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039 쌍둥이 산
* * *
방금전까지 몸만 겨우 가누던 환인이 갑자기 걸어가는 모습에 에프니스는 당황했지만,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환인의 뒤를 조심조심 따라가다가…….
=?!=
재빨리 류히의 꼬리를 잡고 뒤로 당겼다.
신체 능력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자신과 류히는 방해만 될 뿐이라는 걸 파악한데서 나온 행동이었고, 류히도 그걸 깨닫자마자 방해되지 않게 뒤로 물러난다.
환인과 류히의 자리 교체가 이루어지자마자 후이니의 견제가 시작됐다.
짱돌을 하나 발로 차올려서 쥔 후이니가 비교적 뒤쪽에 위치한 흑퓨마를 향해 집어던진 것이다.
딱!
캬아앙!
맑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옆머리에 돌팔매를 맞은 흑퓨마가 후이니를 향해 하앜질을 한다.
직후 뒤에서 날아온 돌멩이에 뒤통수를 맞은 흑퓨마는 그제야 앞뒤로 포위된 것을 깨닫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저렇게까지 해주는 것은 바라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군.’
그렇게 한 마리를 후이니와 엔넬이 견제하는 사이 환인은 남은 한마리를 향해 무뚝뚝한 태도로 걸어갔다.
칵칵, 칵칵칵.
제일 약해보이던 놈이 갑자기 거대한 존재감을 내비치며 다가오는 상황에 흑퓨마2는 채터링을 하며 긴 꼬리를 신경질적으로 흔든다.
번역하자면 ‘감히 먹잇감이 겁도없이 대들어?’정도가 되겠다.
어제까지였다면 흑퓨마는 환인을 보자마자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수십일에 걸쳐 온갖 짐승 수백 마리의 피와 원한이 절여져 보기만해도 뒷목의 솜털이 쭈볏 설 정도의 냄새가 그의 몸에서 풍겼으니까.
하지만 괴물들과 전투를 벌이다 폭주한 번개로 인해 좋지 않은 냄새의 근원(피)가 대부분 날아가버렸다. 정화되었다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체취 또한 네 명의 여자들과 얽히며 많이 희석되었기에 흑퓨마들이 만만한 먹잇감이라 여기고 다가오게 된 이유다.
물론 환인은 이 사실을 모른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흑퓨마2 또한 눈 앞의 사냥감의 목줄기를 물어뜯을 생각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신체의 상태만 나쁠 뿐, 반사신경과 동체시력은 그대로인 환인에게 그 공격은 죽여달라는 행동밖에 되지 않았다.
흑퓨마의 궤적을 살핀다. 공격 반경까지 계산해 몸을 크게 숙이며 흑퓨마의 아래로 몸을 날리는 환인.
위로는 흑퓨마가, 아래로는 환인이. 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있는 힘껏 뾰족한 흑곤봉을 위로 찌른 환인은 경련을 일으키려는 팔에 억지로 힘을 주며 앞으로 크게 내려쳤다.
촤아악
캬아앙!!
뱃가죽이 갈라지며 내장을 흩뿌린 흑퓨마가 괴성을 지르며 미친듯이 땅을 뒹군다.
그 기세에 놀란 류히와 에프니스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뒤로 후다닥 물러났지만, 환인이 명백하게 지친 얼굴로 자신에게 손짓하는 것을 본 류히는 곧바로 손도끼를 그에게 바쳤다.
=여, 여기요!=
“고맙습니다.”
손도끼를 받아든 환인은 몸을 반쯤 뉘인채 송곳니를 드러내며 캬아악 포효를 지르는 흑퓨마의 머리로 손도끼를 힘껏 투척했다.
윙윙윙 돌도끼보다 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간 손도끼는 날의 절반이 두개골에 틀어박혔다. 흑퓨마는 당연히 즉사.
“손도끼 좀 가져다주시겠습니까.”
=……네? 네!=
두 손으로 입을 가린채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환인의 부탁에 재빨리 달려가 손도끼를 뽑으려한 류히였지만…….
=……! 읏, 에프니스 이것 좀 잡아주겠니?=
얼마나 단단히 틀어박혔는지 자신의 힘만으로 뽑을 수가 없어 에프니스의 도움까지 요청한다.
그러는 사이 후이니와 엔넬은 수백미터 벼랑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흑퓨마를 상대로 간신히 도망다니고 있었다.
캬아앙!!
=으아앗!=
크아앙!!
=히이이!=
돌팔매질에 도발당한 흑퓨마가 덮쳐들면 후이니는 기겁해서 몸을 구르다시피하며 도망간다. 흑퓨마가 그 뒤를 추격할라칠때 엔넬이 휘어진 창으로 뒤에서 쿡, 찔러 주의를 돌린다.
