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040+ 쌍둥이 산
* * *
꽥. 꽤액.
=도망가지 마. 깃털만 닦아주려는 거뿐이니까.=
꼬엑!
=아야! 물지 마, 물지 마!=
꽥꽥!
“…….”
잠결에 계속 들려온 비상식량의 울음소리, 그리고 이마에 차게 젖은 물수건이 올라오는 느낌에 눈을 뜬 환인은 잠시 멍한 눈으로 동굴 천장을 응시했다.
십수일 간 머무르며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거처의 천장이다.
=깨셨어요?=
그때 회색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자란 청순가련한 미녀가 시야로 들어오더니 상냥한 눈웃음을 짓는다.
=땀을 많이 흘리셨어요. 물 좀 드세요.=
입가에 닿은 나무 병이 천천히 기울어지며 약간 미지근한 물이 흘러나온다. 그것을 두 모금 정도 받아마신 환인은 왼팔에 시선을 주었다.
왼팔에 맺혀있던 영혼 구슬이 하나도 없다.
“크흠…….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지만 말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어제 이곳에 도착하고 하룻밤이 지났어요. 지금은 정오가 조금 지난 이간이구요.=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고 다시 해가 떴으니 18시간 동안 꼬박 누워있었다는 뜻이다.
류히의 젖무덤에 시선을 주었다. 탐스럽게 부푼 가슴 사이 골, 그곳에 보이는 주먹만 한 온기의 덩어리.
몽롱한 기분과 꿈결 같은 풍경 속에서 류히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으며 그녀의 아랫배 속에 보이던 온기를 흡수한 것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꿈인 줄 알았는데 현실이었나.’
그 온기를 일부 흡수한 덕분에 몸 상태는 상당히 좋아졌다.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체온을 앗아가며 괴롭게 하던 한기와 오한은 거의 사라졌고 심한 근육통과 관절통만 남았다.
식은땀이 흐르지 않고 흐른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류히의 옆에 물이 담긴 나무 그릇과 천 조각이 있는 것을 보면 그녀가 줄곧 병간호해준 거겠지.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를 구하시려다 그렇게 되셨잖아요. 저희로서는 도와드리지 못해서 그저 죄송할 따름이에요…….=
상체를 일으키자 류히가 옆에서 어깨를 잡아준다.
환인은 자신의 하반신을 덮고 있고 깔고 앉아있는 동물 가죽에 시선을 주었다.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진 이부자리. 호브의 동굴에서 가져온 것이다.
‘여자들은 돌바닥에서 잠을 잔 건가.’
그러고 보니 동굴 안에는 엔넬과 그녀의 손에 잡혀있는 비상식량, 그리고 류히 뿐이다.
“다른 두 명은 어디 있습니까?”
=후이니와 에프니스는 밖에서 사냥감의 가죽과 고기를 손질하고 있어요. 먼저 말씀드리고 시작해야 했지만 그대로 놔두면 상해버릴 것 같아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잘하셨습니다.”
환인이 가죽을 치우고 일어서자 류히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린다. 엔닐의 뺨도 살짝 붉어졌지만 환인은 신경 쓰지 않고 옷을 챙겨입었다.
‘오한만 사라졌는데도 훨씬 낫군.’
척추를 따라 흐르는 훈기의 양이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태양 빛을 받으며 한나절 정도 움직이다 보면 상당량 회복될 거다.
=조금 더 쉬시지…….=
“괜찮습니다. 나머진 움직이다 보면 나을 겁니다.”
천천히 동굴 입구로 걸어 나가자 류히와 비상식량을 안은 엔넬이 뒤따라온다.
파다닥!
꽥!
=앗.=
엔넬의 품에서 탈출한 비상식량이 환인의 오른쪽 어깨에 착지해 반갑다는 듯이 뺨에 머리를 비벼왔다.
환인은 말없이 비상식량의 등을 토닥여주고 동굴 밖을 내다보았다.
