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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22화 (22/813)

〈 22화 〉 022 수해­외곽

* * *

밀림에서 얻게 된 초자연적인 능력. 영혼을 다루는 힘에 대한 환인의 감상은 영혼 구슬이 있을 때까지만 해도 별것 없었다.

그저 ‘밀림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더 커졌군.’ 이 정도 수준.

점차 성장하는 힘인 것이 확실한 마당에 훈련이나 수행에 여력을 쏟지 않고 밀림의 탈출에 더 신경을 쓴 것도 그런 의식의 일환이었다.

애초에 하루하루가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었기에 마땅히 훈련이나 연습할 틈도 얼마 없었지만.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물렀음을 환인은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최후의 보루, 숨겨둔 한 수가 얼마나 마음에 안정을 주는지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환인은 단시간에 인위적으로 생긴 길을 따라 나아가면서 거둘 수 있는 영혼의 보유자가 나타나길 바랐지만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번은 비상식량의 경고로 녹색과 빨간색이 알록달록한 뱀을 발견했었다. 주둥이가 세모꼴인 걸 보면 독사였다.

환인은 재빨리 발로 머리를 밟고 돌도끼로 목을 잘라 죽였지만, 영혼 구슬은 확보하지 못했다.

뱀의 사체에서 희끄무레한 안개 같은 것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혼의 규모는 녹색 괴물이나 짐승 머리 괴물과 비교해도 무척이나 작고 희미했으며, 지팡이를 쥐고 영혼 구슬로 거두어들이려 해도 명령을 듣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외에 비상식량의 절반만 한 새라거나 어린아이 주먹만 한 적록색 등껍질의 풍뎅이(비상식량도 이것을 먹는 것은 거부했다)도 죽였지만 혼을 거두지는 못했다.

‘몸집은 최소 비상식량 급. 지능은 원숭이 수준은 되어야 하는 건가.’

한숨과 함께 길을 따라가다가 발견한 블랙베리 비슷한 열매로 허기와 수분을 보충하던 환인은 문득 덤불의 밀도가 옅어진 것을 눈치챘다.

40분 정도 더 나아가던 환인은 다시금 덤불의 밀도가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블랙베리 덤불을 발견, 열매를 따면서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대호수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밀도가 줄어드는 덤불 쪽으로 헤치고 나아갈 것인가.

“…….”

꽥?

블랙베리를 따다 말고 손을 멈춘 환인에게 꽥, 우는 비상식량.

그 태평한 모습에 블랙베리를 먹여주면서 일어난 환인은 발걸음을 돌렸다.

식량 사정은 나쁘지 않았다. 지금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보이는 족족 채집, 채취 중이기에 며칠 분량은 충분하다.

대호수 근방에 아직 괴물 갈매기가 날아다닐 수도 있고, 대호수는 위치도 알고 방향도 알고 있으니 지금은 덤불이 옅어지는 쪽을 확인해보자.

만약 생각대로라면 이 후덥지근하고 벌레 떼도 많고 움직이기도 힘든 지긋지긋한 숲을 탈출할 수 있을 거다.

최악과 차악, 어느 쪽이 차악일지 고민하던 환인은 덤불의 밀도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갈 것을 결정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산이나 숲을 지나는 것은 지독하게도 힘들다.

무성한 수풀과 엉망으로 자란 나무뿌리가 걸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물론 무성한 덤불은 바짝 마른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체력을 빨아먹기 십상.

더욱이 환인처럼 지팡이나 창 같은 장병기와 짐을 지닌 상태라면 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키 작은 나무의 나뭇가지나 덩굴에 창과 지팡이가 수시로 걸리고 발밑에 신경 쓰지 않으면 나무뿌리나 덤불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한다.

자연스레 짜증이 도트 데미지처럼 쌓이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차 덤불의 밀도가 줄어들며 땅이 보이기 시작하고 촘촘하게 자라고 있던 나무도 거리를 점점 벌리고 있었기에 인내할 수 있었다.

꽥!

비상식량의 경고 소리에 움직임을 멈춘 환인은 영혼 시야를 열어 주위를 살핀다.

