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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35화 (35/813)

〈 35화 〉 035 초승달 바위산

* * *

갈색 괴물들의 노리개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여자들은 바깥에서 연신 들려오는 함성과 굉음, 포효를 들으며 떨고 있었다.

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니 미지가 가져다주는 공포에 천천히 잠식되고 있었던 거다.

저 굉음이 끝나면 또 끌려 나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 중 누군가가 또 산채로 잡아먹히는 게 아닐까.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상상에 질식해가던 중 어둠 속에서 쩍, 쫙, 무언가 쪼개지고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비명까지 들려와 더더욱 두려움에 떨던 도중.

피범벅이 된 덩치 큰 갈색 덩어리가 성큼 들어섰다.

여자들은 당연히 기겁했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은 괴물들이 비명을 지를 때마다 크게 즐거워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람 목소리라니?

“말이 안 통하면 곤란한데…….”

상황을 이해 못 해 굳어있던 여자들은 환인의 혼잣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알아들을 수 있어요!=

=이해해요! 이해한다고요!=

여자들이 입을 열자 귀가, 아니 머릿속이 찡­ 울리는 감각에 환인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아픈 것은 아니었다.

안 쓰던 기관이 처음 자극을 받은 것처럼 떨리는 느낌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여자들 중 진돗개와 비슷한 귀를 가진 여자가 젖무덤을 왼팔로 가리고 허벅지를 오므리며 일어서서 조심스레 묻는다.

=저희를 구, 구하러 와주신 건가요?=

또다시 찡­ 울리는 느낌.

고막에 닿는 소리는 아랍권 언어 같은데 환인은 신기하게도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예. 당신들의 지인이라 생각되는 여자의 영혼에게 부탁받았습니다.”

흡, 숨을 삼키며 놀라는 여자들.

“믿기 어려우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믿어요! 믿을 수 있어요!=

=믿을게요! 믿을게요…!=

다른 세 명도 벌떡 일어서더니 알몸이라는 것도 개의치 않고 울먹이며 고개를 흔들듯이 위아래로 끄덕인다.

얼굴에 이제 살았다는 희망이 번져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눈물을 훔친 진돗개 귀 여자가 환인의 뒤편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저어, 다른 동료분들은……?=

“저 혼자입니다. 일단 긴말을 할 때가 아니니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그리 말한 환인은 오면서 중간에 챙긴 무기를 여자들 앞에 쏟았다.

죄다 녹슬거나 반쯤 썩은 무기지만 이 정도면 잠깐 동안은 자기 몸을 지킬 수는 있을 것이다.

여자들은 혼자 왔다는 이야기에 표정으로 걱정과 우려를 표시했다. 그토록 많은 괴물 사이에서 고작 다섯으로 어떻게 탈출할 수 있단 말인가.

환인도 그걸 읽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다시 가죽을 두건처럼 뒤집어쓰며 말했다.

“이 동굴 안의 괴물은 대부분 죽여놨습니다. 남은 것도 모두 죽일 겁니다. 제가 나간 후 다른 괴물이 올지 모르지만, 제가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여자들은 환인의 담담한 태도를 보고 있자니 살아서 나갈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진돗개 귀의 여자가 환인이 떨어트린 무기 중 녹슨 단창을 집어 들며 물었다.

=밖이 무척이나 소란스럽던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당신들에게 좋은 일입니다. 큰 괴물 두 마리는 죽었고 나머지 셋도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작은 괴물들도 육십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

=……?!=

다섯이나 되는 그 괴물이 벌써 둘이나 죽었다고? 수백 마리가 넘는 괴물도 육십 마리 밖에 남지 않았고?

환인은 여자들이 놀람과 당황에 굳어있는 사이 방을 나와 안쪽으로 들어섰다.

다른 방에 비해 월등히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역시나 여기가 통로의 끝이었다.

정면의 가장 안쪽, 단상처럼 2단으로 만들어진 제단의 나무 의자 다섯 개.

