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071 마을 레힐 외곽
* * *
졸음이 가득하던 눈이 단숨에 또렷해진 스사가 목청껏 소리 질렀다.
=모닥불을 꺼라! 휴슥과 짐꾼들은 짐마차에 올라타서 사주 경계!! 엘레스! 크타치난 전사님을 찾아 조심하라고 전해드려라!=
스사의 고함에 짐꾼과 호위들이 헐레벌떡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실리테와 브릴릿, 딘테도 재빨리 자는 쿠에를 깨워 올라탄다.
이 소란에 길가의 고급 마차 쪽에서도 웅성거림이 번져나갔다.
처적, 푸르륵 쿠엣, 쿠에 소란이 일어나는 중에 아윅크 가문의 크타치난이 소드 벨트의 검을 움켜쥔 채로 달려왔다.
=스사 님, 무슨 일입니까?=
스사는 어느샌가 짐마차의 프레임 위로 올라가 주위를 살피는 환인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습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곧 이형종이 습격해올 겁니다. 크타치난 님, 대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출발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크타치난도 환인을 쳐다보며 물었지만 스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대를 표시했다.
=어쩌면 미궁의 오버플로우가 우리 예상 이상으로 더 광범위할지도 모릅니다. 그럴 경우…….=
=……앞길로 이형종이 습격해올 수도 있겠군요. 최악의 경우 앞뒤로 협공당할 수도 있겠고요.=
=예. 혹시 모르니 이렇게 일렬로 있는 것보다 한데 모이는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만. 보시다시피 낮고 촘촘한 관목숲이 한 방향을 막아줄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반쯤 달리다시피 대열로 돌아가는 크타치난에게서 시선을 돌린 환인은 밑을 보며 비상식량을 불러 깨웠다.
“비상식량, 일어나라. 비상식량.”
쿠, 쿠에? 쿠으~.
“감시다. 적이 다가오고 있다.”
…쿠엣!
밥을 양껏 먹고 푹 자서일까, 소화가 꽤 됐는지 날개를 파다닥거리다가 훌쩍 하늘로 날아오른 비상식량은…….
쿠엣! 퀫꿱! 쿠에엣~!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며 열심히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게 적이 다가오는 신호라는 걸 여행에서 알게 된 스사가 목청껏 소리 질렀다.
=남서쪼옥!! 남서쪽에서 괴물의 습겨어억!!=
히히히힝!
쿠에에~.
쿠우우.
쿠에쿠엣
그사이 고급 마차 다섯 대가 스사의 짐마차 근처에 모여들어 뭉쳤다.
각 마차를 호위하던 호위들도 웅성거리며 크타치난 주위로 모여든다. 그 수가 17명.
마차의 주인들은 밖으로 모습을 비추지 않았지만, 적어도 협력하라고 지시는 내렸는지 협조적인 태도의 호위들에게 크타치난이 고함을 지르며 각 마차의 호위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아윅크 3급 호족님의 직계 분을 호위 중인 크타치난이오! 현재 이 근방에는 오버플로우 현상으로 이형종이 넘쳐흐르는바! 이곳으로 정체불명의 이형종이 공격해오고 있소! 우선 이곳의 위기를 힘을 모아 해결하고……!=
‘저쪽은 알아서 하겠지.’
환인은 일단 이실리테와 브릴릿, 딘테를 비롯해 세 마리의 쿠에에게도 최하급 강령을 펼쳤다.
쿠에엣~!
쿠우~!
힘이 넘치는 것은 발로 땅을 퍽, 퍽 차내며 길게 우는 쿠에 뿐만이 아니었다.
세 명도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느끼고 두리번거리다가 환인의 목소리에 그쪽을 쳐다본다.
“여러분과 기승 중인 쿠에에게 축복을 내렸습니다. 몰려오는 적의 수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니 최대한 조심하십시오.”
=아!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놀라서 대답하는 딘테와 브릴릿하고 다르게 이실리테는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힘의 크기에 경악을 느끼고 있었다.
‘이건 강화 두루마리나 비술사의 강화 비술을 받은 것보다 더하잖아?!’
용병으로 활동할 때 소도시 간의 파벌 전쟁에 여러 번 참가해본 이실리테는 강화 비술사의 강화 효과도 몇 차례 받아본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 강화 효과의 위력을 브릴릿과 딘테보다 더 정확하게 꿰뚫어 봤다.
‘못해도 4급, 어쩌면 5급 강화!’
평소에도 가벼운 대검이지만 지금은 무게 자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팔과 다리에도 힘이 넘쳐흘러 이 정도면 제자리 뛰기만으로 10m는 가뿐히 찍을 수 있을 듯한 기분.
