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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31화 (31/813)

〈 31화 〉 031 쌍둥이 산

* * *

두 마리의 사냥물을 가지고 돌아온 환인은 곧바로 나무에 매단 뒤 불을 피우고 재규어의 뒷다리 하나를 잘라 왔다.

나무란 나무는 죄다 젖어서 불을 피우기도 힘들었고 피운 뒤에도 매캐한 연기가 잔뜩 나와서 애를 먹었다.

어찌어찌 피운 불에 나무를 말리고 겨우겨우 고기를 구워 먹은 환인은 뼈다귀에 붙은 살점을 쪼아먹는 비상식량을 보다가 사냥해온 두 마리를 보며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했다.

‘저렇게 나무에 매달아 놓기만 하면 금방 상할 텐데.’

비가 내린 직후라 기온은 낮지만, 강의 주변은 습기가 가득하다. 자연 건조가 불가능한 환경이다.

고민도 잠시, 환인은 재규어의 남은 뒷다리 하나와 뿔 없는 회색 사슴의 고기를 최대한 확보해서 동굴 안으로 옮긴 뒤 잘게 잘라 미리 만들어두었던 건조대에 펼쳐놓았다.

동굴의 가장 안쪽은 습기도 들어오지 않고 바깥만큼이나 선선하기도 해서 이렇게 해놓으면 사나흘은 유지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운 환인이다.

‘한 마리 분량의 고기를 널어둘 자리 밖에 안되는군.’

그렇게 수십 킬로그램은 되는 고기의 자연 건조를 준비해놓고 동굴을 내려온 환인은 그새 많이 깨끗해져 투명해진 강을 보다가 강 근처에 땅을 팍팍 파기 시작했다.

‘계곡 상류에는 토사가 얼마 없나.’

비가 많이 내리면 당연히 토사가 흘러내려 섞이기 마련일 텐데 이곳 계곡은 그런 것도 없는 걸까. 아니면 유속이 빨라서 물이 깨끗해지는 게 금방인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재규어 한 마리가 들어갈 정도로 땅을 판 환인은 구덩이 속에 자갈을 빼곡히 깔았다.

계곡물이 흘러들어온 뒤 빠져나갈 수 있도록 2개의 얕은 물길도 만들었다.

그렇게 강물이 구덩이 속에 차오르면서 흙이 뿌옇게 올랐지만, 바닥에 자갈을 가득 깔아둔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깨끗해진다.

그사이 환인은 재규어의 목을 잘라내고 가죽도 벗긴다기보단 쥐어뜯는다는 느낌으로 애써 벗긴 뒤 깨끗해진 물구덩이에 담가놓았다.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다. 거기다 이렇게 따로 구덩이를 파놨고 물길도 얕게 만든데다 크고 작은 돌멩이로 막아놨으니 송사리 약탈자들도 쉽게 들어오지 못할 거다.

‘이 정도면 수색을 다녀올 때까지는 버텨주겠지.’

주변이 마르기까지 기다렸다가 아궁이 형 훈연기를 다시 만들고 훈제를 진행하고 하면 며칠은 걸릴 텐데, 그 시간이면 여자가 본의 아니게 만들어놓은 흔적이 사라질 수 있다.

그 흔적 수색도 예상보다 길어지면 고기를 버려야 할 지 모르지만, 어차피 이 많은 고기를 혼자서 하루 이틀 만에 먹지도 못한다.

아깝지만 상하면 버릴 뿐이라고 생각하며 환인은 비상식량과 함께 서쪽 쌍둥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다른 지성체를 포로로 유린할 정도의 지능이라면 평범한 짐승은 아니다.

그리고 쌍둥이 산에는 짐승 귀 여자를 포로로 잡을만한 생물은 없었다.

‘있다면 저기 보이는 허여멀건 바위산이겠지.’

서쪽 쌍둥이 산의 중턱, 돌출되듯 튀어나온 바위 언덕 위에서 환인은 저 멀리 안개 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초승달 같은 바위산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굽이치는 강의 모양 때문이다.

쌍둥이 산 계곡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강은 바위산까지 거의 직선에 가까운 흐름이었고, 바위산에서부터 뱀이 기어가는 모양처럼 심하게 구불구불해진다.

만약 바위산 이전에 물에 빠졌다면 저 급격한 커브에서 튕겨 나갔겠지.

그리고 짐승 귀 여자의 시체는 물에 빠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새였다.

군 생활을 할 때 태풍으로 수해를 입은 지역에 대민지원을 나간 적이 있던 환인은 시체가 물에 오래 빠져있으면 얼마나 보기 흉하게 부푸는지 알고 있다.

비록 사람이 아니라 돼지 시체였지만 아무튼, 알몸으로 급류에 휩쓸렸다면 여기저기 부딪쳐 살이 터지는 것은 물론 물을 흡수한 세포가 불어 터져 몰골이 엉망이 되었을 터.