저게 큰 놈들의 자리겠지.

왼편 벽에는 식량으로 보이는 더러운 고기들이 쌓여 파리떼를 날리고 있고 반대쪽은 짚을 깔아서 마련한 듯한 자리가 세 개 있다.

“…….”

방 가운데 불피운 흔적을 지나 의자 뒤를 살폈지만, 개구멍 같은 것은 없었다.

아쉬움에 혀를 작게 찼다.

‘개구멍이 있었다면 일이 수월해졌을 텐데.’

짐승 같이 살고 있지만, 습성까지 짐승은 아니었나 보다.

동굴에 살아있는 갈색 괴물이 없는 것을 확인한 환인이 여자들의 방을 지나치는데 진돗개 귀의 여자가 무기를 가슴께에 꼭 안은 모습으로 환인을 불러세웠다.

=은인님…….=

“무슨 일입니까.”

여자는 두려움이 언뜻 드러나는 얼굴로 짐승 귀를 뒤로 눕힌 채 말을 이었다.

=가장 큰 호브를 조심하셔야 해요.=

‘호브?’

정황상 갈색 괴물을 가리키는 단어로 보인다. 큰 호브는 큰 갈색 괴물.

=그 괴물은 피를 마셔서 상처를 회복하는 힘이 있어요. 내장이 드러나는 상처도 피만 마시면 조금 베인 수준으로 아물어요. 기력도 회복하는듯했어요.=

“크기 외에 특징은 없습니까?”

=몽둥이 같은 대검을 써요.=

대검 갈색 괴물인가. 흡혈마와 같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니, 상처가 적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나 보군.

진돗개 귀의 여자를 돌려보내고 밖으로 나온 환인은 통로 바로 앞에 둔기 갈색 괴물이 머리가 터져 죽어있는 것을 목격했다.

두 팔이 망가진 주제에 칼날 멧돼지 근처에서 얼쩡거리다 뒷발질에 직격당한 모양새였다.

‘멍청하군.’

혼이 그 주변을 떠돌고 있었기에 회수, 언덕 뒤로 돌아와 내려놓은 무기와 창을 다시 챙기며 공터에서 벌어지는 사투를 응시했다.

살아남은 큰 갈색 괴물은 대검과 장창 둘뿐. 하지만 칼날 멧돼지도 전신이 난도질당한 모양새로 피를 철철 흘리는 중이다.

세 마리는 서로 뒤엉키다시피 하며 마지막 생명의 불길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

칼날 멧돼지의 위용이 대단하긴 하다. 중하급인 큰 갈색 괴물 다섯을 상대로 그렇게나 날뛰다니.

20분가량 자신과 추격전을 벌여 스태미나를 상당 부분 소비한 상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체력이 멀쩡했다면 큰 갈색 괴물 다섯 마리는 첫 격돌에서 반수가 죽어나겠지.’

사슴뿔 지팡이와 창을 등에 비껴맨 환인은 단검만 들고 암살자처럼 공터를 둘러싼 작은 갈색 괴물들의 뒤편으로 이동한다.

목적은 작은 갈색 괴물의 숫자를 최대한 줄이는 것.

끕……!

시간이 5분도 채 남지 않은 야크(체력위주 신체강화)의 영혼을 강령한 환인은 가장 뒤편에 서있는 갈색 괴물의 주둥이를 손으로 틀어막으며 뒤로 끌어당긴 뒤 목을 그었다.

베인 단면에서 피가 푸슉 뿜어져 나오며 끅! 끕! 경련을 일으키지만, 피 냄새와 간헐적인 단말마는 괴물들이 만들어내는 사투와 작은 괴물들의 환호성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다.

죽은 갈색 괴물을 뒤로 내팽개친 환인은 다음 목표로 접근한다.

그렇게 환인은 은밀 기술을 총동원해 작은 갈색 괴물들을 하나씩 처리해나갔다.