알몸의 소녀 두 명이 동굴 아래 자갈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에프니스는 어떻게 만든 건지 아궁이형 훈연기 앞에서 쪼그려 앉아 이파리로 만든 부채를 부치는 중이다.
후이니는 귀를 쫑긋 세운 채 나무로 만든 다이 모양 작업대에 새카만 흑퓨마, 쿠아르의 가죽을 펼쳐놓고 단검으로 무언가를 긁어내는 중이었는데, 아래쪽에 모닥불이 지펴져 있는 것을 보면 일종의 무두질 공정으로 보였다.
그 옆으로 재규어와 뿔 없는 수사슴의 가죽도 활짝 펼쳐져 말려지고 있었다.
고기는 전부 손가락 사이즈로 잘게 잘려서 그늘에서 널려있는 상황.
=망가진 훈연기가 보여서 고친 다음 고기를 훈제 중이에요. 말씀드리지 않고 사용해서 죄송해요.=
죄송하다는 말이 입에 붙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환인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벌거벗고 있는 류히와 엔넬을 보며 말했다.
“전 무두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어차피 버렸을 물건이니 무두질해서 여러분이 입을 옷을 만드는 것도 좋겠군요.”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쿠아르의 가죽은 비싸게 팔리니까 나머지로 옷을 만들어 입을게요.=
5m 높이를 뛰어내릴 만큼 몸이 호전된 것은 아니라 벽을 타고 내려가자 에프니스와 후이니가 일어서서 이쪽을 쳐다본다.
환인은 에프니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훈연은 잘 되고 있습니까?”
=네, 네. 이런 훈연기는 처음 보는데 대단해요. 돌과 흙과 나무만으로 이렇게 간단히 만든 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을에서도 훈제 고기를 많이 만들지만, 통나무집 하나를 통째로 써서 대량의 고기를 훈제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후이니에게 다가가 그녀가 하는 작업 공정을 지켜보았다.
후이니가 하는 무두질은 정말 까마득한 수고가 드는 작업이었다.
원래 무두질 작업은 가죽 안쪽에 붙은 살점과 지방을 모두 긁어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몇 번이나 삶아서 털을 다 밀어야 하는 데다 비전의 가루를 뿌려가며 며칠간 방망이로 두들겨야 부드러운 가죽이 완성된다고.
=하지만하지만 그 가루가 없어서 연화 작업은 못 해요! 좀 딱딱해질 거예요! 그래도 쿠아르의 가죽은 워낙 부드러워서 나중에 따로 연화 작업을 하면 될 거 같아요!=
“부탁합니다. 고기는 충분하고 이 근처는 짐승이나 괴물도 거의 찾아오지 않으니 충분히 몸을 추스른 다음 여러분들이 사는 마을로 출발합시다.”
=네~!=
=네.=
=예.=
환인은 고기를 아낌없이 풀었다.
얼음물에 담가놨던 재규어의 고기는 겉만 살짝 물을 먹어 불었을 뿐, 그 부분을 잘라내면 선홍색 속살이 드러나 먹기 좋은 상태였다.
문제는 이틀째 나무에 걸어놨던 회색 수컷 사슴 두 마리였다.
파리떼가 끓긴 했지만 고기의 색계통은 문제없다. 그러나 이렇게 파리떼가 끓는 고기를 여자들이 먹을까 싶었는데…….
=우와, 류히 언니! 고기가 살살 녹아!=
=이게 사슴 고기구나……. 정말 맛있네.=
엔넬과 에프니스는 부끄럼과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는지 말수는 적었지만, 열심히 고기를 먹으며 환인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걸 찍어 먹거나 발라서 구워 먹으면 더 맛있을 겁니다.”
양념이나 소금 없이도 맛있게 먹는 모습에 적갈색 더덕 소스를 제공하자 여자들의 눈이 하나같이 휘둥그레진다.
=어? 이거 매운맛 아냐?=
=매운맛의 끝에 쓴맛이 살짝 감도는 게…… 너무 맛있어요.=
=이런 작물이 있다는 이야기 못 들었는데…….=
=에프 언니. 여긴 미궁이잖아요.=
=아.=
한 사람당 1kg은 족히 먹은 뒤에 소스를 꺼냈는데, 여자들은 거기서 다시 1kg을 더 먹고는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자갈밭에 드러누웠다.
