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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17화 (17/813)

〈 17화 〉 017 수해­강줄기

* * *

“후우, 후욱…….”

10분 동안 달려 강줄기에서 멀어진 환인은 그제야 멈춰서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도마뱀 인간은 동족이 죽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기에 개구리 인간도 비슷하겠거니 했는데 설마 동족을 잔뜩 이끌고 몰려올 줄이야.

다시 돌아가서 도마뱀 인간을 노려도 되겠지만, 쉴 새 없이 점프하며 절벽 위로 올라올 곳을 찾던 방향이 하필 상류 쪽이었다.

만약 절벽 위로 올라왔다면 돌아가는 길에 마주칠 수 있다.

“…….”

두 다리로 8자 걸음처럼 뒤뚱뒤뚱 걷던 개구리 인간은 달리기가 아니라 앞으로 펄쩍펄쩍 뛰면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그 속도가 성인 남성의 달리기 속도와 비슷했다는 것.

팔의 굵기나 다리 굵기도 환인 자신보다 굵었고, 목이 없어서인지 속된 말로 등빨도 죽여줬다.

그런 놈이 여덟 마리나 우르르 몰려오면 혼자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다. 이쪽이 한 대 때릴 때 저쪽은 여덟 대를 때린다는 뜻이니까.

“이렇게 된 이상…….”

도마뱀 인간이나 개구리 인간을 사냥하는 것은 포기한다.

언제 상처를 입어도 괜찮도록 오늘은 금방울 꽃을 좀 더 채취해서 보존하도록 하자. 겸사겸사 녹색 괴물이나 짐승 머리 괴물도 찾고.

푸드드득.

꽥!

도망치는 동안 날아서 쫓아오던 비상식량이 어깨에 착지하는 것을 받아준 환인은 후, 크게 숨을 내쉬면서 밀림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헤매긴 했지만, 무사히 빛이 내리쬐는 꽃밭을 찾은 환인은 어제 죽인 녹색 괴물의 시체가 핏자국만 남기고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눈썹을 찡그렸다.

녹색 괴물이 동족 포식을 위해 시체를 가져갔을 가능성.

짐승 머리 괴물이 녹색 괴물의 시체를 가져갔을 가능성.

다른 맹수나 괴물이 시체를 가져갔을 가능성.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며 핏자국 근처를 유심히 살피던 환인은 녹색 괴물 특유의 발자국이 여럿 찍혀있는 것과 무거운 것을 질질 끌고 간 듯한 흔적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핏자국은 검고 찐득하게 떨어져 있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발자국은 아직 젖은 상태였다.

어제 만들어진 발자국의 흙이 완전히 마른 것과 대조적이다.

‘멀리 가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일단 다섯 번 사용할 분량의 금방울 꽃을 채집해 갈대 같은 나뭇잎으로 조심스레 감싼 환인은 새로이 생긴 발자국과 질질 끌린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조금 난잡하지만, 발자국이 정돈되며 대충 머릿수가 보인다.

상대는 녹색 괴물 여섯 마리.

두 마리가 각각 시체를 둘씩 끌고 한 마리는 하나만, 남은 세 마리는 이리저리 삐뚤삐뚤 걸은 모양새다.

그리고 사슴뿔 지팡이가 꽤 거치적거린다는 것을 재차 체감했다.

길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팡이의 머리가 되는 정체 모를 해골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문제는 해골의 정수리 쪽 좌우에서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간 사슴뿔이다.

등에 사선으로 매고 있으면 뿔 일부가 어깨나 머리를 찌른다.

가로로 눕혀서 매면 뿔이 수풀이나 덤불이나 덩굴이나 나무를 툭툭 건드려서 소리가 시끄럽다. 움직이는 게 불편한 것은 덤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오른손에 창, 왼손에 지팡이를 들고 걷는데 막상 전투를 앞두니 중요성이 올라간 지팡이의 처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이걸 잃으면 영혼에게 지시도 내리지 못하고 영혼 구슬로도 만들지 못하게 된다.

만약 전투 중에 부서진다거나 부서질 것을 우려해 근처에 숨겨놨다가 도둑맞고 강탈당하면…….

…….

흔적을 소리 없이 쫓으며 생각하던 환인은 어쩔 수 없이 전투 중에 숨겨놓거나 던져놓을 수밖에 없다고 결론내렸다.

‘어쩌면 영혼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도, 영혼 구슬로 만드는 것도 지팡이 없이 가능해질지도 모르지.’

지팡이를 잡은 것을 기점으로 지팡이 없이도 영혼을 볼 수 있게 되었고 훈기와 한기의 축적도 지팡이 없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오직 색계통 밖에 볼 수 없었는데 말이다.

즉 지팡이에 담긴 힘이 능력 일부를 성장으로 이끌어주었다는 뜻이고, 이 능력은 시간을 들여 키울 수 있는 성장형이라는 뜻이 된다.