영혼 시야를 훈기와 한기의 소모 없이 지속해서 쓸 수 있다지만, 이중으로 물든 총천연색의 숲은 시각과 뇌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

그렇기에 1시간가량 쓰고 20분 정도 휴식을 반복하는데 지금처럼 지팡이의 뿔에 앉아있던 비상식량이 경고음을 내면 휴식 중이라도 영혼 시야를 펼쳐 주변을 탐색한다.

그런데 무엇을 경고했는지 알 수 없다.

“비상식량, 뭘 본 거냐.”

환인이 지팡이를 살짝 흔들며 말하자 비상식량이 퍼드덕 날아올라 어느 나뭇가지에 착지해 아래쪽의 수풀을 본다.

밑에 숨어있다는 건가.

위치를 알려주는 비상식량의 행동에 창을 꺼낸 환인은 적당히 긴장을 일으키며 수풀을 조심스레 건드렸다. 그러자 푸스스슥! 수풀이 크게 흔들리더니 무언가가 반대쪽으로 튀어 나가는 것이 환인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옅은 회색의 자그마한 털 덩어리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덩굴 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뭐였지.’

얼핏 보인 것은 비상식량보다 조금 더 큰 네발짐승이었다.

색계통은 뚜렷한 황색을 띠고 있었는데 가벼운 접촉에도 도망갈 정도라면 겁 많은 동물이지 않았을까.

도망간 짐승이 있던 자리의 수풀을 헤집어보니 풀과 나뭇가지 등으로 꾸며놓은 조금 커다란 둥지가 드러났다.

점차 덤불의 밀도가 옅어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큰 짐승들을 피해 작은 동물들이 숨어 살기 좋은 곳이겠지.

다시 앞으로 나아가던 환인은 덤불이 눈에 띌 정도로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갈색의 마른 나뭇잎이 잔뜩 깔린 아기자기한 숲에 들어서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덤불이 흉흉하게 자라고 있는 게 보인다.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린 환인은 나뭇잎 사이로 고개를 내민 잔디와 작은 풀. 그리고 점차 얇아지고 가늘어지는 나무를 살피다가 나무를 한 손으로 힘껏 밀어보았다.

나무가 조금 기울어지며 땅이 들썩들썩한다.

환인의 신체 스펙이 상승한 영향도 있겠지만, 두께가 50cm도 안 될 것 같은 가느다란 나무다 보니 뿌리가 튼튼히 내리지 못한 것 같다.

나무 뒤에 숨을 수도 없고 나무가 장해물이 되어주지도 못할 것 같은, 더욱이 무기를 함부로 휘두르다간 옆의 나무에 걸리기에 십상인 환경.

돌도끼를 집어넣고 창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날아서 따라오고 있는 비상식량에게 말했다.

“비상식량. ‘경계’ 잘 부탁한다.”

꽥.

비록 나무와 나무의 간격이 2~3m 정도밖에 안 될 만큼 좁지만, 나무가 워낙 가늘다 보니 위를 보지 않아도 나무 사이로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올 정도다.

날아서 따라오고 있는 비상식량이라면 먼 곳까지 볼 수 있겠지.

간단한 훈련을 통해 경계 모드를 터득한 비상식량에게 고지대 감시를 부탁한 환인은 나무의 위치를 유심히 눈에 담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작은 동물이 산다면 그것을 사냥해서 잡아먹고 사는 큰 짐승도 있다는 뜻이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나무의 위치를 기억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생각인 환인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꽤액!

“후웁!”

푸욱­ 깨갱!!

꽥꽥!!

“합!!”

콱, 퍼벅!

캐애앵!

환인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상식량의 경고를 들으며 끊임없이 달려드는 리트리버 견종과 크기도, 생김새도 비슷한 짐승하고 치열하게 싸우게 되었다.

어디서 찾아온 건지, 덤불의 바다를 빠져나와 1시간 즈음 걸었을 때 비상식량이 갑자기 꽥꽥꽥 크게 울어대기에 긴장을 추켜세우는데 느닷없이 쉰 마리가 넘는 개 떼가 덮쳐온 것이다.