엉덩이를 찔려 분노한 흑퓨마는 엔넬을 노려 앞발로 좌우를 난타하고, 그걸 피한답시고 엉덩방아를 찍은 앤닐이 엉금엉금 기어서(성인의 달리기 속도로) 도망간다.
그러면 흑퓨마는 다시 그 뒤를 쫒고 후이니는 녹슬고 부러진 검으로 흑퓨마의 허벅지를 찔러 주의를 끄는 식이다.
‘신체 능력은 현재 나와 비슷해보이는데…….’
전투에 대해 정말 하나도 모르는 어린애 같은 싸움…… 아니 싸움이라고 하기에도 꼴사나운 장면이지만, 그래도 죽이려드는 적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용기만큼은 칭찬받아 마땅한 수준이었다.
=여기요!=
힘겹게 서서 후이니와 엔넬의 드잡이질을 지켜보던 환인은 류히에게 손도끼를 건네받고 흑퓨마가 후이니를 덮치려하는 순간을 노려 손도끼를 투척했다.
고통으로 몸에 힘을 주기 어려워서일까. 오히려 군더더기가 없는 완벽한 투척이 이루어졌다.
소리없이 날아간 손도끼는 흑퓨마의 목에 깊게 박혔고, 쓰러져 전신마비로 우오앵, 그오웅, 울기만 하던 흑퓨마는 환인의 지시에 따라 엔넬의 창에 뇌가 휘저어져 즉사했다.
=…….=
=…….=
여자들은 환인의 실력에 다시 한 번 놀란 상태였다.
홀로 호브의 마을을 박살냈다는 사실에 환인의 강함은 의심하지 않았지만, 설마 장정 셋은 있어야 잡을 수 있다고 알려진 쿠아르를 저런 몸상태로도 쉽게 죽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류히가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후이니와 엔넬을 채근한다.
=뭐하는 거니. 얼른 고기 다듬고 챙겨야지!=
=……앗!=
=은인님, 잠시만 쉬고 계세요. 에프니스.=
=응. 은인님 이쪽으로…….=
류히는 두 소녀를 데리고 쿠아르를 강가로 끌고 간 뒤 빠르게 내장을 제거하고 피를 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두 손에 시뻘건 고기를 가져와서 환인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쿠아르의 간에는 힘이 깃들어있어요. 드시면 기운을 내실 수 있으실 거에요.=
“…….”
깔끔하게 손질된 생간을 잠시 응시하던 환인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려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동물의 고기를 생식하지 않습니다.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
이건 정말 좋은 고기인데, 먹으면 몸에 좋은건데 하는 표정이 역력한 류히에게 재차 고개를 가로저으니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돌아가서 동생들과 나누어 먹는다.
이곳은 지구가 아닌만큼 동물의 생간을 먹으면 기운이 난다는 류히의 이야기가 사실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다른 세계의 인간인 자신에게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인데다, 기생충 감염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먹을 생각은 환인에게 없었다.
그러는사이 강령의 지속시간이 끝났다. 정확히 12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다시 통증이 줄어들고 대신 오한이 치미는 것을 느끼며 환인은 생각에 잠겼다.
‘영혼 구슬 보유 갯수가 12개로 늘었다. 초능력이 한 단계 성장해서 지팡이 없이도 영혼에게 명령을 내리고 기술을 쓸 수 있게 된건가. 아니면…….’
한참 전부터 가능했던 걸까. 지팡이를 얻은 뒤로 지팡이를 손에 놓고 시험해본 적이 없어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영혼 구슬 보유 갯수가 늘어나면서 능력이 성장한 것은 확실하다는 거였다.
어제까지만해도 볼 수 없었던 작은 최하급 영혼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고 있다.
‘능력의 성장으로 개화된 새로운 힘이 틀림없다.’
잘됐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제 영혼 구슬 보유 갯수와 지팡이의 압박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니까.
몇 가지 검증은 해봐야겠지만, 무기를 든 상태에서도 기술을 쓸 수 있게 됬으니 몇 배나 더 강해졌다고 봐도 될 거다.
손과 팔뚝에 붙어있는 쿠아르의 하급 영혼 구슬을 보고 있는데 쿠아르의 사체를 손질 중인 후이니와 엔넬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있잖아, 앤. 그게 각성했을 때 느낌이 아닐까? 넌 어떻게 생각해?=
=아까 은인님이 해준거?=
=응!=
=아닌거 같은데……. 힘을 각성하면 바위도 번쩍들고 엄청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몸도 튼튼해진다고 했잖아. 은인님이 해주신건 그정도는 아니었어.=
힘의 각성은 또 뭘까.
자신이 겪었던 그런걸 뜻하는 건가 생각하던 환인은 피빼기가 끝났는지 후이니와 엔넬이 각각 40~50kg 정도 되는 쿠아르의 사체를 짊어지고 오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앗! 은인님, 괜찮으세요……?=
순간 강해진 오한에 잠시 비틀거렸더니 에프니스가 옆에서 받쳐주며 걱정을 보인다.
