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072 가도??
* * *
덜컹덜컹.
뜨거운 햇살 아래 바짝 말라 울퉁불퉁한 길을 가며 짐마차가 규칙적으로 흔들린다.
스사는 될 수 있으면 짐마차가 흔들리지 않게끔 쿠에들을 유도하면서 레힐을 떠나온 뒤 말수가 부쩍 없어진 환인을 힐끔거렸다.
‘레힐의 여관에서 저녁 쇼를 본 뒤부터 말수가 없어지셨는데……. 으음. 향수병이라도 걸리신 건가.’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하는 스사였다.
전이 사고로 6급 삼림형 미궁에 떨어졌다. 우연히 구하게 된 여인들과 두 달에 걸쳐 겨우 빠져나왔다 했더니 마물의 파도를 겪었고, 파도를 피해 마을을 빠져나왔더니 이번에는 야밤에 마수 떼의 습격을 받았다.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 고향 생각이 나는 것도 당연한 일.
물론 이것은 스사의 착각이다.
환인이 말수가 없어진 것은 어젯밤 야습을 받기 직전, 자신에게 말을 걸듯이 키득거리던 정령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환인은 정령의 목소리였다고 내심 단정했다.
그 때문에 다시 한 번 정령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진주색 돌멩이를 쥐고 밤이 지나 해가 머리 위로 솟아오를 때까지 집중하며 여러 번 정령에게 말을 걸었지만…….
‘대답하지 않는군.’
성과는 없었다.
정령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차가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정령을 부르면 다가와서 주변을 맴돈다.
하지만 아무리 말을 걸어도 어젯밤처럼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영혼 구슬을 전부 정령으로 채워야 말을 걸어오는 건가.’
왼팔에 맺혀있는 24개의 영롱한 중하급 영혼 구슬을 보며 생각했다.
여러 가지 가설 중 하나, 중하급 영혼 구슬 24개를 버리기 아까워 실행하지 않은 방법을 생각하며 고민에 잠겨있는데 스사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저, 환인 님?=
“예.”
딱히 상심하거나 기운 빠진 목소리가 아닌, 평소와 마찬가지인 목소리에 스사는 자기가 잘못 짚었나 생각하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
=슬슬 출출하지 않으십니까? 이제 점심이니 점심 식사는 제대로 드시는 게 어떨까요. 짐칸의 냄새 나는 마수 사체도 좀 정리할 겸 해서요.=
하늘을 날고 있는 비상식량을 본 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상식량에게 주위를 둘러보라고 하겠습니다.”
=옙. 부탁드립니다.=
휘익 휘파람으로 비상식량을 불러들인 환인은 주변을 넓게 살펴보고 오라는 명령을 내리고 다시 날려 보냈다.
비상식량의 비행고도는 상승기류가 없을 때 300m가 한계로 보였는데 이번에는 올라가는 바람길이 있는지 순식간에 점만큼이나 작아진다.
잠시 후,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서야 내려온 비상식량은 사람이나 짐승 같은 게 안보였는지 쿠에쿠에 울면서 환인의 다리 사이로 들어와 후~ 한숨을 내쉬었다.
=하하하. 비상식량은 정말 환인 님을 좋아하는군요.=
비상식량에게 눈길을 주는 스사의 말에 환인도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대강 주변 10km 이내에 짐승이나 사람은 없는 듯 하니 쉬었다 가도 될듯하군요.”
=알겠습니다. 딘테, 앞으로 가서 크타치난 님에게 그리 말씀드리도록.=
=옙.=
환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비상식량에게 어제밤 출발하기 전, 관목숲에서 잡아둔 몇 마리 곤충을 꺼내 부리에 물려주었다.
쿠엣.
냉큼 받아서 파삭거리며 씹어먹은 비상식량이 기분 좋은 듯이 짧게 울었다.
