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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58화 (58/813)

〈 58화 〉 057 촌락 ­ 율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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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 촌락 ­ 율캄

환인은 사교성이 좋아 보이는 보더콜리 머리의 남자와 적당히 잡담을 주고받았다.

사회성을 쌓고 친밀감을 높이는 데에는 잡담이 제격이었으니까.

“마을 분위기가 참 좋군요. 공기도 맑고 깨끗한데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줄기가 청아한 느낌을 주는 훌륭한 곳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 칭찬에 보더콜리 남자는 꼬리까지 좌우로 붕붕 흔들며 좋아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크~. 영혼사님이셔서 그런지 역시 보시는 눈이 뛰어나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 마을은 그 옛날 죽은 자의 대규모 행렬을 홀로 막아내신 성녀 루오르라 님의 출생지거든요! 그땐 마을 이름도 달랐지만, 성녀님의 고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도 율캄으로 바꾸고…….=

보더콜리 남자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들으며 그의 입에서 나온 두 가지 단어에 집중했다.

성녀. 그리고 죽은 자.

성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성녀와 다른 의미인 듯 하다. 그리고 죽은 자는…….

‘단순히 사망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언데드 같은 걸 의미하는 건가.’

몬스터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언데드라고 없을까.

환인은 보더콜리 머리의 남자가 하는 말에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주다가 빨간색의 영혼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프니스는 영혼사란 영혼에게 안식과 평온을 내려줘서 혼재로 변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 했었다.

영혼. 혼재. 죽은 자. 성녀. 신의 정원. 더럽혀진 영혼…….

감이 왔다.

‘저 영혼이 혼재겠군.’

그렇다면 죽은 자라는 것은 단순히 사망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언데드 같은 걸 의미하는 것일 터.

확실히 죽은 친족이 썩은 시체나 해골 몰골로 무덤에서 일어나면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그리고 영혼사가 그러한 현상을 막아준다면, 종교상의 사후 세계에 대한 중요한 요소를 보장해준다면?

이제야 마을 주민들의 과다한 호의와 환대가 이해되는 환인이었다.

환인의 시선이 붉은색의 늑대 남자 영혼에게 향했다.

그럼 저 영혼은 그러면 뭔가 불만 같은 게 쌓이고 쌓여서 저리 변했다는 건가.

“…….”

육체도 없으면서 어떻게 생각하고 사고하는지 모르겠지만, 류히의 언니, 루아의 영혼은 동생을 구하기 위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영혼이 되어서도 사고할 줄 안다면 당연히 만족과 불만도 느낄 테니 저런 변화도 일어날 수 있겠지.

‘저 상태에서 좀 더 나아가면 죽은 자가 되는 걸까.’

확인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정말 저 남자의 시체가 땅을 뚫고 올라오는 건가? 그렇게 되면 사람들을 공격하나? 괴물로 취급받는 건가?

그리고 자신의 명령을 이행한 영혼은 희끄무레한 연기, 좋게 표현하면 빛무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그게 신의 정원이라는 곳으로 가는 현상이라면 언데드가 된 영혼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저, 저기…… 영혼사님. 저쪽에 뭔가가 있습니까요?=

환인의 시선이 아무것도 없는 목책으로 향하고 있는 것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신나게 떠들던 보더콜리 남자가 반쯤 접힌 귀를 더욱 늘어뜨린 채 기가 죽은 얼굴로 묻는다.

짧게 고민한 환인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붉은 영혼이 보이는군요.”

=히익!?=

“……?”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과도하게 놀란 보더콜리 남자를 쳐다보니 남자는 넙죽, 환인에게 허리를 숙이고는 쏜살같이 마을로 달려가며 목청껏 소리쳤다.

=혼재다! 혼재가 나타났다!! 재액이 벌어진다아악!!=

환인은 보더콜리 남자의 행동에 살짝 놀라워했다.

역시 저 붉은 영혼은 혼재가 맞았다. 그런데 그게 저렇게 행동할 만큼 위험한 존재인가?

혼재에서 꺼림칙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게 직접적인 해가 될 것 같진 않다고 느껴진다.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독버섯은 먹으면 죽지만, 본다고 죽지는 않는다. 그리고 혼재를 보는 것은 독버섯을 보는 느낌이다.

땡땡땡땡땡땡……!

