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034 초승달 바위산
* * *
환인은 칼날 멧돼지가 벼락을 쏘는 것을 이제야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이마에 돋아난 번개 모양 칼날이 하얗게 떨리며 웅 소리를 내고, 멧돼지가 머리를 움직여 각도를 조절, 그리고 발사.
가느다란 실만큼이나 얇은 벼락 한 가닥이었지만 위력은 대전차 로켓이나 다름없었다.
꽈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에 적중당한 큰 갈색 괴물 한 마리가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간다.
크허어어엉!!!
이어 호랑이처럼 울부짖은 칼날 멧돼지가 가까이 접근한 네 마리 큰 갈색 괴물과 드잡이질을 시작했다.
큰 갈색 괴물의 전투 방식은 힘자랑에 기반한 막싸움이었다.
무식하게 팔을 휘두르고 다리를 내지른다.
달려드는 칼날 멧돼지의 어금니를 붙잡고 힘겨루기를 시도하고 칼날 멧돼지의 등에 올라타 척추에 주먹을 꽂는다.
뒷다리 허벅지를 미들킥으로 걷어차고 긴 꼬리를 붙잡고 버텨낸다.
그런 공격이 쏟아질 때마다 칼날 멧돼지의 움직임이 봉쇄되지만 그것도 일순간뿐.
칼날 멧돼지가 고개를 세차게 뒤흔들자 멧돼지의 어금니를 붙잡고 있던 큰 갈색 괴물이 풍차처럼 휘둘린다.
멧돼지의 뒷다리를 미들킥으로 걷어차던 큰 갈색 괴물과 꼬리를 잡고 있던 괴물은 멧돼지의 발길질에 얻어맞아 나가떨어졌고 등에 올라탄 괴물은 로데오를 하는 말처럼 날뛰는 멧돼지의 털을 움켜잡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다.
비록 잠시였지만 수 톤이 넘어가는 소형 버스 사이즈의 멧돼지를 힘으로 억눌렀다는 것은, 덩치에 걸맞지 않은 힘을 지녔다는 증거다.
‘물리 법칙에 맞지 않는 힘……. 저 힘도 초능력과 관련이 있는 건가.’
쿠아악!!!
끄거걱!
칼날 멧돼지가 탈춤을 추듯 번개 모양 칼날을 마구 휘두르니 큰 갈색 괴물들이 황급히 거리를 벌린다. 괴물들도 이마의 번개 모양 칼날이 위험하단 것을 깨달은 모습이다.
큰 갈색 괴물들이 수세에 몰리는 것을 지켜보던 환인의 시선이 처음 벼락을 맞고 나가떨어진 큰 갈색 괴물에게 향했다.
번개에 직격당한 괴물의 흉부는 새카맣게 탄화된 상태였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꿈틀거리고 있더니 그사이 숨을 거둔 듯 사체에서 영혼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중하급이군.’
하급보다 선명하고 진한 색의 영혼 구슬을 회수하며 환인은 고민에 빠졌다.
염료를 발라 원주민 주술사처럼 분장한 놈들도 자신처럼 영혼을 다루지 않을까 짐작했었다. 세 마리 전부는 아니더라도 한 마리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한데 예상 밖으로 강령을 펼치긴 커녕 도움도 주지 않고 평범한 다른 괴물들처럼 그저 끽끽거리며 펄쩍펄쩍 뛸 뿐이다.
환인은 강령을 염두에 두고 전력의 차이를 분석해 칼날 멧돼지를 유인했다.
숫자의 싸움도 있어 칼날 멧돼지가 조금은 불리할 거라 생각했고, 여차하면 강령으로 멧돼지를 서포트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패를 까보니 갈색 괴물 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중이다.
“…….”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중에 환인은 아래쪽 통로에서 모습을 드러낸 작은 갈색 괴물들을 보고 눈을 번뜩였다.
