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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37화 (37/813)

〈 37화 〉 037 초승달 바위산

* * *

파다다다닥!

하늘을 맴돌며 모든 과정을 지켜본 비상식량은 주위가 침묵에 잠겨 들자마자 재빨리 환인에게 날아갔다.

꽥!

그리고 대자로 드러누운 환인의 머리맡에 착지한 뒤 얼른 일어나라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피곤해서 잠든 건가? 하지만 여긴 괴물의 마을이다. 이대로 있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학습한 비상식량은 환인의 뺨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꽥, 꽤괙!

급기야 머리카락이며 귓불을 부리로 쭉쭉 잡아당겨도 보고 날갯죽지로 환인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기까지 해보지만…….

꽥…….

미동도 없는 환인의 모습에 비상식량은 한 가지 기억을 떠올리곤 구슬픈 울음소리를 흘렸다.

엄마와 동생들이 죽었을 때도 이렇게 움직이지 않았었다.

옆에서 일어나라고 아무리 난리를 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찾아온 짐승에 의해 엄마와 동생들이 먹히는 것을 나무 위에서 지켜본 비상식량은 그때 죽음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꽤액…….

언제나 믿음직스럽던 친구가, 맛있는 걸 꼬박꼬박 챙겨주고 나쁜 놈들도 혼내주던 좋은 친구가 수많은 괴물을 물리치고 괴물의 왕마저도 해치운 뒤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인상은 최악이었지만 이제는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비상식량은 처연한 눈으로 쓰러진 친구를 바라보다 뺨에 머리를 비볐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으, 은인님?=

그러다가 누군가 다가온 것을 뒤늦게 눈치채고 화들짝 놀라 경계하듯 날개를 활짝 펼쳤다.

꾸에엑!

다가오지 말라고 꽁지깃까지 바짝 세워 위협한다. 하지만 친구와 비슷하게 생긴 것들은 그런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와 죽은 친구를 에워싼다.

밀쳐지듯이 날아오른 비상식량은 분노가 깃든 눈으로 친구를 에워싼 민둥 괴물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히익! 이, 이거 뭐야? 숯덩이…… 괴물?=

=설마 이거랑 저것들 다 은인님이 죽인 거야?=

=몰라. 기분 나쁘니까 이거부터 치우자!=

퍼서석.

=언니……. 은인님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어떻게 해?=

=우선 은인님을 동굴 안으로 옮겨야겠어. 얘들아, 도와줘.=

꽤액!!

급기야 괴물 네 마리가 죽은 친구를 데려가려는 모습에 꽁지가 돌아버릴 정도로 화난 비상식량이 괴물들을 습격했다.

쏜살같이 하강한 비샹식량은 가장 작은 두 괴물의 머리카락을 발톱으로 움켜잡고 머리를 쪼고 날갯죽지로 친구에 비하면 연약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어깨며 얼굴을 찰싹찰싹 때린다.

꽥꽥! 꾸에엑!

=꺅! 이거 뭐야아!?=

=아야! 아야얏!=

하지만 습격도 잠시. 다른 두 마리 괴물 중 하나가 자신을 잡으려 들기에 재빨리 하늘로 도망쳤다.

=아파아.=

=으으. 피난다. ……어? 저 새 쿠에 아니야?=

=맞아. 나 녹색은 처음 봐. 은인님의 애완동물인가 봐.=

=……단단히 화난 거 같아.=

=우리가 은인님한테 해코지하려는 거라고 생각한 거 아냐?=

=얘들아, 이야기는 그만하고. 후이니는 저기 은인님의 지팡이를 다 가져오렴. 엔넬은 쿠에가 다가오면 잡아보고 에프니스는 언니가 은인님을 등에 업는 거 도와줘.=

=응!=

=네.=

=알았어.=

내 친구를 먹을 셈인가?

비상식량은 너무 화나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엄마만큼 컸으면 저런 것들 다 부리로 쪼아서 죽였을 텐데!

비상식량은 민둥 괴물들이 등을 보인 채 친구를 동굴로 데려가는 모습에 안절부절 하늘을 선회하다가…….

꽥!

친구를 등에 메고 있는 가장 큰 민둥 괴물의 목을 노리고 쏜살같이 하강했다.

비록 친구의 무기처럼 날카롭지 않은 발톱이지만, 친구가 하던 것처럼 목을 할퀴어볼 생각이었다.

=잡았다!=

꼬헥…?!

그런데 아뿔싸, 그것이 함정이었을 줄이야.

민둥 괴물 하나가 자신이 공격해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뒤돌아서 낚아채는데, 그 타이밍이 얼마나 절묘했던지 비상식량은 도망칠 날갯짓을 할 틈도 없었다.

비상식량은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며 몸에 힘을 뺐다.

엄마도 죽었고 평생을 함께 하려 했던 친구도 죽었다.

