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사가 그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레힐이 평범한 마을이라곤 볼 수 없지. 꽤 튼튼한 돌 성벽에 성문까지 세웠을 정도니까. 괜찮은 호족이 자리 잡으면 소도시로 승격도 할 수 있을 거다.=
=우와, 소도시.=
=하지만 인구수가 아직은 적어서 호족이 자리 잡을 정도는 아니야. 인구가 5천 명은 되어야 하나둘 기웃거리기 시작할 테니까.=
=그때 함께 탈출했던 마차중에서도 호족 가문 사람이 있었겠죠? 그 검붉은 인랑족 전사님 가문 말고요.=
=검은색 유광 마차가 아마 호족 관계자의 마차였을 거다. 북부 노르딕 산 옻나무는 아무나 쓰지 못할 만큼 고가의 목재니까.=
=확실히 그 광택은 멋있었죠. 검은색에 광택마저 나니까 마치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맞아. 그 특유의 흡입력이 노르딕 산 옻나무의 매력이고, 매년 시장에 나오는 수량이 한정되어있어서 그 가치가 높아져 호족 가문이 애용하는 목재가 된 거야.=
=마차 자체도 요즘 주도 최신 트렌드에 맞춘 거 같던데요!=
=음. 휠 서스펜스……? 라는 신기능이 들어가 있는 거 같더군. 마차의 흔들림을 줄여준다는 기능이라나 봐.=
“…….”
스사도 짐꾼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노닥거리기 시작하는 걸 들으며 환인도 진주색 돌멩이를 쥔 채 다시 명상에 빠져들었다.
‘이 세상에 나 말고 다른 지구인이 있는 건가…….’
자신이 날아왔으니 다른 사람도 날아올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할 증거도 충분하다. 비누가 촌락까지 침투해있을 정도로 알려졌고 캉캉 춤이나 지구의 음식이 마을에까지 퍼져있을 정도다.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간 지구의 기술이 천천히 전파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면 소도시 이상 가는 도시는 지구처럼 살기 편할지도 모르겠군.’
중세 유럽처럼 길가에 똥오줌이 넘쳐나고 똥을 피하기 위해 힐을 신거나 위에서 떨어지는 똥오줌을 막기 위해 양산을 쓰고 다니는…… 그런 세상이 아니길 속으로 기도하는 환인이었다.
밤이 찾아왔다.
강가에 짐마차를 세우고 일행이 저녁 준비를 시작할 무렵 이실리테가 긴장된 얼굴로 다가왔다.
=주인님.=
표정이 각오를 굳힌 자의 얼굴이다.
모닥불가에서 비상식량의 말랑말랑한 볼살을 만지작거리던 환인은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은 이실리테를 무감정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지.”
혼재의 정화를 재촉한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닌 거로 보였기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볼 생각이었다.
=종속 계약은 아직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주인님을 모시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
무릎 위에서 주먹을 꽉 쥔 손. 굳은 어깨. 살짝 떨리는 눈동자에서 긴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며칠 전에 스사한테 많은 지적을 받았어요. 전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요.=
“확실히 그랬지. 자신의 처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제멋대로인 요구까지 했으니까.”
=읏…….=
순간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가 시무룩해진 이실리테가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말했다.
=하, 하지만 이제는 안 그럴 거예요. 며칠 동안 스사한테 많이 배웠어요. 말로만 종속 계약을 맺겠다고 했지, 실제로는 주인님을 모실 준비가 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됐어요. 함부로 날뛰지도 않을 거고 주인님한테 폐도…… 끼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범죄도 완전히 손을 씻을 거고요.=
“…….”
=주인님의 눈에 차지 않겠지만 힘내서 노력하겠습니다…….=
반응 없는 환인의 모습에 기가 죽은 이실리테는 절을 하듯이 이마를 땅에 댔다.
환인이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으니 스사가 슬쩍 다가와 조언자처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실리테는 조금 부족하긴 해도 황소처럼 우직한 면이 있습니다. 며칠간 살펴본 결과 인성도 그럭저럭 있었고 자신의 잘못도 인정하는 솔직한 면도 확인했습니다. 당장은 만족스럽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주제넘게 조언을 드리자면, 검전사로써 각성도 했고 데리고 다니며 조금씩만 가르치시면 충분히 1인분의 몫은 할 거라고 장담 드립니다.=
“며칠간 같이 있는 모습이 보이더니, 스사 씨가 수고스럽게 이실리테를 상대하고 있었군요.”
=예. 좀…… 답답해서 훈수를 두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하하.=
환인은 쥐고 있던 비상식량의 볼살을 놓아주고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말없이 한동안 그렇게 있었더니 스사와 이실리테의 긴장이 끝없이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비상식량을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두 사람을 바라본다.
“소도시 웨이포드에서 종속 계약을 맺을 때까지 방치하려 했습니다. 그사이 행동을 통해 앞으로 함께 다녀도 괜찮을지 판단할 생각이었지요.=
침을 꼴깍 삼키는 이실리테를 바라보던 환인은 눈을 감으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랬는데 안목이 있으신 스사 씨가 장담하시는군요.”
=그러면……?=
“예. 받아들이겠습니다.”
