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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23화 (23/813)

〈 23화 〉 023 수해­외곽

* * *

“후우.”

일단 수해를 탈출하자는 목적은 달성했기에 환인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솔직히 수해는 상식을 벗어나는 비정상적인 느낌이 강해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는 정상적인 자연 생태계라고 할까.

생명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초원과 숲의 느낌이라 정신이 안정되는 기분이다.

다만 야생동물과 짐승이 조금 많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눈에 띄는 짐승들은 멀찍이 환인을 정찰하거나 지켜보며 으르릉거리고, 영역을 침범당한다 여기면 곧장 공격해오기 일쑤였다.

그러나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며칠 전 수십 마리의 개 떼와 싸운 이후 이해가 안 되지만 적의 움직임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 전체적인 신체 능력을 20% 가까이 강화해주는 강령까지 있으니 전투가 전투 같지 않아졌다.

인간의 악의가 섞인 공격이 아닌, 야생동물의 본능적인 단순 직선 공격이라 읽기 쉽기도 하고.

“여기도 있군.”

꽥? 꾸엣!

“기다려라.”

비상식량의 재촉을 받으며 땅을 파헤치던 환인은 굵은 뿌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것을 잡고 훌렁 뽑아낸다.

후두둑, 흙이 떨어지며 감자를 닮은 작물 여러개가 딸려 나왔다.

꾸우~!

흙 사이로 함께 떨어지는 작은 곤충과 지렁이를 발견한 비상식량이 신난 듯이 날개를 파닥거리며 곤충과 지렁이를 쪼아먹는다.

독사과 같은 산을 피해서 빙 둘러 가던 환인은 그리 넓지 않은 들판에 유인용 미끼처럼 난 식용 식물이나 뿌리채소를 다량 확보할 수 있었다.

생긴 건 감자인데 속은 고구마 같은 채소라거나, 무 같이 생겼는데 빨간색인 것도 있었고 손가락 굵기의 더덕이나 우엉 같은 것은 물론 새순 같은 싹과 도라지 비슷한 것도 있었다.

땅을 파헤치다 보니 딸려 나오는 지렁이나 작은 곤충도 많아 비상식량도 기뻐하는 상황.

“흠.”

슬슬 지평선으로 해가 떨어지려 한다. 환인은 허리춤에 맨 푸른 표범의 뒷다리 2개를 확인했다.

낮에 마주쳐서 죽인 뒤 단백질 확보를 위해 잘라 온 것이다. 고기의 색계통은 노란색과 녹색이 섞인 듯한 춘유록색.

아직 색계통의 변화는 없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환인은 울퉁불퉁한 분지 지형 속에서 홀로 우뚝 자란 거목 한 그루를 발견했다.

높이는 10m 정도. 산호처럼 삐죽삐죽 자란 형태지만 기둥이 두껍고 높아 하룻밤 머무르기 괜찮아 보인다.

곧장 나무를 타고 올라간 환인은 돌도끼로 이파리가 많이 붙은 가지를 중점적으로 쳐내 땅에 떨어트린 뒤 틈틈이 끄트머리를 뾰족하게 다듬은 흑곤봉으로 맨땅을 푹푹 찔렀다.

“단단한 땅이 아니라 다행이군.”

흑곤봉의 재질이 거의 철에 버금갈 만큼 단단하기에 임시로 삽 대신 사용하고 있었다.

헤집듯이 땅을 휘저은 뒤 흙을 걷어내고 다시 찌르는 작업을 반복해서 50cm 정도의 구덩이를 만든 환인은 이어서 부시 크래프트의 경험을 떠올리며 차광막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재료는 자신의 키 높이로 쳐낸, 나뭇잎이 잔뜩 붙은 나뭇가지다.

뒤쪽은 나무와 작은 언덕이 가려줄 테니 앞으로 흘러나갈 빛만 막아줄 정도면 된다.

‘짐승 가죽이 있었으면 한결 수월했을 텐데.’

해가 지기 전에 작업을 끝내고 구덩이 속에 불을 강하게 피운 환인은 그 후 잔열로만 푸른 표범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멀티툴로 만든 나무꼬챙이에 주먹만 한 크기로 잘라낸 살코기를 꿴 뒤 꼬치처럼 굽는 방식이다.