작은 괴물 여러 마리가 배틀 액스만큼이나 거대한 돌도끼와 통나무를 통째로 가공한 듯한 방망이, 몽둥이처럼 뭉툭한 철제 대검 등을 낑낑거리면서 운반하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까지 가지 않고 통로를 나와 입구 근처에 무기를 집어 던진 뒤 도망갔지만, 큰 갈색 괴물들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으로 보였다.
시종일관 얻어맞기만 하던 네 마리가 날듯이 뛰어가서 무기를 하나씩 집어 든다.
꾸와아악!!
꿔어어엌!!
그리고 “이제 해볼 만하지!”하는 표정으로 포효를 지르며 칼날 멧돼지에게 달려들었다.
이제야 저울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기 시작한다.
시종일관 방어만 하던 큰 갈색 괴물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칼날 멧돼지에게 피해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칼날 멧돼지의 어금니를 붙잡고 힘겨루기를 시작하던 큰 갈색 괴물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칼날 멧돼지의 정면에서 자기 키만 한 뭉툭한 대검을 한 손으로, 때로는 양손으로 자유롭게 휘두르며 멧돼지의 신경을 자신에게 끌어당기고 있었던 거다.
끄롸라락!!
크허어엉!!!
쾅! 까강!! 따다다당!
대검과 어금니, 번개 모양 칼날이 부딪칠 때마다 굉음과 함께 불똥이 튄다.
‘힘과 반사신경만큼은 대단하군.’
근력은 중하급 영혼 구슬로 강령을 펼친 자신보다 족히 1.5배는 강해 보인다.
거기에 칼날 멧돼지가 무섭게 휘두르는 1m 길이 어금니와 번개 모양 칼날을 죄다 맞받아치는 것만 봐도 반사신경이 뛰어나다는 증거다.
그렇게 대검 갈색 괴물이 앞에서 탱킹을 하니 둔기, 도끼, 창을 든 갈색 괴물들이 훨씬 수월하게 칼날 멧돼지에게 피해를 쑤셔 넣는다.
통짜 쇠로 이루어진 창이 거죽을 긁으면 미세하게 찢어지고, 양날 돌도끼와 거대 둔기가 찍히면 칼날 멧돼지가 신경질을 부리듯이 뒷발질을 한다.
큰 갈색 괴물들이 무기를 들자 힘의 무게추가 천천히 갈색 괴물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칼날 멧돼지가 대검 갈색 괴물뿐만 아니라 다른 괴물에게도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게 그 증거다.
“…….”
점차 몸에 상처가 늘고 있는 칼날 멧돼지의 모습에 환인은 재차 고민에 빠졌다.
큰 갈색 괴물의 영혼이 중하급이라지만 같은 중하급이던 흡혈마보다 훨씬 강해 보인다.
그런 괴물 네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는 칼날 멧돼지는 그보다 훨씬 더 센, 어쩌면 영혼이 중급일지도 모른다.
‘칼날 멧돼지에게 강령을 써야 하나. 하지만 힘의 균형이 엇비슷한데.’
수치로 따지면 괴물이 10, 멧돼지가 9쯤 된다.
가진 최하급 영혼으로 강령을 펼쳐주면 그 즉시 힘의 균형이 10:11 정도가 되면서 갈색 괴물 쪽이 열세에 빠질 거다.
여러 개체의 힘이 평균적으로 상승하는 것보다 단일 개체의 힘이 상승하는 쪽이 힘의 집중 면에서 훨씬 뛰어날 테니까.
“…….”
꽥, 꽥꽥. 꽥꽥.
풀숲 속에 엎드려 공터의 4:1 싸움을 지켜보던 환인은 하늘을 선회 중인 비상식량의 경고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언덕 아래를 살폈다.
작은 갈색 괴물들이 무기답지 않은 무기를 꼬나쥐고 언덕을 조심스레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적이 언덕에 숨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듯한 모양새.
