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038 초승달 바위산
* * *
갈색 괴물, 호브의 마을을 벗어난 환인과 여자들은 쌍둥이산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이 속도면 시속 3km 정도인가.’
초승달 바위산에서 쌍둥이산까지 직선거리는 강령을 쓰고 전력으로 달려서 약 20분, 대충 23km가량이다.
지금처럼 부축받으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속도라면 7~8시간은 걸어야 한다는 뜻.
전투 능력이 거의 없는 벌거벗은 여자 넷에 전투 능력을 일시적으로 완전히 상실한 환자 하나로 짐승과 맹수가 출현하는 숲을 7시간이나 걸을 수는 없다.
약 2시간을 걸어 계곡까지 이어진 강으로 나온 환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갑시다.”
=네엣. 후엑.=
=하아, 하아…….=
쉬자는 이야기에 후이니와 엔넬은 그대로 자갈밭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쉰다.
적지 않은 무게의 짐을 진 상태로 길도 없는 험한 숲길을 빠져나오느라 체력을 모두 소진한 모습이다.
두 여자의 배려로 적당한 바위에 앉은 환인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여자들의 몸을 살피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노리개 생활로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거겠지.’
에프니스가 이마에 들러붙은 밀짚색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퍼질러 앉아 헥헥거리는 두 소녀에게 말했다.
=엔넬, 후이니. 쉬어도 서서 쉬어.=
=왜에?=
=지친 상태에서 그렇게 주저앉으면 몸이 퍼져버려. 나중에 움직이기 더 힘들어질 거야. 봐, 류히 언니도 안 앉고 있잖아.=
=응.=
=네…….=
둘은 순순히 일어선다. 그리고 안 보는 척 환인을 계속 힐끔거렸다. 순수하게 걱정이 담긴 시선이었다.
그때 류히가 환인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은인님?=
“말씀하십시오.”
=계획에 지장이 없으면 조금만 더 쉬면 안 될까요? 다른 게 아니라 아이들이 맨발이라서 상처를 입고 있어요. 간이 끈 신발이라도 만들어주고 싶어서…….=
류히의 이야기에 환인의 시선이 그녀들의 맨발로 향했다.
그녀 말대로 소녀들의 하얀 맨발이 울긋불긋하게 변해있었다.
여자들이 오면서 몇 번 비틀거린 것을 생각해낸 환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환해진 얼굴로 꾸벅 허리를 숙인 류히는 에프니스가 동굴에서 챙긴 녹슨 검을 들고 강가 근처에서 자라고 있는 갈대 같은 식물을 한 아름 잘라 온다.
그리고 자갈밭에 허벅지를 벌린 자세로 앉아 솜씨 좋게 갈대를 꺾어가며 이리저리 끼우고 묶고 조이고 하다가 고작 4분 남짓한 시간에 쪼리 슬리퍼를 닮은 신발 한 짝을 만들어냈다.
한 두 번 만들어본 솜씨가 아님을 눈치챈 환인이 작게 감탄했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젊은 여자가 고작 풀줄기로 저렇게나 수준급 슬리퍼를 만들어낼 정도라면…….
‘역시 문명 수준이 높지 않은 세계인가 보군.’
입에서는 생각과 다른 말이 튀어나온다.
“훌륭한 실력이군요.”
=네? 아…… 가, 감사합니다. 집에서는 제가 다 만들다 보니…….=
대답하던 류히는 불현듯 아래를 봤다가 훤히 드러난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붉히며 슬그머니 허벅지를 오므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조리 슬리퍼를 만들어 나간다.
환인은 류히의 작업을 지켜보며 칼날 멧돼지의 혼을 강령했던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그건 틀림없이 강령의 부작용이었다. 수준에 맞지 않는 영혼을 다룬 부작용.
‘앞으로 처음 보는 영혼은 사전 확인 작업부터 거쳐야겠군.’
삼안견三??의 강령으로 위험성은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었지만, 일시적인 신체 변화 정도는 임기응변과 즉흥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임기응변 같은 게 통하지 않는 경우였다.
어이없이 목숨을 날리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한다.
‘위험성을 줄이려면 동료의 존재가 필요한가…….’
