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062 촌락 율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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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날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훈련과 마을 산책, 스사와 가벼운 잡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촌장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 송별회를 열고 싶은 눈치였지만, 저번 환영식 때처럼 마시고 죽자 같은 판이 벌어지는 것은 사양이었기에 다시 촌락을 방문하면 그때 환영회를 열어달라는 말로 완곡히 거절했다.
저녁에는 류히와 에프니스, 후이니와 엔넬 자매를 불러 여관에서 마지막 식사를 함께했다.
어쨌거나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난 인연이다. 내일 율캄을 떠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삶이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기에 마지막을 좋게 마무리 짓기 위해서였다.
여자들과 훈훈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끝마치고 이름 모를 잎을 우려낸 차를 마시며 여자들의 근황을 듣는다.
=전 잡화점의 재봉공으로 취직할 예정이에요. 은인님의 가죽 갑옷을 만들어드릴 때 도리토 씨에게 솜씨를 인정받았거든요.=
“그럼 이제 배는 타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네. 사실 다시 배를 타기가 겁나기도 하고…….=
스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 세계의 여자들, 특히 이런 시골의 여자들은 험한 일을 주로 하는 편이라 한다.
남자는 밭일이나 망루 초소의 감시, 가끔 습격해오는 짐승이나 괴물의 퇴치를 맡는 반면 그 외의 일은 대부분 여자가 맡는다고.
=성수 올조트님의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일은 14살 이상의 결혼 안 하고 특별한 기술이 없는 여자들만 맡는 게 관습이에요.=
위험한 일에 얼마 없는 남자와 기능직을 보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라던데 고기잡이는 안 되고 짐승과 괴물을 퇴치하는 일은 되고…… 기준이 잘 이해되지 않는 환인이었다.
‘싸움은 남자다운 행동이라 이건가.’
율캄에 머무르며 자경대라는 남자들과 시범 삼아 대련을 해봤지만, 환인이 느끼기에는 후이니나 엔넬보다 나은 점이 없었다.
공격할 때 빈틈이 훤히 보이는 데다 그쪽을 찌르면 숲이나 미궁의 짐승들처럼 바로 죽어버릴 거라는 게 느껴졌으니까.
“올조트가 일으키는 해일이 자주 일어나는 편입니까?”
=제가 태어난 뒤로 이번이 세 번째라고 들었어요.=
“적은 편은 아니군요.”
해일과 맞닥트리면 반드시라고 할 만큼 사망자가 난다.
이번에도 18명이 배를 타고 나갔는데 돌아온 사람은 류히, 에프니스, 후이니, 엔넬 이 네 명뿐이라고 들었다.
10명은 해일이 일어나고 며칠 뒤 시신이 백사장으로 밀려왔고 나머지 4명은 미궁의 숲에서 사망한 숫자다.
이만한 사망자 숫자라면 지자체에서도 손을 쓸법한데 그러지 않는 이유는 그 뿔비늘 고래를 성수라고 부르기 때문이겠지.
=저도 여관과 잡화점을 이어받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교육받기 시작했어요. 언니처럼 이제 배는 타고 싶지 않아서…….=
그나마 에프니스는 류히보다 상황이 나았다. 물려받을 가게가 잡화점, 여관 둘이나 되고 옷의 패턴 제작이라는 기능도 있으니까.
원한다면 결혼도 할 수 있을테지 만 에프니스는 물론이고 류히도 결혼에 생각이 없어 보였다.
후이니는 환인이 지나가듯 던진 말을 생각 이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 대장장이 잡일꾼 일을 시작했고 엔넬은…….
“마을 자경단에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네. 은인님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저도 조금이지만 자신이 생겼어요. 어차피 결혼하기는 틀렸으니 관심 있는 쪽으로 노력해볼 생각이에요.=
환인이 보기에도 엔넬 정도라면 마을 자경단 일은 충분히 하겠다 싶었다.
인랑족으로 힘도 인견족인 남자들과 힘이 비슷했던데다 의외로 무기를 다루는 용기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환인은 여자들이 헤어질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나 자신을 따라나서려 한다면 설득을 할 생각이었는데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은인님은 내일 스사 씨와 함께 출발하시는 건가요?=
“예. 이제 마을에 배회하는 영혼도 없고 혼재 사건도 마무리되었으니까요.”