강령을 한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는데 하고 난 이후 몸 상태가 더 나빠진듯 하다.
보통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4시간 정도 지나면 어느정도 한기가 가셨는데 지금은 한기가 사라지긴 커녕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체온을 잡아먹고 있었다.
여차하면 강령을 써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빨리 돌아가야겠습니다. 이제 절반 정도 왔으니 좀 더 힘내서 가도록 하죠.”
에프니스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기려는데 류히가 환인의 옷자락을 잡으며 걱정이 크게 묻어나는 얼굴로 묻는다.
=저…… 은인님. 이런 제의가 불쾌하시겠지만, 부디 들어주시면 안될까요?=
“무엇입니까?”
=혹시 아이들에게 걸어주신 힘의 축복을 제게도 걸어주실 수 있으시면, 은인님을 업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은인님 지금 안색도 창백하시고 식은땀을 너무 흘리고 계세요. 더 무리하시면 큰일 날 거예요.=
‘이 세계에서도 여자의 등에 업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인건가.’
쓸데없는 명예의식과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며 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몸이 더 나빠져서 걷기도 힘들던 차였습니다.”
어차피 주변에 약간 녹색을 띄는 최하급 영혼은 많다. 2개의 쿠아르 영혼 구슬에 더해 10개의 최하급 영혼 구슬을 수집해서 왼팔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상황.
류히에게 강령을 걸어주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몸무게가 70kg이 넘는 환인을 가뿐히 업는다.
“괜찮겠습니까?”
=굉장한 축복이예요. 이런 축복을 쓰실수 있고 싸움도 그렇게 잘하시다니……. 은인님은 대단한 능력자셨네요.=
녹색을 띄는 최하급 영혼의 신체 강화는 대략 10퍼센트 남짓이었다. 그 말은 류히의 근력 또한 평범한 인간 여자보다는 뛰어나다는 말.
환인은 말없이 후이니와 엔넬, 에프니스에게도 차례대로 강령을 걸어주었다.
=와.=
=앗.=
=후이니와 엔넬은 그거 계속 짊어지고, 에프니스는 나머지 짐을 다 챙겨서 따라오렴. 은인님? 가야할 길을 안내해주세요.=
“계속…… 강을 따라 가시면 됩니다. 가다보면 쌍둥이 산 사이의 계곡이 나오는데, 거기가…… 목적지입니다.”
강령의 효과로 인해 체온이 올라가서일까, 키가 170cm에 가까운 류히의 등에 업히니 그 체온이 전달되는데다 부축을 받으며 걷는 것보다 편해서 몸에 긴장이 풀어지려한다.
=얘들아, 달릴 수 있겠지?=
=응! 이정도면 계속 달릴 수 있어!=
=네. 할 수 있어요.=
고개를 끄덕인 류히가 먼저 나서서 달리기 시작하자 각자 짐을 진 세 소녀도 그 뒤를 따랐다.
환인과 여자들은 3시간이 지나서야 쌍둥이산의 계곡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10분씩 쉬지 않았다면 1시간은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4명에게 계속 강령을 거는 것은 환인에게도 부담이었던데다 녹색 작은 영혼이 떨어질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른 영혼 기술과 다르게 강령은 훈기의 소모가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 나름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어? 여긴가봐! 저기 나무에 회색사슴이 걸려있어! 앗, 물 속에 껑충걸음도 있다!=
=은인님이 사냥해놓은 고기인가보네. 우리도 저기 걸어놓자.=
=응!=
수십 킬로그램의 사체를 짊어지고 3시간을 달린 후이니와 엔넬은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마찬가지로 환인을 업고 뛴 류히도 가슴골에 땀이 흘러내릴만큼 땀에 절은 상태.
환인을 절벽에 조심스레 앉혀놓은 류히가 에프니스에게 말했다.
=빈 나무 술병에 물 좀 떠오렴.=
=강물이 너무 차가운거 같아서 미리 떠놓은게 있어요.=
=착하네. 은인님, 물 좀 드셔보세요.=
류히의 도움으로 미지근한 물을 겨우 삼킨 환인이 힘들게 손을 들며 말했다.
“……이 절벽, 위에…… 동굴이, 있습…니다. 덩굴에 가려진…….”
여자들의 시선이 환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본다.
“밤에… 어떤 짐승이, 내려올지 모르니……. 저곳에서, 쉬어……야…….”
몇 시간 사이 환인의 몸 상태는 최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몸은 쉴새없이 떨리고 식은땀은 비오듯이 흐른다. 팔다리에 감각도 사라져가는 중이다.
환인은 직감했다. 지금 정신을 잃으면 그때부터 진짜 목숨의 고비가 시작될 거라고.