중간에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돌아보는 괴물도 있었지만, 그런 괴물은 창으로 머리를 꿰뚫어 죽였다.

“흡!”

콰직.

창으로 또 한 마리의 두개골을 꿰뚫은 환인은 창에 실린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며 팔에 단단히 힘을 주며 들어 올린다.

팔뚝이 크게 부풀며 슬슬 헤어져 뜯어지려 하는 셔츠를 팽팽하게 만든다. 그 덕에 30kg이 넘는 괴물 시체가 창끝에 걸린 채 들어 올려지고, 뒤로 크게 휘두르자 괴물 시체는 삽시간에 숲속으로 사라졌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초.

바로 옆에 있던 동족이 사라졌지만, 괴물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큰 갈색 괴물과 칼날 멧돼지의 피비린내 나는 사투에 몰입해서 옆, 뒤에서 동족들이 죽어 나가도 모르는 것이다.

사투의 당사자들은 상대에게 집중하느라 모르고.

그러다 숫자가 20마리까지 줄었을 때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괴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한 것처럼 어리바리하게 굴 뿐이다.

20마리는 환인이 일부러 살려둔 숫자였고, 그즈음 환인은 언덕으로 돌아와 있었다.

곧 자신이 나설 차례다.

이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지도 어느덧 한 달을 넘었다.

‘아니…… 40일째인가? 날짜 감각이 희미하군.’

그간 환인은 영혼을 다루는 초능력을 얻고 훈기??와 한기??에 대한 기초 개념을 세운 뒤 몇 가지 실험과 테스트를 꾸준히 해왔다.

영혼 구슬을 리필할 때 발생하는 잉여 영혼과 유지 시간 초과로 사라질 영혼 구슬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것저것 실험해본 것이다.

초능력의 특성상 테스트 횟수가 많진 않았지만 어찌어찌 성과를 낼 수 있었는데, 그것은 기술을 장전해놓고 22분가량 유지하는 방법과 약 10분가량 영혼을 끌고 다니는 것이었다.

최대 4개의 영혼을 기술로 장전한 채 움직이거나 일부 영혼을 대동해서 다니는 기술.

두 방법 모두 지속 시간에 따라 훈기가 꾸준히 소모되기에 평소에도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훈기를 게임에 빗대 설명하자면 MP(magic point, mana point)를 예로 들 수 있다.

훈기는 줄어들수록 페널티가 가혹해지기 때문에 기술을 남용할 수 없다.

그러나 기술의 형성에서부터 발사까지, 영혼 폭발의 폭발 순간을 제외하면 상대에게 보이지 않고 최대 보유 수량을 초과해서 잠시나마 운용할 수 있기에 유용성은 적지 않은 편.

환인은 바로 지금, 그 기술로 4개의 영혼 구슬을 소비해 영혼 화살을 장전한 상태였다.

중하급 1개, 하급 1개, 최하급 2개를 섞은 어드밴스드 소울 에로우 쯤 된다.

위장을 위해 몸에 묶었던 더러운 가죽을 모두 풀어냈을 때였다.

쿠워어억……!!

쿠웅­

칼날 멧돼지가 대검 갈색 괴물의 풀스윙에 옆머리를 얻어맞고 앞다리를 꿇는다.

온몸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져 죽기 일보 직전인 몰골이 참혹하다.

“후우.”

환인은 큰 갈색 괴물의 영혼을 강령한 뒤 망설임 없이 경사가 급격하게 진 비탈을 뛰어내렸다.

거의 직각에 가까운 높이 20m의 비탈이었지만, 환인은 요령 좋게 발뒤꿈치로 속도를 줄이다 훌쩍 뛰어올라 아무렇지도 않게 공터에 착지한다.

쿵.

환인의 착지 소리에 건방진 멧돼지의 머리통을 으깨버리려던 대검 갈색 괴물은 처음 보는 침입자의 출현에 흠칫, 근육을 경직시키며 새빨간 눈으로 환인을 노려보았다.