환인도 먹어야 회복된다는 심정으로 사슴 고기를 5kg이나 먹어 치웠다. 비상식량도 자기 몸집보다 더 많은 양을 먹고는 몸이 무거워져 파닥거리며 땅을 총총 뛰어다녔다.
그렇게 양껏 먹은 뒤 절벽이 만들어낸 그늘에 앉아 쉬면서 환인은 호브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그녀들에게 들었다.
인랑족의 피를 짙게 물려받은 후이니는 청각이 평범한 루크랑의 4배에 달했다. 덕분에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전부 들었다며 그녀가 해주는 설명으로 환인은 자신이 대검 괴물과 싸운 직후의 상황을 대강 유추할 수 있었다.
‘크게 터지는 소리가 난 뒤 수십 차례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고, 그 후 천둥소리를 매우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 설명에 따르면 자신이 기절한 뒤 번개가 몰아쳤다는 말이 된다.
번개를 썼다는 점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상한 것은 없었다. 흡혈마의 영혼을 강령하면 피부로 피를 흡수하기까지 하는 마당인데 번개를 쓸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자신이 정신을 잃은 뒤 번개가 폭주했고, 그 폭주에 대검 괴물은 숯덩이가 되어 죽었다.
자신은 수십 발의 번개를 난사하는 바람에 훈기를 바닥까지 소비해서 몸 상태가 그 지경이 되어버린 거고.
‘정말 죽을 뻔했군.’
칼날 멧돼지도 텀을 들여가며 쏘던 번개인데 그걸 난사했다니, 천운이 따라줬다고밖에 못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영혼을 다루는 능력도 성장해서 이제 지팡이 없이도 영혼에게 명령을 내릴 수도 있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은인님. 이 쿠에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비상식량입니다.”
=……?=
배가 빵빵해져서는 닭둘기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비상식량과 놀아주던 여자들은 비상식량의 이름을 듣고 당황했다.
그러나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잠시 후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사육 중인 동물의 이름을 어떻게 짓는지는 주인의 마음이니까.
환인은 비상식량의 종?에 관심을 내비쳤다.
“비상식량이 쿠에라는 종인가 보군요. 어떤 생물입니까?”
에프니스는 환인의 질문에 당황한 듯 몇 차례 눈을 깜빡이다가 대답했다.
=어……. 강인한 생물이에요. 다 자라면 마차도 끌고 다니고 말이나 코뿔소나 발도마뱀처럼 타고 다닐 수도 있어요. 여러 가지 색이 있지만 밀짚색이 가장 흔하고 노을색과 녹색이 가장 희귀해요. 소문에 따르면 노을색은 불타는 바위를 소환해서 떨어트릴 수 있고 녹색은 하늘을 날아서 바다도 건널 수 있다고도 들었어요.=
환인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작은 새가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자란다고? 게다가 불타는 바위를 소환한다니…….
꽥?
환인의 시선을 느꼈는지 무릎에 앉아 쉬고 있던 비상식량이 올려다본다.
‘……이름을 너무 성의 없이 지었나.’
적당히 때가 되면 이름을 바꿔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비상식량을 등을 토닥여주었다. 얼른 성장하길 바라면서.
에프니스는 훈연기의 확인, 류히와 후이니, 엔넬은 무두질을 하며 오후를 보내는 동안 환인도 대만 남은 검은 창을 살폈다.
“…….”
호브의 동굴에서 챙겨온 날붙이가 많이 있지만, 대부분 자루와 날이 일체형이어서 흑봉의 끝에 묶을만한 날붙이가 없다.
날과 자루 일체형이거나 날이 너무 짧아 베기로는 적합하지 않거나.
‘이제 와서 무기를 바꾸는 것은……. 차라리 나무 끝을 뾰족하게 깎을까.’
