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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26화 (26/813)

〈 26화 〉 026 쌍둥이 산

* * *

훈제 구덩이로 돌아온 환인은 연기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구덩이 속에 천연 스모크칩을 보충하고 손질해온 백색 색계통의 짐승 고기를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담가놓았다.

그 후 3시간을 더 해 총 9시간의 훈연을 끝낸 뒤 구덩이 속에서 꼬치를 꺼내 확인했다.

“음…….”

겉껍질만 조금 단단해졌을 뿐 찢어보면 속살이 물렁물렁하다. 색도 밝은 갈색이고.

꽥?

비상식량의 눈에는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지 환인의 어깨에서 훈제된 고기에 호기심을 보인다.

환인이 보기에도 첫 시도치곤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색계통도 백색을 유지하고 있고 냄새도 훈연 특유의 스모크한 향이 난다.

하지만…….

‘실패다.’

제대로 된 훈제 고기는 곱슬한 모양으로 까무잡잡한 막대기처럼 변한다.

훈제가 부패를 막아주는 이유는 조금 딱딱해진 표면으로 연기가 코팅되어 고기를 상하게 만드는 균의 침입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제대로 훈연된 고기의 보존기간은 일주일이 넘는다.

2회 이상 훈연할 경우 그 기간은 2주~4주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물렁물렁해서야. 그냥 생고기보단 보존기간이 길겠지만, 자신이 바라는 2주 이상의 장기 보존은 불가능할 거다.

“…….”

실패의 원인을 잠시 생각해보던 환인은 꺼낸 고기를 비상식량과 나눠 먹고 재차 구덩이 속에 연기를 피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9시간 정도 훈연을 더 해볼 생각이었다.

“……?”

그런데 훈제 고기가 원래 이런 맛이 나던가? 씹으면 씹을수록 조금 톡 쏘는 것 같기도 하고 살짝 느끼한 것 같기도 한 맛에 눈을 가늘게 뜬다.

‘영혼 시야의 색계통은 멀쩡한데.’

아버지를 따라 훈제 연어 전문점이나 훈제 바베큐 그릴 전문점을 다니며 먹어본 기억은 있지만, 이런 훈제 고기를 먹어본 기억이 없어 이 맛이 제대로 된 훈제 고기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구덩이 훈연기는 내버려 두고 환인은 다음 훈연기의 제작에 착수한다.

고기는 많으니 일단 시도해볼 수 있는 수단은 다 시도해볼 요량이다.

우선 서쪽 쌍둥이 산에서 나뭇가지와 이파리를 대량으로 공수해와 움막을 닮은 훈연기를 제작했다.

그리고 생고기를 바로 훈연한 게 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 환인은 훈연기의 제조와 동시에 고기를 훈제에 적합한 사이즈로 잘라 그늘에 널어놓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강가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면 어느 정도 건조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계곡인데다 강가치고는 습도도 낮은 편이어서 순식간에 부패하지도 않을 테고, 자연건조 시킨 고기로 훈제하면 좀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지.

“…….”

막상 널어놓았더니 커다란 활엽수 나무이파리에 올려진 고기의 모습이 좀 거슬린다. 저렇게 이파리 위에 올려두면 제대로 건조가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날벌레까지 꼬일 것 같은 기분.

두 가지 문제를 자각한 환인은 움막 훈연기 제조를 멈추고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그물망 비슷한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성된 그물망 위에 고기를 올려두고 일부는 동굴 안쪽에도 펼쳐둔다.

“비상식량. 이리 와라.”

꽥?

“여기서 대기하다가 벌레가 날아들면 잡아먹어라. 할 수 있지?”

꽷!

비상식량을 보초로 세운 환인은 다시 움막을 제조하는데, 피로에 전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싸움에 쓰는 체력보다 이런 작업에 쓰는 체력이 더 많이 소비되는 느낌은 왜일까.

7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작업하던 환인은 영혼 구슬이 4개 남은 시점에서 절반쯤 완성된 움막을 놔두고 다시 사냥을 나섰다.