괴물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 나타난 침입자에게서 불가사의한 감각이 느껴진다고.

“…….”

태연한 태도의 환인이 못마땅했을까, 아니면 환인에게 느껴지는 감각이 불안했을까.

철창이라기보다 철 막대기라고 해야 할 무기를 쥔 큰 갈색 괴물이 꾸워어어억 포효를 지르며 환인에게 달려든다.

‘근육이 아니라 비계군.’

가까이서 본 큰 갈색 괴물은 몸 곳곳에 군살이 비대하게 붙은 체형이었다. 몸무게도 적지 않은지 달음박질 소리가 쿵쿵 요란하다.

환인의 눈이 갈색 괴물의 팔다리 움직임을 읽는다. 그 기준으로 공격 패턴을 예측한 환인은 철창 갈색 괴물의 정직한 찌르기를 살짝 피하며 창대를 힘껏 올려 쳤다.

따아악!!

꾸웍?!

철창 갈색 괴물의 자세가 완전히 무너져 만세 하듯 두 팔이 위로 치솟는다.

‘큰 갈색 괴물의 강령 효과는 근력 상승 특화군.’

환인도 손아귀에 강한 반발이 전해짐을 느꼈었다.

힘 위주로 신체를 강화해준 큰 갈색 괴물의 강령이 아니었다면 이만큼 완벽하게 쳐내지 못했겠지.

끄롹!

만세 하듯 두 팔을 들었던 철창 갈색 괴물이 황급히 물러나며 자세를 되돌리려 했지만, 그 순간 칼날 멧돼지에게 들이받혀 꺼멓게 죽은 옆구리에서 날카로운 고통이 일어나 입을 쩍 벌려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뒤늦게 눈앞의 말라깽이에게 찔렸다는 것을 깨달은 괴물이 시선을 내린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벌어진 상처 부위에서 꺼멓게 죽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내가 언제 찔렸지?

“적을 앞에 두고 한눈팔다니, 대단하군.”

앞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철창 괴물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지만 늦은 판단이었다.

왼쪽 눈에서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진 것도 잠시.

철창 괴물은 의식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풀썩 쓰러졌고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

괴물의 왼눈을 깊게 찌른 창을 뽑아낸 환인은 창 끄트머리에 걸린 뇌수를 털어내고 대검 갈색 괴물에게 시선을 주었다.

환인의 무표정한 시선에 대검 괴물이 들창코로 거친 콧숨을 푸우욱 내쉰다.

저 검은 창을 든 놈은 뭐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거지? 왜?

잠시 생각하던 대검 괴물은 머리가 아픈게 싫은지 한 손에 쥔 대검을 신경질적으로 쾅쾅 땅에 내려치기 시작한다.

꽤 머리가 나쁜 행동이지만 환인은 방심하지 않았다.

지켜본 바에 따르면 큰 갈색 괴물의 싸움을 힘과 본능에만 의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인 자신도 마찬가지다.

덩치가 힘과 본능에 의존한다면 자신은 직감과 반사신경에 의존하니까.

손가락 굵기만 한 핏줄로 뒤덮인 근육이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가운데 대검 괴물이 환인을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며 끄르르르르, 낮게 으르렁거렸다.

핏발선 눈으로 그르렁거리는 대검 갈색 괴물의 행동은 ‘지금부터 널 박살내겠다.’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환인도 냉소를 지으며 양손으로 창을 쥐고 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그래. 너만 죽으면 이 마을은 끝이다.”

쿠왁!!

짧은 포효와 함께 대검 괴물이 훌쩍 뛰어올랐다. 그 속도는 여태까지 본 생물 중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

예상 착지 지점은, 예상이라 할 것도 없이 자신이 서있는 이곳. 큰 갈색 괴물 영혼을 강령했으니 착지 후의 빈틈을 노리면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저놈만 근육이 각 잡혀있어.’