가느다란 나무를 바리케이트 삼아 회색의 네발짐승들이 한 번에 달려들지 못하도록 자리를 잡아가며 창을 쉴 새 없이 찌른다.

아가리를 벌리고 점프해서 뛰어드는 놈을 살짝 피하며 옆구리를 갈라버리고, 뒤에서 덤벼드는 놈을 사이드 스텝으로 피한 직후 창을 질러 뒷다리를 벤다.

“흡!”

캐갱! 깨앵!!

크러러렁­!

환인은 창을 쥔 팔이 피로에 살짝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신기한 감각을 경험하고 있었다.

개과 짐승이 어딜 공격할지 알 것 같은 느낌. 짐승들의 움직임이 유독 눈에 자세히 들어오며 어떻게 움직일지 알 것 같은 기분.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지쳤다.

최대한 체력 분배를 해가며 싸웠지만, 30마리 정도를 죽인 지금은 숨이 거칠어졌고 창질에 기합이 들어가게 된 상태.

세 번째 강령 효과가 종료된 것은 한참 전으로 전투가 시작된 지 최소 20분 이상 지났다.

지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핫!”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각오로 돌진해오는 짐승의 아가리에 번개같이 창을 푸욱­ 찔러넣은 환인은 곧장 옆에서 습격하는 놈의 안면을 창대 끄트머리로 찍었다.

캐액!

깨애애앵!!!

창날을 깊숙이 삼켰던 놈이 땅을 사납게 뒹굴고 창의 끄트머리에 눈알이 찍힌 놈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날뛴다.

동족 두 마리의 발작에 다른 짐승들이 주춤 물러서는 사이 환인이 내팽개쳐진 사슴뿔 지팡이를 재빨리 차올려 손에 쥐었다.

으르르르­!

아르릉­!

그 모습에 짐승들이 일제히 10미터가량 물러나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강령 효과가 유지될 때 영혼 폭발에 다섯 마리가 한 번에 내동댕이쳐진 것을 기억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환인의 목적은 네 번째 강령.

재빨리 희끄무레한 짐승의 영혼을 불러들여 몸에 씌운 환인은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고 체온이 훅훅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흐으으읍­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동시에 유달리 덩치가 큰 놈들을 파악.

“가라!!”

쉬이잇­

주변을 떠다니는 영혼을 모두 끌어당겨 단숨에 날렸다.

환인의 행동이 신호인 양 짐승들이 재빨리 산개한다. 그러나 5개의 영혼 구슬이 각자 유도기능을 발휘해 추적하는 것이 더 빨랐다.

컹컹! 커…….

콰과광!!

깨애애앵!!

깨개갱­!

환인의 눈에 띈 짐승은 단 한 놈도 빠짐없이 폭발에 휘말렸다.

“흐아아압!!”

다쳐 피투성이가 된 놈들은 내버려 두고 폭발에 움찔, 자세를 낮춘 멀쩡한 짐승들을 향해 달려든 환인은 다시 이빨을 드러내는 짐승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창을 질렀다.

캐애앵!

크아아앙!!

깨개갱!!

공격 횟수는 줄어들더라도 한 번에 한 마리씩, 확실하게 다리나 몸통에 깊은 상처를 입혀 전투력을 떨어트린다.

그렇게 네 마리를 추가로 전투불능 상태로 만들자 짐승들의 기세가 눈에 띄게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환인도 한 번에 5발의 영혼 폭발을 일으킨 탓에 한기를 느끼게 된 상황.

‘저 쓰러진 놈 중에 리더가 있었군.’

재빨리 정황을 파악한 환인은 허리춤에 흑곤봉을 꺼내 바로 옆의 나무를 쾅쾅 강하게 후려치며 크게 고함을 질렀다.

“꺼지라고 이 개새끼들아! 저리 꺼져!!”

포악한 외침에 멀쩡한 짐승들이 일제히 등을 돌려 도망쳤다.

“……후우우.”

