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08 - 608 크리스마스 청혼
옥상으로 가던 중 혜윤이와 만났다. 낑낑대며 자기 몸집보다 더 큰 크리스마스 트리를 옮기고 있었다.
심지어 잎파리도 무성해 정면에서 보면 누군지 아예 모를 정도였다.
'저거 앞이 보이긴 하는 건가?'
넘어지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재빨리 달려가 같이 들어주었다.
"아, 오빠. 고마워요."
"엄청 큰 걸로 주문했네. 어차피 분위기를 내는 용이라 작은 거여도 충분한데."
"1년에 한 번 있는 행사인데 이 정도는 해야죠. 게다가 이번만이 아니라 내년도, 내후년에도 쓸 건데."
"하긴, 살 때 제대로 된 걸 사는 게 나으니까."
혜윤이와 함께 옥상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확 풍겼다.
"와... 엄청 크다."
"저거 불키면 예쁘겠다."
이것저것 세팅하던 그녀들이 전부 이쪽을 쳐다봤다. 나도 똑같이 눈을 마주치며 적당한 공간을 탐색했다.
"여기다 둘까요?"
"여기밖에 자리가 없긴 하네."
"그럼 천천히... 하나, 둘, 셋..."
무사히 바닥에 설치를 완료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있었지만 하이라이트는 아직이다.
나는 코드를 꽂은 뒤 리모콘을 잡았다. 모두의 시선 집중이 이루어지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전원을 눌렀다.
"와아아아... 예쁘다..."
빨주노초파남보. 알록달록한 색깔들이 전구에서 무작위로 반짝였다.
중간엔 Merry Christmas 글자가 선명하게 빛났고, 맨 위에는 단골 손님인 커다란 별이 환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역시 크리스마스에는 트리지."
확실히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베큐를 굽고 있는 희진이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곁눈질하더니 저리 가라는 턱짓을 했다.
"너무 가까이 오지마. 뜨거우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그보다 힘들진 않아?"
"그냥 적당히 익었다 싶으면 뒤집으면 되던데? 그리 어려운 건 없어."
"이젠 아주 척척박사네."
1살 먹기 직전이라 그런가? 좀 더 어른이 된 느낌이다. 살포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테이블로 이동했다.
산해진미. 눈앞의 광경을 이것보다 더 잘 표현한 단어가 있을까?
치킨, 피자, 파스타 같은 보기만 해도 침이 나오는 음식부터, 와인, 위스키 같은 고급진 술도 한가득이었다.
훑어 보고 있자 서윤이와 세정이가 양옆으로 다가왔다.
"오늘 아주 그냥 먹고 죽어보자고."
"진짜 그럴 것 같아서 무섭다."
"8명인데 설마 이것도 못 먹겠어?"
"그렇긴 한데, 너네 원래 조금 먹지 않냐?"
"몸매 관리 하느라 조절했던 거지, 막상 먹으면 엄청 들어가."
도대체 저 가느다란 허리 어디에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거지? 위장조차 작아보이는데.
의문이 떠오르는 순간 깨닫고 말았다. 거대한 음식 주머니가 2개씩 달려있다는 걸.
"그렇구나."
"왜 가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거지?"
"여자는 살찌면 가슴이 커진다는 말을 인터넷에서 본 것 같아서."
"일단 나는 아니야. 이렇게 말랐어도 대따 크잖아?"
김세정이 자랑스럽게 상체를 내밀었다. 확실히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크기다. 물론 서윤이도 마찬가지.
그렇게 짧은 담소를 나누고 있자 희진이가 바베큐를 가지고 왔다.
"먹자!"
*
"맞다, 언니 그 미래대 편의점 내놨다면서요?"
"요즘 좀 관리하기 힘들어서 1호점만 했어. 은근 왔다갔다 하기도 귀찮고."
"그렇긴 하죠. 아니면 여기 1층에 뭐 새로운 사업 하는 건 어때요?"
"계속 비어두니까 썰렁하긴 하던데... 글쎄? 아직은 모르겠다."
어느 정도 배도 부르고 분위기에 취했을 무렵, 시시콜콜한 대화에서 점점 진지한 주제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면 카페라도 해보는 건 어때요?"
"카페? 그거 바리스타 자격증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없어도 상관 없긴 한데... 그래도 새로운 경험하는 겸 해보는 건 어때요? 어차피 인테리어 비용은 얼마 안 드니까요."
"음... 생각해보고. 어?"
채아 누나가 돌연 눈을 크게 떴다. 이어 손바닥을 쫘악 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눈이다!"
아영이의 외침과 동시에 눈앞에 하얀 게 나폴나폴 떨어졌다. 소품이나 연출이 아닌 진짜 눈이었다.
"와아...! 크리스마스에 눈이라니..."
"너무 낭만적이다..."
"예쁘다..."
모두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사이에 나는 주머니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타이밍 정확히 맞네.'
하지만 일생일대의 청혼인데 그냥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지금 산타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기에 갈아입을 필요성이 느껴졌다.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얼른 와요. 눈 금방 그치면 안 되니까."
"알았어."
재빨리 방으로 달려갔다. 도착하자마자 준비해뒀던 정장과 꽃다발을 챙겼다.
가기 전 거울을 바라봤다. 깔끔하게 정리한 얼굴이 비쳤다.
'진짜 이런 거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이지 몇 번을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냥 청혼하는 것도 아니고, 7명한테 결혼해달라 하는 상황이라니.
멋쩍게 웃으며 앞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완벽하게 준비가 됐을 때, 다시 옥상으로 향했다.
-끼익...
조용히 문을 열자 다들 난간 쪽에 기대고 있었다. 눈에 정신 팔려서인지 내 존재를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녀들을 한 명씩 쳐다봤다.