바꿀만한 무기도 없거니와 있다고 해도 검이나 대검, 도끼 같은 것을 쓸 생각은 없는 환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에게 적합한 무기는 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환인의 고민을 눈치챈 후이니는 한창 지방을 제거하고 있던 가죽을 류히에게 떠넘기고 환인에게 달려가서 물었다.
=은인님! 지팡이 끝에 칼날을 달고 싶으신 거예요?!=
“원래부터 창이었습니다. 이 끝에 날붙이를 끼워서 베기와 찌르기 용도로 썼었죠.”
하지만 대검 괴물과 싸우면서 날붙이가 떨어져 나갔다고 하니 후이니는 갈색 늑대귀를 한차례 파닥이고는 절벽 한 귀퉁이에 쌓여있는 무기 더미로 달려가서 헤집기 시작한다.
잠시 후 손에 들고 온 것은 길이 50cm가량의 직검??과 한손용 마울 해머one handed maul hammer에 쓰였을 것 같은 쇠뭉치였다.
=제가 창 고쳐드릴게요!=
“……부탁합니다. 다만 창대는 이대로 썼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네! 아빠가 작업하는 거 옆에서 구경하면서 배웠어요! 잘 할 수 있어요!=
기운차게 대답한 후이니는 자갈밭을 싸돌아다니며 자기 상체보다 조금 작은 바위를 옮겨와서 둥그런 화로 비슷하게 쌓는다.
그 뒤에 크고 굵은 통나무를 가져와서 간이 돌화로에 집어넣고 모닥불에서 불을 떼와서 지폈다.
후 후 입으로 바람을 불어가면서 불길을 크게 키운 후이니는 안쪽이 열기로 인해 이글거려 잘 보이지도 않을 때가 되었을 때 1m 정도 되는 작대기 세 개를 가져와서 꽁꽁 묶더니 끝을 삼발이처럼 벌린 뒤 직검의 날을 끼우고 다시 단단히 조여 맨다.
얼핏 보면 낫 같은 모양새.
환인은 그걸 보고 후이니가 어떤 식으로 창을 만들려 하는지 깨달았다.
‘손잡이를 불에 달군 뒤 두들겨서 맞출 생각이군.’
그게 쉬울까. 그 어떤 도구도 없이 균형을 맞추기란 힘든 일일 텐데.
활활 타오르는 돌화로의 틈에 직검의 자루 부분을 밀어 넣은 후이니는 강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평평한 바위를 찾아온다.
=은인님! 나무에 쇠를 끼워서 쓰는 것보다 저걸 고쳐서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후이니가 가리킨 것은 철창 괴물이 쓰던 휘어진 창이었다.
‘호브 마을에서 나올 때 용케 챙겼군. 대검은 무거워서 가져오지 못했겠지.’
다른 여자들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면 철에 대한 믿음이 다른 재료를 앞서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나무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건가. 환인은 후이니에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설명했다.
“보기에 평범한 나무 재질이지만 실제 강도는 철보다 뛰어나고 탄성도 강합니다. 저 철창이 휘어진 이유도 이 창대와 부딪쳐서 휘어진 겁니다.”
=……와. 그 지팡이는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놀랐는지 기본 성량이 커서 소리치는 것 같은 후이니가 엔넬과 비슷한 목소리로 묻는다.
“저 밀림 깊은 곳에서 녹색 호브가 들고 다니던 걸 빼앗았습니다.”
=히엑? 미, 미궁 중심부에서요? 와, 와아.=
미궁 중심부…… 그럼 그 푸른불꽃 호랑이는 미궁의 주인이라는 말이 되려나.
짐승 같지 않게 영험해 보이던 그 자태를 생각하다가 후이니가 창대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천천히 살펴보라고 건네준다.
그러자 에프니스와 엔닐도 다가와 후이니와 함께 창대를 만지작거리며 연신 감탄사를 흘렸다.
