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053+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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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썩─
칸막이로 워크룸과 나뉘어 복도라고 하기도 어려운 길목. 작지 않은 따귀 소리와 함께 명품 오피스 룩의 여자가 비틀거리다 풀썩 주저앉았다.
벽에 붙어 지나가던 여사원들이, 칸막이 너머에서 자기 업무를 보던 남사원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여자의 따귀를 올려붙인 남자를 쳐다본다.
뺨을 맞았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지 주저앉아 날카로운 핏감의 회색 정장 남자를 올려다보는 여자.
그런 여자를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남자.
“방금…… 여자를 때린 거야?”
“허우대는 멀쩡해갖고 미친 거 아냐 저 사람?”
“누구야?”
“인사 1팀의 환인 같은데…….”
“무슨 일이지?”
여자를 쳐다보기만 해도 시선 강간이니 성추행이니 말 많은 이 시대에 남자가 여자를 때리다니, 어쩌려고 저러냐는 수군거림이 칸막이 넘어 남자 사원들 사이에서 퍼져나간다.
반대로 여자들은 어떻게 저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이어서 어떤 수라장이 벌어질지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지켜볼 뿐이다.
“…….”
그러나 여자들이 바라는 아수라장은 벌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무감정한 눈으로 주저앉은 여자를 잠시 바라보다 몸을 돌려 사라졌고, 얼이 빠진 것처럼 맞은 뺨을 감싼 채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여자는 시뻘겋게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뭘 봐요?! 당장 눈 돌리지 못해요!?”
주위를 둘러보며 살기가 깃든 눈으로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명백히 뒷배가 있지 않은 이상 할 수 없는 행동에 눈치 빠른 사람은 잽싸게 그 자리를 벗어났고 눈치 없는 사람은 옆 사람에 의해 칸막이 아래로 머리가 숙여졌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예쁜 얼굴에 맞지 않게 씨근덕대던 여자는 이를 갈며 사라졌다. 그 기세가 얼마나 흉흉했던지 칸막이 아래에 숨어있던 남자 사원들이 침을 꼴깍 삼킬 지경이었다.
칸막이 너머의 사원들은 여자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뺨 맞은 그 여자, 강 부사장님 딸 맞지? 기획실의…….”
“어. 일은 잘하는데 성격이 대박이라더니, 레알이었네.”
“어쩌다 남자한테 뺨 맞은 거야?”
“아니 그보다 뺨 때린 남잔 누군데? 아는 사람 없어?”
“저 알아요. 인사 1팀의 환인 대리예요.”
“아, 그…… 뭘 생각하는지 모를 친구?”
“그 사람 엄청 무뚝뚝한 사람이라던데.”
“무표정하고 말수가 적을 뿐이지 성격은 멀쩡하다고 하더라구요.”
“어어, 나도 생각난다. 남한테 피해 주는 일도 없고 업무도 똑 부러지게 잘하는데 사람하고 잘 못 어울린다고 과장님들이 이야기하는 거 들었어.”
“그런 사람이 왜 강 부사장님의 딸한테 따귀를 올려붙인 거죠?”
“그러게.”
“왤까.”
“크흠!”
과장이 곱지 못한 눈으로 노려보며 크흠, 헛기침하자 그 시선에 자라목이 된 사원들이 황급히 흩어지며 오후 2시의 작은 소란은 끝을 맺는 듯했다.
“후우우…….”
“…….”
“야, 인아.”
“예.”
“대체 왜 그랬냐. 하필이면 그 강 부사장의 딸을…….”
“…….”
옥상에서 난간에 팔을 걸친 채 한숨을 내쉬던 사수는 장승처럼 묵묵히 서있는 환인을 보며 재차 물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라. 이유를 말해야 어떻게 카바라도 칠 거 아냐.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떡하라고. 응?”
“…….”
“하이고…….”
답답함을 토로하던 사수는 구겨진 담뱃갑에서 마지막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의 심정을 대변하듯 담뱃대가 빠르게 타들어 간다.
말없이 담배를 피우던 사수는 이윽고 필터만 남은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문질러 끄며 말했다.
“니가 애먼 폭력을 행사할 애가 아니라는 건 내가 잘 알아. 아마도 그 여자가 너한테 뭔가 구린 짓거리를 했거나 하려 한 거겠지.”
