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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18화 (18/813)

〈 18화 〉 018 수해­강줄기

* * *

원숭이를 닮은 동물은 떨어지기 전에 이미 숨이 끊어졌는지 퍽, 소리와 함께 땅에 충돌했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여기저기 늙은 흔적이 보인다.

“늙어서 쇠약사한 건가.”

고개를 들어 나무 위로 시선을 주자 동글동글한 머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쪽을 쳐다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밀림을 걷다 보면 간혹 작은 뼈가 보였었는데 그 뼈는 저 동물의 뼈였나보다.

‘마침 잘됐어.’

영혼이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에 잠시 살펴보니 확실히 신기하게 생겼다.

전체적으로 생김새는 아마존의 다람쥐원숭이와 비슷하지만 묘우? 혹은 묘고?라고 하는 일본의 요괴 고양이처럼 꼬리가 두 갈래에 가슴의 명치 부근에는 엄지 한 마디 정도 되는, 털 빛깔과 같은 회색 비늘이 붙어있다.

크기도 작고 이목구비도 얌전하다.

지구에서라면 꽤 인기 있을 것 같은 외모라고 생각하던 환인은 죽은 두 꼬리 원숭이의 시체에서 영혼이 빠져나오는 것을 보고 지팡이를 들었다.

“…….”

그런데 그 모습이 도마뱀 인간과 특징이 흡사했다.

녹색 괴물이나 짐승 머리 괴물의 영혼은 흐릿한 안개 형태여서 원래 모습을 알 수 없는데, 원숭이의 영혼은 도마뱀 인간처럼 조금 흐릿하긴 해도 충분히 생전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뚜렷한 거였다.

이 차이는 뭘까.

혹시?

환인은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두 꼬리 원숭이의 영혼에게 ‘나에게’ 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형태가 영혼 구슬로 곧장 변하더니 환인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두쿵.

“음.”

원숭이의 혼이 육체에 강령된 순간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이 정도라면 심장이 아플 법도 한데 아무렇지도 않다. 그 후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눈치챘다.

심장이 크고 빠르게 뛰며 피를 더욱더 강하게 내보내 혈류를 가속하고 있다.

단순히 체온이 오르고 피만 빠르게 도는 게 아니다.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근육이 이완되는 것처럼 풀어진다.

그렇다고 힘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펌핑되면서 근육 한 가닥 한 가닥에 힘이 스며드는 감각이었다.

“……?”

문득 환인은 눈앞의 나무가 마치 놀이도구처럼 느껴진다는 것에 조금 당황해하다가 두 손으로 나무를 짚어보았다.

익숙한 도구를 잡은 것처럼 나무에서 친숙함이 느껴진다.

두꺼운 나무껍질의 홈이 보지 않아도 느껴지고, 손과 발을 어디에 대면 나무를 수월하게 탈 수 있을지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한 것 같은 기묘한 느낌.

환인은 스스럼없이 손과 발을 놀리기 시작했고,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20m가 넘는 나무를 계단 오르는 것 마냥 빠르게 기어올랐다.

끼이이.

뀨우~.

나무 꼭대기에 모여있던 두 꼬리 원숭이들은 마치 자신들처럼 나무를 타고 오른 환인을 멀찍이서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환인도 표범처럼 두꺼운 나뭇가지 위에 안착한 상태에서 원숭이들을 보다가 무성한 나뭇가지를 돌아본다.

‘역시.’

어떤 나뭇가지가 자신의 체중을 버티고 어떤 나뭇가지가 못 버틸지 알 수 있다.

그 감각을 믿고 외줄 타기 하듯 나뭇가지를 사뿐사뿐 밟으며 노란 과일을 네 개 정도 챙긴 환인은 한 손과 두 다리만으로 나무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3분 정도 남았나.’

따온 과일과 짐을 모두 내려놓은 환인은 엄지와 검지로 나무껍질을 잡고 힘을 줘서 당겨보았다.