공터로 시선을 돌린 환인은 주변에 돌아다니는 영혼에게 명령을 내려 칼날 멧돼지와 대검, 도끼 갈색 괴물에게 최하급 강령을 펼쳐주었다.
‘한쪽에 걸어주는 걸로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면 양쪽에 걸면 그만이지.’
네 마리중 특히 잘 싸우는 둘과 칼날 멧돼지에게 강령을 건 환인은 자신도 강령을 받은 뒤 언덕 중간까지 올라온 갈색 괴물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쿠워어어어!!!
끄아아아아악!!
꽈라라락!!
강령의 고양감 때문인지 등 뒤로 괴물들의 포효가 작은 괴물들의 함성과 함께 크게 터져 나온다.
환인은 전투를 계속 지켜보지 못해 아쉽다고 생각하며 순식간에 갈색 괴물들에게 접근.
끼익!?
촤악! 파바바박!
창을 번개같이 휘둘러 두 마리의 목덜미를 베고 세 마리의 허파에 창을 찔러넣었다.
히힉, 히헥.
끄르르를…….
다섯 마리가 단숨에 무력화되어 쓰러진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언덕의 왼편과 오른편에 셋과 다섯의 작은 괴물이 더 모습을 드러낸다.
꾸와아아악…!!
크허허허허헝…!!!
갈색 괴물들이 환인을 삿대질하며 뭐라고 소리치지만, 공터 쪽에서 터져 나오는 포효가 워낙 커다래 소리가 묻혀 들리지 않았다.
환인은 안심하고 영혼 구슬을 발사…….
‘음.’
……하려다 목표지점을 괴물들의 주둥이 속으로 재설정, 영혼 구슬을 날렸다.
그리고 폭발.
퍼버벙.
두 발은 빗나갔지만 세 발은 목표한 대로 갈색 괴물의 입안에서 터졌고 즉시 머리가 사라졌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털썩 쓰러지고, 빗나간 두 발도 머리 근처에서 터지며 의도한 수준은 아니지만, 대상을 기절에 빠트릴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다.
즉흥적인 발상으로 시도해본 건데 꽤 쓸만한 방식이었다.
조작에 정신을 집중해야 하고 명중의 난도가 높다는 단점이 있지만, 명중률과 정신 집중은 연습으로 해결될 것이다.
오른편의 다섯 마리를 침묵시킨 환인은 도망치려는 듯이 등을 보이는 왼편의 세 마리에게도 달려가 한 방씩 굵은 창침을 놓아주었다.
등뼈와 목뼈가 부러진 세 마리가 힘없이 풀썩 쓰러진다. 이어 빠져나오는 영혼을 갈무리한 환인은 허파에 바람구멍이 난 세 마리와 기절한 두 마리도 확인 사살한 뒤 소비한 영혼 구슬을 채운다.
꾸엑 꽤괙.
하늘에서 비상식량의 경고가 재차 날아왔다.
아무래도 이쪽에서도 전투가 계속 이어질 듯 하다.
끼야아앗……!!
쿠아아아악……!!!
환인은 언덕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음으로 큰 갈색 괴물과 칼날 멧돼지의 전투 양상을 짐작하며 계속 몰려오는 작은 갈색 괴물을 도살해나갔다.
캬호오오옼……!!
우꺄아아아……!!
최대한 간결하고 짧은 동작으로 급소라고 할 수 있는 폐와 목을 중점적으로 노리던 환인은 언덕 너머에서 갑작스레 터져 나온 괴성과 포효에 미간을 좁히며 언덕 너머 쪽을 바라본다.
주변에는 아직 살아있는 갈색 괴물이 열 마리가 넘게 있었지만 환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멧돼지가 득점을 얻은 건가.’
작은 괴물들의 포효에 분노와 짜증이 스며들어있었다. 그게 뜻하는 것은 하나.
“…….”
