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045 비취 호수
* * *
보퉁이가 무거운지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류히와 에프니스의 짐을 뺏어 들고 달리던 환인은 유인원들의 포효를 들을 수 있었다.
쿠워어어어억……!!
우워워워워……!!
숲에서 들려오는 포효 소리. 생각보다 더 빨리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 환인이 소리쳤다.
“만약 상황이 위험해지면 전 신경 쓰지 말고 호수로 뛰어드십시오! 땅물개들이 지켜줄 겁니다!”
=으, 은인님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대답이 정해진 질문에 환인은 대답하지 않고 달리면서 왼편의 숲과 뒤쪽을 연신 살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비상식량의 고개가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가는 중이다. 저게 적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는듯한 모습에 버럭 소리쳤다.
“비상식량! 적이다! 숫자는?!”
꽤, 꽥? 꽤액! 꽥꽥꽥꽥!!
비상식량이 한 번 울면 한 마리. 두 번 울면 두 마리에서 네 마리 이하, 세 번 울면 네 마리 이상, 연달아 계속 울면 적이 많다는 뜻이다.
계속해서 울어대는 소리에 쯧, 혀를 찬 순간.
쿠워어어억!!
놀라운 도약력으로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 위에서 뛰쳐나오는 유인원을 목격했다.
빠르다. 거기다 착지 지점이 이쪽을 노리고 있다. 말도 안 되게 정확하다.
즉시 팔을 뻗어 뒤에서 바짝 쫓아오던 류히와 에프니스를 호수로 홱 집어 던지는 동시에 영혼 폭발을 유인원에게 날린다.
=꺄아아……!=
=…아아앗…!=
뻥!
여자들의 비명과 폭발음이 뒤섞이는 순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던 유인원이 폭발의 압력에 밀려 땅에 처박혔다.
=엄마야!=
=히익.=
뒤에서 후이니와 엔넬이 풍덩 첨벙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들으며 창을 빼내든 환인은 머리를 세차게 흔드는 유인원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심장을 찌르려는 순간.
“……!”
쒸이이익
날카로운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드는 것을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했다.
‘투척용 나무창.’
날아드는 물체를 파악한 환인은 자빠진 채 머리를 흔들며 탁탁 두드리는 유인원의 목을 비스듬히 쳐날 리는 동시에 날아든 나무창도 튕겨낸다.
단 한 번의 베기로 곡예에 가까운 공격을 성공시켰지만, 환인은 아무런 감흥 없이 자세를 고쳐잡는다.
파사사사삭
쿠와아악!!
쿼어엇!
또다시 나뭇가지가 크게 흔들리며 이번에는 네 마리가 동시에 뛰쳐나왔다.
목표는 환인.
점프 어택으로 짓뭉개려는 게 목적인 듯, 털을 곤두세우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날아드는 모습에 뒤에서 여자들이 힉, 비명을 질렀지만, 환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각각의 주둥이에 영혼 구슬을 날려 넣었다.
그리고 폭발.
퍼버버벙, 유인원들의 머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무형의 폭발에 유인원들이 빙글빙글 돌며 퍼버벅, 땅에 충돌한다.
끄억, 꾸어어 신음을 흘리며 흐느적거리는 유인원들의 눈, 코, 입, 귀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타격으로 인한 뇌진탕에 걸린 것처럼 비틀거리는 네 마리의 뒤에서 또다시 나무창이 날아드는 것을 목격한 환인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창을 빠르게 휘둘렀다.
타다다닥!
숲에서 날아온 일곱, 여덟 개의 나무창이 환인의 창질에 우수수 떨어진다.
웤! 웤! 웤! 웤! 웤!
그러는 사이 숲에서 워크라이를 지르며 유인원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숫자만 어림잡아 스무 마리.
유인원 주제에 인간들처럼 돌격해오는 것을 목격한 환인은 가장 처음 죽은 유인원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동시에 늙은 유인원의 영혼 구슬로 강령을 펼쳤다.