시끄러운 종소리에 망루를 올려다보니 등에 활을 맨 갈색 늑대 머리 남자가 미친 듯이 종을 울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환인과 보더콜리 남자의 대화를 모두 들은 기색이다.

시끄러운 종소리가 마음에 안 드는지 비상식량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망루를 향해 쿠엑거린다.

환인도 망루를 바라보다가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모습에 혼재로 시선을 돌렸다.

‘잘하면 내게 이익이 되겠군.’

10분도 지나지 않아 밖에서 농사일과 목축일을 하던 사람들을 비롯,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모여들었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환인의 눈에는 희끄무레한 영혼들도 모이는 게 보였다.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혼재가 나타났다며?=

=영혼사님이 발견하셨대.=

=죽은 자의 징조는 아직 없었지?=

=아침에 아버지 묘지를 다녀왔는데 괜찮았어. 주변에 심어둔 일라일 꽃도 멀쩡했고.=

혼재의 출현에 긴장하며 상황을 파악하는 한편 대책을 마련하려는 사람들.

=영혼사님이 계셔서 다행이군. 아니었다면 큰 재액이 닥쳤을 거야.=

=짐승신님께서 돌보신 것이지.=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그리고 영혼사가 마을에 있다는 것에만 다행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혼재라.’

다른 이들보다 늦게 도착한 촌장이 헐레벌떡 인파를 헤치고 다가왔다.

=영혼사님! 혼재가 나타났다는 게 정말입니까?!=

“저는 굉장히 먼 곳에서 왔습니다. 그 때문에 혼재에 대한 정의를 아직 완벽히 내리지 못한 상태입니다만, 붉고 나쁜 기운을 흘리는 영혼이라면 저곳에 확실히 있습니다.”

환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즉시 쳐다본 촌장이지만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모인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웅성임이 커지자 촌장은 마을 사람들을 사나운 눈으로 돌아보며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한 뒤 환인에게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굉장히 먼 곳에서 전송 사고로 삼림 미궁에 떨어지셨다고요.=

“예. 그러다 보니 여러분들의 문화와 풍습에 대해 무지한 편입니다. 혼재에 관해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기꺼이 혼재?災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촌장이었다.

=혼재는 영혼이 좋지 않은 일, 나쁜 기운에 노출되어 타락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생피같이 불길한 색을 띠고 있다는 것이고, 혼재 상태가 오래되면 그에 영향을 받은 다른 영혼들도 혼재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겁니다.=

그렇게 혼재의 밀도가 높아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재액이 시작된다.

영혼 그 자체가 악령으로 변해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주변에 있는 시체에 스며들어 악귀가 되어 일어선다. 물론 혼재가 자기 육체를 찾아 들어가는 게 아니다. 주변에 있는 아무 시체에 씌는 거다.

문제는 여기서 이어진다.

자신의 시신이 더럽혀진 영혼도 분노하고 절망해 혼재로 변한다. 그렇게 혼재가 된 영혼도 다른 사람의 시체에 깃들어버리고, 그러면 또 자신의 시신이 더럽혀진 영혼이 분노하게 되고…….

와중에 더욱 질이 나빠진 혼재는 살아있는 사람의 몸뚱이를 탈취하는 예도 있다.

그런 식으로 혼재의 연쇄작용이 이어져 대처가 늦은 소도시 하나가 통째로 증발해버린 예도 있었다고.

=강한 혼재는 막 죽은 사람의 시체마저 움직이게 합니다. 그때가 되면 늦었지요. 마을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마을 사람들이 과민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군.’

연륜 덕분인지 비교적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는 촌장에게 환인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재차 물었다.

“그 혼재의 해결 방법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보편적이고 간단한 방법은 일라일 꽃을 무덤가에 심어두는 겁니다.=

“일라일 꽃?”

=신님들이 혼재에게 시달리는 필멸자들을 가엾게 여겨 세상에 뿌린 꽃입니다. 더운 곳, 추운 곳, 습한 곳, 메마른 곳을 가리지 않고 피어나는 하늘색 꽃이지요. 일라일 꽃의 색이 변하면 근처에 혼재가 나타났다는 증거이기에…… 괴로운 일이지만 무덤을 모두 파헤친 뒤 시신을 모으고 위령제를 치릅니다. 그리고 화장합니다.=

이 세계에서 화장은 기피하는 장례 방식인가.