‘대체 저 사람은 뭐지?’
이실리테는 마차의 프레임 위에 우뚝 서있는 환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3대 방어술을 미친 수준으로 습득하고 있는 것은 물리적인 기술이니 제쳐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 공격도 마도기로 했다고 치자.
5급 강화 술사의 강화도 가능하다고?
=아냐. 축복이라고 했어. ……어쩌면.=
자신은 말도 안 되는 당첨 확률의 뽑기에 성공한 게 아닐까?
저런 능력이면 6급 직업자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7급 직업자만 되어도 중상위 고족과 대등한 위치가 된다. 8급이면 도시의 주인인 호족과도 맞먹는다고 들었다.
얼핏 듣기에는 8급 직업자의 한 달 교습 비용으로 만 10금화를 낸다고.
돈도, 배경도 없는 자신 같은 연놈들은 그러한 최상위 전사들의 제자로 뽑히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고, 뽑힌다 하더라도 명목상 제자일 뿐이지 하인이나 노예와 다를 바 없이 취급받는다.
그렇다면…….
‘내가 잘만 처신하면 주인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될 수도?’
첫 만남이 개떡 같았다지만 주인(예정)인 영혼사는 인정이 없지는 않았다. 도적질하려던 자신을 그래도 거두어들였고 돈도 쥐여주었으니까.
인품과 인격도 있는 거로 보였고 저 밉상 상인 놈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기품도 있다.
‘가능성이 있어!’
이실리테의 의욕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연재해에 전 재산을 날린 농부처럼 바닥을 치고 있었다.
실제로 전 재산을 날리다 못해 자발적으로 종속되겠다고 선언까지 했으니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의욕은 하늘을 뚫을 것처럼 치솟아있었다.
주인의 모든 방어술을 배우지는 못한다 해도 회피, 막기, 반격 셋 중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익히면 마을, 어쩌면 도시급의 무관장???이 될 수 있다.
20년간 봉사? 어차피 제자는 평생을 스승의 그림자 아래 봉사해야 한다.
스승의 허락이 없다면 자립할 수도 없다.
주인은 성격도 좋으니 성실하게 봉사한다면……!
=적 출현! 관목숲 서쪽 언덕!!=
=중소형 복합 마수 떼다!!=
=마차를 지켜!!=
왁 고함이 터져 나오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이실리테는 대검의 손잡이를 부러질 듯이 움켜쥐며 낮은 관목숲의 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희미한 달빛이 내리는 어둠 속, 번뜩이는 눈알 수십 쌍이 언덕을 타고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저놈들을 상대로 주인님에게 쓸모 있다는 것을 어필해야 해!’
가슴이 크게 부풀 정도로 숨을 들이마셨을 무렵 크타치난이 갈색 쿠에를 타고 달려와 브릴릿, 이실리테를 보며 소리쳤다.
=거기 전사직 두 명! 마수 떼가 너무 뭉쳐져 있다! 기병 돌격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어! 같이 힘을 써볼 생각 있나!?=
=있다!!=
이실리테는 두말없이 버럭 소리쳤지만 브릴릿은 스사에게 시선을 주어 승낙을 받아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지! 내가 중앙을 맡겠다! 좌우를 부탁한다!=
호위들이 마차를 중심으로 방진을 형성하는 것을 뒤로하고 세 명은 쿠에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해 파도처럼 밀려오는 마수 떼를 향해 돌진했다.
=간다아아!!=
크타치난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갈색 쿠에와 함께 선두에서 마수 떼와 충돌했다.
갈색 쿠에는 마수을 부리로 물어 던지거나 통나무처럼 튼튼한 다리로 짓밟고 크타치난은 그 움직임에 동화해가며 흑검??으로 마수의 목이나 등뼈를 끊는다.
‘다행이군. 숫자가 많지만 죄다 2급이나 3급인 조무래기들이다!’
이 정도라면 거의 피해 없이 마수 떼를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크타치난은 이어서 들이닥친 이실리테와 브릴릿의 돌격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꽈과광!!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과 부딪친 마수들이 튕겨 날아가버린 것이다.
=으이야아아압!!=
=하아아앗!!=
더욱이 대검을 든 여전사는 무슨 대검을 해머처럼 휘두르며 마수를 뻥뻥 쳐 날리기 시작했고 창을 든 여전사는 퓻 퓨퓻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마수들의 머리통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우라의 양은 3급과 4급 수준이었는데!’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그녀들을 빌려올 때도 아우라의 양은 자신에 훨씬 못 미치는 양이었다. 그런데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저 힘은 뭐란 말인가.