최하급 영혼이 훅 빠져나가며 심장이 크게, 그리고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체온이 거침없이 올라가는 걸 느끼며 힘과 순발력이 크게 상승한 것을 확인한 환인은 무스 세 마리, 곰과 늑대 한 마리의 영혼(전부 하급)을 아낌없이 달려오는 유인원들에게 뿌렸다.
꽈과광, 콰쾅!!
영혼 폭발에 정통으로 휘말린 아홉 마리가 벌렁 자빠지고 간접 영향권에 걸친 세 마리가 비틀거린다.
그 틈에 환인은 땅에 떨어진 나무창을 집어 여전히 달려오고 있는 놈들을 향해 무차별로 투척하기 시작했다.
쐣 쐐애애액!!
토막 난 것, 부러진 것 가리지 않고 연달아 5개를 던져 녹색 유인원을 맞추자 꾸웩, 끄억 비명을 지르며 몸에 돋아난 나무창을 쥐고 땅을 구른다.
그러자 숲에서 다시 나무창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텀을 두고 쉬지 않고 계속 날아온다.
투척을 중단한 환인은 그런 나무창을 일일이 쳐내면서 뒤로 물러섰다.
‘똑똑하군. 투척으로 적의 행동을 지연시키면서 동료가 돌격할 시간을 만들어주다니. 이 정도면 일 대 다수를 상대로 한 전술 개념이 수립되어있다고 봐야 한다.’
머리에 최하급 영혼 폭발을 먹어 뇌진탕을 일으켰던 네 마리도 그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영혼 폭발에 맞고 뒹굴었던 놈들도 재차 달리기 시작했고 나무창에 꽂힌 놈들도 흉성을 터트리며 나무창을 부러트리고 달려든다.
약 24마리의 유인원과 남은 거리는 고작 10여 미터 남짓.
일촉즉발의 상황에 호수에 빠져있던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려 한 순간…….
‘왔군.’
퓨퓨퓨퓨퓨퓨퓻
작고 짧은 파공성과 함께 물화살이 유인원들을 향해 말 그대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웍!?
우어억!!
쿠워어어!
비처럼 쏟아지는 물화살에 스무 마리의 유인원들이 선혈을 뿌리며 나동그라진다.
호수 쪽을 곁눈질하자 10마리가 넘는 땅물개들이 유인원 집단을 향해 물화살을 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친구들을 불러오느라 늦은 건가.’
이 상황을 기다렸던 환인은 즉시 앞으로 튀어 나가며 갈 지之자 주행으로 날아오는 나무창을 회피, 가장 가까운 네 마리에게 접근해 창을 휘둘렀다.
아직 뇌진탕이 다 낫지 않았는지 유인원 4마리는 환인의 직감과 근력, 반사신경으로 이루어진 창질을 막아내지 못하고 목과 복부를 크게 베여 쓰러진다.
두 팔로 가드를 올린 유인원도 있었지만.
쫘악!
꾸웨에엑!!
중하급 강령 효과로 힘이 30% 넘게 상승한 베기에 팔뚝이 뼈째로 잘려 나갔다.
여섯 번의 섬광이 펼쳐지고 네 개의 사체가 생겨났을 때였다.
쿠어어어!!
“오.”
환인은 물화살 세례를 받고 있던 유인원 중 두 마리의 행동에 작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상처에서 피를 뿜어내면서도 동족의 시체를 방패 삼아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너만은 죽이겠다는 결사의 각오가 느껴지는 돌진이다.
쉬쉬쉭…….
그즈음 숲에서 날아오는 나무창도 위협적이지 않게 되었다.
미리 깎아둔 나무창이 바닥났는지 나무창 대신 나뭇가지가 덕지덕지 난 나무작대기가 날아오고 있었던 거다.
저항을 심하게 받는 나무작대기는 절반도 채 날아오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거나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숲 쪽을 경계하며 발치의 유인원 사체를 돌진 중인 두 마리 중 하나에게 걷어찼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며 수십 킬로그램의 고깃덩어리가 축구공처럼 날아가 부딪친다.
