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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44화 (44/813)

〈 44화 〉 043 비취 호수

* * *

강을 따라 12시간, 약 50km가량을 이동한 환인 일행은 강변을 야영지로 삼았다.

주변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강은 호우로 인해 탁해진 색에서 원래의 투명한 색을 되찾아 도도하게 흐르는 중이고 강 주변으로 울창한 숲이 우거진 환경.

야영지가 정해지자마자 여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잠자리를 확보하고 불을 피울 나무를 해온다.

야영 준비를 끝마쳤을 때는 해가 지기 직전이었다.

=언니 배고파~.=

=거의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렴.=

저녁은 점심때 먹고 남은 재규어 구이, 오면서 발견한 감자고구마, 스컹크 통구이와 류히 특제 매운 고기 스튜였다.

강가여서 그런지 밤이 되자 꽤 쌀쌀했는데 뜨거운 국물 요리를 먹으니 몸이 금방 훈훈해진다.

꽥, 꼬엑.

속살이 뽀얀 감자고구마가 마음에 들었는지 비상식량이 자기 몫을 다 먹고 환인의 것을 탐낸다.

그런 비상식량에게 자기 몫을 나누어주는 환인의 귀로 여자들의 이야기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저기저기. 불침번은 어떻게 할 거야?=

=은인님은 쉬셔야 하니까…… 우리가 2시간씩?=

=나와 언니는 싸울 줄 몰라. 기습당하면 깨우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어.=

=에프니스 말대로 혼자는 위험하니까 나랑 후이니, 에프니스랑 엔닐이 4시간씩 번갈아 가면서 하는 게 좋겠네.=

저녁을 먹으며 불침번 순서를 알아서 정하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에 환인은 감자고구마를 비상식량 앞에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2시간씩 류히와 후이니가 초번, 에프니스와 엔닐이 말번을 맡아주십시오. 중간의 4시간은 제가 서겠습니다.”

=어…….=

“여러분은 수십 킬로그램의 짐을 들고 12시간이나 걸었습니다. 피로가 쌓여있을 테니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여자들은 자신들만으로 불침번을 서서 환인을 돕고 싶었지만, 거부는 받아들이지 않을 환인의 완고한 태도에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먹을 것도 풍부하고 요리도 알아서 해주는 데다 짐도 옮겨준다.

홀로 밀림을 돌파하고 강을 건너 숲을 가로지를 때와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편한 일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평범한 짐승들은 환인의 환희를 끌어내지 못하는 상태다. 그저 무미건조한 도살과 학살일 뿐인 상황에 수면마저 풍족하게 하면…….

‘감이 무뎌진다.’

허기만 면할 정도로 적당히 배를 채운 환인은 창을 꺼내 들고 훈련을 시작했다.

찌르기와 사선 베기 횡 베기 종 베기 뿐인 훈련 코스지만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환인이었기에 말없이 묵묵히 창을 휘둘렀다.

=…….=

언니들의 눈치를 보던 후이니가 철창을 들고 슬그머니 다가와서 자신을 따라 하기 시작했지만, 환인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훈련에만 집중한다.

약 2시간, 몸이 뜨거워질 정도로 창을 휘두른 환인은 피부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강물에 몸을 씻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에프니스를 불러 육체관계를 맺었다.

관객이 셋이나 있는 곳에서 하는 육체관계는 에프니스에게 많은 부끄럼을 선사했지만, 잠시 후 몸 안을 몰아치는 쾌락에 그녀는 주위도 잊고 교성을 지르며 환인의 품 안에서 녹아내렸다.

에프니스와 관계를 맺은 뒤에는 후이니와 엔넬은 물론 류히까지 다가와 은근한 희망을 내비쳤지만.

“야외에서는 하루에 한 분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환인의 이야기에 자신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뒤늦게 자각한 여자들이 부끄러워하며 물러났다.

야영 첫날은 아무 문제 없이 순탄하게 지나갔다.

둘째 날도 똑같은 풍경 속에서 구불구불한 강줄기를 따라 이동했고 밤에는 후이니를 안았으며 셋째 날도 똑같은 일정이 이어졌고 밤에는 엔넬을 안았다.

여자들이 조금씩 불안을 표시하기 시작한 것은 넷째 날 점심이었다.

=은인님…….=

류히가 주저하면서 다가와 이걸 말해도 되는 건가 걱정하는 모습에 환인은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다.