강령 효과가 지속 중인데도 몸이 천근만근이다.

길게 숨을 내뱉은 환인은 저 멀리 도망가는 열두 마리의 짐승을 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끼잉, 끄으응.

깨애앵.

족히 마흔이 넘는 짐승이 사방에 피 칠갑을 한 채 죽어가고 있다.

환인은 묵묵히 창으로 아직 숨이 붙어있는 짐승은 물론이고 움직임 없이 축 늘어져 있는 짐승도 가슴을 찔러 확인 사살을 해나갔다.

그리고 아무런 기술의 추가가 없는 형태의 영혼을 영혼 구슬로 받아들이는데.

“……8개?”

사슴뿔 지팡이의 뿔에 8개의 영혼 구슬이 희미하게 빛을 내며 달라붙는다.

연속 4번 강령과 다수의 영혼 폭발 사용으로 조금 성장한 건가.

고개를 끄덕였던 환인은 너덜너덜해진 짐승 가죽 봇짐을 들어 올리다가 틈새로 짓이겨지고 뭉개지고 개의 침에 엉망진창이 된 식량이 처덕처덕 떨어지는 것을 가만히 응시했다.

“…….”

쓰레기가 되어버린 짐을 툭 던진 환인은 바로 옆에 있는 짐승의 사체를 퍽 소리 나게 걷어찼다.

강령의 힘을 받은 각력에 20kg은 될법한 시체가 축구공처럼 붕 날아간다.

상처 대신 봇짐을 희생한 거지만, 먹지 않고 아껴둔 식량이 모두 음식쓰레기가 되어버린 게 못내 기분 나쁘다.

멀쩡한 것은 정장 코트의 안주머니에 넣어놓은 보존용 식량 꾸러미 하나와 치료용 금방울 꽃 꾸러미뿐.

아무튼.

‘이제 어떻게 한다.’

잠시 짐승들의 송곳니만 뽑아서 부적처럼 만들까 생각했지만 바로 폐기했다.

송곳니의 냄새를 짐승들을 쫓아낼 부적으로 삼는 것은 되려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이 될 수 있다.

이것들이 강한 놈들이면 몰라도 우르르 몰려다니며 숫자로 싸우는 것들이다. 오히려 냄새 때문에 거대 토끼나 다른 괴물을 불러들일 가능성이 크다.

나무 방패도 만들면 좋겠지만…….

이렇게 피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은 좋지 못한 생각이다. 더욱이 방패를 만들면 지팡이를 쓰는데 애로사항이 꽃필 것 같기도 하고.

결국 그냥 떠나는 것으로 결론 내린 환인은 저 위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비상식량을 불렀다.

휘익­.

꽥!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온 비상식량에게 코트 주머니의 곤충을 꺼내 먹이며 어디로 갈지 고민을 시작했다.

일단 거지 같은 덤불숲을 빠져나오는 것은 성공했다.

다음으로 이동할 곳은….

짐승들이 도망간 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반대쪽으로 갈 것인가.

간단하게 생각하면 거대 토끼 > 개과 짐승이고, 약한 놈일수록 숲의 외곽에 위치할 테니 짐승의 뒤를 쫓아가는 게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쉰 마리가 넘는 짐승의 숫자, 거기다 차륜전에 포위 공격도 할 만큼 지능이 높다면 숲의 먹이사슬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

환인은 짐승이 도망친 방향의 반대편을 돌아보았다.

저쪽으로 가면 대호수가 나온다. 거대 토끼가 향한 쪽이기도 하고 대호수에는 괴물 갈매기도 있고 거지 같은 덤불 숲도…….

“…….”

결정을 내린 환인은 짐승들이 도망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환인은 자신을 습격했던 개 떼를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개 떼가 남긴 흔적을 따라 며칠간 밀림을 돌아다닌 환인은 이 밀림이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힘겹게 길을 만들어내며 나아가다보면 보면 확 불을 질러버리고 싶을 만큼 짜증 나는 덤불의 바다.