찌지직.

생나무가 그대로 뜯겨져 나온다.

손가락 힘은 물론이고 피부도 단단해졌는지 나무 가시는 커녕 자국도 남지 않았다.

창을 들고 몇 차례 찌르기와 휘두르기를 해보았다.

바우웅­! 핑­ 피핑­!

휘두르기는 창대가 활처럼 휘었고 찌르기는 쏜 화살처럼 소리를 내며 허공을 꿰뚫는다.

두 꼬리 원숭이 영혼의 강령 효과가 끝나자 체온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심장이 뛰는 속도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평소보다 1.2배는 더 빠르게 뛰어서 강령의 후유증이 남는 것은 아닐까 했지만, 자고 일어난 직후처럼 몸이 약간 무겁게 느껴지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근육뿐만 아니라 내장 기관도 마찬가지로 유연해지는 걸까.

“멋진데.”

강령의 후유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확인한 환인은 지팡이의 뿔에 맺혀있는 녹색 괴물의 영혼을 몸에 강령시켰다.

“흠.”

이번에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데 그 속도는 두 꼬리 원숭이보다 한참 떨어진다. 체온도 얼마 오르지 않았고 힘도…….

부웅­ 휘잉, 후욱­

……평소와 별반 차이가 없다.

녹색 괴물 영혼의 강령까지 체험해본 환인은 확신에 찬 결론을 내렸다.

“특별난 기술이나 능력이 있으면 영혼이 생전의 모습을 띠고, 특징도 없는 흔한 생물이면 흐릿한 안개 같은 모양새가 되는 거군.”

녹색 괴물 영혼의 강령은 아주 미약하게 신체 능력이 오르는 것으로 그쳤지만, 두 꼬리 원숭이의 효과는 나무를 타는 기술과 혈류 가속으로 인한 근육의 탄력 증가, 관절의 유연성 향상이었다.

나무를 타는 기술은 나쁘지 않다. 1분 만에 20~30m 나무를 기어오를 정도라면 도주나 회피로 적절하니까.

중요한 것은 혈류 가속으로 증가하는 신체 능력.

환인은 고개를 들어 이쪽을 구경하고 있는 원숭이 떼를 보며 씩, 웃었다.

“으음.”

비상식량의 협조로 2마리의 두 꼬리 원숭이를 죽이고 영혼을 수집한 환인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뱉었다.

영혼의 수용 숫자가 6개였다니, 영혼 구슬의 유지 시간이 여섯 시간인 것과 뭔가 관계가 있는 걸까.

녹색 괴물의 영혼 구슬 하나를 풀어주고 그 자리에 새로 잡은 두 꼬리 원숭이의 영혼을 넣은 환인은 죽인 원숭이의 가죽을 벗기고 멀티툴의 나이프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가뭄의 단비처럼 밀림에서 처음 손에 넣은 단백질이다. 원숭이라고 해도 버릴 생각은 없었다.

“…….”

하지만 가죽을 벗긴 순간부터 환인의 손은 느려졌고 ‘이걸 먹어야 하나.’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가죽을 벗겼더니 마치 사람 같은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환인이 원래 살던 세상에서는 중국의 악식??이 원인이라고 추정되는 끔찍한 전염병이 맹위를 떨치던 중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고기다. 비상식량도 같은 생명인데 비상식량은 괜찮고 원숭이는 안 괜찮을 이유가 없다.’

생각과 거부감을 정리한 환인은 머리통과 내장은 땅에 파묻고 사지를 잘라 몸통 따로, 팔다리를 따로 굽기 시작했다.

“…….”

두 꼬리 원숭이의 생전 색계통도 연녹색이었고 구울수록 백색으로 변해가고 있으니까 먹어도 괜찮겠지.

이윽고 다 구워진 고기는 색계통에서는 완전한 백색이었기에 환인은 나무꼬챙이에 꽂힌 닭 날개 같은 팔을 잡아 조심스럽게 한 입 먹어보았다.