낮에 채집해둔 구황작물을 모닥불의 열기로 익어가도록 배치한 환인은 꼬챙이를 돌려가며 고기를 구워나간다.

“흠.”

고기가 익어갈수록 색계통이 백색으로 변해가며 생전 맡아본 적 없는 강렬한 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원숭이 통구이에 비하면 양호하다. 며칠간 채식밖에 하지 못해 물불 가릴 상태가 아니기도 하고.

잘 구워져서 완전히 백색 계통이 된 표범 꼬치구이를 들어 멀티툴 나이프로 적당히 잘라 먹어보니 아주 최악은 아니었다. 좀 많이 질기고 누린내가 나지만 말이다.

먹어도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 옆에서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비상식량에게도 고기를 나누어준다.

“먹어라.”

나이프로 적당히 잘라서 나뭇잎 위에 쌓아주니 부리로 콕콕 쪼아가며 잘 먹는다.

환인도 흑갈색으로 잘 구워진 고기를 한 입 먹어본 뒤 아무 표현 없이 묵묵히 먹어 나겠다.

며칠 만에 접하는 소중한 단백질을 30분에 걸쳐 열심히 굽고 먹으면서 허벅지만 한 다리 한 짝을 해치운 환인은 조금 부족한 감에 배를 쓰다듬었다.

고기를 4kg 가까이 먹어 치웠는데도 배부르다는 느낌이 없다니.

‘먹는 양이 왜 이렇게 늘어난 거지. 이것도 초능력을 얻은 영향인가.’

그러고 보니 환인은 자신의 연비가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사흘간 상당히 많은 활동량을 보이며 눈에 띄는 식용 식물을 이것저것 섭취했었다.

고작 섬유질 조금 섭취한 정도로 사람이 필요로하는 하루 칼로리를 모두 보충하긴 어렵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허기에 굶주려 기운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환인은 싸움도 무리없이 소화하면서 배고파 죽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그저 조금 배고프네, 이정도 뿐.

“…….”

이 상황에 많이 먹는다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약 영양을 과잉 섭취해 살이 찐다면 먹는 것을 줄이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니까.

‘그나저나.’

숨 쉴 때마다 목구멍에서 역한 누린내가 올라와 비위가 강한 편인 환인도 조금 고역스럽다.

러닝셔츠를 보따리처럼 묶어 놓은 채소 보따리 속에서 더덕을 닮은 풀뿌리를 꺼내 씹는다. 풀 쪼가리의 쓴맛이면 이 누린내도 조금 가시겠지.

“음?”

그런데 약간 적갈색을 띠는 풀뿌리는 신기하게도 적당히 쓴맛과 매운맛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런 맛인 줄 알았다면 고기와 함께 먹을 것을.

풀뿌리를 씹으며 남은 표범 다리 한 짝은 어떻게 할까 하다가 불을 피워 다시 꼬치로 구웠다.

놔두면 밤사이 부패가 시작될 것처럼 기온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고 있어서였다.

그런데 고기를 굽다 보니 위장이 또 먹을 것을 넣으라고 보채기 시작한다.

하는 수 없이 환인은 보존 식량으로 갖춰둘까 싶어 구워뒀던 감자고구마와 빨간무를 먹기 시작했다.

감자고구마는 생김새 그대로 감자와 고구마를 섞은 듯한 포슬포슬한 맛과 식감이었다.

하지만 피 같은 액체를 흘리며 구워지는 빨간무는 색계통의 안전 보장이 없었다면 절대 먹지 않았을 비주얼이었다.

반으로 뚝 부러트리니 피 같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꼴이란…….

다만 생김새와 다르게 맛은 훌륭했다.

‘딸기와 석류 주스를 섞은 맛이군.’

4kg가량의 고기와 주먹만 한 구운 감자고구마 3개, 여자 팔뚝만 한 구운 빨간무 1개까지 먹어 치운 환인은 그제야 만족감을 느끼며 후,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내일 먹을 고기도 준비해놓은 뒤 하얀 체리 열매로 당분을 보충하자 배를 채우고 휴식을 해서일까, 무겁던 머리가 조금 가벼워지며 간과하고 있던 것이 생각나 우려가 들기 시작했다.