=같은 장소를 계속 맴도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무, 물론 은인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어제 봤던 곳이 또 본 듯 해서…….=

마치 아기를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 태도다.

다른 여자들을 보니 같은 생각인 듯 얼굴에 류히만큼이나 불안이 드러나고 있었다.

“…….”

환인은 이동하며 주변 환경을 낱낱이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주변 환경 파악은 생존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아버지와 부시 크래프트를 하며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 환인의 기억에 지금까지 이동했던 길이 중복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슷한 환경이긴 하지만 그건 강줄기를 따라 이동한다는 골자를 보면 다를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여자들의 자초지종을 들으며 기억해놨던 몇 가지 키워드가 떠올랐다.

미궁, 그리고 헤메임.

처음에는 숲을 헤맸다기에 초보자들처럼 단순히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고만 생각했다.

숲을 얕보고 들어온 사람이 가장 쉽게 처하는 상황이 길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으니까.

다른 여자들을 불러 류히와 같은 생각인가 물어보았다.

=네…… 저도 어제부터 그렇게 느꼈어요.=

=계속 본 게 나타나는 거 같아요…….=

=저 바위! 저 바위 어제도 봤어요!=

불안한 눈으로 흔한 바위를 손가락질하는 후이니의 어깨를 잡은 환인은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침착하고 심호흡한 뒤에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정말 저 바위를 어제도 봤습니까?”

=…….=

“바위의 모양은 대다수 거기서 거기입니다. 바위만 기억할 게 아니라 바위와 근처를 흐르는 강의 모습, 숲 가장자리의 형태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 저 바위를 어제도 봤습니까?”

=……모, 모르겠어요……. 근데 진짜 본 거 같은데…….=

생명의 은인인 자신이 묻기에 두루뭉술 하게 ‘그런 거 같다.’, ‘느낀 것 같다.’고 미약하게 자기 생각을 주장했을 뿐, 여자들은 전혀 같다고 느끼지 않을 풍경에서 기시감도 아니고 같은 장소를 배회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채집해서 먹은 식물 중에 환각이나 정신착란 성분이 있었나.’

고개를 저었다. 음식은 다섯이 똑같은 걸 먹었으니 환각이나 정신착란에 걸렸다면 자신도 걸려야 한다.

결국…….

‘여기가 미궁이라는 가정을 내렸을 때, 미궁에 오래 있으면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판단력과 사고력이 저하된다고 봐야겠지.’

자신은 영혼을 다루는 초능력을 각성한 덕분에 그러한 상태 이상의 내성이 높은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난파된 여자들이 숲을 이동하다 오랫동안 헤맸다는 것이 설명되고, 밀림을 빠져나오면서 느꼈던 그 이상한 느낌도 설명된다.

그것을 자세히 풀어서 이야기하자 여자들의 눈에 납득의 빛이 떠올랐다.

=와아, 그럼 그때 숲을 헤맨 게 미궁의 영향 때문이었어요?=

=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요.=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미궁은 사람을 홀려서 잡아먹는다는 이야기였어요. 각성한 직업자는 그래도 버티지만, 무직자는 치명적이라고 적혀있던 게 기억나요.=

에프니스의 발언에 환인을 향한 여자들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진다.

이어진 엔넬의 이야기에 여자들은 부르르 떨다가 어미를 바라보는 병아리처럼 환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 죽을 운명이었던 거네요. 그 운명이 은인님을 만나면서 바뀐 거고요.=

=미궁 무섭다…….=

=괜한 이야기로 심기를 흐려서 죄송해요, 은인님. 앞으로 저희는 입 다물고 은인님 뒤만 따를게요.=

진정했다고 해야 할지 기운을 차렸다고 해야 할지.

불안함이 눈에 띄게 옅어진 여자들의 태도를 확인한 환인은 몇 가지 의문이 생기는 단어가 신경쓰였지만.

‘대충 짐작은 가니 확실한 것은 훗날 개인적으로 조사해보아야겠군.’

그녀들을 신뢰하지 않기에 자신의 정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환인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에프니스에게 미궁에 관한 것을 물어보았다.

=죄송해요. 우리 마을까지 오는 책은 대부분 흥밋거리 위주여서 은인님의 궁금증을 풀어드릴 만한 것은 없었어요.=

자신이 익힌 식물 감별법도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겨우 얻어낸 식물 서적에서 배운 거였다고.

그래도 얻은 정보는 좀 있었다.