“……음.”

혐오감을 제외하면 맛은 그냥저냥 평범했다. 맛은 새우와 닭고기를 7:3 정도로 섞은 느낌이고 식감은 닭가슴살보다 약간 더 질기다.

냄새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육식동물 특유의 누린내가 없다고 할까.

죽인 직후 목을 잘라 피를 바로 뺐고 내장도 곧장 긁어낸 덕분일지도 모른다.

“먹어볼 테냐.”

꼬액.

고개를 팩 돌리는 비상식량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환인은 마저 고기를 빠르게 먹어 치웠다.

원숭이 고기는 팔다리도 가늘었고 크기도 작아서 두 마리를 다 먹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것을 신경 쓰면서 먹어서일까, 체할 것처럼 명치 쪽이 묵직하다.

중국인들은 이런 걸 어떻게 먹는 걸까.

환인은 모닥불과 먹고 남은 뼈다귀를 땅에 묻으면서 중얼거렸다.

“다신 먹지 말아야겠군.”

이런 밀림에서 체하거나 구토, 설사 등을 하게 되면 급격한 체력, 기력 소모로 이어진다.

기력 소모는 곧 전투력 상실로 이어지니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다.

차라리 덜 신경 쓰이는 곤충을 먹는 게 낫지.

묵직한 감각에 신경 쓰지 않기 위해 입가심으로 노란 과일을 먹으면서 강 상류로 향하던 환인은 지팡이를 흔들며 녹색 괴물이 썼던 무색 폭발의 재현을 시도했다.

여러 능력의 발현은 우선 영혼 시야를 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무색의 폭발은 영혼 폭발로 확신하고 있으니 영혼 구슬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게 틀림없을 텐데…….

그러던 중 짐승 머리 괴물 다섯 마리와 마주친 환인은 강령을 할 필요도 없이 멈칫거리는 괴물을 향해 달려들어 창을 종횡무진 휘둘러 순식간에 전투를 마무리 지었다.

끄켁.

캬욱!

끄르르…….

두 마리는 목이 절반쯤 잘려 즉사. 세 마리는 팔다리가 날아가거나 뱃가죽이 갈라져 내장을 쏟아내며 전투 불능에 빠졌기에 차례차례 심장을 찔러 편하게 만들어준 환인은 창을 휘둘러 피를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힘이 세졌어.”

몸놀림도 좀 더 빨라졌고 체력도 더 좋아졌다.

시험 삼아 적당한 나무를 앞에 두고 서전트 점프를 해본 결과 거의 1.3m에 달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 정도면 3m 높이의 벽도 쉽게 넘어갈 수 있을 정도.

“…….”

왜 갑작스럽게 강해진 걸까. 영혼을 보고 다루는 이상한 능력이 생기면서 신체도 변화한 건가?

나쁜 일은 아니다. 숲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뜻이니까.

죽은 짐승 머리 괴물의 몸에서 혼이 빠져나오는 것을 지켜보던 환인은 불현듯 생각난 한 장면에 눈을 번뜩였다.

영혼이 승천하기 전에 잠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나무 뒤에 숨겨둔 사슴뿔 지팡이를 가지러 간다.

녹색 괴물은 지팡이를 잡은 채로 자신을 보며 주문을 외우듯이 웅얼거렸었다. 그건 주문이라기보다 정신집중을 위한 소음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비상식량, 이리 와.”

꽥.

지팡이 위에 얌전히 앉아있던 비상식량을 오른쪽 어깨에 태우고 지팡이 쥔 환인은 영혼 시야를 연 채 정신을 집중했다.

영혼 폭발.

폭발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는 압축되어있던 진동이 한순간 터져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 진동이라고 하는 쪽이 더 어울리려나.

영혼의 폭발. 영혼의 진동. 무색무취 무형의…… 폭발.