이대로 친구를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응? 언니, 얘 너무 얌전해요.=

=쿠에는 영리하잖니. 조금 있으면 우리가 은인님을 해치려는 게 아니란 걸 알 거야. 그때가 되면 놓아주렴.=

=네.=

나는 어떻게 죽는 걸까. 비상식량은 어두컴컴한 동굴로 끌려들어 가며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상상했다.

친구가 구워주던 고기처럼 나도 불에 구워지는 걸까. 아니면 잘게 썰려 햇빛에 천천히 마르게 될까.

아프지 않게 죽었으면 좋겠는데.

민둥 괴물들이 나뭇조각을 가져와 쌓고 솜씨 좋게 불을 피우는 장면에서 비상식량은 자신이 어떻게 죽게 될지 직감했다.

불에 타죽겠구나.

날개깃털 하나 꼼짝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붙잡혀있던 비상식량은 이윽고 민둥 괴물 둘이 친구의 가죽(옷)을 벗기기 시작하는 장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안 구워 먹어?

친구의 가죽을 다 벗긴 민둥 괴물들은 친구를 옆으로 눕히더니 앞뒤로 몸을 포갠다.

=후이니. 동물 가죽 덮어주고 밖에서 누가 오는지 귀 좀 기울여주겠니?=

=응.=

=엔넬은 쿠에 놓아주고 불이 안 꺼지게 살펴주렴.=

=네.=

민둥 괴물의 손에서 풀려난 비상식량은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왜 놓아주는 거지? 그리고 저건 뭐 하는 걸까.

……체온 나누기?

추운 밤이 찾아오면 동생들과 함께 엄마의 날개 밑에 옹기종기 모여 따스하게 보내던 기억. 그걸 떠올린 비상식량은 민둥 괴물들을 다시 살폈다.

=에잇.=

딱, 쩌적. 콰직.

불가의 작은 민둥 괴물은 나무를 길게 쪼개는 중이었고 입구 쪽의 민둥 괴물은 바깥쪽을 신경 쓰고 있다.

나머지 둘은 크고 넓은 가죽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친구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차가워…….=

=에프니스. 이렇게 하렴. 피부를 문질러서 체온이 오르는 걸 도와드려야 해.=

=응.=

혹시 이 괴물들은 착한 괴물인가?

긴가민가하며 서성이던 비상식량은 쫑쫑, 쫑쫑 이상한 소리에 그쪽을 돌아보았다.

제일 큰 민둥 괴물이 자신을 향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손짓하고 있었다.

친구가 저런 손짓으로 자신을 불렀었는데…….

속는 셈 치고 가까이 다가가자 민둥 괴물이 자신을 들어 친구의 목에 붙어있을 수 있게끔 자리를 내어주었다.

비상식량은 한참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기억했다.

그때도 친구는 괴물들과 크게 싸웠었고 상처를 입었었다.

그 후 둥지로 돌아와 쓰러진 친구는 아무리 불러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그러다 눈을 뜬 친구는 자신을 품에 끌어안고 다시 눈을 감았었다.

이 민둥 괴물들은 혹시 친구를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라 친구를 깨우려고 하는 게 아닐까.

제일 큰 민둥 괴물을 쳐다본다. 친구와 비슷한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며 손을 뻗어 자신을 쓰다듬는다.

꽥!

어딜 손대냐며 손등을 콱 쪼은 비상식량은 민둥 괴물들처럼 친구의 목에 바짝 붙어 몸을 웅크렸다.

자기 체온이 친구에게도 전달되도록.

‘……춥다.’

무언가가 가슴을 쓰다듬는 느낌에 겨우 정신을 차린 환인은 눈도 뜨지 못하고 작게 몸을 떨었다.

한겨울의 북극 얼음대지 위에 알몸으로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오한이다.

심장이 멈출 것만 같다.

꽥…! 꽥꽥……!

귀에 비상식량의 울음소리가 아련하게 울린다.

환인은 의식이 몽롱한 와중에 손가락을 꿈틀 움직였다. 사람의 따스한 살결이 손가락에 얽히며 얼어붙은 손을 녹여주는 느낌에 좀 더 힘을 줘서 그 뭉실뭉실한 것을 잡는다.

손뿐만 아니라 몸의 앞뒤로 뜨거운 살결이 붙어있다는 것을 깨달은 환인은 힘겹게 두 팔을 뻗어 품에 들어와 있는 온기를 끌어안는다.

몰랑몰랑하고 따스한 살결과 맞닿는 면적이 늘어났지만, 몸속을 점령한 혹한은 좀처럼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은인…… 정신…… 드세……?=

=……직 못…… 무의식…….=

귓가를 울리는 말소리에 눈을 뜨려고 해봤지만 눈꺼풀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 자극의 인식을 시작했기 때문일까. 의식은 점차 뚜렷해지고 있었다.