어떻게든 동굴 안으로 들어가야 안전해질텐데 지금 몸상태로는 절대 5m의 절벽을 기어오르지 못한다.
이대로 모든걸 여자들에게 맡기고 운에 기대야하는 건가하는데 후이니가 류히와 에프니스의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은인님! 엔넬 절벽 엄청 잘 타요! 혼자서 산만한 절벽도 탄적 있어요!=
“…….”
=은인님. 저한테 힘의 축복을 걸어주세요. 은인님을 동굴까지 올려드릴게요. 저 할 수 있어요.=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군. 환인은 남은 영혼 구슬 중 쿠아르의 하급 영혼 구슬로 엔넬에게 강령을 걸어주었다.
몇 퍼센트긴 하지만 신체 능력이 더 오를테니 좀 더 안전하겠지.
=어? 왠지 절벽이 그냥 평범한 비탈길처럼 보여…….=
=응? 무슨 말이야?=
=그렇다는 말.=
혹시 흑퓨마의 기술은 산 타기인가. 환인은 더 이상 말을 할 기운도 없어 눈을 감았다.
류히는 그걸 보며 서둘러 움직였다.
=엔넬, 이리와.=
환인을 엔넬이 업을 수 있도록 도와준 뒤 언덕 동굴에서 챙겨온 동물 가죽으로 엔넬과 환인을 꽁꽁 묶는다. 엔넬의 키가 140cm밖에 되지 않아 환인의 다리가 끌리는 상태였지만 벽을 탈 예정이라 문제는 없다.
=나 먼저 올라가 있을게!=
위에서 잡아줄 사람도 있어야한다는 류히의 말에 후이니가 원숭이처럼 벽을 타고 올라가 풀줄기를 치우고 동굴에 먼저 들어갔다.
=에프니스, 언니 어깨를 밟고 서렴. 엔넬이 오르기 시작하면 밑에서 받쳐서 균형을 잡아줘야해.=
=네.=
가장 키가 큰 류히가 어깨 위에 에프니스를 세우고 절벽에 손을 짚으며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에프니스의 보조를 받으며 엔넬이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조심해야해! 은인님을 떨어트리면 안돼!=
=네!=
류히와 에프니스의 키를 합치면 3.3m, 뒤에서 잡아주고 밀어준 덕분에 금방 4m까지 기어오른 엔넬은 후이니가 위에서 손을 뻗어준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환인을 동굴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우와, 동굴 안쪽 엄청 선선하다. 앗! 안쪽에 말리고 있는 고기도 있어! 짚침대도!=
=아! 은인님 정신 잃으셨어! 후이니, 구경하지말고 빨리 은인님 내리는거 도와줘!=
=어어?!=
이어서 어렵게 절벽을 기어오른 류히가 에프니스도 끌어올려준 뒤 동굴 내부를 확인하며 살짝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안전하면서도 머무르기 좋은 동굴을 발견한 걸까.
환인이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동굴이 있는 것도 몰랐을만큼 잘 숨겨져있다. 높이도 높이라 짐승은 커녕 괴물도 올라오지 못할 높이까지.
‘은인님이 억지로 움직이신 이유가 있었어.’
통로에는 나무 그물 위에서 고기조각이 말려지고 있었고 먹을 수 있는 야생 열매와 야채도 잔뜩 쌓여있었다.
이정도면…….
=언니! 류히 언니! 은인님 정신 잃으셨어요! 빨리 와주세요!=
=지, 지금 갈게!=
류히가 깜짝 놀라 동굴 안으로 달려가는 사이 밖에서 정찰하던 비상식량도 동굴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기절한 환인을 보자마자 날개를 파닥거리며 꽥꽥 울어댄다.
꽥? 꽥!! 꽥꽥!!
내 친구 왜 이래? 빨리 내 친구 따뜻하게 해줘!
재촉하는듯한 비상식량의 행동에 신경쓸 틈도 없이 류히는 그를 간호하기 위한 준비물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엔넬. 가서 빈 술병에 최대한 물을 많이 담아오렴. 후이니는 같이가서 불을 피울만한 장작을 패오고.=
=네.=
=응!=
에프니스와 함께 잠자리를 다듬어 환인을 눕힌 류히는 이마며 뺨, 목덜미에 손을 대보면서 환인의 체온을 체크한다.
=언니, 물 떠왔어요.=
=여기 그릇에 물을 부어주고 계속 물을 떠와주렴. 에프니스는 같이 은인님의 몸을 닦자.=
=네.=
=응.=
이 미궁을 탈출하려면 은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류히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필요하다면 숲의 약초를 찾아 헤멜 각오까지 하며 환인의 주머니에 있던 붕대를 물에 적셔가면서 조심스럽게 식은땀을 닦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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