뒷다리 두 개 분량의 고기를 구웠다.

이 냄새가 퍼져나가면 야행성 짐승이 찾아올지 모른다.

무엇보다 회색빛 어둠에 감싸인 저 산지. 저 산에 만만치 않은 괴물이 살고 있다면? 그 괴물이 짐승 떼의 우두머리 격이라면? 저 산지가 짐승 떼 소굴이라면?

“…….”

개 떼도 갯과인 만큼 후각도 뛰어날 테고, 작정하고 쫓는다면 막을 방법도 없다.

이런 생각에 쫓겨 이 시간에 초원 같은 곳을 가로지르다간 야행성 짐승의 습격을 받아 소란을 일으킬 뿐.

환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려는 우려를 끊어낸 뒤 주변의 줄기가 긴 풀에서 껍질을 채취해 끈처럼 만든 뒤 표범 고기 꼬치 6개를 굴비 엮듯 엮는다.

그리고 차광용 나무판으로 불이 꺼진 구덩이를 덮고 장비를 챙겨 거목을 기어올랐다.

5m. 나름대로 발로 체중을 실을만한 굴곡이 있긴 했지만 5m나 되는 높이를 수월하게 오른 환인은 강령이 가진 잠재력을 눈치챘다.

기술을 가진 영혼을 받아들이면 일시적이나마 그 기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강령이 끝나도 그 기술은 전부 사라지지 않고 일부가 몸에 남으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만 연습하면 자신의 것이 될 거다.

그 말은 기술을 가진 여러 영혼을 많이 받아들일수록 더욱 강해진다는 뜻.

‘하지만 말처럼 간단한 건 아니겠지. 나무 타기, 수영은 비교적 간단하니 쉽게 익혔지만 어려운 기술일수록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테고.’

기둥이 끝나고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비교적 평평한 지점에 적당히 자리 잡은 환인은 적당한 나뭇가지에 굴비처럼 엮은 꼬치구이를 걸어놓고 바지를 벗어 오른쪽 허벅지의 상처를 살폈다.

상처는 이제 완전히 아물었다.

살이 조금 땡기긴 하지만 격렬한 전투에도 덧나지 않았으니 이제 완치됐다고 봐도 되겠지.

바지를 입고 다리를 편히 늘어트린 환인은 굵은 나뭇가지에 적당히 등을 기댔다. 등 부분이 V 모양으로 뻗어나가는 형태니 조금 뒤척인다고 추락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다리 사이를 파고드는 비상식량을 토닥여준 환인은 사슴뿔 지팡이의 뿔에 맺힌 8개의 영혼 구슬을 응시했다.

그럼에도 기술의 경험을 일부나마 얻게 되는 것의 메리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직은 짐작 단계이지만, 한 가지 기술을 달인 정도로 익힌 인간의 영혼을 강령하면 어떨까.

이를테면 창술을 극한까지 연마한 사람이라던가.

“…….”

강령을 생각하다 보니 싸움을 치르며 느꼈던 아쉬움이 크게 다가온다.

‘지팡이 없이 영혼에게 명령을 내릴 수만 있다면 다수와 전투에서도 큰 힘을 낼 수 있을 텐데.’

강령이나 영혼 폭발을 쓰려면 지팡이를 들어야 하는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영혼 구슬의 유지 시간도.

지팡이를 쥐고 정신을 집중하자 영혼 구슬이 뿔에서 떨어져나와 반딧불이처럼 허공을 떠다닌다.

회색 어둠 속에서 은은한 빛을 흘리며 유영하는 혼의 구슬을 바라보다가 며칠 전에 있었던 능력의 성장을 떠올렸다.

영혼 구슬의 보유 가능 숫자가 늘어난 것을 보면 초능력이 능숙해질수록 보유 영혼 구슬 갯수와 유지 시간이 더 늘어나는 것은 틀림없다.

이게 반복되면 언젠가는 지팡이 없이도 강령과 영혼 폭발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은 살아있는 생물을 그만큼 많이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령과 영혼 폭발을 여러 번 쓰려면 그만큼 영혼 구슬이 필요하니까.