“…….”
“그 미친녀…… 큼큼. 그 여자 성격이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강 부장님이 움직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저쪽 라인이 움직이면 우리 쪽 최 전무님이 나서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질 텐데 아무리 우리가 최 전무님 라인이라지만…….”
말을 길게 늘였지만 요약하면 `널 지켜줄 수 없다`라는 뜻이었다.
결국 사내 파워게임의 희생양이 되기 전에 알아서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라는 이야기에 환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수의 반응을 통해 책임자라 할 수 있는 대머리 과장이 나설 생각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인은 사수의 개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자신을 지킬 수단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야기한 원흉은 이름만 대면 10명 중 4명은 알법한 재계 149위 삼안 물산의 부사장, 그런 부친의 휘광으로 기획실에 낙하산 입사한 강하연이라는 여자였다.
강하연을 표현하라면 단어 하나로 가능했다.
인간 말종.
사회 최상류층은 아니더라도 상류층으로 부족함 없이 하고 싶은 것, 해볼 만한 것은 다 해보며 안하무인으로 자란 인간 말종.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였고 싫은 소리를 들으면 그 자리에서 뺨을 올려붙여야 속이 풀리는 여자였다.
남녀에게 인정받는 수려한 외모와 똑똑한 머리로 영악을 넘어 사악하게 행동하며 법망을 피해 범죄의 영역마저도 종종 넘나드는 여자.
그런 여자는 입사 후 타고난 재능 및 빽을 발휘해 짧은 기간에 기획실을 장악, 실세가 되었고 딸의 수완에 만족한 강 부장은 딸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근래에 박 부장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나는 그쪽을 감시하느라 바쁘니 네가 중립파인 최 전무 라인을 감시해줘야겠다.”
“수단은 제가 알아서 고르면 되는 거예요?”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만 일을 크게 저지르지는 말거라. 최 전무가 박 부장에게 붙어도 큰 위협은 되지 않지만…….”
“매우 귀찮아지니까, 맞죠?”
“그래.”
부친에게 지시받는 순간 영악한 머리로 적당한 시나리오를 꾸민 강하연은 가장 먼저 인사1팀의 목각인형으로 불리는 환인을 떠올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취향은 과묵한 미남. 입사 후 사내에서 오가다 몇 번 본 환인은 그녀의 취향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남자였다.
더욱이 단 몇 달이지만 동기들보다 한발 앞서 대리를 달 정도의 업무 능력에 목각인형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과묵한 성격. 허니 트랩에 빠트린다면 자신의 훌륭한 눈과 귀가 되어줄 것이 틀림없다.
그를 이용한다면 아빠도 만족할만한 성과를 낼 수 있겠지.
아빠의 체면 때문에 얌전히 지내고 있었지만, 언제고 손에 넣겠다고 다짐하고 있던 차였는데 이런 식으로 판이 마련되다니.
강하연은 입매에 요사한 미소를 띄우며 설레여했다.
허니 트랩은 그녀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특기다.
현 사회 분위기는 여자에게 매우 유리하게 조성되어있었다.
가부장제의 타고난 피해자.
남성 우월주의 사회의 희생자.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만능의 단어 덕분에 여자는 상대적 약자로서 우대받는 게 당연하다는 풍조가 널리 퍼져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할 경우, 특히 성적인 부분에서는 일관된 진술만으로도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둔갑시킬 수 있는 것이 여자의 힘이다.
그녀는 대학을 포함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방식으로 몇 명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경험도 있었다.
‘남자는 단순해. 협박과 회유를 번갈아 하면서 당근을 살살 흔들면 넘어오지 않는 남자는 없지.’
강하연은 샤워를 하면서 전신 거울에 비치는 군살 없는 매력적인 육체를 매만졌다.
가슴은 두 손으로 잡기에도 모자랄 만큼 컸고 허리는 남자의 팔에 쏙 들어갈 만큼 잘록했으며 허리에서 이어지는 골반과 힙의 라인은 조각상처럼 예술적이다.
톱모델 출신인 모친의 피를 강하게 이어받아 서구적인 육체에 요가와 필라테스로 가꿔진 자신의 몸, 그리고 사회적 신분과 자신의 뛰어난 외모면 허니 트랩의 성공률은 100%를 넘어 200%에 도달하게 된다.