쾅!
꾸억?!
날아온 동족 시체에 부딪친 유인원이 볼링핀처럼 땅을 뒹군다.
쿠와악!
그 공격에서 배운 걸까. 남은 한 마리는 고릴라만큼이나 강한 근력으로 들고 있던 동족의 시체를 환인에게 힘껏 집어던졌다.
그리고 치타만큼이나 빠른 달리기로 그 뒤에 숨어서 환인에게 돌진한다.
각도상 환인은 돌진해오는 유인원을 볼 수 없는 상태.
=위험해요……!=
=조심하세요……!!=
사체가 지척에 도달했을 때, 환인은 몸을 비스듬히 비틀며 창을 전력으로 휘둘렀다.
“흐아압!!”
바우웅!
창대가 무섭게 휘어지며 약 1.1m 길이의 창날이 깔끔한 초승달 빛을 뿌린다.
끄…….
그 죽음의 빛에 사체와 함께 허리가 베인 유인원은 절반 넘게 잘린 옆구리에서 내장을 토해내며 동족의 시체와 함께 모래밭을 뒹굴었다.
‘좋군.’
이런 철제 냉병기는 같은 철제 방어구로 막지 않는 이상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괴물이 서식하는 미친 세계인만큼 거죽이 철보다 단단하거나 철로도 베기 어려울 만큼 질긴 가죽도 존재할 수 있겠지.
하지만 물화살에 꿰뚫리는 거죽으로는 철제 무기의 예리함을 막지 못한다.
우어어억!
척추까지 베여 허우적거리는 유인원의 목을 창날로 찍어 죽이는 사이 동족의 시체를 걷어차며 일어난 유인원이 격노와 함께 두 팔을 벌리고 환인을 덮쳤다.
유인원과 환인의 그림자가 겹치는 순간 직각으로 치솟은 은빛 섬광.
사타구니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뼈째 잘려 나간 유인원은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류히에게 이 매듭법을 배워야겠군.”
척추를 몇 번이나 끊고 두개골마저 반으로 쪼갰는데도 창대와 날의 결합부가 헐거워질 기미가 없다.
단검의 날을 풀 끈으로 엉성하게 묶은 흑창 1.0버전은 견고함에 자신이 없어 찌르기 위주로만 싸웠다.
찌르기만 해도 점차 결합이 헐거워져서 자주 조여주었었는데 결국에는 끈이 끊어지며 날붙이도 분실했다.
하지만 류히가 묶어준 흑창 2.0은 유인원의 두개골까지 베어내고도 헐거워진 느낌이 없다.
짧은 틈을 타 창을 점검한 뒤 모래밭에 나뒹구는 나무창을 집어 든 환인은 아직 살아남아 동족의 시체로 겨우겨우 물화살을 막고 있는 유인원을 향해 힘껏 던졌다.
충분한 힘이 받쳐주고 돌도끼 투척 훈련 경험이 있어 투창은 어렵지 않았다.
쐐애액!
컥!
쐑!
끄어……!
물화살에 전신이 구멍투성이가 된 유인원들은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 나무창을 피하지 못해 하나씩 숨이 끊어진다.
옆구리나 맞은 자리가 나쁘지 않아 살아있어도 쏟아지는 물화살 세례에 금방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모래밭에 26개의 유인원 사체가 발생했을 때 숲에서도 더 이상 나무작대기가 날아들지 않았다.
‘자신들이 던진 나무창에 의해 수컷이 죽어 나가는 걸 보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군.’
숲에서 나무창만 던져댄 것들은 암컷이라고 짐작하는 환인이었다. 그도 그럴 게 죽은 유인원들은 죄다 사타구니에 수컷 성기가 달려있었으니까.
유인원들이 다 죽자 여자들이 물에서 나와 환인에게 달려간다.
=은인님~!=
=은, 은인님! 괜찮으세요?!=
“다친 곳은 없습니다. 그보다 여러분들이 문제군요.”