그나저나 칼날 멧돼지의 영혼을 감싸고 있던 아우라는 무엇인가 싶은 환인이었다.
그것 때문에 이런 부작용이 생긴 걸까.
“…….”
아우라의 유무에 따라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가설은 아닌 것 같다.
육족 말사슴은 사체만 봤는데도 중급을 넘어가는 존재였다. 그러나 말사슴의 혼은 아우라 같은 것이 없었다. 있던 것은 여자 영혼과 그 칼날 멧돼지 뿐.
“후우…….”
오한이 치밀어 한숨과 함께 몸을 떨자 후이니가 투박하게 깎은 나무 술병을 가져와 내밀었다.
=은인님. 아직 추우시면 이거…….=
“잘 마시겠습니다.”
작게 미소 지으며 술병을 받아주니 후이니는 몸을 살짝 꼬며 배시시 웃다가 종종걸음으로 동생에게 돌아간다.
사고의 주제가 바뀌며 환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후이니는 물론이고 예민한 감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에프니스, 청순하고 가련하게 보이는 류히마저 얼굴에 그늘이 없다.
그 사실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 환인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못해도 십여 일은 괴물에게 희롱당했을 것이다. 거기에 아는 사람이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봤는데 어떻게 저렇게 구김살 없이 웃을 수 있을까.
더욱이 벌거벗고 있어 부끄러울텐데도 칭얼거리거나 미적거리는 행동 없이 환인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단 머저리 같은 행동 때문에 발목을 잡히거나 짜증 날 일은 없을듯하니 다행이다.
=나 몸 씻을래. 에프 언니랑 앤도 같이 씻자? 몸에 묻은 거 기분 나쁘잖아.=
=그럴까.=
=……좋아.=
셋이서 속삭이다가 강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아 몸을 씻는 세 소녀를 바라보던 환인은 사람으로서 꽤 살기 힘든 세계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죽음에 익숙한 모습, 자연의 산물을 스스럼없이 이용하고 일찍 철이 든 듯한 모습까지…….’
벌거벗은 소녀들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돌린 환인은 짚신을 만드는 중인 류히에게 말을 걸었다.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대답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대답해드릴게요.=
“여러분들은 어쩌다가 괴물…… 호브에게 잡힌 겁니까.”
=음…… 자세히 설명하자면 긴데…….=
괜찮으니 류히가 조리 슬리퍼를 다 만들 때까지만이라도 부탁한다고 하니 머뭇거리다가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는 같은 마을 출신이에요.=
그녀들은 한마을에서 태어나 함께 자라온 사이로, 마을 근처 성수 올조트의 호수에서 어업을 하다 갑작스러운 성수의 분노에 휩쓸려 난파당했다고 했다.
성수 올조트가 뭐냐고 물으니 길이만 90m에 달하는 거대한 고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늘뿔 고래? 설마 그 호수라는 게…….’
=그때 일어난 해일에 배는 반으로 조각났고 배에 타고 있던 우리는 배에 매달려 겨우 목숨만 부지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짐승 신님께서는 우리에게 가호를 내려주지 않았죠. 우리는 미궁 중심부까지 밀려날 수밖에 없었어요.=
“……미궁은 무엇입니까?”
=네? 저…… 여기가 미궁인데요…….=
“……?”
=……?=
환인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기가 미궁이라니, 이곳은 숲과 산과 들판과 호수, 강이 있는 대자연 속인데?
그때 몸을 깨끗하게 씻고 온 에프니스가 몸의 물기를 손날로 닦아내면서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 은인님은 어떤 종족이세요?=
“인간입니다.”
=……??=
자신의 대답에 에프니스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것에 환인이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이 세계에는 인간이 없습니까?”
=그런 종족은 행상인들한테서도 들은 적이 없어요. 책에서도 세계는 루크랑과 플뢰, 프라우드, 플라비우스 사대 종족이 받치고 있다고…….=
사대 종족의 갈래로 루크랑에는 인랑족, 인묘족, 인원족, 인웅족 같은 수십 종류의 과?가 있고 플뢰도 숲, 바다, 산, 들판, 호수등의 과가 있으며 프라우드도, 플라비우스도 여러 과가 있을 뿐, 그 어느 종족에도 인간이라는 과는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마저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네. 미궁 중심부의 해변까지 밀려난 우리는 미궁에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에 겁먹고 무작정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뛰었어요.=
난파되면서 죽지는 않았지만, 미궁에서는 어떻게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적부터 들어왔기에 무작정 달렸다고.