어젯밤부터 잠도 안 자고 훈연 준비를 하느라 피로가 쌓이고 있지만, 이 정도는 밀림을 탈출할 때를 생각해보면 천국이나 다름없다.

“비상식량. 오늘은 저쪽이다.”

꽤액~.

이번에는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

분지 쪽은 새벽 즈음에 방문했었으니 짐승들이 아직 경계 태세일 터.

재규어의 영혼 구슬이 있다면 속도 강화 효과에 은밀 행동 기술로 사냥을 시도해볼 텐데 지금은 최하급 영혼 구슬밖에 없으니 선택지가 없다.

꽥! 꾸엑!

1시간가량 강을 따라 이동하던 환인은 선행하던 비상식량이 돌아와 꽥꽥 우는 것을 듣고 저 앞 언덕으로 올라가서 강줄기를 살폈다.

“음.”

비상식량이 울음 소릴 낸 이유로 짐작되는 것을 발견하긴 했는데 뭔가 좀…… 인지부조화가 올 것 같은 짐승이다.

일단 생김새는 대형 개만큼이나 큰 물개다.

물개인데 배 쪽과 앞발, 뒷발이 튼튼한 청색 가죽과 청색 털로 뒤덮여있다. 툭 튀어나온 주둥이에 단검처럼 예리한 이빨도 보이고 넓적한 오리발 같은 앞발, 뒷발에 가시도 나 있다.

그런 놈들이 강가에 서른 마리 가까이 모여있었다. 물속에서 여유롭게 헤엄치는 몇 마리도 보인다.

일주일 전 강을 따라 이동할 때는 보지 못한 놈들.

‘강을 따라 이동하며 사는 짐승인가 보군.’

땅물개(가칭)을 차분히 관찰하던 환인은 황색계 몸통과 다르게 앞발에 난 발톱이 선명한 적색을 띄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눈썹을 찌푸렸다.

주둥이에 난 송곳니는 무색인데 발톱은 적색을 띈다? 어쩌면 독이나 질병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환인은 근방에서 흔한 갈색 재규어 한 마리가 강가로 접근하는 것을 목격했다.

강과 재규어 사이에 위치한 자그마한 언덕, 사냥에 실패한 것처럼 반대쪽에서 터덜터덜 언덕을 올라가던 재규어는 언덕을 오르자마자 땅물개 무리를 목격하곤 움찔, 굳었다.

꿕꿕꿕꿕!

땅물개도 재규어를 목격했는지 열 마리가 넘게 그쪽으로 모여 맹렬하게 짖어대는데, 그 모습에 재규어는 꼬리를 감추고 그대로 줄행랑쳤다.

“…….”

지구의 재규어가 어떤지 모르지만, 이 세계의 재규어는 자기보다 덩치가 큰 짐승한테도 겁 없이 덤벼들며 이빨질을 할 만큼 성질 있는 종이다. 그런데 땅물개 떼를 보자마자 도망친다는 것은…….

‘저것들도 마법을 쓰는 건가.’

합리적인 의심이다.

땅물개의 넓적한 물갈퀴 같은 앞발과 꼬리 지느러미 같은 뒷발로 빠르게 달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재규어라면 치고빠지는 작전으로 땅물개 1마리 정도는 사냥할 수 있을 텐데도 보자마자 도주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니까.

환인은 땅물개를 주시하다 주먹만 한 돌멩이를 집어 들고 땅물개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러자 한데 모여있던 땅물개들 중 한 마리가 환인을 발견했는지 뾰족한 주둥이를 환인 쪽으로 향했다.

적으로 곧장 인식하지 않는지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방금 재규어를 발견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대응.

100여 미터 정도까지 다가가자 환인을 발견한 땅물개가 몇 마리 더 늘어났고, 가슴 부분이 크게 부풀었다 쪼그라들 정도로 콧김을 푹푹 내뿜는 개체가 나왔다.