더 놀란 것은 그들이 타고 있던 밀짚 쿠에였다.
온순하기로는 앞을 다투는 밀짚 쿠에가 호전적으로 마수를 쫄 때마다 살점과 뼈가 퍽퍽 패여 나가고 발길질에 마수의 팔다리 허리가 부러져 나뒹군다.
‘무슨…… 근위용 회색 쿠에도 아니고.’
놀란 것도 잠시. 어찌 됐든 동료가 뛰어나다는 것은 든든한 백업을 받는 것과 똑같다.
=돌파한다! 잘 따라와라!!=
마수 떼가 주위로 구름처럼 모여드는 것을 본 크타치난은 흑검의 마법을 발동시켜 절삭력을 강화, 검을 거침없이 휘두르며 마수 떼를 돌파한다.
때때로 갈색 쿠에의 저공 활강도 이용해가며 마수 떼를 거의 돌파한 크타치난은 자기 머리 위로 퍼더더덕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밀짚 쿠에 두 마리의 모습에 다시 입을 쩍 벌렸다.
‘이 무슨…… 미친 도약 거리지?! 분명 밀짚색인데!’
크타치난과 이실리테, 브릴릿은 쿠에를 몰아 본대로 질주하는 마수 떼를 우회해 옆구리를 다시 한번 쳤다.
속도의 탄력을 받아 무리를 꿰뚫자 마수 십여 마리가 차에 치인 것처럼 날아가며 무리의 전투 능력이 급감한다.
=최대한 마수 떼를 두들겨놔야 본진의 부담이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본진과 마수 떼가 격돌하는 순간 다시 한번 마수들 사이를 돌파하며 무리를 양분한 크타치난이 마악 쿠에에서 뛰어내리려던 찰나였다.
=마수 떼다!=
=북동쪽! 관목숲 북동쪽!!=
=마수 무리가 또 나타났다!!=
=마수가 아니야! 이형종이다!!=
‘후방에도!’
마수는 짐승보다 좀 더 튼튼하고 가죽이 질길 뿐이다. 하지만 이형종은 다르다. 3급의 경우 일반인의 무기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지능은 짐승과 다름없으니 양동을 해온 것은 아니겠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크타치난의 시선이 40마리가 넘는 마수 떼와 싸우고 있는 17명을 향했다. 그들 전원 신분 높은 이들을 호위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실력은 충분하지만…….
‘인원의 여유가 없어!’
…크컹컹컹……!
…카르르르……!!
…키아아악……!
후미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크타치난의 조바심이 강해졌다.
어쩔 수 없다. 사상자가 발생하겠지만 그들도 호위. 호위 대상을 지키기 위한 희생인만큼 이해해주겠지!
=거기 검전사와 창전사! 우리는 뒤로 가서 새로 나타난 마수 떼를 맡는다!=
마악 마수 떼의 후미를 치는 이실리테와 브릴릿에게 크게 소리친 크타치난은 갈색 쿠에에게 도약을 지시해 한 마차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힐끔 뒤를 돌아보자 대검을 든 여전사만 달려온다.
창전사는 이쪽을 힐끔 보고는 별 문제 없다는 표정으로 마수를 처리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
다그치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퍼더덕, 힘찬 날개짓 소리와 함께 재차 도약한 뒤 본진의 후미로 활강하는 중에 크타치난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흑창을 든 검은 전사가 마차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수십 마리의 이형종 떼를 홀로 틀어막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전사가 아니야! 일반인이라고?!’
각성한 덕에 일반인보다 밤눈이 밝은 그는 흑창을 들고 양 떼에 뛰어든 늑대처럼 활약 중인 전사가 몸에 아우라를 두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경악했다.
직업을 가지지 못한 일반인은 이형종의 가죽을 뚫기도 버거울 텐데?!
그리고 마차 지붕에 착지한 쿠에에게 다시 도약과 활강을 지시하며 그의 동작을 지켜보았을 때…….
=아름답다.=
크타치난은 정수리에 벼락이 내리꽂히는 충격을 받았다.
한 번에 덮치는 세 마리의 이형종을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루트로 움직이며 몸을 피한다.
피하면서 흑창을 찌르고 휘두르는데, 무기를 축 삼아 이동하며 적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반격하고 반격하는 동시에 막고 막는 동시에 공격하는, 신기??라 할 만한 재주를 펼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공방일치의 현현.
그는 물론 그의 스승이 일평생 추구한 꿈의 경지가 그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쿠엣~!