에프니스는 기억력이나 이해력이 좋은 편이어서 오가는 행상인들이라던가 가끔 방문하는 모험가, 탐험가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미궁은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다나 봐요.=

그런 미궁을 중점적으로 탐험하는 모험가나 탐험가들이 있고 미궁 근처는 땅이 비옥한 편이어서 마을이나 도시가 형성되기 쉽다는 것.

미궁을 돌파한 사람들은 영웅으로 불리고 부자가 된다는 것.

미궁에서만 나는 소재가 있고 그런 건 보통 비싸게 거래된다는 것.

류히가 말을 거들었다.

=어른들은 미궁이란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요. 미궁을 신경 쓰면 미궁에서 나온 괴물이 잡아간다던가 미궁 근처에 놀다 보면 미궁이 아가리를 벌려서 잡아먹는다던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없애기 위해서겠지요. 이렇게 위험한 장소에 멋모르고 발을 들였다간 죽기 십상일 테니 말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미궁에 관심을 가지는 건 못된 일이라는 인식이 붙어서 알고 있는 게 적어요. 어른이 되고 나서도 미궁에 눈길도 주지 않는 마을 사람도 있구요.=

=하지만 언니. 우리 마을은 미궁의 힘 덕분에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 힘을 자세히 알아보고 연구해야지, 쉬쉬하면서 슬쩍슬쩍 떠먹기만 하면 마을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안 돼요.=

=어쩌겠니. 마을 어른들이 그러기로 하신 것을…….=

조그만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류히와 에프니스에게 시선을 돌려 주변을 다시 살펴본다.

현재 일행은 해가 뜨고 지는 방향으로 동서남북을 가늠했을 때 일행은 꾸준히 뿔비늘 고래가 사는 대호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물론 전체적인 진행 상황이 그렇다는 거지, 뱀처럼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이동하고 있기에 대호수에 도달하려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상태다.

이렇게 강을 따라 5일간 하루 12시간씩 이동하고 있는 이유는 류히가 난파당한 후 보았다던 특이한 모양의 산을 찾기 위해서였다.

핵심은 ‘강가’에서 보았다는 것.

즉 강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산이 나올 것이다. 만약 나오지 않고 대호수가 나타나면 대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며 다른 강이 시작되는 지류를 찾는다.

그리고 지류를 찾으면 다시 강을 따라 움직이며 대머리처럼 정상에만 숲이 없는 산을 찾는 것이다.

쌍둥이 산의 동굴에서 출발할 때 류히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 산은 높았어요. 은인님이 계시던 쌍둥이 산보다 4배, 초승달바위 산보다 2배는 더 컸을 거예요. 혼자 우뚝 솟은 산의 정상 부근은 나무가 한 그루도 나지 않았는데 특이하게 흙이나 바위 색이 노란색이었어요.

­ 마을을 방문하는 행상인 분들이 그 산을 이정표 삼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산만 찾으면 마을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 그 산을 보았다면서 어떻게 숲에서 길을 잃으신 겁니까.

­ 큰 언니가 그 산을 향해 직선으로 가면 될 거라면서 숲을 가로질렀거든요…….

­ 그럭저럭 합리적인 사고였군요. 결과는 나빴지만 말입니다.

그 사이사이의 기억이 명확했다면 좋았을 텐데 생전 처음 겪는 힘든 경험으로 대부분의 기억이 날아가 버린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강을 따라 꾸준히 나아가던 일행은 조금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계속해서 이어질 줄 알았던 강이 갑자기 크게 방향을 틀면서 점차 경사가 지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강폭이 좁아지다가 강이 끊어지더니 주변 시야를 가리던 숲이 사라지며 비취색 호수, 그리고 산맥이 출현했다.

“…….”

환인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강 주변의 숲 높이가 높긴 했지만 설마 이때까지 산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니.

호수는 폭이 좁고 길이가 긴 형태였는데 산은 일행이 서있는 호수 맞은편에 산맥을 형성하고 있어 그 너머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서쪽 산은 호수의 일부까지 가리고 있어 전경이 보이지 않았다.

‘저 산 뒤편에 강이 이어져 있는 건가.’

=호수 건너편은 이쪽이랑 모습이 되게 다르네?=

=나무가 하나도 안 보여.=

후이니와 엔넬의 말대로였다.

이쪽은 평지 위주에 뒤쪽은 나무가 빼곡히 자란 숲이다. 그런데 호수 건너편은 하얀 모자를 쓴 산이 병풍처럼 서 있다.