그런데 여자의 시체는 깨끗했다. 즉 먼 곳에서 물에 빠지지는 않았다는 뜻이 된다.

마지막으로 입수 방법.

강을 건너려다 불어난 물에 휩쓸렸을 가능성도 있지만, 발톱 사이나 상처 부위에 모래가 박혀있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짐승 귀 여자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세 가지 이유에 모두 부합하는 건 근방에 저 멀리 보이는 허연 초승달 바위산뿐이다.

산 중턱까지는 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고 강이 닿는 근방은 나무 하나 없이 매끈하며 가까운 곳에는 절벽도 있었으니까.

비상식량을 날려놓고 산을 빠르게 내려온 환인은 강을 건넌 뒤 성큼성큼 초승달 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몇 마리의 짐승이 덮쳐왔지만, 최하급 영혼으로 강령을 펼친 뒤 순살, 영혼 구슬을 다시 채우며 빠르게 이동했다.

‘육체가 근육이 붙어 단단해지니 강령 효과도 덩달아 올라간 느낌이군.’

그저 셈하기 쉬워서 몇 퍼센트, 몇십 퍼센트라고 한 거였는데 정말로 신체 능력에 따라 비율로 강해지는 걸까.

모래사장에 올라와 있는 부서진 나무라거나 급류에 휘말려 죽은 듯한 짐승의 사체를 피해 가며 얼마간 나아가던 환인은 도무지 초승달 바위산이 가까워지는 느낌이 없어 살짝 당혹을 느꼈다.

‘원근감이 이상해지는 기분이군.’

대기 오염이 심한 지구, 특히 한국을 벗어나 본 적 없는 환인에게 원근감 무시는 익숙하지 않은 현상이었다.

꽤괙?! 꽥, 꽤액!!

머리 위에서 울려 퍼지는 비상식량의 비명에 무슨 일인가 하고 올려다보니 왜가리를 닮은 커다란 새가 비상식량을 공격하고 있었다.

비상식량도 잽싼 날갯짓으로 어찌어찌 청색 다리 왜가리의 공격을 피하고 있지만, 날개와 다리의 리치 차이 때문인지 열세에 몰리고 있었다.

삐익­!

손가락 휘파람으로 신호를 보내자 비상식량이 허둥지둥 환인에게 돌아가려 했지만, 청색 다리 왜가리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앞을 가로막고 날개를 크게 펄럭이거나 작살처럼 긴 다리를 휘적거리는 등 비상식량을 방해한다.

환인은 생각보다 더 영악한 왜가리의 모습에 눈썹을 찡그렸다.

꾸르륵­!

꽤, 꽥!

게다가 비상식량이 당황해서인지 평소보다 움직임이 매끄럽지 못하다. 저대로 두면 비상식량이 청색 다리 왜가리에게 채여갈 판.

환인은 허리춤의 돌도끼를 꺼내 쥐고 투척 자세를 잡으며 비상식량에게 소리쳤다.

“피해라!”

꽷!

자신의 의도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직각으로 방향 전환 하는 비상식량.

비상식량을 따라 몸을 돌리느라 청색 다리 왜가리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 그 틈을 노려 돌도끼를 있는 힘껏 투척했다.

쒸애액­!

예상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무시무시하게 날아간 돌도끼는 왜가리가 채 피할 틈도 주지 않고 하얀 몸통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퍽, 소리와 함께 흩날리는 허연 깃털.

몸에 돌도끼가 박힌 채 날아가 숲으로 떨어지는 왜가리를 목격한 환인은 한쪽 입꼬리를 살짝 들었다.

‘이 정도면 투척을 무기로 삼는 것도 괜찮겠군.’

자신의 근력에 강령의 신체 강화 버프까지 곁들여진 돌도끼의 위력이면 말 그대로 흉기가 될 거다.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든 비상식량은 깃털이 마구 엉킨 모습으로 환인의 품에 안겨 눈만 껌뻑였다. 깃털 정리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놀란 듯 싶다.

툭툭, 비상식량의 등을 두드려주고 엉킨 녹색 깃털도 다듬어준 환인은 돌도끼를 회수할 생각으로 왜가리가 떨어진 숲으로 들어가려다 흠칫 움직임을 멈추었다.

머리 위에 삼각 꼴의 짐승 귀와 엉덩이 뒤에 꼬리가 달린 여자 영혼이 슬퍼하는 표정으로 숲 초입에서 환인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벌거숭이 여자 영혼을 잠시 응시하던 환인은 문득 영혼의 모습이 자기가 묻어준 여자 시체와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체는 머리카락이나 꼬리가 물에 푹 젖은 상태였고, 영혼은 부스스한 더벅머리가 패션으로 보일 만큼 뽀송뽀송했기에 눈치채는 게 늦었다.