그러나 자갈 해변은 어느 순간 끊어졌기에 하는 수 없이 숲으로 들어섰는데, 그때부터 일행은 이상한 힘에 이끌려 숲을 헤매게 되었고…….
=숲을 헤매느라 지쳐서 힘이 빠졌을 때 갈색 호브들이 습격해왔어요…….=
난파당한 인원은 일곱 명.
며칠간 이어진 괴물의 습격에 가장 싸움을 잘하는 언니가 먼저 죽고 나머지는 산채로 붙잡혀서 언덕 아래 동굴로 끌려갔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고 류히는 말했다.
계속 동굴 속에만 있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에프니스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환인은 류히에게 적당한 위로의 말을 건넨 후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를 계속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에프니스도 그점을 이해해서 말을 걸지 않았고.
조리 슬리퍼 같은 짚신 네 켤레를 만든 류히와 몸을 깨끗하게 씻고 온 후이니, 엔넬 자매가 돌아왔을 때 환인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이곳을 나가는 길은 알고 있습니까?”
=나가는 방향은 제가 어렴풋이 알고 있어요…….=
류히가 조심스럽게 손을 든다. 에프니스와 후이니, 엔넬 자매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면 무슨 일이 생겨도 류히만 살리면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단 말이군.’
그 생지옥에서 탈출시켜준 것으로 최소한의 도리는 다했다고 여기는 환인이었다.
물론 마을의 존재를 확인했으니 가능하다면 모두 살려서 데려갈 의도가 베이스로 깔려있지만, 한 명만 살려야 할 상황이라면 류히를 제외한 셋은 망설임 없이 포기할 것이다.
걸어서 쌍둥이산의 거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었다.
중간중간 사나운 짐승과 마주칠 뻔하기도 했지만, 비상식량이 적절한 때에 경보를 해주어서 싸움에 들어가는 일로 번지지는 않았다.
환인은 갑자기 치솟은 오한에 부르르 떨면서 새하얀 입김을 내뿜었다.
몸 상태가 호전될 생각을 안 한다.
환인의 하얀 입김을 봤기 때문일까, 좌우에서 부축해주며 체온을 나누어주던 류히와 에프니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묻는다.
=은인님, 괜찮으세요?=
“솔직히 좋지 않지만 움직일 수는 있습니다. 밤이 찾아오기 전에 도착해야 하니 계속 이동합시다.”
여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아가던 환인은 생각보다 일찍 위기와 맞닥트렸다.
중간에 수위가 얕아진 곳을 통해 강을 건넌 직후 가까운 풀숲이 크게 부스럭거리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움직임이 굳었다. 정확히는 여자들이 멈추어 섰다.
그것도 잠시, 류히가 각오를 다진 얼굴로 손도끼를 양손으로 잡고 앞으로 나선다.
후이니, 엔넬도 환인을 지키려는 모양새로 각자 부러지고 녹슨 검, 약간 휘어진 창을 쥐고 류히의 옆에 선다.
환인은 하늘에서 당황한 것처럼 빠르게 맴도는 비상식량을 보았다.
아무래도 바로 옆의 숲이 너무 울창해서 뭔가가 접근하는 것을 눈치 못 챈 듯 하다.
크르르르…….
들썩이던 풀숲이 좌우로 갈라지며 새카만 가죽의 퓨마 같은 짐승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온다. 족히 50kg은 될법한 덩치다.
그걸 본 후이니의 늑대 꼬리가 사타구니로 말려 들어 갔다.
=쿠, 쿠아르.=
귀까지 뒤로 납작 접혔다. 뒤에서 본 류히와 엔닐의 꼬리도 빳빳해진데다 폭발한 것처럼 털이 곤두섰다.
그때 환인의 시선은 쿠아르라고 불린 흑퓨마 두 마리의 주변을 맴도는 작은 안개 덩어리에게 향해있었다.
처음 보는 것이다.
‘저건 최하급 영혼인가? 하지만 작고 색도 조금 다른데.’