환인은 사방에 널린 수십 구의 동족 시체 사이에서 기가 눌린 듯 덤비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작은 괴물에게 시선을 돌렸다.
끼힉…!
환인의 무표정 어린 시선에 한 마리가 나무 몽둥이를 내팽개치고 마을이 아닌 숲 쪽으로 도망간다.
끼잇!
끼리릭!
하나가 도망치니 나머지도 전의를 상실하고 각자 살길을 찾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모두 쫓아가서 쳐 죽였을 테지만, 괴물 마을의 모든 괴물을 죽이기란 현실적으로 무리다.
한 마리를 놓치나 스무 마리를 놓치나 그게 그거인 상황.
갈색 괴물도 더는 찾아오지 않는 중이고 비상식량도 경보를 멈췄기에 다시 언덕을 올라 공터로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살짝 놀랐다.
몰려온 작은 갈색 괴물과 약 15분간 싸울 동안 틀림없이 칼날 멧돼지가 우세한 상태일 거로 생각했는데 실상은 칼날 멧돼지가 코너에 몰린 상태였다.
한쪽 어금니는 완전히 뽑혔고 나머지도 1/3 정도만 남고 부러져 나갔다.
이마의 번개 모양 칼날도 피를 묻힌 채 완전히 우그러져 있었으며 온통 허연 거죽은 베이고 찢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에 의해 범벅이 되어있었다.
땅에 멧돼지가 흘린 피로 웅덩이가 생길 정도였으니 말해 뭐할까.
특히 몸 오른편에 심한 상처가 많았는데, 큰 갈색 괴물들이 환인이 앗아간 오른눈 쪽이 약점임을 파악하고 중점적으로 오른편만 노린 듯했다.
물론 큰 갈색 괴물들 쪽도 멀쩡하진 않았다.
도끼 갈색 괴물은 허리가 잘려서 상체와 하체가 따로 나뒹굴고 있었고 거대 둔기를 들고 있던 괴물의 오른팔은 심각한 개방골절, 왼팔은 몸통보다 더 부어오른 상태였다.
창 갈색 괴물도 마찬가지로 허벅지와 옆구리가 까맣게 변색되어 있었으며 대검 갈색 괴물만 생채기 조금 입은, 그나마 멀쩡한 모양새다.
환인은 자신의 시체 근방을 떠도는 도끼 갈색 괴물의 혼을 끌어당겨 갈무리하며 냉소적인 태도로 웃었다.
‘판이 깔리고 있군.’
큰 갈색 괴물과 칼날 멧돼지의 신경은 온통 상대에게 쏠려있었다.
공터를 배틀링처럼 반쯤 둘러싼 작은 갈색 괴물의 숫자는 육십 남짓. 어제 광란의 축제에서 본 숫자를 생각해보면 1/5밖에 되지 않는다.
잠깐 사이 칼날 멧돼지와 환인의 창에 거의 240여 마리가 증발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눈앞의 폭력적인 장면에 좋아 날뛰는 꼴이라니.’
환인은 재빨리 공터 반대쪽 언덕 아래로 내려와 정장 코트를 벗어 무성한 덤불 아래 숨겼다. 그리고 죽은 갈색 괴물의 아랫도리 가죽을 회수하며 뒤집어 몸에 묶기 시작한다.
털이 안 난 부분을 바깥으로 해서 몸을 칭칭 묶으면 겉만 봐서는 사람 형태 갈색 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짐승 누린내와 갈색 괴물의 지린내, 체취등이 지독하지만 이 냄새가 환인의 정체도 가려줄 것이다. 그리고 덩치가 조금 큰 갈색 괴물로 보이게끔 하겠지.
변장을 끝낸 환인은 사슴뿔 지팡이와 허리에 돌도끼만 차고 유지 시간이 20분도 남지 않은 푸른 표범의 혼을 강령했다.
쓰아아아??
“…….”