환인의 사고가 빠르게 움직인다.

즉석에서 몇 가지 가설을 세운 환인은 등에 메고 있던 지팡이를 꺼내고 여자 영혼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리 와라.”

명령과 동시에 슬픈 표정의 여자 영혼이 스륵 날아와 간절함이 담긴 눈으로 환인을 바라본다.

‘영혼 구슬로 변하지는 않는군.’

환인은 여자 영혼을 잠시 유심히 살펴보았다.

떨어져 있을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아스팔트의 아지랑이처럼 투명한 아우라가 몸을 뒤덮고 있었다. 모습은 중하급 짐승 영혼들보다 훨씬 뚜렷하다.

선명도만 보면 육족 말사슴 수준.

환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나? 있다면 고개를 끄덕여라.”

­…….

반응이 없다. 오히려 환인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예상과 다른 행동에 환인은 순간 영혼을 강제로 구슬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고민했다.

이러다 승천해버리면 이도 저도 되지 않으니까.

그때 여자 영혼이 슬픈 표정 그대로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가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게 초승달 바위산인 것을 본 환인은 여자 영혼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이 세계의 정보가 없으니 무엇 하나 만족스러운 가설을 세울 수가 없다. 그래도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함정은 아닐 터.

숲으로 뛰어 들어가 돌도끼를 회수해온 환인은 여자 영혼에게 초승달 바위산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영혼의 얼굴에 슬픔과 먹구름이 약간 거두어지더니 몸을 돌려 초승달 바위산으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환인도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여자 영혼의 뒤를 쫓던 환인은 자꾸만 시선이 돌아가려는 것을 붙잡으며 뺨을 긁적였다.

여자 영혼은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으로 지상에서 1m 정도 높이로 뜬 채 날아가고 있으니 엉덩이골을 가리고 있던 털 뭉치 꼬리가 들릴 때마다 이런저런 부위가 눈에 고스란히 들어온다.

일반인이었다면 그대로 보이는 생식기나 항문에 남사스럽다거나 민망하다는 감정을 느꼈을 거다.

아니면 욕망에 따라 오히려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던가.

환인은 그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여자 몸은 함부로 응시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을 20년 넘게 따르다 보니 그게 습관으로 굳어졌을 뿐.

차라리 딴생각을 해서 여자의 모습에 신경을 쓰지 말자고 생각하며 환인은 여자 영혼에 대한 의문을 떠올렸다.

여자 영혼은 왜 그 숲에 있었던 걸까.

‘영혼은 사망 당시의 위치에 나타나는 건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여자 영혼이 모습을 드러낸 장소가 강 한복판이 아니라 근처 숲의 초입이었다. 게다가 시체의 최초 발견 시점이 7~8시간 전이다.

사망 시각은 그보다 한참 이전일 터.

짐승의 영혼은 10분에서 30분 내외에 빠짐없이 승천한 것을 생각하면 비정상적으로 길다.

뭐, 이것은 사람의 영혼이라서 다를 수 있다고 해도…….

환인의 시선이 여자 영혼의 뒷모습을 전체적으로 담는다.

‘게다가 저 투명한 아우라는 뭐지.’

지금까지 본 스물 여섯 마리의 짐승 영혼은 그저 자기 모습을 띠거나 희끄무레한 연기 같은 모양새였다.

저런 아우라를 가진 영혼은 하나도 없었다. 괴수였을게 틀림없는 육족 말사슴도 없었다.

특별한 영혼이라서? 아니면 종족의 차이? 인류에 해당하는 생물이라 특별한 건가? 아니라면 저 여자가 특별한 경우?

“후우우우.”

30분째 달리고 있으니 슬슬 숨이 턱 아래까지 차오른다.

몸은 열이 제대로 올랐고 다리도 완벽하게 풀렸으니 지금부터 호흡 관리와 페이스 조절만 하면 온종일 뛸 수도 있지만, 있을지 모르는 전투를 상정하면 이 이상 무리하는 것은 금물.

초승달 바위산이 꽤 가까워진 것을 확인한 환인이 속도를 늦추자 앞서 날아가던 여자 영혼이 뒤돌아본다.

“천천히.”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하니 여자 영혼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번져간다. 초조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승천이나 성불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건가.’

아니면 포로들의 목숨을 걱정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계획과 조금 다르지만, 2개의 야크 영혼 구슬 중 하나를 강령한 환인은 체력이 대폭 늘어나고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바위산을 손가락질하고 총알같이 뛰어나갔다.

여자 영혼이 그걸 보더니 살짝 눈을 크게 떴다가 길잡이를 시작한다.

‘강령의 지속 시간은 11분.’

그사이 초승달 바위산과 거리를 최대한 좁혀놓을 생각인 환인은 체력 배분을 하지 않고 전력으로 달렸다.