=잘됐네요. 혹시 혼자 떠나시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목책 바깥은 위험한 일이 많으니까…….=
류히는 웃으며 =물론 은인님은 강하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지만요=라고 말을 덧붙였다.
찻잔을 내려놓은 에프니스도 여관집의 2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스사 씨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은인님께 길 안내를 잘해드릴 거에요.=
“그렇습니까?”
믿을 수 있다는 물질적인 증거가 있는 건가 궁금해하는 환인에게 에프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근 마을이나 도시로 거주를 옮긴 사람들이 적지 않은 편이에요. 그들 중 제대로 자리 잡고 주기적으로 연락을 보내오는 사람들은 스사 씨를 통해 이주한 사람들 뿐이거든요.=
현재 촌락에 있는 사람들은 올조트를 성수처럼 여기고 있지만, 아닌 사람들은 모두 겁먹고 이주했다고 한다.
그리고 율캄을 방문하는 행상은 스사를 포함해 6명 정도.
다른 행상을 통해 이주한 사람들은 소식이 두절되기도 하고 이동 중 사고를 당해 죽은 사람도 나왔지만 스사의 도움으로 이주한 사람은 모두 무사하다는 이야기였다.
=스사 씨와 함께 마을을 떠난 이들은 모두 제대로 살고 있어요. 지금도 매년 두 차례 가족들에게 편지가 배달되고 있고요.=
“그렇군요.”
적어도 스사는 신의가 있다는 이야기였기에 환인은 자신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류히를 포함한 네 명과 마지막 뜨거운 밤을 보낸 환인은 아침 일찍 출발 준비를 마쳤다.
정체불명의 가느다란 짐승 털로 짠 티셔츠에 검은색의 가죽 바지를 입고 같은 질감과 색의 가죽 재킷과 코트를 걸친다. 여기에 후드까지 뒤집어쓴 환인은 복장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비상식량. 일어나라.”
…….
비상식량을 깨웠지만,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날개까지 펼친 채 곯아떨어진 비상식량은 세상 편하게 꿈나라를 여행 중이었다.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환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비상식량의 목의 쓸어내리며 다시 깨운다.
“비상식량.”
쿠, 쿠에……?
“출발이다.”
…꾸!
출발이라는 단어에 정신이 들었는지 벌떡 일어난 비상식량은 자기 나름대로 깃털을 부리로 다듬으며 부산을 떤다.
환인도 가죽가방과 무기를 챙기고 잊은 물건은 없는지 다시 방을 살펴본 다음 방문을 나섰다. 비상식량도 후다닥 그 뒤를 따른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무 계단을 걸어 1층으로 내려가자 촌장과 부인 내외가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하십니까.=
“예.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영혼사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마을이 사라질뻔한 위협을 제거해주신 데 대한 사례라 하기에 약소하지만…… 받아주십시오.=
촌장이 내민 것은 비단처럼 고급스러워 보이는 주먹만 한 보라색 주머니였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가까이 다가온 촌장이 억지로 환인의 손에 쥐여준다.
=이런 날을 대비하여 모아오던 마을 공동관리 자금입니다. 허니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부디 받아주시지요.=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받아들자 주머니 속에서 자그락, 동전이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꽤 묵직하다.
촌장은 환인에게 넘겨준 주머니 속에 만약을 대비한 일부를 남긴, 마을 관리 자금의 90%를 넣어두었다.
어차피 환인이 아니었다면 쓸 일도 없이 율캄 촌락과 함께 사라졌을 재산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환인에게 뇌물성 답례로 바치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환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자신도 전해 듣기로만 했기에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몇 마디 말과 조금의 행동으로 혼재를 정화하는 수준의 영혼사는 성도에서도 대접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이만한 영혼사가 이런 시골 촌락을 재방문할 이유는 없을 거다. 성도나 주도에 머무르기만 해도 갖은 인맥을 챙기며 호의호식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촌장의 눈에 환인은 젊은이 특유의 어수룩함이 있었다.
촌락의 멍청한 어린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현명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약간의 어수룩함이 느껴지는 환인에게 최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놓는다면 훗날 촌락에 자그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있었던 거다.
촌장은 근 백 년에 이르는 연륜으로 그러한 내심을 완벽하게 숨기고 떠나가는 환인에게 허리를 깊게 숙였다.