잠깐 사이 흑퓨마와 여자들이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이쪽의 여자들과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는 저쪽의 흑퓨마들.
환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슴뿔 지팡이는 지금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에프니스가 등에 메고 있는데, 지팡이를 건네받으려다간 자극받은 흑퓨마가 덤벼들어 대치 상태가 무너질 수 있다.
긴장이 넘쳐 몸이 뻣뻣하게 굳은 세 여자. 벌거벗고 있어 몸을 지킬 수단도 없고 전투 능력도 거의 없는 셋이다. 싸움이 벌어지면 순식간에 살해당할 거다.
류히가 죽거나 크게 다치면 자신이 한 고생이 모두 수포가 된다.
후아니와 엔닐만 앞에 있었다면 조심스럽게나마 지팡이를 건네받았을 텐데 길을 알고 있는 류히가 가운데 있고 흑퓨마들의 시선도 가장 키가 큰 류히에게 향하고 있어 움직일 수 없다.
환인은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대치 상태는 오래가지 않을 거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
그 때 환인은 흑퓨마의 주변에 떠 있던 3개의 작은 혼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르면 바로 올 것 같은 느낌.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라 곧장 세 영혼에게 이리 오라고 명령을 내리자 기쁜 듯 살랑거리며 다가와 환인의 손에 달라붙어 영혼 구슬로 변화한다.
‘최하급 영혼 구슬이다.’
동시에 환인은 직감했다. 지팡이 없이도 강령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된 건지는 제쳐두고, 환인은 흑퓨마들에게 죽이겠다는 의지를 날 세운다. 그것을 느꼈는지 흑퓨마 두 마리의 시선이 대번에 환인으로 향했다.
으르르르.
크우우우우.
“셋 중 누가 신체 능력이 좋습니까.”
속삭이듯 나지막히 말하니 후이니와 엔넬이 저요, 라고 짧게 대답했다.
루크랑 종족의 인랑족人??이라고 하더니 과에 따라 신체 능력도 다른 건가, 짧게 생각한 환인은 재차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둘에게 축복을 걸어주겠습니다.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나설 때까지 견제만 하면 됩니다.”
지금 몸 상태에서 세 번이나 강령을 펼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대로 다 죽는 것보다는 낫다.
환인은 지팡이를 쥐었을 때처럼 후이니와 엔넬에게 강령을 펼쳐보았다. 실제로도 강령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몸의 변화를 느낀 걸까. 사타구니 안쪽으로 말려 들어 갔던 후이니의 꼬리가 천천히 풀어지더니 귀도 쫑긋 선다.
엔닐은 어깨와 엉덩이가 불그스름하게 물들 정도로 몸에서 열을 내뿜고 있다.
확실하게 긴장이 풀어진 둘을 확인하며 환인도 자기 몸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괜찮다.’
강령을 두 번 펼쳤지만, 자신이 생각한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다. 한 번 정도는 더 펼칠 수 있겠지.
조심스레 허리로 손을 내린 환인은 손에 잡혀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속으로 혀를 찼다.
‘돌도끼를 회수하지 않았다니. 어지간히 정신을 놓고 있었군.’
후아니와 엔닐이 류히의 좌우로 슬금슬금 벌어지고 있지만 흑퓨마들은 여전히 류히와 환인을 주시하고 있다.
환인은 그것을 지켜보며 반대쪽 허리에 매인 끝을 뾰족하게 다듬은 흑곤봉을 쥔다. 그리고 빈손에 진주색 돌멩이를 쥐고 플라시보 효과를 바라며 마지막 남은 구슬로 자기 몸에 강령을 펼쳤다.
강령 직후 심장이 크게 뛰며 뜨거운 피를 확확 내보내니 전신에 열이 오르며 오한 속에 침잠되어있던 고통도 일시에 떠올랐다.
“……!”
끔찍한 격통에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득해졌지만, 일시적으로 오한이 사라졌다는 것에 환인은 오히려 고통을 반겼다.
고통쯤이야 인내하면 된다.
팔다리 관절이 삐걱거리긴 하지만 후이니와 엔넬이 옆에서 견제할 테니 이 정도 페널티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에프니스의 부축을 밀어낸 환인은 천천히 퓨마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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