확실한 허락이 떨어지자 긴장하고 있던 스사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서도 이번 일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일이 잘 풀린다면 그에게 괜찮은 인물을 소개해주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큰 호감을 얻겠지만, 일이 잘못된다면 호감도가 대폭 떨어지는 도박.
환인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눈치챈 스사는 다시 긴장하고 귀를 기울였다.
“제가 살던 곳은 표면적으로 노예 제도가 없는 곳이지만, 이실리테를 믿지 못하니 일방적 종속 계약은 진행할 겁니다. 다만 마냥 노예처럼 다룰 생각은 없습니다.”
=영혼사님은 노력과 의지를 중요시하셨으니까요. 즉 말씀은……?=
“이실리테.”
=예, 옛.=
“너의 행동을 봐서 봉사의 대가는 네가 바라는 것을 고려하겠다. 혼재도 내 역량이 닿는 곳까지 손을 써주지. 임금도 해방 이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는 챙겨주겠다.”
이실리테의 고개가 번쩍 올라왔다. 큼지막하게 떠진 얼굴이 지금 그녀가 얼마나 놀랐는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얼굴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메리트가 있다면 디메리트도 있는 법. 만약 날 배신한다면 네 머리로 할 수 있는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겠다. 장담하지. 살아서 지옥을 보게 될 거다.”
무감정하고 억양이 극도로 절제된, 듣기만 해도 피부에 소름이 돋는 목소리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협박에 스사는 물론이고 호위와 짐꾼들도 몸을 떨었다.
이실리테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지려버릴 것처럼 두려움에 쿵덕쿵덕 뛰는 중.
“그러니……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이는 짓은 하지 말길 바란다.”
환인의 마지막 이야기에 스사와 이실리테는 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영혼사님은 팍팍한 환경에서 살아오셨나 보군…….’
‘이건 그러니까, 깝치지 말라는 거지? 그럼 스사가 가르쳐준 것만 확실히 따라 하면 되는 거…… 맞나? 나중에 스사한테 확인해야겠다.’
찢은 육포와 빵을 부숴서 끓인 죽으로 저녁을 해결한 스사는 이실리테에게 자신이 교육한 성과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며 손수건으로 입가를 훔치고 빙긋 웃었다.
스사가 이실리테에게 가르친 것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1. 자기 자신보다 주인님을 먼저 챙겨라. 물론 주인님 앞에서 흐트러지고 더러운 모습은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
2. 주인님의 수발을 들어라. 아침저녁으로 씻을 물을 대령하고, 특히 식사는 무조건 주인님이 먼저다.
3. 주인님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라. 너보다 훨씬 지성적이고 현명하신 분이다. 네 생각을 꺼내 보일 필요는 없다.
4. 주인님이 자질구레한 일에 손을 뻗지 않으시게 움직여라.
5. 주인님이 움직이기 전에 네가 먼저 움직여라.
이정도는 이실리테에게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몇 가지는 아주 어렸을 때 신물 나게 했던 일이기도 하고, 또 몇 가지는 용병단에서 상위 용병의 따까리로 있을 때 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스사가 이실리테에게 특히 강조한 것은 주로 두 가지.
상명하복, 그리고 선보고 후조치.
‘영혼사님이 이실리테에게 많은 걸 바라진 않으실 게 틀림없어. 뛰어난 부하는 선조치 후보고도 적절히 병행하지만, 이실리테에게는 선보고 후조치만 허락하는 게 가장 나아.’
그 결과 이실리테는 자신의 저녁보다 환인의 저녁을 먼저 챙겼고, 환인이 다 먹은 그릇도 자신이 챙겨서 정리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얼굴과 몸을 닦을 수 있도록 물을 적신 수건도 대령했고 환인의 잠자리도 자기가 직접 챙겼다.
‘저렇게 하면서 주제만 넘지 않는다면 영혼사님도 그녀를 잘 데리고 다니시겠지.’
교육의 성과가 눈에 띄는 것을 보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강이 나왔으니 강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내일 저녁 즈음 에트브룩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이실리테 씨가 식량을 많이 사둔 덕분에 굶지 않고 도착할 수 있겠네요.=
=주인님이 주신 돈으로 산 거야. 내가 산 거 아니야.=
환인이 먹은 식기를 따로 챙겨 강에서 깨끗이 씻고 온 이실리테가 대답하자 스사가 크크 웃으면서 이실리테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실리테 씨가 설마 짐의 대부분을 식량으로 채워올 줄은 영혼사님도 예상하지 못하셨을 거 같은데요. 이실리테 씨 덕분이니까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내가 돼지라고 욕하는 거지?!=
=큭큭큭큭.=
=이 망할 고양이 새끼! 또 사람 놀리고 있어!=
=어억! 그릇 휘두르지 마세요! 위험하지 않습니까?!=
=위험하라고 휘두르는 거다, 자식아!!=
환인은 진주색 돌멩이를 염주처럼 굴리며 스사와 아웅다웅하는 이실리테를 쳐다봤다.
괜히 스사가 조언한다고 나섰던게 아니었다. 고작 며칠이었을 뿐인데 이실리테는 그사이 꽤 사람답게 변해있었다.
“…….”
이것저것 생각하던 환인은 잠자리에 들기 전, 이실리테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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