꿈결처럼 몽롱하던 의식이 선명해지며 울려 퍼지는 듯한 소리가 더욱 명확해진다.

=음~? 흐음. 근데 은인님 신기하게 생겼다. 플뢰라고 하기엔 귀가 짧고 셀핀 프라우드라고 보기엔 키가 너무 커.=

=우리 동족 아냐? 옅은 피의 인원족이 비슷하다고 들은 거 같은데.=

=꼬리가 없으신데?=

=…….=

두 소녀의 목소리가 오가다가 멈춘다. 잠시 침묵이 유지되다가 환인은 익숙한 목소리가 품 안에서 나는 것을 들었다.

=엔넬. 안쪽에서 술은 못 봤니?=

=있었……던 거 같아요. 가서 보고 올게요.=

=후이니도 같이 가렴. 상하지 않은 고기도 있으면 가져오고.=

=응!=

살짝 반사되어 울리는 목소리,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 눈을 뜰 수 없는 환인이지만 소리만으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대강 눈치챘다.

‘여기는…… 언덕 아래 동굴인가.’

괴물들의 포로로 잡혀있던 여자들이 자신을 이끌고 동굴로 다시 숨은 것일 테지.

체온이 이렇게 낮아져서 놀란 여자들이 몸으로 데워주고 있는 것일 테고.

정신을 잃기 전까지 대검 괴물은 살아있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건지 의문이 든다.

자신이 살아있으니 괴물은 죽었다는 뜻일 텐데…… 정신을 잃은 사이 광전사처럼 날뛰기라도 한 걸까.

그즈음 온몸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오한으로 감각이 둔해진 상태에서도 이만한 통증이라니, 전신 근육통에 전신 타박상에 전신 골절을 입은게 아닐까 싶은 고통이다.

꽥…….

비상식량의 힘없는 울음소리에 다친 건가 의아해할 무렵 발소리와 함께 소녀들의 목소리가 동굴을 울린다.

=류히 언니, 가져왔어요. 역시 있었어요.=

=고기도 아직 멀쩡한 게 있었어!=

=다행이구나. 가져온 고기는 굽고 술은 이리 줘보렴.=

콜롱콜롱하는 소리 뒤에 콜록, 기침과 함께 들리는 여자의 말소리.

=센피 열매를 삭혀서 만든 과일주네. 좀 독하지만 오히려 잘됐어.=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품속의 체온이 떠나간다. 있던 따스함이 사라지자 한기가 더욱 사무치게 느껴지는 가운데 환인은 상체가 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 푹신하고 말랑한 감촉이 머리 뒤를 받친다. 환인은 머리 뒤에 닿은 게 젖무덤이라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입술에 딱딱한 나무 질감이 닿더니 과하게 숙성되어 부담스러운 술 냄새가 콧속을 강하게 찔렀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액체.

=아, 다 흐른다.=

=음.=

이번에는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에 닿았다. 뭘 하려는지 눈치챈 순간 촉촉하고 말랑한 혀가 들어와 입술을 벌렸고 그 틈새로 술이 흘러들어왔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술을 일곱 모금 정도 마셨을까. 뱃속이 찌르르 울리며 미약한 열기가 오른다.

그 열기와 자극에 힘입어 환인은 겨우겨우 눈을 뜨는 데 성공했다.

“…….”

=앗, 눈을 뜨셨어!=

=다행이다아…….=

이제 15살, 혹은 1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 둘이 울상과 안도를 반반씩 섞은 얼굴로 숨을 길게 내쉰다.

꽥! 꽥꽥!

무릎 위에 올라온 비상식량이 여느 때보다 격정적으로 파닥거리는 모습에 환인은 힘들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다들, 괜찮습니까.”

조금 갈라지긴 했지만 목소리도 제대로 나온다. 술의 힘이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뒤에서 등을 받쳐주고 있는 진돗개 귀의 여자가 대답했다.

=네. 은인님께서 동굴 안의 괴물을 모두 해치워주셔서 무사해요. 은인님께서도 정신을 차리셔서 다행이에요…….=

“……!”

두 팔로 바닥을 받치고 상체를 일으키려 하니 헉, 소리가 절로 튀어나올 만큼의 격통이 척추를 관통한다.

그 고통을 참으며 비틀비틀 일어나려 하자 진돗개 귀의 여자와 리트리버처럼 접힌 강아지 귀의 여자가 좌우에서 부축해준다.

덕분에 한결 편히 일어선 환인이 여자들에게 말했다.

“여기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동하도록……! 후욱, 이동하도록 합시다.”

=저희는 괜찮지만 은인님의 몸 상태로 움직이는 것은 무리예요!=

“살아서 도망친 괴물을 다 합치면 열 마리는 넘을 겁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밤이 되면 괴물들이 돌아올 수 있으니……! …이곳을 벗어나는 게 중요합니다.”