쉬었다가 가겠다고 알렸지만, 크타치난이 호위하는 상아색 마차를 제외한 나머지 4대는 멈추긴 커녕 오히려 속도를 올려 빠르게 멀어졌다.
=저래야 특권층이지.=
코 밑을 쓱 훔친 스사가 빈정거림을 담아 중얼거리며 짐마차를 세웠다.
환인은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기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마차가 멈추자마자 흑창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날에 흠집은 안 생겼는지 꼼꼼히 확인하며 창날에 남아있는 피를 닦고 있으니 스사는 짐꾼들과 함께 짐칸의 마수 사체를 땅에 우르르 쏟아놓고 빠른 손놀림으로 해체해나간다.
=자자, 시간 없으니 빠르게 간다. 가죽하고 이빨과 뿔만 챙기자고.=
=고기랑 내장은 어쩔까요?=
=못 먹는 거야. 그리고 이 기온이면 가다가 죄다 상할 테니까 처리할 시간도 없으니 대충 땅 파서 묻어. 딘테, 휴슥과 다스콘을 데리고 땅 좀 파주게. 사이지와 엘레스는 나와 작업하고.=
=예잇.=
=넵.=
환인은 스사 일행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창의 손질을 끝내고 비상식량과 터그 놀이를 시작했다.
조류 주제에 물어오기나 힘겨루기를 좋아하는 비상식량에게 짧은 나무 막대기를 위아래로 흔드니 냅다 나무 막대기 끝을 부리로 물고 끙끙거리며 잡아당긴다.
슬쩍슬쩍 힘에 져주는 척하면서 잡아당기고 좌우로 흔들어주니 마냥 재밌는지 쿠엣쿠에거리며 폴짝폴짝 뛴다.
“가져와라.”
쿠엣!
나무 막대기를 휙 던지며 말하자 비상식량이 막대기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날지 않고 달려가는 모습이 조류로서 정체성이 의심되지만, 성장의 끝에는 날고 뛰고 다 한다고 하니 그냥 바라만 볼 뿐이다.
그러다 환인은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무슨 일이지.”
=아니요…… 저기…….=
머뭇머뭇 말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이실리테를 돌아본 환인은 그녀의 어깨에 붙어있는 혼재를 살피고 말했다.
“네게 붙어있는 것은 변함없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제대로 봐줄 테니 기다려라.”
=넵…….=
다가선 이유가 딱히 그것만은 아닌데.
이실리테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말을 꺼내지 못하고 브릴릿이 있는 곳으로 터덜터덜 돌아갔다.
어제 자신이 어땠냐고 물어보기에는 자신보다 활약이 더 대단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주인님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을까.
자신이 주인님보다 나은 건 힘 뿐인 거 같은데 이 힘으로 뭘 할 수 있지?
끙끙거리며 고민해보지만 생각나는 거라곤 창녀처럼 몸뚱이를 바치는 그런 것들 뿐이다. 하지만 그건 이미 거절당하지 않았던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거듭 고민이 깊어가는데 스사의 비아냥이 그녀의 귀에 들어왔다.
=멍청하면 순진하기라도 해야 할 텐데, 황소 같은 성질로 고양이처럼 행동하려 하니 참 꼴볼견이구만.=
=……나한테 한 소리야?=
=어이쿠, 들으셨소? 귀도 밝으시구려.=
=……!=
비꼬는 느낌에 울컥한 이실리테가 마악 소리를 지르려 할 때였다. 스사가 재빨리 말을 가로막으며 차갑게 이죽거렸다.
=기분 나쁘다고 내키는 대로 소리 지르고 날뛰어보시오. 그런 식이라면 당신이 바라는 건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 아니, 영혼사님이 질렸다고 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내가 뭘 바라는지 니가 어떻게 알아.=
=그 정도도 몰라서야 어찌 행상일을 할까.=
크크 웃는 스사가 정말 꼴 보기 싫은 이실리테였지만, 그의 말이 워낙 의미심장한데다 주인님(예정)에게 버림받는다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기에 꾹 눌러 참았다.