나무 대신 수풀이 빼곡하게 산자락과 산등성이를 뒤덮고 있는 것도, 산 정상 부근은 토양이 그대로 노출된 채 구름으로 일부를 가리고 있는 풍경도 환인으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마치 스위스나 노르웨이의 자연 풍경처럼 경관이 빼어났지만, 환인은 그런 것에 1g도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

아무리 봐도 류히가 보았다던 그 산과 관계가 없는듯한 지형이다.

환인이 여자들과 함께 호수 건너편으로 향하려던 순간이었다.

꽥꽥! 꽤액!!

비상식량의 경고를 들은 환인이 창을 꺼내 쥔 순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숲에서 사람 키만 한 녹색의 유인원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원숭이와 고릴라를 섞은 듯한 일곱 마리.

유인원들의 분위기는 안 좋았다. 영역을 침범당한 동물이 저리 반응하지 않을까 싶은 모습이다.

팔이 다리보다 두 배 가량 긴 녹색 덩치들의 모습에 에프니스가 벌벌 떨면서 말했다.

=수, 숲의 약탈자예요.=

“물러서십시오. 후이니와 엔넬은 호수를 등지고 견제만 부탁합니다.”

=네!!=

=네.=

환인은 류히가 만들어준 가죽 장갑에서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창대를 비틀어 쥐었다.

사흘째부터 주변 식생의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식생??이 바뀌면 서식하는 동물과 짐승도 바뀌기 마련.

‘설마 유인원 종류가 살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짧게 살펴본 결과 손가락이 꽤 발달한 형태였다.

섣부르게 덤비지 않는 것과, 습격으로 첫 조우를 빚어내지 않은 것을 보면 본능보다 이성이 앞서는 짐승이라고도 볼 수 있다.

환인은 비취 호수에 도착하기 전에 사냥했던 테이퍼(맥)을 닮은 짐승의 하급 영혼 구슬로 자신에게 강령을 펼쳤다.

심장이 크고 빠르게 뛰며 몸에 열기가 훅훅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동시에 맥의 강령 효과인지 물 냄새가 크게 다가오며 물속에서 다른 생물의 냄새가 섞여 있는 것을 눈치챘다.

‘야생 동물의 분쟁 구역인가.’

영혼 방패 두 장을 만들어내면서 전투 자세를 잡으니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만들며 슬금슬금 다가오던 반원숭이고릴라가 접근을 멈추었다.

“……?”

우그, 우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심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모습에 환인은 설마? 하는 기분이 되었다.

우연히 맞아떨어졌다고 보기에 너무 공교로운 타이밍.

재차 확인해볼 생각으로 류히가 만들어준 팔 끈에 달아놓은 진주색 돌멩이를 쥐고 영혼 화살 3중첩을 만들어낸다.

우그그…….

허공에 길쭉하고 매끈한 형태의 영혼 화살이 생성되자 유인원들의 반응이 날카로워진다.

환인은 저 원숭이들이 영혼 계통을 감지할 수 있음을 확신하며 유인원들의 발치에 영혼 화살을 쏘았다.

파바박!

보이지 않는 화살이 흙과 자갈을 세차게 튕겨내자 유인원들이 우호호 소란을 부리며 뒤로 물러난다.

환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생각보다 빠르다.’

물러나는 속도가 어지간한 짐승의 달리기와 비슷하다. 일곱 마리가 사방에서 저 속도로 달려든다면…….

유인원들이 이쪽을, 정확히는 자신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을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하며 환인도 천천히 뒷걸음친다.

“물러나야겠습니다.”

=네, 넷?=

“저 혼자라면 저것들이 모두 덤벼도 상관없습니다만, 한 마리라도 여러분을 노리면 지켜드리지 못합니다.”

바로 옆은 호수다. 녹색 유인원들은 털이 오랑우탄보다는 짧지만, 상당히 긴 편.

털이 물을 먹으면 움직임이 느려질 테니 호수를 등지고 싸우면 수적 열세 정도는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게 된다.

거기다 기술을 총동원하면 일곱 마리는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다.

그러나 여자들은 안된다. 저 두꺼운 팔과 여자들의 몇 배는 되는 덩치에 순식간에 쓰러지거나 제압당하겠지.

환인 일행이 물러나는 모습을 유인원들은 지켜보기만 한다.

일행은 왔던 길을 빠르게 되돌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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