“혼재를 원래의 혼으로 되돌릴 방법은 없습니까?”

=촌 무지렁이라 그것은 저도 잘……. 아! 영혼사님들은 그 수가 무척이나 적고 또 혼재를 위령하는 방식도 여럿이라 들은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30년도 족히 넘은 기억이라 지금은 또 어떨지.=

‘그러면 내가 어떤 방식을 쓰던 의심받을 일은 없겠군.’

그때 촌장의 아내 중 한 명이 투구꽃을 닮은 하늘색 꽃을 한 아름 안고 나타났다.

“그 꽃이 일라일입니까?”

=네, 영혼사님.=

“이리 주십시오.”

꽃 일부를 건네받은 뒤 멍한 느낌으로 한 곳만 미동도 없이 바라보는 붉은 영혼에게 다가간다.

지지직…….

거리가 가까워지자 환인의 품속에 있는 꽃이 지직거리며 검게 시들기 시작했다. 저 붉은 영혼이 혼재라는 증거였다.

쾍!

매캐한 연기가 싫은지 비상식량이 훌쩍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환인도 자색을 띠기 시작한 일라일 꽃다발을 땅에 버리고 물러섰다.

=허억! 일라일 꽃이, 꽃이……!=

=으어어. 진짜 혼재다. 진짜 혼재야……!=

=자네들 그 입 다물지 못하겠나!=

역정을 내는 촌장의 모습에 젊은 늑대 머리 남자들이 찔끔하며 입을 다문다.

입만 열지 않았을 뿐이지 촌장과 마을의 나이 많은 사람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조상의 가호가 있었다, 나쁜 일이 벌어지면 조상을 좀 더 잘 섬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는 시대다.

조상이나 가족의 영혼이 혼재가 되면 물질적인 피해도 피해지만 유족인 자신들도 죽어서 안식을 찾지 못할 거란 생각에 불안해하는 풍습이 널리 퍼져있는 세상.

혹시나 자신들의 조상혼에게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걱정하는 마을 사람들의 대화를 전부 들은 환인은…….

‘저렇게 변한 이유는 뭐지? 저 상태의 영혼에게 명령을 내릴 수는 있나?’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혼재에 더욱 관심이 갔다.

저 영혼을 다룰 수 있을까? 만약 저 영혼으로 강령을 펼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영혼을 소멸시킬 수도 있나?

정보 수집의 욕구가 치밀어올라 조금 견디기 힘든 환인에게 주변의 소음은 꽤 듣기 싫은 축에 속했다.

“잠시 조용히 해주십시오.”

환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150명이 내는 웅성임이 단숨에 사라졌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적막이 내려앉은 목책 앞. 환인은 등에 손을 뻗었다가 뻘쭘하게 손을 내리고 촌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팡이를 가져와야 합니다만…….”

=아! 사슴뿔 장식 지팡이 말씀이시군요. 비군트, 얼른 뛰어가서 가져오거라.=

=네!=

촌장의 아들은 날랜 걸음으로 순식간에 사슴뿔 지팡이를 가져와 환인에게 두 손으로 넘겨주었다.

지팡이를 든 환인은 왼손에 진주색 돌멩이를 쥐고 붉은 영혼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루아의 영혼은 말도 못했고 대화도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과 행동에서 바라는 것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바람이 이루어져서 성불했는지, 아니면 성불할 때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성불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의사소통은 가능할 거라고 환인은 생각했다.

그리고 붉은 영혼과 불과 4m 정도를 남겨두었을 때 영혼이 천천히 환인을 돌아보았다.

붉은 영혼과 눈을 마주한 환인은 눈빛으로 물었다. 무엇을 바라느냐고.

—…….

“…….”

순간적이었지만 환인은 붉은 영혼의 감정을 느꼈다고 확신했다.

끈적하게 불타는듯한 분노. 원한과 복수심.

맑고 깨끗한 감정 속에 그저 안타까움과 바램을 담고 있던 루아의 영혼과 정반대되는 느낌이다.

‘살해당한 건가.’

마을 사람들 쪽을 힐끔 보고 다시 붉은 영혼을 보자 붉은 영혼도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을 사람들 쪽을 바라본다.