그런 이실리테를 보며 눈살을 찌푸린 스사가 잡고 있던 마수 사체를 놓고 무두질용 칼을 흔들며 말했다.
=영혼사님께 뭐 얻어먹을 게 없나 기웃거리는 거 아뇨? 그쪽이라면 뭐 십중팔구는 영혼사님의 기술이 탐나서 침을 질질 흘리는 거겠지. 우리 브릴릿도 한 시간에 몇 번이나 영혼사님을 훔쳐볼 정도니까.=
마수 손질을 곁에서 지켜보던 브릴릿이 슬쩍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에 허허 웃은 스사가 계속 말했다.
=뭐 혼재도 정화할 수 있으신 분이시겠다~ 인격도 있으시니 빌붙으면 억지로 내치실 거 같지도 않고~ 전투 능력도 굉장하시니 대박 나서 제자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팔자가 필 텐데~.=
=……!=
느릿하게 리듬을 타며 중얼거리는 스사의 말에 이실리테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야, 내 생각이 그렇게 알기 쉬웠다고? 그럼 혹시 주인님도 눈치챈 거 아냐?
이죽거리던 스사는 명백하게 동요하는 이실리테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실리테가 자꾸 비꼬고 조롱하는 스사를 싫어하는 것처럼, 스사도 환인에게 들러붙으려는 행태의 이실리테가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스사의 눈에 이실리테는 훌륭한 음식에 날아드는 똥파리나 다름없었다.
훌륭한 음식을 못 먹게 망쳐버리는 해충을 누가 좋아할까.
스사는 환인이 이미 눈앞의 멍청한 여자를 거두기로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환인에게 큰 폐나 끼칠 게 분명한 상황.
이실리테가 마음에 들지 않아 비꼬고 조롱했지만, 역시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스사는 동요하는 이실리테에게 들으란 듯이 거창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은 영혼사님에게 뭐요?=
=……예비 하녀?=
=하녀가 아니라 노예겠지. 그래도 자각은 있었구려. 난 또 자기가 아직도 잘나가는 도적 두목인 줄로만 알았지 뭐요?=
하녀라고 했는데 노예라고 말하는 것부터 계속 비꼬는 스사의 행동에 다시 울컥한 이실리테였지만, 화를 억누르며 으르렁거렸다.
=비꼬지 말고 할 말을 해, 말을!=
자신의 신경질을 환인이 듣길 바라진 않았기에 작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지만, 스사는 코웃음만 쳤다.
=노예라는 자각이 있으면 노예로서 움직여야지 왜 아직도 제멋대로 행동하는 거요? 응? 자존심이요? 다른 사람 지시는 받기 싫다, 뭐 이런 거?=
=내, 내가 뭘 했는데…….=
=어제 습격 때, 크타치난 님이 와서 협조 의사를 물어봤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했소?=
=……? 돕겠다고 했는데?=
고개를 갸웃하는 이실리테의 모습에 스사는 정말로 황소 같은 년이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상대가 잘못한 것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교육에 효과적인데, 눈앞의 전직 도적년은 뇌가 너무 깨끗해서 은근히 돌려 말하면 알아먹지 못하는 거다.
=그때 당신 옆에 있던 브릴릿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기억나시오?=
=그야…… 창잽이가 당신보고 허락을 구했잖아. 가도 되냐고.=
=기억력은 그나마 없진 않구만. 그렇지, 브릴릿은 엄연히 나에게 소속된 호위였기에 내게 먼저 허락을 구한 거요. 그런데 당신은?=
=어…….=
=당신은 곧 영혼사님의 노예가 될 거 아니오? 왜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움직이지? 아, 혹시 아직 일방적 종속 비술 계약을 맺지 않아 자유민 신분이라 생각해서였소?=
=…….=
=노예라는 자각은 있지만, 행동은 내 의지로 하고 싶다. 봉사는 할 거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얻고 싶다. 아주 제멋대로구만. 나였다면 당신 같은 여자는 직업자라고 해도 절대 거두지 않았을 거요.=
=그건 나도 그래…….=
시무룩한 얼굴로 순순히 인정하는 이실리테의 모습에 스사는 눈썹 끝을 살짝 들었다.