콧김을 내뿜는 것이 경고 행동이었는지 환인이 멈추지 않고 계속 접근하자 그제야 몇몇이 울기 시작했고 땅물개 무리가 전부 환인을 쳐다보게 되었다.

꿩! 꿩꿩!!

오지 말라는 듯이 앞발로 스텀핑하듯 땅을 탁탁 내려치는 땅물개들.

그것까지 목격한 환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땅물개들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러자 땅물개들도 스텀핑과 로어를 멈추고 환인을 주시한다.

‘선제공격할 정도로 호전성이 높지 않군.’

도망칠 정도로 겁이 많은 것도 아니다. 머리를 빳빳이 치켜들고 환인을 쳐다보는 모양새가 뭔가 믿는 것이 있는듯한 모습이다.

한 마리나 두 마리 정도가 무턱대고 행동해주면 좋을 텐데 단합력도 좋은지 돌출행동을 하는 개체가 하나도 없다.

땅물개가 마법을 쓰는지 안 쓰는지 확인하기 위서였는데……. 이대로 계속 접근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지금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좀 더 접근했다가 땅물개 무리가 일제히 마법을 쏘기 시작했다간 끝장이다.

환인은 적대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땅물개들과 상당히 멀어진 뒤 강 상류에서 목을 축이며 다른 짐승들이 땅물개와 싸움을 벌이길 기다린다.

“…….”

기다린 지 10분 정도. 주변에 짐승들이 하나둘씩 모이는 게 느껴졌다.

이상한 점은 환인을 목격하면 무턱대고 도망치는 것들도 멀찍이서 환인을 경계할 뿐 도망칠 기색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짐승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개중에 처음 보는 짐승도 있었는데 호저나 벌꿀 오소리를 크게 키운 모습이었다.

삐이이익­

하늘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소성에 환인의 어깨에 앉아 쉬고 있던 비상식량이 흠칫하더니 환인의 머리 쪽으로 슬금슬금 붙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독수리처럼 날개를 활짝 편 조류 세 마리가 선회하고 있었다.

비상식량보다 서너 배는 더 큰 덩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환인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사이 짐승의 숫자가 더욱 늘어났다. 전부 세진 못했지만 어림잡아 100마리가 넘어간다.

그 짐승들이 전부 땅물개를 중심으로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중에 환인이 접근할 때마다 푸헤헹 놀리듯이 울면서 도망가던 흡혈마?血馬도 있는 것을 목격한 환인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제야 파악했다.

환인은 그 피의 습격에 낄 생각이 없어 거리를 좀 더 둘까 할 때였다.

으르르르­

끄오옹­

오로로로롤…….

모인 짐승들 사이에서 신경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으르렁컹컹, 그르르, 우오오옹­ 짐승들의 그로울링이 울려 퍼지며 포위망이 출렁이듯 조금씩 줄어든다.

얕고 좁은 강 한복판에 모여있던 땅물개들도 그것을 보고 긴장한 것처럼 꿕꿕꿕 울부짖는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맴돌고 있지만, 환인은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하나의 종을 사냥하기 위해 전혀 다른 종 수십 마리가 모여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지구의 자연에서는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을 이렇게 목도하고 있으니 어찌 헛웃음이 나지 않을까.

크아아앙­!!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은 긴장감을 버티지 못한 재규어 무리가 전쟁의 개막을 선포한다.

날카로운 포효를 터트리며 다섯 마리의 재규어가 땅물개를 향해 질주하고, 동시에 동그란 원을 만들고 있던 땅물개 쪽에서 시퍼런 물덩어리 여남은 개가 화살처럼 재규어를 향해 쏘아졌다.

피핏­ 피슛­ 피피핑­

섬찟한 소리와 함께 재규어 두 마리가 쓰러지며 가속도를 이기지 못해 나뒹군다.

이어진 물화살 세례에 나머지 세 마리도 채 다섯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즉사.

그즈음 나머지 대다수 짐승도 땅물개 무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전쟁이 벌어졌다.