여자들의 입술은 파랗게 질려있었고 피부도, 안색도 창백하다.
몸을 움츠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을 보면 가뜩이나 기온이 낮은 장소인데 호수에 빠져있던 터라 체온을 다 빼앗긴 모습이다.
통상적으로는 불을 피워 체온을 올리는 게 정답이지만, 혹시나 해 근처의 옅은 푸른색 정령을 모아 여자들에게 강령을 펼쳐주었더니 혈색이 금방 원래대로 돌아온다.
=하아아…….=
=아… 살거 같애…….=
‘사막처럼 더운 곳에서는 강령을 쓰기 어렵겠군.’
꿩! 꿩꿩!
그때 근처까지 다가와 기쁜 듯이 꿩꿩거리는 땅물개들을 본 환인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놈들이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아무 문제 없이 호수를 통과했을 텐데.
유인원의 시체를 모두 모아 땅물개들에게 준 환인은 여자들을 채근했다.
“빨리 여길 벗어나야겠습니다. 이동합시다.”
수컷들은 돌격하고 암컷들은 숲에서 투창 공격을 해왔다.
처음에는 늙은 유인원이 무리의 리더라고 생각했는데, 그 유인원이 죽었는데도 일사불란한 행동을 한 것을 보면 틀림없이 무리를 다스리는 대장급이 따로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치 않은 가설도 있는데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더욱 위험해진다.
열셋 정도 되는 땅물개들 중 여덟이 죽은 유인원의 사체를 물고 호수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류히와 에프니스가 짊어지던 보퉁이를 들쳐메자 두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보퉁이에 매달린다.
=앗! 저, 저희가 들게요!=
“이동 속도를 높여야 하니 제가 들겠습니다. 갑시다.”
이리저리 서성이는 스물여섯의 유인원 영혼 중 12개를 회수해 구슬로 만든 환인은 나머지 열넷 중 다섯을 불러들여 모두에게 강령을 펼쳤다.
힘과 순발력을 많이 올려주는 효과라서 그럴까, 다들 이동 속도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단거리 육상 메달리스트처럼 빠르게 이동을 시작하자 땅물개 다섯 마리가 따라붙었다.
‘다행이군.’
적어도 호숫가에서는 옆을 지켜줄 생각으로 보인다.
어디까지 따라올지 의문이긴 하지만 이곳을 벗어나는 데 도움은 될 것이다.
그렇게 여자들과 함께 달려 나가던 환인은 문득 호수 가장자리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쫓아오는 땅물개들의 색계통이 눈에 들어왔다.
‘……유인원의 색계통은 땅물개들과 완전히 다른데 먹이로 삼는 건가.’
땅물개들의 색계통은 황색, 하지만 유인원들의 색계통은 벽색이다.
독이나 질병, 환각을 일으키는 적색, 황색, 자색계통에 비하면 청록색계는 두드러지는 나쁜 효과 없이 무난한 편이다.
‘청록색계는 타색계통에 좋은 먹잇감일 수도 있겠군.’
애초에 야생 동물의 수명은 몇몇 파충류를 제외하곤 극단적으로 짧은 편이다. 가혹한 생존환경에 양질의 먹이를 꾸준히 섭취하지 못해 수명이 짧아지는 거다.
길고양이와 집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4~5배 정도 차이 나는 게 그 대표적인 사례.
적당히 몸에 나쁘더라도 있을 때 먹어둬야 하는 야생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
아니면 독이 있는 먹이를 먹고 몸 안의 독샘에서 독을 만들어내던가.
땅물개의 발톱에는 독이 흐르고 있었으니 가설이 맞아떨어질 확률은 높다.
“…….”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환인은 기분 좋은 듯이 헤엄치고 있는 땅물개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설마 대량의 식량 겸 독의 확보를 위해 자신을 이용한 건가?
‘아니겠지.’
정말 교활했다면 자신에게 진주색 돌멩이를 주지도 않았을 거다.
