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055 프롤로그
* * *
환인이 던진 돌멩이가 일으킨 파문은 해일이 되어 삼안물산을 덮쳤다.
삼안물산을 크게 흔들 요량으로 꾸민 계획과 그에 걸맞은 폭로 자료였지만, 어째서인지 거대 기업 몇 곳이 그 분위기에 편승해 삼안물산을 물밑에서 공격하기 시작해 자신의 예상보다 더 큰 파도로 변한 것이었다.
[“권력형 게이트 문 열렸다…… 비리의 악취 진동”]
[되풀이되는 ‘생계형 비리’ 개혁 의지는 없는가.]
[공단 ‘입찰 비리’ 또 있다? “비리 업체들과 수년간 거래……”]
“…….”
비리 폭로의 목적은 자신을 사회적으로 말살하려 하는 강하연에 대한 자기 보호 및 보복 심리였다.
하지만 강하연은 삼안물산 부사장의 딸. 섣불리 건드렸다간 오히려 이쪽이 당한다.
강하연에게 보복하려면 먼저 그 집안부터 박살 내야 한다.
삼안물산 쯤 되는 기업의 부사장을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수집해둔 정보 중 강 부사장과 관련된 비리 자료만 폭로해도 될 일이었지만.
‘그 정도로는 강 부장의 인맥 인프라를 건드리지 못해. 강 부장의 능력과 쌓아둔 비자금이라면 폭풍이 지나간 후 인맥을 통해 재기할 가능성이 70%.’
재기를 위한 싹까지 잘라내려면 그보다 더 복잡한 계획을 꾸며야 하는데 그건 너무 귀찮다.
그래서 환인은 삼안물산 그 자체를 흔들기로 했다.
삼안물산만 무너져도 강 부장의 인맥과 재산의 80%는 증발해버릴 테니까.
여기에 포격 좌표를 부사장 2명과 전무로 잡아놓았다.
삼안물산이 어찌 여론과 주가 폭락의 폭풍을 견뎌낸다 하더라도 세 명은 후유증으로 재기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런데 재계 서열 30위 내외의 거대 그룹에서 삼안물산 게이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먹음직스러웠겠지.’
어쩌면 상위 5%의 그룹이 나설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다. 삼안물산은 비유하자면 통통하게 살찐 거위였으니까.
하지만 정보가 부족해 그 가능성을 계산 못 했고 환인은 거대 그룹의 동향은 일단 제외했다.
제외했다지만 게이트가 터졌을 때 나서서 도움을 주지 않을 거라고는 확신했었다. 그만큼 삼안물산이 쌓아온 비리는 하수구의 오물보다 더러웠으니까.
‘어쨌든, 나에게는 행운이다.’
이런 식으로 불이 더욱 크게 번지기 시작하면 시선이 분산되며 유한성에게 관심이 쏠릴 가능성 또한 많이 줄어들 테니.
자신이 준비한 자료 외에 다른 삼안물산 비리 폭로 기사가 올라온 것을 확인한 환인은 고개를 들어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삼안물산 게이트는 공영방송사의 메인 뉴스룸까지 타고 있는 마당이다.
평소 보기 힘든 임원들이 우르르 이동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목격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성까지, 분위기는 이보다 더 뒤숭숭할 수 없을 지경.
사원들이 목소리를 낮춰 수근거리는 것을 듣다가 계단참으로 자리를 옮긴 환인은 출입구와 주차장 등지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보며 턱을 매만졌다.
‘강하연에게 한 협박은 주효했다.’
지랄 같은 성격의 강하연이 무고한 소송을 걸기 전에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했던 으름장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협박을 성범죄자로 전락하기 싫은 정신병자의 위협 정도로 받아들였다.
이번 게이트의 발단과 자신 사이의 연관성은 짓지 못할 것이다. 그러라고 회사 생활을 조용히, 과묵하게 해왔으니까.
환인은 품속의 사표를 만지작거리다가 얼마 전에 구입해 부시 크래프트용으로 마개조한 스마트폰을 켜 주식 앱을 열어본다.
삼안물산의 주가는 폭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연일 하한가를 치는 중이었다.
▼17.8% 삼안물산
▼31.5% 삼안솔루션
▼29.2% 삼안플렉스
▼26.3% 삼안머티리얼스
▼25.2% 삼안글로벌텍
▼22.7% 삼안……
“…….”