중학교부터 시작해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자기 손에 우롱당한 남자가 몇이던가.
학부생 시절 총학생회장과 학과장을 동시에 노예로 만들어서 놀았던 기억을 떠올렸더니 강하연은 아랫배에서 미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잘 손질된 음모를 한차례 쓸어본 강하연은 오싹거리는 느낌에 잘게 떠는 한숨을 내쉬며 검지로 음핵이 있는 곳을 꾹 눌렀다.
찌릿한 감각이 하체에 퍼지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유두가 바짝 서는 감각이 합쳐지며 가벼운 흥분이 이어진다.
그러다 갑작스레 입매를 비틀었다.
여러 남자를 가지고 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만하게 계획을 꾸미고 실행에 옮긴 강하연이었지만, 상황은 그녀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부친의 명령을 받은 뒤 우선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우연을 빙자한 접근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은밀하지만 노골적인 유혹을 했으나 환인에게는 통하지 않은 것이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나가 헬렐레하던 실수를 가장한 신체 접촉에도 환인은 나무토막이 닿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어깨를 잡고 살짝 밀어냈다.
누가 보아도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몸짓과 자그마한 쪽지를 붙인 음료수 같은 선물 공세에도 환인은 바람결에 나뭇잎이 날아온 것처럼 대수롭지 않은 듯이 치웠다.
그래서 강하연은 자존심이 상했다.
‘감히 날 거부해? 네까짓 게 뭔데!’
미리 조사해두었기에 환인의 신상 명세는 잘 알고 있었다.
양친은 교통사고로 사망. 형제자매는 없으며 친인척과 사이는 나쁘다.
여자친구는 없으며 자주 만나는 친구도 없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지도 않는다.
일주일에 1~2번, 퇴근 후 단골 바에 들리며 한 달에 한 번 부시 크래프트라는 취미활동을 위해 산을 찾는 심심하기 짝이 없는 성격.
가족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다. 사나흘이면 그런 환인을 치마폭에 감쌀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강하연이었지만, 2주가 넘도록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서서히 조급증과 함께 자존심이 상하고 있었다.
목표에는 환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2순위와 3순위도 있으니 그쪽을 공략해도 될 일이지만,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는 남자가 있다는 게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좋게 말로 해서 안 되면 채찍을 드는 수밖에.’
자신의 유혹을 거부하는 환인에게 짜증과 분노를 함께 느끼며 본래의 표독한 성격을 드러내는 강하연이었다.
다음 날.
사람이 잘 왕래하지 않는 복도 끝의 회의실로 환인을 불러낸 강하연은 본래의 성격을 드러내며 자신의 명령에 따를 것을 종용했다.
거절하면 사회생활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이슈를 퍼트릴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
“보이죠? 이것이 이슈가 되면 당신은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거예요. 알잖아요? 지금 사회는 여자에게 매우 관대하다는 걸요.”
“…….”
강하연의 손에서 흔들리고 있는 몇 장의 사진에는 누가 보아도 환인이 강하연을 추행하는 듯한 모습이 담겨있었다.
실상은 반대였다. 강하연이 우연을 가장한 신체 접촉을 할 때 보험 삼아 찍어둔 조작이지만 조작이 아닌 사진.
절묘한 구도와 각도로 전문가가 보더라도 강하연이 피해자처럼 보이는 사진이었다.
강하연은 묵묵히 자기 손에 들린 사진을 응시하고 있는 환인을 보며 자궁을 찌르는듯한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자신의 손짓 한 번으로 상대를 사회적 죽음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상대방의 목줄을 움켜쥐고 있지만 상대는 반항조차 하지 못한다는 절대적인 우월감에서 오는 희열.
환인이 여기서 자신을 윽박지르며 무력을 사용해도 괜찮다.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비상사태를 대비한 조치도 취해놓았으니 자신에게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고, 환인이 자신에게 주먹을 휘둘렀다는 사실은 더더욱 확실한 올가미가 되어줄 테니까.
반대로 굴복해도 나쁘지 않다. 장승처럼 꼿꼿한 남자를 무릎 꿇려 바닥을 기게 만드는 것도 그녀의 취향이었으니 말이다.