촘촘한 잔디와 가늘게 자란 나무들, 갈색 낙엽이 쌓여 폭신폭신한 땅에 햇볕이 내리쬐는 온화한 숲.

덤불의 바다에는 곤충과 식물, 날아다니는 작은 새를 제외하곤 생물이 살지 않는 곳이었다.

온화한 숲 지역은 회색 개 무리를 비롯해 크고 작은 동물이 식물과 함께 먹이사슬과 먹이그물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었다.

개중에는 맹수라고 부를 법한 짐승도 있었는데 대다수가 혼자 활동하는 사냥꾼 유형이었던데다, 마주치더라도 환인의 몸 곳곳에서 나는 각기 다른 괴물의 피 냄새로 인해 짐승 쪽이 먼저 자리를 피해주었다.

환인도 굳이 쫓아가지 않아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환인의 목표는 첫날 자신을 습격했던 개 떼.

개는 의외로 집요한 동물이다. 환인도 자다가 개에게 목이 물리고 싶지 않았기에 온화한 숲의 개 떼는 모두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 전투에서 구성원 대부분을 잃어버렸는지, 개 떼는 환인을 피해 계속 도망 다녔고 환인은 놈들을 계속 쫓았다.

그러는 와중에 흉포하고 포악한 본능에 이끌려 환인을 덮치는 푸른색 표범 같은 맹수도 있었지만, 영혼 폭발을 써서 강제로 빈틈을 만든 뒤 창으로 다리의 힘줄만 노려 무력화시키는 전법에는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여럿도 아니고 한 마리씩만 덤벼오기도 해서 어렵지도 않았고 말이다.

“…….”

대표적인 육식동물로 꼽을 수 있는 표범(같이 생긴) 맹수를 혼자 사냥해낸 환인은 자신이 이렇게 강해졌나 싶어 심정이 복잡미묘했지만 아무튼.

사흘째 회색 개 무리의 흔적을 쫓아 이동하던 환인은 갑작스레 초원처럼 나무가 듬성듬성해지며 저 멀리 나타난 산지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영혼 시야로 보는 산지 곳곳에 연녹색, 혹은 녹색 계통의 식물과 백색 계통의 과실수 여러 종류가 자라고 있었던 거다.

숲에, 산에 야생 과일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밖에서도 다 보이는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자란다니?

과일을 맺는 것은 나무가 번식하기 위한 기능이다. 조류나 동물이 먹기 힘들게끔, 혹은 먹어도 이득을 느끼지 못하게끔 진화하는 게 자연계의 법칙이라는 뜻이다.

저렇게 대놓고 자라는 것은 품종을 개량한 과실수를 잔뜩 심어놓은 지구의 과수원이 아닌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개 떼는 저 산으로 사라진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함정이다.

이성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감각적으로 판단해봐도 저 산지에서 무언가 불길함이 느껴져 등골이 시원해질 지경이다.

꽥!

그때 환인의 혼잣말을 들은 비상식량이 훌쩍 날아올라 흔한 뒷산 같은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환인은 급히 소리쳤다.

“비상식량! 돌아와!”

꽥?

가다 말고 되돌아와서 팔뚝에 앉은 비상식량이 왜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기우뚱한다. 그런 비상식량의 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에는 독이 있는 법이다.”

영혼 시야의 색계통이 아니라 평범한 시야로 보면 각양각색의 여러 가지 과일 열매가 마치 무늬처럼 산을 뒤덮고 있어 가을의 산보다 더욱 화려하게 보인다.

저기가 회색 개 무리의 보금자리인지 아니면 자신이 뒤쫓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무리가 도망친 곳인지 알 수 없지만, 환인은 저 산으로 들어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먹을 게 부족한 것도 아닌데 일부러 위험을 무릅쓰고 갈 필요는 없지.

“피해서 돌아가자.”

독사과 같은 산 뒤로 다른 산도 여럿 보인다.

이제 밀림도 빠져나왔겠다. 인적을 찾을 때가 됐다.

표고가 100m도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저 산의 정상에 오르면 주변 지형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겠지.

운이 좋다면 작은 마을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테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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