주식 어플의 즐겨찾기 목록에 등록해둔 삼안물산과 자회사 열 곳 중 주가가 폭락하지 않은 곳이 없다.
모회사마저도 대량으로 하락하며 시가 총액이 실시간으로 증발하고 있는 상황.
삼안이라는 먹음직스러운 고기에 모여드는 공룡 기업들과 작전세력의 존재를 확신한 환인은 입가에 떠오른 작은 미소를 감추며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그 달콤한 향기를 즐겼다.
며칠 사이 회사에 일어나는 문제에 가뜩이나 두통을 앓던 대머리 과장은 앞에 놓인 사표를 보다가 자기 정수리를 짚었다.
뜨끈한 열기가 손바닥을 지진다.
“쯧.”
자신의 탈모 원인에 이 열기가 있을 거라고 속으로 중얼거린 과장은 눈앞에 서있는 환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관두겠다고?”
“예.”
“기획팀의 강 팀장 때문이라면 걱정할 것 없네. 그녀는 자네에게 무례한 짓을 해서 맞은 거라고,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으니 그 일로 자네가 책잡힐 일은 없어.”
그리 말하며 사표를 환인에게 밀어주는 과장이었지만, 예상했던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관둘 생각인가?”
회사에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회사는 제가 뼈를 묻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이 재미없습니다.
몇 가지 대답이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환인은 대답하지 않고 평소처럼 묵묵히 있는 것을 선택했다.
대머리 과장은 장승처럼 서있는 환인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사표를 집어 서랍에 구기듯이 밀어 넣었다.
고개를 홱 돌리는 게 언짢은 기색이 뚜렷하게 묻어나는 행동이다.
구차한 말을 하지 않아 다행이군. 그렇게 생각한 환인은 의례적으로 묵례를 한 뒤 몸을 돌렸고 대머리 과장은 그제야 환인의 등을 향해 들으란 듯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하여튼 요즘 애새끼들은 근성이 없어요, 근성이. 대체 부모라는 것들이 가정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책임감 없이 저따위로 행동하는지 원. 쯧쯧.”
“…….”
“뭐만 일이 있었다 하면 패배한 개새끼처럼 꼬리 말고 도망쳐서는…… 뭘 배우겠다고 나대는지 몰라. 그럴 거면 어디 노가다 판에서 막노동이나 하던가. 하여튼 못 배워먹은 것들이 말이야…….”
존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과장의 조롱에 걸음을 멈춘 환인은 냉랭해진 눈으로 과장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민두 씨.”
“뭐, 뭣?!”
상대방을 존중할 줄 모르는 자는 자신을 얕잡아보는 행동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야 이새끼야, 내가 니 친구야?! 어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른 이름을 함부로 불러!?”
커다란 모욕을 당한 것처럼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과장이 콰당, 의자가 넘어질 정도로 거칠게 일어나는 것을 무감정한 눈으로 바라보던 환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회사를 관두는 이유는 당신 때문입니다.”
“지금 뭐라고 했어! 개새끼야!!”
“인사팀 과장이면서 컴퓨터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할 만큼 멍청하지. 소심함은 쥐새끼 같고 욕심은 원숭이보다 많고. 공과 사를 구별할 줄도 모르면서 부하 사원의 성과는 자기 것으로, 자신의 실수는 부하 사원에게 덮어씌우는 버러지가 당신입니다. 그런 당신에게 뭘 배우겠습니까. 협잡질? 이간질? 아부?”
“이, 이 새끼가!”
사실을 직시한 모욕에 얼굴을 시뻘겋게 만든 채 부들부들 떨던 과장은 치밀어오르는 분을 참지 못하고 두꺼운 서류철을 잡아 환인에게 집어던졌지만.
“…….”
날아온 서류철을 가볍게 낚아챈 환인은 그대로 과장의 면상에 집어 던졌다.
철썩, 찰진 소리와 함께 얼굴에 서류철을 얻어맞은 과장이 어이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진다.
뒤집힌 쥐새끼처럼 버둥거리는 과장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며 환인이 경멸을 담아 말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쥐새끼 같은 아부와 아첨뿐이고 신입 여사원을 추행하고 그것을 무용담처럼 자랑하는 품성은 저 하수구 속에서 10년을 썩은 폐수보다 더 끔찍합니다. 타인은 존중할 줄 모르면서 자신만은 존경받길 바라는 겁니까?”
“뭐……!”
“팀 운용비 횡령도 어마어마하게 해쳐 드셨더군요. 매달 수백만 원씩 삼키다니, 위가 무섭지도 않습니까.”