지팡이를 분실하거나 파손당하면 한동안 뼈아플 테니 소중히 하겠지만, 죽음이라는 페널티를 껴안으면서까지 지팡이를 지킬 필요는 없다.

꾸기익. 키시시시.

캬르르르.

키이?

흔적을 따라 얼마나 움직였을까.

약한 피 냄새와 녹색 괴물이 시시덕거리는 희미한 소리를 포착한 환인은 재빨리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어 소리가 들린 곳에 시선을 주자 저 멀리, 굵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신나게 떠드는 녹색 괴물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영혼 시야 덕분이다.

보통은 시력의 한계로 알아볼 수 없었을 텐데 주변 환경이 적색, 황색, 자주색, 회색 등으로 물들어있는 틈 속에 뚜렷한 진녹색이라 쉽게 눈치챘다.

그런데 거리가 꽤…… 멀다. 못해도 300m 정도.

“……?”

환인의 시력은 평범하게 좌우 1.0이다. 이 정도 시력으로 300m 떨어져 있는 괴물을 분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나 다름없다.

영혼 시야 덕분인가?

‘아니, 영혼 시야는 시력과 연관이 없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뭔가 활동에 이질감이 느껴졌었다.

개구리 인간을 향해 돌팔매질했을 때 구속이 140km는 될법한 속도였다.

구속 140이면 제구력과 구위, 그리고 경기 운영 능력 등이 받쳐줄 때 프로 선수로 활동이 가능한 수준.

거기다 도주하느라 10분을 전력으로 달렸는데도 가볍게 숨이 차는 정도에 그쳤다.

지금도 몸에 쌓인 피로가 얼마 느껴지지 않는다. 철야에 가깝게 밤을 보냈고 아침으로 풀뿌리만 먹은 컨디션이 아니라고 할까.

‘이상한데.’

강제적인 선식과 소식을 2주 가까이 하고 있는 만큼 체력이 회복될 건덕지는 없는데 어째서 체력이 갑자기 좋아진 걸까.

무협 소설에서 나오는 회광반조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라도 한 건가.

‘그런 거라면 섬뜩하군.’

속으로 피식 웃은 환인은 자세를 낮추고 시계를 확인했다.

추적에 나선 지 30분 정도 지나 해가 중천에 뜬 시각이다.

녹색 괴물 쪽으로 눈에 힘을 주자 괴물들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며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동족 포식?’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는 듯 한데 아무래도 끌고 가던 동족의 시체를 먹고 있는 듯하다.

환인은 자세를 낮추고 소리 없이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며 녹색 괴물들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목표물과 적당히 가까워졌을 때 근처 덤불 속에 짐승 가죽과 사슴뿔 지팡이, 흑곤봉과 단검을 숨긴다.

손에는 창. 허리에는 돌도끼.

무기를 챙긴 환인은 조용히 나무로 인해 가려진 사각으로 조심스럽게 이동, 거리가 20m도 남지 않은 지점에 도달했을 때…….

푸드드득­!

오른쪽 어깨에 조용히 앉아있던 비상식량이 갑작스레 날개를 훌쩍 펼쳐 날아올랐다.

기엑? 케으으

키르르르.

캬­

환인이 움직이던 방향과 반대쪽으로 날아가는 비상식량의 날갯짓 소리에 녹색 괴물들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향한다.

비상식량이 갑자기 날아올라 잠깐 놀랐지만, 녹색 괴물의 시선이 돌아가며 뒤가 텅 빈 것을 확인한 환인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돌진.

케륵……?

꺽……!

키야아악!!

등을 훤히 보인 채 주저앉아 있는 세 마리의 목과 등, 허리를 번개같이 찔렀다.

찔린 녹색 괴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반쯤 뜯어먹힌 동족의 시체 위로 나뒹군다. 그 소란에 비상식량을 눈으로 좇던 남은 세 마리도 화들짝 놀라며 환인을 돌아보았고.

쉬쉭­!

환인 자신도 놀랄 만큼 빠르고 정확한 찌르기로 마악 일어나려 하던 두 마리의 뱃가죽과 가슴을 찔렀다.

캭!

케흑? 케헉.

가슴을 찔린 놈은 그대로 고꾸라지며 절명했고 배가 갈라진 놈은 비명을 지르면서 쏟아진 창자를 주워 담으려 한다.

마지막 남은 놈은 동족의 팔뚝을 뜯어먹던 자세 그대로 멍하니 환인을 올려다볼 뿐.

콰직!

자신을 올려다보는 녹색 괴물의 머리통을 돌도끼로 내려찍은 환인은 망설임 없이 아직 살아있는 녹색 괴물의 목을 돌도끼로 차례차례 찍어 죽이기 시작했다.