십수 가지 생각과 가설이 빠르게 떠올랐다가 분해되어 재조립되고 다시 가라앉았다가 부상한다.

그사이 붉은 영혼은 핏불테리어를 닮은 개 머리의 남자 앞으로 이동해서 그를 원독에 찬 모습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

마을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자신만 빤히 바라보는 상황.

환인은 긴장한 모습으로 서있는 류히와 에프니스, 후이니와 엔넬을 발견했다.

그 어떤 정보도 주지 않고 그녀들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한다.

“여러분. 잠시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환인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여자들은 두말하지 않고 환인에게 달려왔다.

그중 에프니스는 붉은 영혼을 뚫고 왔는데도 몸에 그 어떤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사람에게 영향은 주지 못하는 상태인가 보군.’

촌장이 걱정이 커진 얼굴로 환인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영혼사님? 무슨 일이신지…….=

“따로 확인해볼 것이 있습니다. 촌장님께는 잠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에…….=

의문을 눈에 담은 촌장과 마을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며 환인은 류히에게 요구했다.

“마을 사람들이 대화를 듣지 못하는 곳까지 갑시다.”

=네, 은인님. 이쪽이에요.=

류히가 안내한 곳은 두 명이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통나무집이었다.

크고 작은 통나무집이 공터를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듯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었는데 환인의 눈에는 평범한 주거지역으로 보였다.

“그릴 것이 있다면 가져다주십시오.”

=저, 좋은 게 없어서 목탄뿐인데 괜찮으신가요?=

“예.”

=잠시만요.=

류히가 집 안으로 사라지자 후이니가 슬그머니 환인의 팔을 자신의 봉긋한 가슴골 사이에 끌어안으며 묻는다.

=은인님. 밤은 잘 보내셨어요?=

“촌장님이 좋은 방을 내어주셨더군요. 덕분에 푹 쉬었습니다.”

=헤헤.=

그냥 말을 걸고 싶을 뿐이었는지 그 뒤에 별 말 않고 헤헤 웃기만 한다. 그 모습에 엔넬도 경쟁하듯 반대쪽 팔을 껴안고 후이니를 흘겨본다.

에프니스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자매를 째려보다가 표정을 고친 뒤 환인에게 물었다.

=어제 도착하고 사람들에게 시달리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바로 혼재를 영매하시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떡하니 보이는데 외면하기 어렵더군요. 마을 사람들이 뭘 바라는지 눈에 다 보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마을에 영혼사님이 오신 것은 반백 년 만이라 마을 사람들의 기대가 많아서 그랬을 거예요. 대신 사죄드릴게요.=

“앞으로 비슷한 일을 많이 겪겠지요. 미리 경험해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에프니스는 환인의 대답에서 홀로 마을을 떠날 거라는 뉘앙스를 받았다. 그래서 마음속에 슬픔이 차올랐지만, 일부러 티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남자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진 것을 느꼈다.

당연한 거다. 마을에 여자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괴물에게 희롱당한 여자를 누가 원할까.

마을 사람 아무도 미궁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묻지 않았지만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나마 양친이 살아있는 자신이나 후이니, 엔넬 자매는 나은 편이다. 이제 가족도 일가친척도 없이 혼자 남은 류히는…….

에프니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심 없는 환인은 아까부터 자신의 뒤를 따라오다가 집 안까지 들어온 남녀 한 쌍의 영혼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두 영혼이 류히를 천천히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녀의 수호령이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실제로 그럴 리는 없을 거다. 만약 정말 수호령이었다면 그 미궁에까지 쫓아왔을 테니까.

저 영혼들과 류히화 관계성이 어찌 될까 생각하던 환인은 류히가 목탄에 무두질 된 가죽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 팔에 들러붙은 자매를 살짝 밀어냈다.

“제가 여러분들을 따로 부른 이유는 혼재에 관한 것을 묻기 위해서입니다.”

목탄과 가죽을 받으며 말하자 류히가 자신 없다는 태도로 대답한다.

=그런 거라면 촌장님이 가장 잘 아실 텐데…….=

“그렇겠지요. 하지만 제가 현재 마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들 뿐입니다.”

살짝 감동하는 여자들에게 환인은 붉은 영혼의 인상착의를 빠르게 그려서 보여주며 물었다.

“이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전부 이야기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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