육체에 푸른 표범의 힘이 깃들며 은밀 기술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전에 익힌 은밀 기술과 어우러지며 은밀성이 더욱 늘어나는 것을 느낀 환인은 몸을 반쯤 숙여 소리 없이 언덕 아래 통로로 향한다.
쿠워어어어엌!!!
끼랴아악!!
끼요오오옥!!
와아아아아……!!!
공터의 모든 신경은 괴물 대결전에 쏠려있는 상태.
환인은 수풀과 덤불, 나무 뒤쪽으로 숨어가며 빠르게, 하지만 조용히 이동했고 그 결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통로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어둡군.’
환인의 동굴이 천연 바위 동굴이었다면 이곳은 광산처럼 통짜 바위를 깎아낸 듯 울퉁불퉁한 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동굴 안은 불빛 하나 없어 무척 어두웠지만, 영혼 시야 덕분에 적외선 투시 필터를 낀 것처럼 내부가 회색으로 보였기에 움직임에 지장은 없었다.
약간 아래로 진 경사를 따라 발소리만 나지 않게끔 빠르게 이동하던 환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 갈림길에서 멈춰 섰다.
“…….”
바닥을 살피던 환인은 발자국이 적은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10여 미터 정도 걸었을까, 방처럼 넓은 곳에 도달했는데.
끼, 끼익.
끼이이…….
그곳에서 어린 갈색 괴물 일곱 마리와 마주쳤다.
환인은 말없이 돌도끼를 들어 어린 괴물의 골통을 하나씩 쪼개 죽였다.
중간에 도망치려 한 놈이 있었지만, 강령으로 신체 능력과 반사신경이 상승한 환인을 무사히 지나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검을 던져 숨통을 끊은 환인은 어린 괴물을 모두 죽인 것을 확인하고 길을 되돌아와 다른 쪽으로 나아가다 또 갈림길을 만났다.
마찬가지로 발자국이 적은 쪽으로 이동, 이번에는 암컷 괴물과 새끼 괴물과 마주쳤다.
암컷 괴물은 호전성이 아예 없는지 피 묻은 돌도끼를 든 환인을 보자마자 벌벌 떨면서 새끼를 품에 끌어안았지만.
“…….”
환인은 말없이 목을 쳐 날렸다.
그렇게 몇 번이나 아이, 혹은 새끼와 암컷 괴물하고 마주친 환인은 자비 없이 보이는 족족 모두 죽였다.
무저항인 상대를 죽이는 일이었지만 환인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착한 괴물은 죽은 괴물뿐.’
속으로 읊조린 환인은 중간에 무기를 엉망으로 쌓아둔 곳에서 몇 가지 무기를 챙겼다.
대체로 힘없는 여자들이 쓰기 편한 무기들이다.
환인은 통로를 따라 나아가며 생각했다.
‘이런 구조라면 가장 안쪽이 큰 갈색 괴물들의 주거 공간일 가능성이 커.’
여자들도 그곳에 있는 건가 싶었는데 갑자기 넓어지기 시작한 통로의 옆, 직각으로 꺾인 통로의 방에서 겁에 질린 듯 옹기종기 모여 웅크리고 있는 여자들을 발견했다.
흐윽……!
아아…….
환인이 들어서자 비명 섞인 신음이 여자들에게서 흘러나온다.
피 묻은 가죽을 온몸에 둘둘 감은 모습. 거기다 오른손에 쥔 돌도끼에서는 선혈이 뚝, 뚝, 흘러내리고 있다.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하다.
서로 다닥다닥 붙어 떨면서도 적개심에 불타는 눈빛을 보내는 여자들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 환인이었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뜻은 악이 남았다는 증거니까.
여자들의 머리 위에 솟아있는 개 모양 짐승 귀를 확인한 환인은 두건처럼 쓰고 있던 가죽을 벗고 물었다.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짐승 귀 여자들의 눈이 커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