열 마리나 되는 괴물이 돌아온다는 말에 여자들의 안색이 굳는다.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돗개 귀의 여자가 지시를 내린다.

=엔넬은 가서 은인님이 마실 술을 되는대로 챙겨와. 후이니는 고기를 챙겨오고 에프니스는 저기 있는 무기 중에 쓸만한 것을 챙겨.=

=어, 어? 지, 지금 굽고 있는 고기는 어쩌구?=

“고기는 지금부터 갈 곳에도 많습니다. 괴물들이 먹으려고 놔둔 고기가…… 멀쩡하다고 보긴 힘드니 버리고 갑시다.”

사무치게 추워서 영혼 시야조차 쓸 엄두가 나지 않는 환인의 이야기에 늑대 귀의 소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앗, 네!=

=은인님, 옷 입는 것을 도와드릴게요.=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진돗개 귀의 여자는 배우를 해도 될 정도의 미녀였다.

다른 세 명도 아직 어려 보이기는 해도 각자 느낌이 다른 미소녀들.

‘여자 영혼도…… 이 세계 여자들의 미모는 평균 이상인가 아니면 종족 특징인가.’

쓸데없는 생각을 치운 환인은 진돗개 귀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옷을 입은 뒤 모인 여자들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위험한 상황에 맞닥트렸을 겁니다.”

=그런 몸 상태로 일어나실 정도의 정신력을 지니셨으니 은인님은 어떻게든 살아남으셨을 거예요. 오히려 저희가 감사드려야지요. 모두 잡아먹히기 전에 괴물들을 죽여주셨으니까요…….=

여자들의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잡아먹힌다니. 자신이 오기 전에 먹인 사람이 있었던 걸까.

환인은 고통에 사고가 흐트러지는 것을 느끼며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그럼…… 출발합시다.”

동굴을 나오며 환인은 여자들과 통성명을 나누었다.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진돗개 귀와 꼬리에 회색 체모를 가진 여자 이름은 류히.

접힌 리트리버 귀에 평범한 털뭉치 꼬리, 밀짚색 체모를 가진 10대 후반의 여자 이름은 에프니스.

에프니스보다 한두살 어린 외모에 늑대 귀와 꼬리, 갈색 체모를 가진 두 소녀의 이름은 후이니와 엔넬.

후이니와 엔넬의 외모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류히의 말에 따르면 둘은 이란성 쌍둥이 자매였다.

“저는 성이 환, 이름이 인. 환인입니다.”

=서, 성족이셨어요……?=

에프니스가 반쯤 감겨있는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성족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바다 건너 대륙에서 성을 가진 고족님이나 호족님을 성족으로 부른다고…… 책에서 봐서…….=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목소리가 작아진다.

‘신기하군. 대화가 통하는 것도 불가사의한데 단어가 변환되어서 이해되는 것은 어떤 원리지?’

특권층을 고족高?이나 호족??이라 하는 것을 보면 귀족 비슷한 거라고 이해한 환인은 힘겹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전 고족도, 호족도 아닙니다.”

=네에…….=

믿지 않는 눈치지만 환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계속 대화를 하고 다리를 움직여서일까, 고통이 조금씩 익숙해지며 움직이는 것이 한결 편해진다.

그렇게 통로를 지나 동굴을 나오자 정오의 따가운 햇볕이 눈을 찔렀다.

손목을 힘들게 들어 올리자 박살 난 유리와 찌그러진 분침, 시침이 보인다.

‘이번 싸움으로 시계도 박살 나고 스마트폰도 망가지고 창날도 잃고……. 피해가 막심하군.’

그나마 영혼 구슬의 유지 시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시각을 유추할 수 있는 게 다행이다.

“저쪽입니다.”

쌍둥이 산이 있는 쪽을 가리키자 여자들이 그쪽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그때 기워붙인 듯한 큰 가죽에 술을 잔뜩 담아 등짐처럼 진 후이니가 잠깐만요! 하고 소리치더니 공터 한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후니?! 뭐 하는 거야!=

엔넬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달려간 후이니는 자기 상체만 한 어금니를 줍더니 다시 달려왔다.

=이, 이거. 성수의 어금니잖아. 아빠가 말했어. 성수의 이빨은 무지 좋은 무기의 재료가 된다고. 은인님이 잊으신 거 같아서 챙겨온 거야.=

지식이 없으니 이런 일에 반응하기 어렵다.

“잘했습니다.”

그러나 칭찬은 어지간한 상황에서 잘 통하는 행동 중 하나. 좋아하는 기색을 억지로 참는 후이니다.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본 환인은 어깨에 앉아있는 비상식량에게 경계를 부탁고 여자들과 함께 숲으로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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