=영혼사님의 앞날에 짐승신님의 가호가 있기를…….=
=안녕히 가세요, 영혼사님.=
=부디 여행길에 행운이 깃들길 기도하겠습니다.=
촌장 내외를 뒤로하고 여관으로 이동하던 환인은 촌장집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돈주머니를 열어보았다.
온통 은화투성이다.
한 장에 열 닢의 가치를 지닌 열은화가 6장에 은화도 4장이나 된다. 원화로 6400만 원이나 되는 거금이다.
마을도 되지 않는 촌락의 관리자금으로 6400만 원이면 거의마을 관리자금을 다 넣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영혼사가 이토록이나 대접받는 건가.’
촌장은 더할 나위 없이 내심을 잘 감추었지만, 환인은 마지막 날 이런 사례금을 쥐여준 행동에서 촌장의 내심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았다.
“좋은 판단이군.”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촌장의 내심도 모르고 그저 잘 대해줬다며 크게 감동했을 테지.
환인도 율캄을 어느 정도 기억해두기로 마음먹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반도 하나 없는 자신에게 이만한 거금이면 한동안의 활동 자금으로 충분할테니까.
새벽의 어스름 속 여관 앞은 사람들과 생전 처음 보는 짐승들로 북적였다.
=영혼사님, 이쪽입니다!=
스사는 가죽 갑옷을 모자와 상하의, 신발에 장갑까지 완벽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평소와 분위기가 전혀 달라 치타 얼굴이 아니었다면 누군지 잠시 헷갈렸을 차림이었다.
“그렇게 입고 있으시니 행상인이 아니라 모험가처럼 보이는군요.”
=그렇게 보인다는 게 중요하거든요!=
모험가가 많을수록 불한당 같은 놈들에게 얕보이지 않는다며 눈을 찡긋하는 스사다.
같은 남자가 그랬다면 보기 싫었을 텐데 얼굴이 귀여운 치타라서 그런가 나쁘게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그보다 이 동물이 쿠에입니까?”
환인은 스사에게서 시선을 돌려 밀짚색의 커다란 새 네 마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저희 같은 행상의 둘도 없는 친구들이죠.=
순둥순둥하게 생긴 쿠에는 크기가 타조보다 1.5배 정도 더 컸다.
체격도 타조와 흡사했는데 길고 부드러운 깃털로 타조를 뒤덮으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타조보다는 목이 좀 짧았는데, 타조보다 몇 배나 풍성한 깃털에 꽁지깃도 까치처럼 여러 개의 길고 큰 깃털이 자라있어 비율이 어색하지 않아 귀여움이 크게 느껴진다.
크기가 말만큼이나 커서 조금 위압적으로 보일 법도 한데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참새처럼 동글동글한 머리. 눈도 크고 눈동자도 맑다. 속눈썹도 가지런하고 길어 밀짚색 깃털과 어울리고 완만하게 휜 두툼한 부리 덕분에 귀엽고 온화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배를 깔고 앉아있던 밀짚색 쿠에는 환인이 가까이 다가오자 고개를 기우뚱하더니 일어서서 환인의 냄새를 킁킁 맡는다.
“……다리가 굉장히 튼실하군요.”
앉아있을 땐 몰랐는데 다리 두께가 엄청나다. 허벅지는 성인 남자 허리둘레 수준이고 비늘 비슷한 것으로 뒤덮인 발목도 성인 남자의 허벅지 굵기 정도.
발톱도 상당히 날카로운 게 저기에 채이기라도 했다간 살가죽이 찢어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느낌이다.
=하하하. 다리와 부리가 쿠에의 큰 무기죠. 저 다리에 제대로 채이면 늑대 정도는 일격에 허리가 부러져요.=
“…….”
그 정도면 맹수인데?
=로티, 이리 와.=
쿠에~
짐꾼 한 명이 밀짚 쿠에를 데려가서 천장 프레임이 노출된 짐마차에 묶는다.
밀짚 쿠에는 별 저항도 없이 자기 몸에 재갈과 수레 채를 채우는 짐꾼을 느긋하게 쳐다볼 뿐이다.
‘성격이 굉장히 온화하군.’
스스로 부리까지 벌려 재갈을 받아들이는 쿠에와 다음은 자기 차례라는 듯이 짐꾼 옆에 다가와서 기웃거리는 쿠에를 보다가 스사에게 물었다.