업보 같은 것은 믿지 않던 환인이었으나 영혼을 다루는 초능력을 얻은 뒤부터는 도무지 업보 따윈 없다고 단언을 내릴 수가 없다.

잠시 상념에 잠겨있던 환인은 입꼬리를 냉소적으로 올리며 이죽거렸다.

‘이런 감상도 여기서 살아나간 뒤에 할 일이겠지.’

다른 생명을 존중하다간 이쪽이 죽을 판이다.

더욱이 발상을 전환하면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보가 쌓일 수도 있지 않은가.

제대로 된 지식 없는 고찰은 자기모순에 빠질 뿐이라고, 결국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해나갈 뿐이라는 결론을 내린 환인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많은 책을 읽게끔 하셔서 때때로……는 아니고 자주 이런 상념에 빠지곤 하는 자신이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환인이었다.

얕은 잠을 유지하며 자다 깨다 반복하던 환인은 야행성 짐승 몇 마리가 거목 아래까지 다가온 기척을 느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환인이 불을 피웠던 흔적을 헤집는…… 하이에나와 비슷하게 생긴 짐승 세 마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영혼 시야를 열자 적색과 녹색이 적당히 섞인 색계통이 어둠 속에서 강렬한 색감을 발휘한다.

이종??의 하이에나를 응시하던 환인은 거목 주변의 분지를 유심히 살폈지만, 저 세 마리 이외의 다른 짐승은 없었다.

‘사냥을 나온 건가.’

영혼 구슬은 네 개가 유지 시간 임박 상태였다. 각각 20분 2개, 43분, 45분가량.

8개의 영혼 구슬 중 1개를 제외하면 전부 기술이 없는 최하급 영혼이라 지팡이를 쥐고 소리 없이 20분 남은 영혼으로 강령을 펼친 뒤…….

“가라.”

세 마리가 모두 영혼 폭발의 범위에 모두 들어왔을 때 나지막한 목소리로 영혼 폭발 두 번 중첩했다.

콰광!

끄애앵! 깨액!

켁.

형태 없는 폭발에 휘말린 세 마리가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개중 한 마리는 맞은 부위가 좋지 않았는지 앞발이 부러져 덜렁거리는 상태.

환인은 곧바로 5m 높이에서 훌쩍 뛰어내는 동시에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한 마리의 등을 창으로 꿰뚫었다.

캐액!

직후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가 코피를 흘리면서 맥을 못 추는 다른 한 마리의 목도 꿰뚫었고, 앞발이 부러져 서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마지막 한 마리의 목도 돌도끼로 단숨에 갈라버린다.

등을 깊게 찔린 하이에나는 헉헉거리며 비틀비틀 걷다가 풀썩 엎어졌고 목이 뚫린 하이에나는 즉사, 목이 쩍 벌어져 피거품을 부글부글 뿜어내는 하이에나는 잠시 버둥거리다 잠잠해졌다.

세 마리가 확실하게 죽은 것을 조사한 환인은 한 마리의 부러진 앞발을 창대로 건드려본다.

‘영혼 폭발 두 발을 엇비슷하게 쏘면 약한 뼈는 부러지기까지 하는군.’

하긴, 수십 킬로그램의 덩치를 날려버리는 위력이다. 힘의 작용 방향이 각기 다르면 부러지기도 하겠지.

그러나 영혼 구슬 2개를 사용하는 것 치고는 유용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한 발씩 쏘며 빈틈을 만들어내고 창으로 마무리를 짓는 쪽이 더 낫지.

‘또 기술 없는 최하급 영혼이군.’

잠시 후 하이에나의 사체에서 희뿌연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본 환인은 묵묵히 영혼 구슬로 만들어서 회수했다.

슬슬 기술이 있는 영혼, 없는 영혼으로 구분하기 번잡해져 환인은 자신만의 기준을 세웠다.

아무런 기술이 없는 뿌연 연기 형태의 영혼은 최하급. 녹색 괴물, 짐승 머리 괴물, 리트리버와 비슷한 개 떼, 하이에나를 닮은 짐승이 이에 해당한다.

두 꼬리 원숭이, 개구리 인간, 도마뱀 인간처럼 형태와 기술을 가진 것들은 하급이다.