몸 안을 흐르는 한기와 훈기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으니 두 가지 기운이 살짝 요동친다.

이윽고 지팡이를 쥐고 있는 손을 통해 흘러들어오던 훈기와 한기가 이번에는 손을 통해 지팡이로 밀려들어 간다.

마치 손이 연장된 듯한 느낌. 영혼 구슬이 한기와 훈기에 감응하는 것이 느껴진다.

시선을 20m 앞에 서있는 나무로 향한 환인은 지팡이를 부러질 듯 힘껏 움켜쥐며 내질렀다.

“가라!”

그와 동시에 지팡이에 맺힌 6개의 영혼 구슬이 일제히 목표를 향해 날아가더니…….

쿠구구구구궁!

무형의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며 나무를 두들겼다.

사방에 흩날리는 나뭇잎과 부서진 조각, 나무껍질을 피하고 막던 환인은 잠시 후 영문 모를 두통에 이마를 감싸 쥐며 신음을 흘렸다.

“어째서 두통이…….”

짧게 중얼거리던 환인은 눈앞에 드러난 광경에 침묵했다.

흡사 불곰이 발톱으로 마구 긁어댄 것 같은 강렬한 흔적이 지름 5m의 나무에 새겨져 있었다.

위력은 확실하다. 그런데 이 두통의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영혼 구슬이 한 번에 전부 날아가서?

그렇다면 영혼 구슬이 기운에 감응한 것이 장전 신호였을까. 개별로 인식해서 쏘면 1발씩 날아가는 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환인은 문득 조금 추워진 것을 깨닫고 한숨을 내뱉었다.

영혼 폭발 한 번에 훈기가 이렇게나 소비될 리 없으니 여섯 발의 영혼 폭발을 동시에 일으킨 탓에 훈기의 소비가 가중된 거라고 봐야 할 터.

버프buff 용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던 두 꼬리 원숭이의 영혼도 소비된 것을 아깝게 여기며 죽인 짐승 머리 괴물의 혼을 거두어들인 환인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강 상류를 향해 출발했다.

쏴아아­ 철썩­

끼룩… 끼루룩…….

도중에 방향이 조금 비틀렸는지 1시간가량 쉬지 않고 걸어 도착한 곳은 강 상류가 아니라 대호수의 절벽이었다.

이것은 문제 되지 않았지만, 이전에 왔을 때는 들리지 않던 새 울음소리에 환인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곧장 가슴 높이까지 자란 수풀 속에 납작 엎드린 환인은 기어서 수풀 가장자리까지 이동, 살짝만 젖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의 하늘을 살폈다.

‘기러기? 아니면 갈매기인가. 원근감이 이상해서 크기가 파악되지 않는군.’

뿔비늘 고래는 그래도 수면에서 뛰어올랐기에 크기를 가늠할 척도가 있었다. 그러나 저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생김새는 갈매기와 비슷한 것 같은데…….

300m 밖에서 녹색 괴물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강화된 시력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작거나 아니면 매우 멀리 있거나 둘 중 하나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라면 동물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봐야 한다.

대충 34마리 정도 된다는 것을 헤아린 환인은 만에 하나를 위해 절벽에서 좀 떨어져 걷기로 했다.

저것들이 호전적이어서 자신을 발견하고 공격해올 경우 숲속으로 피신하기 위해서다.

“…….”

그런데 비상식량이 정체불명의 새들을 계속 주시하는 게 자못 신경 쓰인다.

생각해보면 비상식량은 대호수를 발견하기 전부터 지금 같은 행동을 했었다.

“네 친구들이냐.”

꽥?

환인이 비상식량을 가볍게 건드리며 말하니 비상식량이 고개를 기울여 환인을 쳐다본다.

그러더니 다시 하늘의 새 무리로 시선을 고정하고는 홀린 것처럼 바라보기 시작했다.

“…….”

그게 마치 개나 고양이가 아무것도 없는 방구석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 같아 불안해지는 환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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