쿵, 애조의 착지 충격과 함께 울음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크타치난은 크게 고함을 질렀다.
=아윅크의 크타치난!! 가세하겠소!!=
=주인님! 이실리테가 갑니다!=
환인은 뒤에서 두 명이 소리치는 것을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사방에서 자신을 물어뜯기 위해 덤벼오는 이형종을 하나하나 쳐내는 데 집중했다.
이형종의 영혼 등급은 무려 중하급.
정령으로 펼친 강령을 죽인 이형종의 영혼으로 갱신한 환인은 용솟음치는 힘과 체력으로 벽처럼 밀려드는 이형종 떼를 가르는 중이었다.
물론 막무가내로 수십 마리의 이형종 떼를 향해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도 동시에 공격해오는 숫자는 다섯 마리를 넘지 않는다.
여기서 공격의 수준을 나누면 적극적으로 이빨질을 하려는 게 두 마리, 슬쩍 팔이나 다리를 물고 늘어지려하는 게 한 마리, 빈틈만 보이면 바로 물어뜯으려고 벼르는 게 두 마리다.
나머지는 공격 차례를 기다리며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것들 뿐.
이형종의 영혼으로 만든 영혼 방패 두 개를 등 뒤에 배치하면 실질적으로 2~3마리의 동시 공격만 막아내면 된다.
그리고 환인에게 짐승 세 마리의 공격, 협동 공격도 아닌 각개 공격은 공격 축에도 끼지 못한다.
여기에 절삭력이 어마어마한 흑창까지.
깨갱!
끄애앵!
눈에 보이는 약점, 눈에 보이지 않는 틈을 찌르고 휘두르면 베이거나 찔린 이형종은 무조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다.
그 자리를 다른 이형종이 자리 잡지만, 잡기도 바쁘게 환인의 공격에 도로 튕겨 나간다.
이형종들은 그 동작과 움직임, 다른 이형종이 죽어가며 내지르는 단말마에 자극받아 오직 눈앞의 인간을 찢어 죽이기 위해 그에게만 덤비는 상황.
가세한 크타치난과 이실리테 덕분에 더욱 여유가 생겨난 환인은 막고 피하고 반격하는 공격 방식에서 공격 일변도로 전환,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베고 쳐내며 이형종을 학살해나갔다.
‘……도와주러 오지 않아도 됐겠는데.’
자신이 한 마리를 죽일 때 2마리를 쓰러트리는 환인을 곁눈질하던 크타치난의 감상이었다.
어째서 창전사가 별 문제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쪽에 가세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도 이해했고.
습격은 갑작스러웠던 것 만큼이나 빠르게 종료되었다.
한데 모여있는 마차를 중심으로 100마리가 넘는 네발짐승 마수의 시체가 널려있는 가운데 전투 뒤처리가 시작되었다.
다친 호위들은 각자 약초나 치유제, 회복제를 꺼내 상처를 치료하고…….
=다른 것은 눈길도 주지 마! 저쪽에 영혼…… 환인 님이 도륙한 마수의 시체만 짐마차에 실어!=
스사는 짐꾼 셋에 딘테와 휴슥까지 불러 마수의 시체를 선별, 짐마차에 닥치는 대로 실었다.
=이건 버리고, 저건 싣고, 이것도 싣고, 저기 저것도 싣고.=
=스사 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환인 님이 죽인 것은 상처가 하나뿐이거나 거의 안 보이잖아! 그것만 실어!=
=넵!=
=마수가 더 습격해올지 모른다! 빨리빨리 움직여!=
=…….=
이실리테는 그런 짐꾼들과 스사를 번갈아 보다가 팔짱을 끼고 어둠 저편을 바라보고 있는 환인을 힐끔거린 뒤 슬그머니 대검을 내려놓고 작업을 돕기 시작했다.
=야, 이거 옮기면 돼?=
=……음? 그렇소. 기왕이면 거기 발밑에 있는 것도 옮기시오.=
=이것도?=
=그것도.=
강한 힘을 가진 이실리테의 참여 덕분에 작업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잠시 뒤 짐칸에 마수 사체를 가득 실은 스사는 곧바로 출발을 소리쳤다.
=환인 님, 타시죠! 출발하겠습니다!=
보조석에 환인이 올라타고 짐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먼저 준비를 마쳐놓은 마차들도 그제야 짐마차를 따라 이동을 개시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마차 안에서 숨어있던 자들도, 마차 밖에서 마수와 싸웠던 자들도 환인이 어떤 일을 해냈는지 알고 있었다.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행렬에 가장 강한 사람으로 환인을 인정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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