분명 작게나마 성질 부릴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인정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아주 맹탕은 아니군.’
계속 비꼬는 자신에게 반감이 심할 텐데도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면모도 있고, 직업자라 힘과 체력만큼은 훌륭하니 잘 교육하기만 하면 그럭저럭 쓸모는 생길 것이다.
스사는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지식을 끌어모으며 이실리테에게 말했다.
=당신이 영혼사님에게 정말 진심으로 귀속될 생각이라면 뭐 상대적 노예로서, 하녀로서 마음가짐과 행동 방침 정도는 알려줄 수 있소. 나도 그쪽에 업무를 담당해본 경력이 있으니까. 그러면 영혼사님도 당신이 쓸모없다고 하시며 내치지는 않으시겠지.=
=진짜? ……나한테 뭘 바라는데?=
=호오, 그런 거도 생각할 줄 아는 거요?=
=너 같은 상인 놈이 아무 대가 없이 친절을 베풀 리가 없잖아. 내가 좀 단순하고 무식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알아. 그래서 도적이 되기도 했고…….=
자신 같은 상인 때문에 도적이 됐다고? 뭔가 사연이 있었나 싶었던 스사는 턱 밑의 솜털을 벅벅 긁다가 별거 아닌 투로 입을 열었다.
=당신도 알겠지만 영혼사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오. 잠재력만 보면 내가 이때까지 본 누구보다 대단하시지. 성격이 좋으시지만 단호하신 면도 있고 강력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뻐기지도 않고 겸손하시지. 어떻게든 인맥을 삼아야 할 대단한 사람, 대단해질 사람이란 거요.=
=…….=
=나에게 뭘 바라느냐고 물었지? 당신의 성질머리를 고치고 행동을 바꿔주는 게 영혼사님께 도움이 되는 일이고, 그게 영혼사님과 인연의 끈을 한층 더 굵게 해줄 거라 믿고 있기에 하는 행동이오. 이해되겠소?=
=대충은. 그러니까 너도 주인님한테 떨어질 떡고물을 바라고 움직인다는 거잖아. 나랑 다를 게 뭐야?=
스사는 경악해서 입을 쩍 벌렸다.
이토록 우아하고 고매한 인맥 형성 과정을 그따위 물질적인 이득 관계로 구분 짓는 행동에 스사의 가슴 속에서 천불이 치솟는다.
=이러니까 머리 굳은 전사란! 어떻게 만사를 단순화시켜서 자기 눈높이에서만 보는지 원! 돈이 그토록 좋았다면 도시의 상점을 계속 번창시켜나갔지 왜 행상을 하고 있겠냐고!=
스사가 손에 들고 있던 무두질 칼로 뼈를 탁탁 때리며 역정을 드러내자 이실리테가 ‘뭐 내가 틀린 말 했나?’하고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가슴이 답답해진 스사가 재차 버럭 소리를 질렀다.
=틀려! 틀리다고! 이해가 안 되는군! 어떻게 그 두 개를 똑같이 볼 수가 있지?! 보시오, 사람이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요! 어째서겠소?! 자고로……!=
비상식량과 놀아주던 환인은 스사의 고성에 그쪽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실리테를 앞에 앉혀두고 일장 연설을 하고 있는데 알쏭달쏭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실리테를 보면 효과는 별로 없어 보였다.
굳이 신경 쓸 일은 아닌 듯 했기에 환인은 비상식량과 놀아주며 어젯밤의 정령을 계속 생각하는데.