퍼억!

끅.

투콱.

껙…….

‘힘이 더 세졌다.’

아무리 모가지가 가늘다지만 뼈도 있고 가죽도 질긴 녹색 괴물이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힘껏 도끼질을 해봤자 목을 절반 정도밖에 치지 못했는데, 지금은 도끼질 한 번에 한 마리씩 머리가 날아가고 있다.

콰작!

끽.

허리를 부여잡은 채 엎어져 버르적거리는 녹색 괴물의 목을 밟아 분지르는 것으로 모든 녹색 괴물을 ‘살아있던 것’으로 만든 환인은 조금 앙상해진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창과 돌도끼, 흑곤봉을 휘두르며 생긴 물집과 굳은살이 눈에 들어온다.

몇 차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지만 물집 때문에 시큼 따끔한 느낌뿐, 그 외 딱히 달라진 점은 느껴지지 않는다.

“모르겠군.”

모르는 게 하나둘이어야지.

깔끔하게 신경 끊고 돌아가서 숨겨놓은 짐을 챙겨온 환인은 때마침 죽은 몸에서 빠져나오는 흐린 안개 같은 영혼을 보며 지팡이를 쥐었다.

파닥파닥.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팡이의 뿔 부분에 착지하는 비상식량이다.

꽥.

“…….”

돌발행동으로 놀라게 한 비상식량을 지그시 쳐다보니 비상식량도 뭐 문제 있냐는 듯이 턱을 당기며 환인을 빤히 쳐다본다.

“노리고 주의를 끈 거냐?”

꾸엑!

날개를 활짝 펼치며 우는 꼴이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 같다.

“……잘했다.”

손을 들어 등을 툭툭 건드려주자 날개를 꿈질거리며 부리를 치켜드는 모양새가 자못 뿌듯해 보인다.

잘한 건 잘한 거고.

“비켜.”

꽥?!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여섯 영혼을 보며 지팡이를 털어서 비상식량을 날려 보낸 환인은 영혼을 향해 명령…….

푸드드득!

“…….”

……하려다 자신의 머리 위에 착지한 비상식량을 지팡이로 툭 쳐서 떨구어낸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집중해 영혼에게 명령을 내리려 했지만.

꽥!

비상식량이 계속해서 사납게 퍼덕거리며 얼굴 쪽으로 날아들었다.

“가만히 좀, 있어라.”

성가시게 구는 비상식량을 지팡이로 밀어내자 급기야 꽤괙, 꽤액! 소릴 지르면서 지팡이를 피해 날개로 환인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한다.

적당히 큰 닭과 비슷한 크기지만 좌우 날개를 다 합치면 길이만 90cm에 날개 깃털도 길고 억세다.

그 기다란 날개가 퍼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얼굴과 머리를 때려대니 정말정말 정신 사납다.

“그만.”

자꾸 날아드는 비상식량에게 손을 내밀며 강한 어조로 말하자 기세가 주춤한다.

팔을 내밀자 팔뚝에 착지해 성난 듯이 콧김을 푸슉­ 피식­ 내뿜는 비상식량이다.

설마 억지로 내쳤다고 화를 낸 건가.

비상식량을 가만 지켜보고 있으니 비상식량도 머리를 낮추고 날개를 반쯤 편 채 꽁지를 좌우로 흔들며 환인을 노려본다.

‘아무래도 맞는 것 같군.’

작게 한숨을 내뱉은 환인이 머리를 툭툭 쓰다듬어주니 예민한 것처럼 벌어졌던 꽁지깃이 가지런히 모인다. 위협하듯이 펼쳤던 날개도 고이 접고 손바닥에 머리를 비비는 비상식량.

자신을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동료가 됐는데 함부로 대해서 화를 낸 거고?

화를 내야 할 포인트가 좀 이상하지 않나.

환인은 나중에 비상식량을 제대로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더 늦기 전에 여섯 영혼을 향해 지팡이를 내밀어 명령을 내렸다.

“와라.”

───…….

그러자 희끄무레한 연기나 안개 같은 여섯 영혼이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지팡이로 다가오더니…… 하나둘씩 옅게 빛나는 구슬로 변해 뿔 부근에 달라붙는다.

‘이런.’

모습이나 형태야 어쨌든. 영혼을 얼마나 저장할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설마 여섯 영혼이 모두 모일 줄은 예상 못했다.

저장 한계를 알아보려면 괴물을 좀 더 찾아야 할 것 같다.

잠시 생각하던 환인은 몸을 돌려 다시 강 상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강가를 떠난 지 3시간이 넘었다. 여기서 돌아가는데도 3시간가량 걸릴 테니 그 시간이면 어그로aggro를 끌었던 개구리 인간도 모두 돌아갔겠지.