현재로서는 최하급과 하급 두 가지 등급뿐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많아지면 등급도 계속해서 오를 걸로 예상한다.

그 예상의 이유는 말사슴 영혼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말사슴의 영혼은 하급 영혼보다 형태 면에서도 월등한 차이가 났었으니까.

‘괴물 갈매기나 거대 토끼, 푸른불꽃 호랑이의 영혼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

괴물이 아니라 괴수라고 해도 될만한 것들은 혼마저도 특별하지 않을까.

새삼 여섯 다리의 말사슴 영혼을 갈무리하지 못한 게 아쉽다. 사체의 크기도 기린만 했으니 틀림없이 강력한 힘을 가진 영혼이었을 텐데.

아무튼, 환인은 피를 본 거목에서 더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4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덕분에 정신적, 육체적 피로는 대부분 사라졌고 아직 달이 휘영청 뜬 밤이지만 영혼 시야 덕분에 밤눈도 밝으니 다시 길을 나설 생각이었다.

거목을 기어 올라간 환인은 짐과 장비를 챙긴 뒤 지팡이에 맺힌 영혼 구슬의 남은 유지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자 마악 8시간을 채운 영혼 구슬 하나가 휫­ 소리와 함께 연기처럼 변해 하늘로 올라간다.

“…….”

환인은 남은 7개의 구슬 중 유독 선명한 1개의 영혼 구슬을 들여다보았다.

낮에 확보한 푸른 표범의 영혼 구슬, 유일한 하급 구슬이다.

‘남은 유지 시간은 2시간 정도인가.’

보유 가능 영혼 구슬 갯수 = 유지 시간의 공식 검증을 끝마쳤다.

시간이 되면 푸른 표범의 영혼 구슬도 사용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환인은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여러 색과 여러 형태의 과일이 제각기 다른 모양의 과실수와 함께 만들어내는 조화는 꽤 불쾌한 느낌이었다.

아가리를 쩍 벌린 식충식물의 앞에 서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평범한 식충식물이 아니라 호박에 줄 긋고 수박인 척하는 아파트 크기의 식충식물이다.

“흐음.”

회색빛 어둠이 내려앉아 더욱 음울하고 을씨년스럽게 다가오는 작은 산을 피해 빙 둘러 가던 환인은 자기 어깨에서 꾸벅꾸벅 조는 비상식량을 쳐다보았다.

졸다가 가끔 균형이 무너져 넘어질 듯 화들짝 놀라 깨는 게 웃기기도 하고 이러다 뒤로 떨어질 거 같고 여러모로 신경 쓰인다.

원래는 봇짐처럼 옆구리에 낀 짐승 가죽 두루마리가 지정석이었는데…….

잠시 임시방편이라도 마련해보려다가 포기했다. 짐이라곤 러닝셔츠를 보따리처럼 만든 식량 보따리와 무기 5개뿐이니까.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면서 어둠에 동화되어 앞으로 나아가던 환인은 세 차례, 짐승의 접근을 파악했지만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검회색 늑대(색계통은 흑색) 세 마리, 거목에서 조우했던 하이에나와 똑같이 생긴 두 마리, 낙타……인지 타조인지 잘 분간 가지 않는 동물이 멀찍이서 간 보듯 슬금슬금 움직이다 환인의 시선이 몇 번 닿으니 그냥 물러간 것이다.

“…….”

몸을 돌려 떠나가는 낙타조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환인은 약간 아쉬움을 느꼈다.

새로 확보한 영혼 구슬 3개를 제외한 나머지의 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은근히 싸움을 걸어와 주길 바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야밤의 습격자들이 포기하고 돌아간 게 당연한 거였다.

환인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밀림에 떨어진 이후 그가 겪은 경험은 그의 특이한 성정과 맞물려 좋지 않은 현상을 일으켰다.

한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각성한 이후 눈빛은 물론 몸에서도 은연중에 살기가 일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환인을 습격했던 개 떼도 그러한 환인의 살기에 자극받아 적으로 인식, 싸움을 걸어왔던 것이고.

그런 줄도 모르는 환인은 주위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으며 쉼 없이 이동했고 존재 자체가 함정처럼 보이는 산을 지나쳐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쏴아아아­

다시 강줄기와 마주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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