=안녕하십니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세워져 있던 상아색 마차에서 크타치난이 다가와 인사했다.
허리를 약간 굽히며 예의를 표시하는 모습. 사회 경험을 통해 귀찮은 일을 가져왔다는 특유의 느낌을 포착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문제 될 것 없는 행동이지만 눈앞의 전사는 이 세계의 귀족이라 할 수 있는 호족, 그것도 직계 가족을 호위하는 전사다.
스사가 말했던 것처럼 특권층 의식이 강할 게 틀림없는 사람이 먼저 허리를 숙였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지극히 사무적인 대답에 크타치난은 의외의 익숙함을 느꼈다.
‘이건 지배 계급 분들 특유의 태연함인데. ……그러고 보니.’
상인에게 처음 말을 걸었을 때도 이 남자는 자신을 본체만체했었다. 거기다 상인은 이 남자를 유독 공경하는 모습을 보였었지.
어젯밤은 어두워서 잘 분간하지 못했는데 잘 보니 가죽옷이 무척이나 세련된 디자인이다.
무기인 창도 묵빛으로 빛나는 날이 보통 명품이 아님을 뽐내고 있었고…….
‘실력도 어마했었다.’
문득 크타치난의 시선이 남자가 놀아주고 있는 새를 향했다.
‘…녹색 쿠에의 유생?’
무슨 일이냐는 남자의 질문을 받고 아주 짧은 시간, 남자의 신분을 짐작한 크타치난은 한층 더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어젯밤의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았습니다. 만약 후미에 들이닥친 이형종 떼를 막지 못했다면 제가 모시는 분에게도 해가 끼쳤을 겁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해야할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괘념치 마시길.”
고귀한 자의 의무를 말하는 것에서 크타치난은 확신했다. 이 남자는 어딘가의 호족이거나 지배 계층이 확실할 것이라고.
저런 품위 있는 말투는 시정잡배들이나 배우지 못한 자유민들이 쓸 수 없는 것이다.
‘무예 훈련 중인 특권층이었나. 아윅크 가문에 원한을 만들 뻔했군.’
크타치난은 남자의 뛰어난 실력에 매료되어 아윅크 가문의 가원家?을 추천할 생각이었다. 비록 직업자는 아니었지만 그만한 기술이라면 가내 무술 선생으로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런 특권층에게 호족이라지만 가원을 추천하려 했다니, 하마터면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고귀한 자의 의무를 행하는 분께 존경을 표시합니다.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
고귀한 자라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환인은 크타치난이 뭔가 오해하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지적하지 않고 크타치난이 내민 징표 같은 것을 받았다.
=아윅크 가문의 징표입니다. 도시 라리아를 방문하시게 되면 꼭 아윅크의 문을 두드려주십시오. 가주님께서…… 음…….=
“환인입니다.”
=네, 가주님께서 환인 님을 성대하게 환영하실 것입니다.=
“…….”
고작 이형종 떼와 함께 싸웠다는 이유로 크게 환영할 거라고?
환인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어진 크타치난의 작은 목소리에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마차의 주인이신 2 공자님은 아직 어리십니다. 환인 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포대기에 감싸여있을 정도로 어리지 않을까. 한 번이라도 마차에 공격을 허용했다면 문제가 발생했을 정도로 말이다.
다시 감사를 표시한 크타치난은 두 번, 세 번 당부에 당부를 거듭한 뒤에 돌아갔고, 마차도 그가 돌아간 직후 더 이상 볼일은 없다는 듯이 출발했다.
“…….”
환인은 옷고름에 다는 노리개처럼 띠돈과 매듭, 술로 이루어진 복잡한 체크무늬 형태의 징표를 보다가 가방에 대충 쑤셔 넣었다.
가봤자 귀찮은 일만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물씬 든다.
자신이 아윅크를 방문할 일은 앞으로도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징표를 가방에 넣고 잊어버리는 환인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