발밑을 신경 쓰고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짐승도 신경 쓰며 강줄기를 따라 전력으로 달려 나가던 환인은 10분이 지났을 때 여자 영혼이 강가에서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는 쪽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멈춰 섰다.

“후욱. 후우, 후욱.”

강줄기를 따라 저 앞으로 시선을 주자 20m 정도 되는 절벽이 작게 보인다.

‘저기서 뛰어내린 건가.’

여자 영혼이 가리킨 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활엽수 위주던 쌍둥이 산과 다르게 초승달 바위산 근방은 침엽수 위주다.

더욱이 잎이 무성해 밖에서 봐도 어두컴컴해 보인다.

어두운 것은 문제가 안되지만, 나무의 밀도가 높아 무기를 휘두르는 것은 무리.

잠깐 고민하던 환인은 머리 위에서 선회 중인 비상식량을 불러 정찰을 보냈다. 그리고 앞을 풀어놨던 정장 코트를 여며 단추를 모두 잠그고 창의 상태를 점검한다.

살짝 느슨해진 것 같은 창대와 창날의 이음새를 다시 꽉 조여 매고 있으니 날아갔던 비상식량이 되돌아와서 꽥꽥 울었다.

“짐승이냐?”

꽥.

“괴물?”

꽥꽥!

“……숫자는?”

꽥? 꽥! 꽤괙!

땅에 길쭉한 타원을 1개부터 5개까지 다양하게 그렸지만, 비상식량은 타원 묶음을 고르는 대신 몸집을 크게 부풀리듯 날개를 파닥거린다.

“흠.”

적은 짐승이 아니라 괴물. 숫자는 비상식량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음.

비상식량이 갔다 온 시간으로 비행 속도와 높이에 따른 지평선 거리를 계산해보면 대충 12~24km 정도.

오차범위가 크지만 어디에 뭐가 있는지만 알아도 행동의 안전성이 확 올라간다.

왼손에는 지팡이, 오른손에는 창을 쥐고 숲으로 발길을 내딛으려 하는데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여자 영혼이 가리킨 숲에서 사람 형태의 괴물 세 마리가 끼긱거리며 걸어 나왔다.

끽?

끼이?

생김새와 크기는 저 밀림의 녹색 괴물과 흡사했지만, 색이 다르다.

저것들의 거죽은 갈색이었고 피부도 나무껍질이 일어난 것처럼 우둘투둘한 모양새.

그런 것보다 갈색 괴물과 마주친 순간 환인이 세운 계획 하나에 차질이 생겼다.

‘아니,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나.’

환인은 말없이 튕기듯 갈색 괴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생물을 경계하고 있던 갈색 괴물들은 깜짝 놀라 각자 손에 쥔 나무 몽둥이를 들고 대항하려 했지만.

푸푹, 쓰걱­

단 두 번의 찌르기와 한 번의 휘두르기에 세 마리는 단숨에 무력화되었다.

끼, 끼엑! 끼이잇!

끄르륵…….

찔린 부위가 나빴는지 한 마리는 찔린 가슴을 움켜쥔 채 그대로 쓰러져 몸을 들썩이다 숨이 멈췄고, 나머지 두 마리는 잘린 다리를 부여잡고 뒹굴며 비명을 지르거나 입에서 피거품을 송골송골 게워내며 부들부들 떨기만 한다.

퍽. 쩍!

그런 놈들의 머리통에 도끼 자국을 만들어 강제로 조용히 하게 만든 환인은 여자 영혼을 돌아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이 괴물들이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게 맞냐고.

갈색 괴물 세 마리가 두어 번 호흡할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몰살당하는 것을 본 여자 영혼은 놀란 얼굴로 입을 가렸다가 이내 눈물이 차오른 얼굴로 손가락을 들어 숲 안쪽을 다시 가리켰다.

저 숲 안에 갈색 괴물의 소굴den이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뜻?

온화한 얼굴이나 영혼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보면 원한이나 복수를 곱씹는 성격은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 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뜻…….

“……?”

여자 영혼의 영체에서 반딧불이 같은 작고 무수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것에 환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빛의 입자를 내보낼수록 여자 영혼의 모습이 점차 희미해져 간다.

‘성불하는 건가.’

강령이나 기술로 소비한 영혼의 승천과 다른 모습이라 짐작 가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팡이를 슬쩍 쥐면서 여자의 영혼을 거두려 해본 환인이었지만, 통하지 않는 것을 느끼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환인의 표현에 안심한 듯 여자 영혼은 눈물로 얼룩진 고운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고, 작은 빛방울 몇 개를 남긴 채 덧없이 흩날리는 꽃잎처럼 세상에서 사라졌다.

“…….”

붕­

창을 크게 휘둘러 날에 묻은 피를 털어낸 환인은 비상식량과 함께 조용히 숲에 진입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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