마치 궁병대를 향해 돌진하는 기병처럼 공격 측 짐승 연합은 쏘아지는 물화살과 레이저처럼 뿜어지는 물줄기에 몸이 꿰뚫리고 절단되어 땅을 거칠게 뒹군다.

재수 없게 머리를 관통당하면 즉사지만, 1원짜리 동전 크기의 물화살에 두어 번 꿰뚫린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짐승들도 그것을 아는 듯 눈이 뒤집힌 채 땅물개를 향해 달려들고 땅물개들도 쉬지 않고 물화살과 초고압 물줄기를 쏘아댄다.

그리고 흡혈마 무리가 발군의 속도를 자랑하며 가장 먼저 땅물개 무리에 접촉한 순간 환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흡혈마의 날카로운 이빨이 땅물개에 닿기 직전 물의 막이 크게 일어나더니 막에서 날카로운 물의 창이 우수수 돋아나 흡혈마들을 꿰뚫은 것이다.

히히히힝­!

몸에 큰 구멍이 우수수 난 흡혈마 무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그 뒤로 다른 짐승들이 쇄도하고, 땅물개의 공격이 그 방향으로 집중되니 다른 쪽의 화망이 옅어지며 짐승들의 접근을 허락해 위기 상황이 연출된다.

삽시간에 수십 마리가 한데 엉키며 난전의 양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어이없는 점은 짐승 연합의 마찰이다.

적도 아군도 없이 이빨이, 발톱이 닿으면 상대가 누구든 간에 공격한다. 땅물개들도 사방팔방으로 쉬지 않고 물화살과 물줄기를 난사하니 곳곳에서 피와 살점이 튀며 말 그대로 지옥도가 펼쳐졌다.

환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짐승들이 무수하게 죽어 나가 사방이 짐승의 영혼으로 가득하다.

환인은 사슴뿔 지팡이를 들고 전투지역으로 다가가며 처음 보는 짐승의 영혼을 우선하여 불러들여 영혼 구슬로 만들었다.

흡혈마의 영혼구슬 2개, 스파이크 테일 피그 영혼구슬 3개, 삼안견 영혼구슬 2개, 들소와 낙타조의 영혼 구슬 각각 1개.

크아앙­!!

커허어엉!

피 냄새와 살육에 취한 짐승 두 마리가 눈을 까뒤집고 환인에게 달려들지만, 환인은 눈 깜짝하지 않고 사슴뿔 지팡이를 내밀었다.

영혼 구슬로 만든 하급 영혼을 쓸 필요도 없다. 주변의 비늘두더지와 용뿔소(벨로시랩터+코뿔소)의 혼을 날려 영혼 폭발을 일으킨다.

뻐버벙!!!

삼각형의 꼭짓점처럼 터진 영혼 폭발의 중심에 있던 늑대개 비슷한 두 마리는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에 치인 것마냥 걸레짝이 되어 땅을 나뒹굴었다.

처음 써보는 하급 영혼으로 펼친 영혼 폭발은 최하급의 영혼 폭발보다 위력도, 범위도 1.5배가량 높았다.

그 위력에 살짝 놀라는 사이 땅물개를 공격하기 위해 주위를 맴돌던 일부 짐승들이 목표를 환인으로 바꿨다.

피에 취한 짐승들의 노골적인 시선에 환인은 여분의 흡혈마 영혼을 불러들여 강령을 펼쳤다.

하급 영혼들보다 조금 더 선명한 영혼을 몸에 강령시키자 심장이 한차례 크게 뛰더니 온몸에 활력이 크게 돌기 시작했다.

즉효성 강력 강장제를 맞은 것처럼 힘이 넘치는 것을 느낀 환인이 속으로 당혹을 드러냈다.

‘하급 영혼을 강령했을 때보다 신체가 더 활성화됐다. 이 정도면 족히 30%정도.’

부위 특화형 강령이 아니라 거의 전체적인 신체 능력이 30%는 강화된 느낌이다.