강하연은 환인이 보일 몇 가지 행동을 예측했고 그로 인해 벌어질 사건에서 자신, 나아가 부친이 얻을 이득을 계산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환인은 그녀의 예상을 빗나가는 행동을 선택했다.
“어, 어딜 가는 거죠?!”
강하연을 무시하고 회의실을 나가버린 것이다.
환인이 도망가는 것으로 판단한 강하연은 그를 쫓아가 뒤에서 어깨를 잡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었지만 그런 사소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잡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어머, 탄탄하잖아? 근육이 잘 잡혀있…….’ 까지 생각한 순간.
철썩─
눈앞에 불꽃이 튀며 정신이 아득해졌고, 잠시 후 정신을 차렸을 땐 주저앉아 환인의 무감정한 눈을 올려다보고 있는 자신을 알 수 있었다.
“……고소를 당할 수 있는 데다 최악에는 해고까지 당하는 건 물론이고 이 바닥에 발붙이고 살 수도 없게 된다고. 강 부장한테는 그럴만한 힘이 있어. 야, 듣고 있냐?”
사수의 쓸데라고는 없는, 걱정이라기보단 얼른 가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협박에 가까운 개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던 환인은 몸을 돌려 사수에게서 멀어졌다.
강하연과 강 부장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그 여자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행동해야 한다.
“와, 저게 미쳤나. 내가 말하고 있는데…… 인마, 너 어디 가는 거야!? 당장 이리 안 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대머리 과장에게 알랑거리는 것뿐인 사수다.
더욱이 자기 보신에만 집착하며 박쥐처럼 두 부장과 최 전무 라인을 오가며 간 보는 대머리 과장이 자신을 보호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환인이었다.
선천적으로 인성에 문제 있는 자신이 사회에 동화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하신 부모님의 유언.
그것을 지키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처럼 행동하며 회사에 다녔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라고 생각한 환인은 뒤에서 욕지거리를 내뱉는 사수를 뒤로하고 회사를 나왔다.
어차피 퇴근 시간이 넘은 상황.
“…….”
정문을 나와 어둠에 물들어가는 사옥을 올려다본 환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환인의 부모님은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살아서는 안 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어린 시절의 환인에게 눈높이식 교육을 했었다.
어렸을 때는 잘 모르겠지만 부모님의 말씀이 바르다고 느꼈기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단 자신이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 남들처럼 행동을 해왔다.
영특하고 눈치가 빠른 환인에게 주변 또래의 행동을 보고 흉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기에 부모님의 조력이 있으니 조금 특이한 아이라는 평가를 받을지언정 정신 쪽에 문제가 있다는 시선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런 환인의 사고가 한층 개화하며 좀 더 넓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중학생 시절 위키백과 사이트를 이용하다 사이코패스 항목을 보았을 때였다.
다음날 도서관을 찾아 하루를 꼬박 관련 서적 탐독으로 보낸 환인은 어느 사이코패스 진단 사이트를 찾았다.
백 가지가 넘는 항목을 환인은 세심하게 작성해 나간 환인은 결과물로 결코 낮지 않은 사이코패스 수치를 받았고, 부모님이 대단하다는 결론을 이성적으로 내렸다.
비정상이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겉보기에는 일반인과 다를 것 없이 키워내셨으니까.
“…….”
아무튼, 그런 성장 과정으로 인해 상대가 기준 이상의 위협을 해오지 않는 이상 환인도 지켜만 본다.
하지만 위협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평소 여러 방법으로 자신과 인맥이 맺어진 사람의 정보를 수집하고 상대의 약점을 파악해 묻어버리기 위한 사회적 칼날을 벼려놨다가, 그러한 일이 발생하면 망설임 없이 찔러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 자신이 했다는 흔적은 일절 남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환인의 대응은 필연적으로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
그간 몇 번 칼날을 휘두른 적이 있었던 환인이었기에 칼을 휘두른다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이지만…… 표현하자면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끼쳐올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는 쪽은 어땠을까, 하고.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지금 든 의문에 어떤 답을 주셨을까.
언제나 따스하게 안아주시던 어머니는 어떤 말을 해주셨을까.
환인은 돌아가신 부모님이 오늘따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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