환인은 몇 가지 사실을 토대로 근거 없는 가설이라고 판단하고 생각을 접었다.
강의 위치는 비상식량의 정찰로 대강 알고 있었기에 환인은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여자들을 앞세우고 뛰어가며 지나가는 정령이 보일 때마다 불러들여서 여자들에게 끊임없이 강령을 펼친다.
비상식량에게 감시를 전부 맡기지 않고 주기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유인원이 쫓아오는지도 확인한다.
그렇게 호수를 끼고 쉼 없이 달린 지 2시간가량.
덕분에 시야를 가리는 산의 가장자리를 건넌 일행은 흰 모자를 쓴 검은 산 사이로 두 갈래의 강이 Y자 형태를 만들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헉, 헉. 강이 갈라지네…….=
=후우. 언니, 더 기억난 것은 없어요?=
=으응. 미안해.=
=아니에요. 우리는 아예 아무것도 기억 못 하고 있는데요 뭐.=
“다들 조용히. 후이니, 특이한 소리가 들리진 않습니까?”
환인의 질문에 다른 여자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던 후이니는 두 손을 펼쳐 머리 위의 늑대 귀 뒤쪽에 대고 눈을 감는다.
=…….=
귀를 쫑긋 세우고 음향 탐지기처럼 숲 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리던 후이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숲 쪽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해요. 근데 이게 약탈자들이 움직이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어요.=
“…….”
선택의 시간이다.
왼쪽 강은 평평한 땅에 좌우로 숲이 이어지는 강, 약간 오르막이 있어 비취색 호수로 물이 흘러들어오는 강이다.
오른쪽 강은 지대가 좀 더 높아지며 오른쪽으로 크게 꺾어지는 강. 마찬가지로 상류에서 흘러 내려오는 강이다.
둘 다 비취 호수로 흘러들어오는 강이지만 높이가 다르다.
시선을 돌린 환인은 두 강이 만나는 지점,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있는 검은 산봉우리를 쳐다보았다.
호수 북쪽을 차지하고 있는 능선 중에서 높은 편인 봉우리.
표고는 높은 편이 아니다. 대강 눈대중으로 200m 정도.
안개 같은 구름이 산중턱 위쪽을 가리고 있지만, 검은 흙과 회색 바위 등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거기까지만이라도 올라가면 근방을 한 번에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마을로 돌아가는 이정표인 노란 머리 산을 찾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군.’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누가 노리고 있는 것처럼 뒤통수가 찌릿찌릿하다. 이럴 땐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좋다.
=저, 은인님.=
“말씀하십시오.”
=씨코터가 도와주니까 여기서 숲의 약탈자들을 상대하는 게 낮지 않을까요……? 이미 스물여섯 마리나 죽였고, 또 숲으로 들어가면 약탈자들이 쉽게 추적해올 수 있으니까…….=
환인은 조심스레 의견을 내는 에프니스에게 고개를 저었다.
“집단은 무리에서 특출난 개체가 다스리는 법입니다. 그리고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특이 개체 중에서도 강한 개체가 나올 수 있죠. 호브 마을의 대검 괴물 같은 놈 말입니다.”
=아…….=
“유인원들 사이에도 그런 개체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유인원은 기본 스펙이 높은 만큼 변이, 특이 개체는 대검 괴물과 비교할 수 없겠죠.”
호수 쪽을 보자 유인원의 시체를 다 날랐는지 다시 열셋으로 불어난 땅물개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유인원들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공격해온 것을 보면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존재하는 건 확실합니다. 또한 땅물개들이 우리를 도와줬다고 해도, 목숨 걸고 싸워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논리 있는 설명에(직접 당한 것이 있으니까) 이해한 여자들의 눈빛이 맑아진다.
“이 경우에는 빨리 유인원의 영역을 벗어나는 쪽이 나을 겁니다. 왼쪽으로 가겠습니다.”
여자들은 이유도 묻지 않고 곧바로 환인이 가리킨 쪽으로 움직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