수용 한도를 넘은 모욕에 버벅대던 과장은 이어진 환인의 말에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위를 황급히 둘러보니 이 소란에 모여든 사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옆 팀의 꼴 보기 싫은 과장들이 경멸의 눈을 하는 것을 본 대머리 과장이 황급히 엎지른 물을 주워 담으려 했지만…….
“아니야!! 무슨 음해를 하는 거냐! 난 횡령 같은 것은 하지 않았어!”
“알게 뭡니까. 그리고 이대로 끝내긴 섭섭하니……. 이때까지 모은 사내 성추행 증거물을 관할 경찰서에 방금 제출했습니다. 제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익 신고가 완료되었습니다, 라고 표시된 환인의 스마트폰 화면에 대머리 과장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아까부터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더라니, 그런 걸 하고 있었나?!
“……!”
당황한 대머리 과장은 환인의 스마트폰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철썩 소리가 날 정도로 자신의 손등을 쳐서 치우는 환인의 행동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46년 인생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 대머리 과장을 향해 환인은 흐릿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
“가는 길에 마지막 충고 하나 드리겠습니다. 나이 반백에 가까운 머리 까진 중년을 좋아하는 여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옆구리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 시리면 사람을 넘보지 말고 수산물 시장이나 찾아가 보십시오. 그곳이라면 당신의 시린 옆구리를 채워줄 두족류가 많을 테니까요.”
찰싹찰싹.
새빨개진 대머리 과장의 얼굴은 흡사 삶은 문어를 연상케 했다.
그런 과장의 정수리를 찰싹찰싹 가볍게 때리는 환인의 행동에 같은 팀,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이 상황을 구경하던 다른 팀 사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사방에서 억눌린 웃음소리가 나는 가운데 삶은 문어가 된 채 치욕과 분노와 두려움에 떠는 과장을 두고 환인은 속이 시원해진 것을 느끼며 몸을 돌렸다.
다 들으라는 식으로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머리 과장은 전무의 왼팔이니 소소한 성추행 정도로는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고발이 시작되고 수사가 진행되면 이번 일이 족쇄가 되어 전무와 함께 침몰하겠지.
어쩌면 꼬리 자르기를 당할 수도 있을 테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나오자 같은 팀의 선후배들이 다가와 엄지를 세우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등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형 진짜 통쾌했어요!”
“선배 진짜 끝내줬어요. 어떻게 그렇게 화끈하게 저지를 수 있으신 거에요?”
“인아. 보는 내가 다 속이 시원했지만…… 너 괜찮은 거 맞아? 이렇게 나가면 다른 회사 취직이 어려울 텐데.”
“괜찮습니다. 집에 돈은 많으니까요.”
“아…….”
“역시 돈이 있어야 지를 수 있는 거구나…….”
“회사 분위기를 보면 송별회는 없을 것 같군요. 필요할 것 같은 자료는 사내 이메일로 보내놓았으니 나중에 확인해보십시오.”
“어? 뉘앙스가 연락 당분간 못 받는다는 식인 거 같은데? 어디 멀리 가니?”
“한동안 유럽 여행을 하면서 자기 계발이나 해볼까 합니다.”
모여든 사람들이 부러움의 탄성을 지른다.
유럽 여행이래. 부럽다. 나도 학자금 대출만 아니었으면 배낭여행을 떠났을 텐데.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들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래. 네가 보내준 차트하고 자료 잘 쓸게.”
“선배님이라면 여기보다 좋은 데 취직하실 수 있을 거예요. 선배님 화이팅!”
"형, 가신데 괜찮으면 저한테도 살짝 연락 부탁할게요!”
선후배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로비로 내려온 환인은 때마침 밖에서 들어오는 강하연과 마주쳤다.
“아…….”
강하연은 환인을 보자마자 겁먹은 개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그를 지나쳤다.
도망치는 듯한 모습으로 비상구 계단을 향해 걸어가는 강하연을 바라보던 환인은 큰 감흥 없이 회사를 나왔다.
환인은 몰랐다. 아마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자신의 무표정에 억양이 없는 낮은 목소리, 거기에 더해진 협박은 담이 큰 여자라 해도 겁먹기 충분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4년을 몸담았던 회사를 나온 환인이었지만, 가슴 속에 아쉬움은 없었다.