돌화로에 바람을 넣어가며 엔넬, 에프니스와 함께 한참 창대를 구경하던 후이니는 직검의 자루가 노랗게 달아올랐을 때 직검을 꺼내 새빨갛게 달아오른 자루를 마울 해머의 넓적한 부분으로 땅, 땅 힘차게 때리기 시작했다.
자세가 마치 숙련된 대장장이처럼 올곧기 그지없다.
뜨거운 돌화로 옆에서 알몸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망치질을 하는 후이니는 몸에 불똥이 튀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둥글둥글하던 자루를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만들어 나갔다.
쇠가 식으면 돌화로에 넣고 달구고, 달궈지면 꺼내서 망치질하고, 식으면 다시 돌화로에 넣어 달구고.
그렇게 열 번 정도 반복했을 때 직검의 자루는 본래의 원통형의 모습을 잃고 넓적하면서도 가장자리가 물결처럼 올록볼록한 형태가 되었다.
달아오른 날붙이를 계곡물에 담가서 차게 식힌 후이니는 창대와 날붙이를 들고 무두질 중인 류히에게 달려간다.
류히는 이게 뭔가 하며 눈을 깜빡이다가 곧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죽을 재단하고 자른 뒤 창날로 변모한 직검을 창대에 단단히 결합해놓았다.
잠시 후 날을 연마까지 해온 후이니에게 창을 받은 환인은 꽤 만족스러웠다.
자루의 올록볼록한 부분에 끈을 걸쳐서 단단히 묶은 매듭은 창날과 봉이 원래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결합해놓았다.
창은 직선 형태의 글레이브와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
무게 중심이 이전보다 날 쪽으로 치우쳐졌지만, 힘도 그만큼 강해졌기에 휘두르는 데는 지장 없다.
시험 삼아 살을 발라내고 남은 쿠아르의 등뼈를 나무에 매달아 휘둘러봤는데 별다른 힘도 필요 없이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갈비뼈까지 통째로 잘려 나갔다.
‘오히려 공격력이 더 강해졌군.’
환인은 옆에서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눈을 빛내는 후이니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밤이 되어 여자들이 무두질해놓은 짐승 가죽을 덮고 잠들었을 때, 환인은 류히만 조심스레 깨워 동굴 입구로 데리고 나갔다.
무슨 용무인지 직감한 류히는 고개를 숙이고 수줍은 자태로 손가락만 꼼질거렸다.
“류히. 오늘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네…….=
허락받은 환인은 류히가 모멸감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서 천천히 애무해나갔다.
그리고 준비가 되었을 때 앉은 채로 결합을 이루자 류히의 아랫배에 맺혀있는 온기가 조금씩 조금씩 환인의 두 번째 자아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일정량을 흡수한 뒤에는 대기 시간이 발생하는 거군.’
류히에게서 흡수한 온기는 훈기가 몸 안에 만들어놓은 통로를 따라 흐르다가 훈기와 자연스럽게 합쳐졌다.
현재 척추를 따라 흐르는 훈기와 한기의 비율은 3:10 정도.
한 번 바닥까지 내려간 여파인지 훈기의 회복 속도가 평소보다 느렸는데, 타인과 접촉을 통해 훈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잘됐다고 생각한 환인이었다.
환이의 허벅지에 올라타 뱃속 깊숙이 그를 받아들인 류히가 쾌감에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 제가 은인님께, 도움이…… 되는 건가요?=
“예. 제 축복은 그냥 쓸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비하면 어제처럼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집니다. 심각하면 목숨마저 잃겠죠.”
=아…….=
그리고 그 에너지는 누구나가 가지고 있어서 타인과 몸을 합치는 것으로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하니 류히는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환인의 목에 팔을 감으며 안도했다.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말씀해주세요. 앞으로도 은인님께 도움이 되겠어요…….=
“고맙습니다.”
=네헷…!=
갑자기 불쑥 들어와 배 안쪽을 찌르는 감각에 혀를 살짝 깨문 류히는 빨개진 얼굴로 환인의 목을 끌어안았다.
찌륵거리는 벌레 소리와 찌걱거리는 물소리가 어우러지며 밤의 시간이 흘러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