강 상류로 향하는 도중에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식물과 버섯, 벌레가 보이면 전부 채집했다.

다른 먹을 것도 많은데 먹기 부담스러운 곤충이나 지렁이를 채집한 이유는 비상식량 때문이었다.

사람도 단순히 취향에서부터 체질 문제로 먹지 못하는 것까지 개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 있다.

비상식량은 어지간해서는 다 잘 먹지만, 주로 한입에 먹을 수 있는 것을 선호했고 곤충을 좋아했으며 특히 젖은 흙을 뒤집으면 나오는 은색(녹색계) 지렁이를 가장 좋아했다.

이것을 알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약간 설 덮인 땅을 발견해서 창대 끝으로 걷어내다 보니 은색 지렁이가 튀어나왔는데, 그걸 본 비상식량이 날개까지 퍼덕거리며 호들갑을 떨어서였다.

오는 길에 채집한 곤충 몇 마리, 그리고 은색 지렁이를 먹여주었더니 비상식량의 호감을 잔뜩 샀는지 화난 것은 다 잊고 환인의 옆머리에 정수리를 비비고 문지르며 꾸우­ 우는 비상식량이었다.

그 후 비상식량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보고 이런저런 행동을 지시해보았다.

“얌전히 있어.”

꽥?

고개를 기우뚱하는 비상식량을 보다가 주먹을 세워 내민다.

“……가만히 있어.”

꽥.

주먹을 보며 고개를 오뚜기처럼 기울이던 비상식량은 환인이 손바닥을 펼치자 손 위로 자리를 옮긴다.

잠시 비상식량을 핸들링하던 환인은 비상식량을 오른쪽 어깨로 옮기고 코로나 베리 덤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상식량. 저기 있는 덤불의 열매를 가져와라.”

꽥??

“저거. 이렇게 생긴 거. 여기로 가져와.”

……꽥!

푸드득!

견본을 보여주며 코로나 베리 덤불을 가리키고 이후 열매를 손바닥에 올리는 식의 행동을 두 차례 보여주니 머리와 목으로 S자 그루브를 보이던 비상식량은 잽싼 날갯짓으로 날아가 코로나 베리 몇 개를 따온다.

이런 식으로 ‘와라.’ ‘기다려.’ ‘가라.’ ‘가져와.’ ‘멈춰.’등을 시도해본 환인은 비상식량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생각했다.

‘말을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능이 매우 높아. 몸짓에 대한 인식이 사람과 별반 다르지도 않고.’

결론은 똑똑하다고 알려진 까치나 까마귀를 잡새로 만들 정도로 비상식량의 지능이 높다는 것.

몇 가지 행동을 말과 몸짓으로 유도하면 그 행동은 물론 말한 단어도 금방 외워버릴 정도다. 나중에 시키면 잊지 않고 똑같은 행동을 보여준다.

“비상식량. 저 위에 ‘열매’를 ‘가져와.’”

꾸엑!

직선으로 곧게, 높이 자란 나무의 꼭대기. 복잡하게 뻗어나간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맺힌 노란 과일을 가리키자 비상식량이 휙 날아가서 가볍게 따온다.

“잘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아까 잡아놓은 딱정벌레 계통의 곤충을 주머니에서 꺼내주자 냉큼 받아먹고는 꾸르륵 우는 비상식량이다.

‘이제 과일도 편하게 손에 넣겠군.’

밀림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만큼 곧게 자란 나무들이 많았고 그런 나무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각양각색의 과일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그렇지만 나무는 야자수와 비슷하게 끄트머리에만 나뭇가지와 과일이 우거져있었기에 나무를 잘 못 타는 환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아니지만.

끼끼이~

끼긱!

비상식량이 접근하자 놀라 도망갔던 작은 원숭이 같은 동물이 나뭇가지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항의 같은 소리를 낸다.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비상식량과 비슷한 몸집이고 다리마저 손가락처럼 쓰는듯한 동물이지만, 약함을 증명하는 것밖에 안보인다.

연약해 보이는 가죽, 힘없어 보이는 가느다란 팔다리. 작은 몸집.

비상식량이 접근하는 것만으로 놀라 도망칠 만큼 겁도 많으니 비상식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비상식량에게 지시해서 획득한 울퉁불퉁한 복숭아 같은 노란 과일(연녹색계)을 한 입 베어 무니 바나나와 비슷한 맛과 향이 입 안에서 흘러넘친다.

먹던 부분을 손으로 뜯어서 비상식량에게 내밀자 먹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고개를 돌려버린다.

색계통은 같은데 왜 안 먹는 건지 의문이다. 싫어하는 맛이라서 그럴까.

그때 머리 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것을 느낀 환인이 쥐고 있던 창에 힘을 주며 위를 쳐다보았고, 축 늘어진 채 추락하는 원숭이 같은 생물을 목격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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