꽤 양보해서 근육돼지, 혹평하면 비계돼지 수준인 다른 네 마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체격이었고 혼자 상처 없이 멀쩡해 보인다.

진돗개 귀의 여자가 해준 경고도 있고 잠시 상대를 분석해볼 생각으로 조금 여유를 줘서 자리를 피한 환인이었다.

그런데…….

꽈광!!

대검 괴물이 낙하와 동시에 무기로 땅을 내려쳤을 때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것을 목격한 환인은 습관적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만약 빈틈을 노렸다면 저 파편에 일차적으로 몸이 굳었을 것이고 직후 이어진 대검 괴물의 공격에 큰 낭패를 봤겠지.

‘예상보다 힘이 몇 배는 더 세다.’

다른 큰 갈색 괴물보다 조금 더 센 수준이 아니다. 자신이 중하급 강령을 펼치기 전과 후 정도로 크게 차이 난다.

어떻게? 갈색 괴물은 개체의 차이가 극명한 건가?

쿠와아악!!

땅에 깊게 팬 자국을 낸 대검 괴물은 환인을 향해 재차 도약했다. 이번에는 포물선이 아닌 직선 돌격이다.

이번 공격 또한 쏜살만큼이나 빨랐지만 대비하고 있어서일까. 움직임을 확실하게 포착한 환인은 직선 돌격이 만들어내는 커다란 빈틈을 노려 창을 슬쩍 내밀었다.

워낙 빠른 속도였기에 대검의 리치 밖에서 창날을 살짝 가져다 댄 것만으로 옆구리에서 허벅지까지 기다란 자상이 남는다.

콰아아악!! 쿠와아아아­!!

피, 그것도 자기 피를 본 대검 괴물은 이제 흰자위가 보이지 않을 만큼 충혈된 눈을 번들거리며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저 환인이라는 적을 향해 힘과 체력이 받쳐주는 한도 내에서 마구잡이로 대검을 휘두른다.

단단하게 다져진 땅을 몇십 센티미터나 쪼개는 힘이다. 대검은 눈에 보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그리고 강맹하게 대기를 찢어발긴다.

때때로 쏜 화살처럼 빠르게 점프해서 덮치기도 하지만, 환인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 모든 공격을 피하며 슬쩍슬쩍 창날을 가져다 대 상처입힐 뿐이다.

‘육체 내구도는 흡혈마와 다를 게 없지만, 공격이 너무 빨라.’

빈틈이 훤히 보이지만 제대로 피해를 안겨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하는 거라곤 이렇게 무기를 가끔 가져다 대면서 베인 상처를 늘리는 것뿐.

꾸워어어엌!!!

몇 번의 대치가 이루어지자 대검 괴물이 자기 가슴을 쾅쾅 치면서 포효한다. 그리고 어떤 징조도 없이 발로 땅을 차서 흙모래를 뿌렸다.

“!?”

따다닥, 티디디디딕­

황급히 전개한 영혼방패에 모래와 자갈이 부딪쳐 튕겨나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더욱이 뿌연 먼지가 확 피어올라 시야까지 가린다.

그순간 들려온 쿵, 하는 진각 소리.

‘왼쪽.’

소리에 담긴 미세한 차이를 포착해낸 환인은 상체가 땅에 닿을 만큼 바짝 엎드렸다.

직후 왼쪽의 뿌연 먼지가 확 갈라지며 대검 괴물이 야차 같은 표정으로 튀어나왔다.

끄륵?

적을 대검으로 쪼개버릴 것처럼 등장한 대검 괴물은 적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흙먼지와 모래를 뒤집어쓴 적은 언제나 손쉬운 먹잇감이었는데 그 먹잇감이 사라졌다.

처음 겪는 현상에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려던 대검 괴물은 불시에 가슴이 뜯어지는 듯한 격통을 느끼고 쿠왁,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냈다.

이게 무슨?

뒤를 돌아보니 적, 침입자가 왠 이상한 지팡이로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가슴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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