오전 중에 사표를 낸 환인은 집에 들러 작은 여행 가방과 LA행 항공권을 챙긴 뒤 한국거래소를 방문했다.
역시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보다 커다란 대형 전광판으로 확인 하는 게 보는 맛이 난다.
……!! ……!
………!!
증권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헐레벌떡 뛰어다니며 뭐라뭐라 소리치는 것과 삼안물산과 자회사, 그리고 그와 연관된 수십 개 기업의 주가가 실시간으로 폭락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럭저럭 보람이 느껴졌다.
즐겁다거나 재미있다는 감정은 아니었다. 따지자면 성취감에 가까웠다.
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환인은 소리 없이 숨을 내뱉었다.
원래 계획은 조용히 사표를 내고 한국을 뜨는 것이었다. 시끄럽게 움직여봤자 추적받을 건수만 남길 뿐이니까.
하지만 사표를 내기 전, 몇 년간 대머리 과장에게 시달렸던 기억이 떠올라 계획보다 과하게 손을 썼지만…….
“훗.”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조롱을 외면했다면 최소 1년은 대머리 과장을 떠올릴 때마다 불쾌했겠지.
적당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해결한 환인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한잔을 즐기기 위해서 단골 바를 찾았다.
24시 종편 뉴스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삼안물산 게이트 보도를 안주 삼아 키핑해둔 양주를 마시고 있으니 중후한 인상의 바텐더가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어깨에 짊어진 짐을 내려놓은 듯이 후련해 보이는군요.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봅니다.”
“그렇게 보였습니까?”
“평소와 다르게 작은 미소를 띠고 계셨으니까요.”
친분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통성명 정도는 한 바텐더의 화두에 환인은 입가를 매만지다가 미소를 감추지 않고 끄덕였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오는 길입니다. 그래서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러셨군요.”
바텐더도 작게 웃음 지어 보인 후 환인의 앞에 짙은 분홍색 액체가 채워진 글라스를 밀어주었다.
“새로운 시작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며, 제가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선물은 생각보다 달콤했다. 덕분에 계획보다 술을 약간 더 마셔버린 환인이었다.
그래봤자 2잔이 추가된 정도.
하지만 잠시 후 비행기에 타야 하는 만큼 멀쩡한 정신으로 있고 싶던 환인은 근처 편의점에 이온 음료와 초콜릿을 사서 나왔다.
‘공항 리무진은…… 반대편 블록인가.’
스마트폰으로 공항 리무진 승차장 위치를 확인한 환인은 빌딩 사이 골목으로 들어서며 초콜릿을 먼저 씹어먹고 이온 음료를 꿀꺽꿀꺽 마신다.
그때 골목 한복판에 기묘한 빛이 번뜩이는 것을 목격했다.
“……?”
유리 조각에 햇빛이 반사된 것도 아니었고 스마트폰의 불빛 같은 것도 아니었다.
뭔가…… 북극의 북극광처럼 일렁인 듯한 느낌.
뭔가 싶어 걸음을 옮기던 환인은 그 반짝임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의아함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가 실수로 흘렸나?
발자국으로 인해 거무튀튀하게 변색한 시멘트 바닥, 거기에 떨어져 있던 샛노란 금화 한 장을 바라보던 환인은 가방을 내려놓고 허리를 숙여 금화를 집었다.
금화는 동그란 원형이 아니라 여기저기 조금 마모되고 울퉁불퉁해진, 생활감이 가득 느껴지는 형태였다.
앞면에는 이상한 동물의 머리가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생전 처음 보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알파벳은 당연히 아니고 아랍어, 베트남어, 인도어, 무엇하고도 닮지 않았다.
‘장난감인가.’
감촉이 꽤 사실적이지만 설마 진짜 금화일까싶은 순간 코끝으로 싱그러운 향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어둑어둑하고 퀴퀴한 빌딩 사이 뒷골목의 냄새가 아니라 깊은 산 속의 싱그러운 냄새다.
“……?”
고개를 들었을 때 환인의 사고는 일시적으로 멈추었다.
아파트만큼 높이, 그리고 빼곡하게 자란 굵은 삼나무.
아래에는 눅눅하고 축축한 낙엽 더미가 깔려있고 도시에서는 좀처럼 맡기 힘든 비린 흙냄새가 올라온다.
우엉─ 우어어엉─
짐승인지 새인지 모를 울음소리가 어두침침한 숲을 꿰뚫었다.
환인은 뒤늦게 자신이 숲의 한복판에 서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