“만져봐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밀짚 쿠에의 가장 큰 단점이 온화함이라고 할 정도니까요.=
스사의 허락을 받아 쿠에의 풍성한 목 깃털이나 등 깃털, 날개깃털을 만져본 환인은 내심 놀랐다.
깃털이 너무 풍성해서 좀 뻑뻑하지 않을까 했는데 만져보니 오리털만큼이나 부드러웠던 거다.
환인은 짐마차에 묶인 동족을 기웃거리는 작은 닭 사이즈의 비상식량을 의문스럽게 쳐다보았다.
‘저 녀석이 이렇게 성장한다는 건가. 잘 상상이 안 가는데.’
밀짚 쿠에는 비행 능력을 상실한 가금류처럼 생겼다.
닭이나 오리, 거위처럼 말이다. 하지만 비상식량은 겉모습만 보면 철새 느낌이 강하다.
쿠에? 쿠엣.
꾸! 쿠에~
쿠엣?
쿠에엑!
비상식량이 갑자기 짐마차에 묶인 밀짚 쿠에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서로 주고받는 것처럼 쿠에쿠에 거리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스사는 슬그머니 환인의 곁에 붙어 귀엣말로 조용히 물었다.
=영혼사님. 혹시나 해서 여쭙는 건데…… 영혼사님의 애완조, 혹시 희귀 쿠에입니까?=
“예. 여기 마을 아가씨가 그렇다고 하더군요.”
=음…….”
스사는 진지한 얼굴로 날개를 파닥거리는 비상식량을 보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목띠 비슷한 것을 가져와서 환인에게 내밀었다.
=이건 특수하게 짠 작물로 만든 목띠입니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길게 늘어나기까지 해서 성체 쿠에의 목도 여유 있게 감싸죠. 이걸 애완조의 목에 채워두는 게 좋겠습니다.=
“소유자가 있다는 표시입니까?”
=예. 아무런 표식 없이 희귀 쿠에가 돌아다니면 임자가 없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주워가거나 할 테니까요. 물론 도둑도 주의해야겠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소유물에 대한 표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
환인은 스사에게 고맙다고 한 뒤 비상식량을 불러 목 띠를 채워주었다.
쿠에?
비상식량은 이게 뭔가 하다가 성가신지 발톱으로 긁으려 들었다. 환인은 발을 잡아서 내리며 주의를 주었다.
“벗지 말고 끼고 다녀. 누가 널 데려가려 하면 도망쳐서 내게 오도록 하고.”
쿠엣.
출발 준비는 스사의 감독 아래 금방 끝이 났다.
호위 한 명과 짐꾼 세 명은 소형 버스만 한 짐마차의 짐칸에 타고 남은 호위 두 명은 각각 밀짚 쿠에의 등에 올라탄다.
‘실력순으로 쿠에를 타는 건가.’
스사가 단단히 포장된 짐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뒤 환인에게 웃으며 제안했다.
=영혼사님. 짐마차 보조석에 오르시죠.=
“신세 지겠습니다.”
짐마차에는 편히 앉아 갈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도 직접 고삐를 쥐는 것을 보면 보조석 자리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틀림없다.
=가방 받아드리겠습니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짐꾼에게 가방과 창을 넘겨준 환인은 사슴뿔 지팡이만 쥐고 자리에 오른다.
비상식량도 폴짝 날아올라 마차의 프레임 위에 착지해서 기세 좋게 운다.
쿠엣!
쿠에?
쿠우엣.
쿠우쿠우
새벽의 찬바람을 맞으며 짐마차의 보조석에 앉아 말이 아닌 동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가슴 속에서 솟아난다.
본격적으로 다른 세상에 뛰어드는 불가사의한 느낌.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얘들아, 가자!=
철썩.
쿠에~
쿠엣!
가죽제 고삐가 가볍게 흔들리며 등을 때리자 쿠에들이 걸음도 가볍게 쭉쭉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람 여섯 명만 해도 무게가 500kg이 넘는다. 마차 자체 무게에 실린 짐까지 다하면 2t은 가볍게 넘을 텐데 밀짚 쿠에 두 마리는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마차를 끌고 나아간다.
여관 쪽에서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2층 창가에 서있는 류히와 에프니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
그녀들에게 살짝 묵례하는 것을 끝으로 환인은 2주 넘게 머물렀던 율캄을 떠나 여행길에 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