더욱이 주변에 가득한 피 냄새를 맡으니 약간 기분이 좋아지며 적당한 흥분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건 무슨 효과지.’

의아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환인은 이빨을 드러내며 미친개처럼 달려드는 다른 늑대개를 향해 마주 달려가 머리통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콰직!

창이 마치 나무막대기처럼 가볍다고 느낀 것도 잠시, 창대의 끝에 늑대개의 골통이 바스러지며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손에 가해지는 미약한 저항감에 눈을 한차례 빛낸 환인은 말 그대로 쏜살같이 다른 늑대개의 등을 향해 창을 내려쳤다.

우지직, 척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몸뚱이가 역으로 접힌 늑대개는 그대로 즉사.

환인의 근처에도 전투가 벌어지니 눈이 벌게진 짐승들이 혼자 있는 환인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짐승들에게는 수십 마리가 버티고 있는 땅물개 쪽보다 혼자 있는 환인이 더 쉬워 보였을 테지만, 그건 크나큰 오판이었다.

주변에 보이는 영혼만 40여 마리.

20여 마리 남짓한 짐승들이 몰려들자 환인은 재빨리 지팡이를 들어 올려 짐승들을 향해 지팡이를 내질렀다.

“터져라!”

꾸구구궁……!

절반의 영혼에 명령을 내리자마자 마치 지뢰가 터진 것 마냥 땅이 뒤집히며 형태 없는 폭발이 짐승들을 덮쳤다.

“후우욱……!”

체온이 몇 도는 단숨에 내려간 것처럼 냉기가 몸을 감싸고 입에서 허연 김이 흩뿌려진다.

훈기가 대량으로 소비된 여파가 튀어나왔지만, 환인은 신경 쓰지 않고 사슴뿔 지팡이를 뒤로 던진 뒤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절반의 짐승들에게 달려들어 창을 종횡무진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피 묻은 은빛 섬광이 지나갈 때마다 짐승들의 몸이 쩍 갈라지고 목이, 다리가 잘려 나간다.

신체의 30% 강화는 어마어마했다.

양손으로 써야 하는 창을 한 손으로도 휘두를 수 있게 되어 한쪽 팔이 자유로워졌기에 창질의 빈틈을 노리고 가까이 접근했던 짐승들은 빠짐없이 환인의 주먹질과 발길질에 뼈가 박살 나고 걷어차여 축구공처럼 날아가 버린다.

더욱이.

쾅!

깨갱!!

콰직, 뻐엉!!

케에엑!

맨손으로 짐승을 때려죽일 때마다, 피부에 짐승의 피가 닿을 때마다 체력과 스태미나가 조금씩 회복되었고 자잘한 생채기가 실시간으로 아문다.

흡혈마의 강령 효과가 무엇인지 깨달은 환인은 무표정으로 피를 뒤집어쓰며 소리 없이 날뛰었다.

꿩꿩거리는 땅물개의 소리와 짐승들의 포효가 뒤섞인 저쪽과 다르게 이쪽은 오직 짐승의 단말마뿐.

시뻘건 피를 뒤집어쓴 채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싸우는 환인의 모습은 짐승의 시선에 죽음 그 자체였다.

그제야 겁을 집어먹는 짐승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지만, 환인은 어느샌가 지팡이를 쥐고 말없이 영혼 폭발을 날리며 도망가는 짐승을 빠짐없이 학살했다.

쿠구궁, 콰과광, 펑, 뻐버벙……!!

무차별 영혼 폭발에 짐승들이 걷어차인 공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짐승들의 비명 섞인 포효소리로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가운데.

꿔어어엉­!

쫘좌좌좌좌좌좍!!

나무 수십 그루가 쪼개지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물의 창이 가시덤불처럼 치솟아 범위 안의 모든 것을 꿰뚫었다.

삽시간에 수십 마리의 짐승이 절명하자 전장에 정적이 흘렀다.

전투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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