'신아영.'
활발하고 언제나 미소를 놓치지 않는 검은 생머리의 소유자. 무선 연결 오나홀에 처음 등록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때는 브레이크가 안 걸려 내가 생각해도 끈질기게 괴롭혔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야한 짓을 해댔으니까.
덕분에 절대 들키지 않을 줄 알았던 정체도 들켜버리기도 했다. 아직도 그 카페, 옷차림, 눈빛이 생생하다.
[유령 씨, 기대해요♡]
"진짜 대단하다니까. 나는 전혀 눈치 못 챘는데."
피식 웃으며 옆으로 눈길을 돌렸다.
'윤혜윤.'
귀엽고 약간 허당끼가 있는 갈색 웨이브 머리의 소유자. 옆집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등록을 했었다.
그러다 같은 헬스장에 다니게 되었고, 점점 서로 끌리게 되어 현실에서 처음 하게 된 학교 후배다.
다른 점도 좋지만 항상 웃으면서 내 말이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너무 좋았다.
[저 여기 털 하트로 유지하고 있어요... 예쁘게 잘 깎았죠?]
"지금도 꾸준히 관리하고 있던데. 이러다 평생 하는 건지 모르겠네."
말이 씨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괜히 입가를 긁으며 금발의 여자애를 쳐다봤다.
'한희진.'
푸른 눈과 금발를 가진 혼혈. 100이면 100 외국인이라 할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처음 만났고, 지금이야 안 하지만 인터넷 벗방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계기로 몰래 괴롭히는 날들이 시작됐다.
[하앙! 하앗! 주인님...! 엉덩이 더 때려주세요!]
물론 뒷면은 엄청난 마조히스트에 허접 보지였다.
그래서일까, 평소의 도도한 모습과는 완전 달라 조교하는 맛이 상당했다.
"가장 어린 게 발랑 까져서 말이야."
그래도 틱틱대는 건 정말 최고로 귀엽다. 미소를 지으며 가장 큰 엉덩이의 주인을 바라봤다.
'한채아.'
희진이의 친자매이며 마찬가지로 혼혈인 누나. 가장 연상답게 챙겨주고 포옹해주는 것은 압도적이었다.
특히 저 가슴에 둘러쌓이면 아무 생각이 안 날 정도다. 당연히 엉덩이도 마찬가지.
하지만 저기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될 때는 정말 놀랐다.
'설마 애널 자위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함몰 유두라는 꼴림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데 저런 취미를 가지고 있다니. 덕분에 색다른 섹스를 즐길 수 있었다.
[누나는 양쪽 구멍 어디든지 사용해도 좋아...♡]
"세상의 모든 누나가 저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타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박서윤.'
똑 부러지면서 은근 남 괴롭히는 걸 즐기는 슈퍼 아이돌. 무선 연결 딜도가 들은 택배를 가져가는 바람에 연결 고리가 생기고 말았다.
나름 야한 것에 관심이 있는 그녀였기에 나를 곤란하게 만들 때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복수를 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기 그지 없는 시츄에이션이었다.
[제발... 내가 대신 해줄 테니까 오나홀만큼은 건드리지 말아줘...!]
오해와 오해가 겹친 그녀와의 관계.
"솔직히 재밌긴 했어."
아직 압수하지 않은 딜도를 생각하며 은퇴한 아이돌을 바라봤다.
'김세정.'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다. 학교에서 펠라를 받다가 눈을 마주쳤으니 말이다.
덕분에 첫 인상은 최악. 그런 내가 박서윤과 섹스를 하다가 들켜버렸다.
단단히 꼬여버린 관계 속에서 동앗줄이 하나 내려왔다.
바로 야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는 것. 그걸 계기로 야외 노출도 하고, 숙소에서도 하고, 많은 변태 짓을 했었다.
[나... 아이돌인데 공중 화장실에서 박히고 있어...!]
"팬들이 들으면 아무도 안 믿을 걸?"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어 마지막 타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예나.'
인턴하러 갔다가 맞상사가 된 사람이다. 5년차 대리답게 사리분별 확실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졌다.
하지만 핑챙은 과학이라는 말도 있듯이, 내면은 완전 달랐다.
출장간 날 나를 따먹은 변태 중 변태. 더 놀라운 점은 그녀가 처녀였다는 점이다.
[우진아... 누나한테 따먹히니까 기분 좋아? 자지 존나 움찔대고 있는데...]
회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사람인데 이런 뒷면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불끈불끈하다.
"다른 건 몰라도 술 좀 금지시켜야 돼."
마지막 감상까지 마치자 때마침 아영이가 뒤를 돌아봤다.
"어, 오빠? 옷이..."
그 말에 모두가 몸을 돌렸다. 달라진 내 분위기를 느꼈는지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대신 자세를 똑바로 고치며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시선을 마주치며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터벅...터벅...터벅...
이상하게 다리가 떨렸다. 입안에 침이 고였다. 괜히 온몸이 간지러웠다.
그래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한없이 진지해지는 그녀들의 표정. 뒷일을 예상하고 있는지 그 어떤 말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약 1m 떨어진 곳에서 멈춰섰다.
-탁.
왼쪽 무릎을 꿇었다.
"신아영!"
"네에!"
청량하고 맑은 목소리.
"윤혜윤!"
"네에...!"
긴장으로 물든 목소리.
"한희진!"
"응!"
떨리지만 기쁨이 섞여있는 목소리.
"한채아!"
"우진아..."
뭔가 우는 듯한, 잠긴 목소리.
"박서윤!"
"왜애!"
뭔가를 숨기려는 듯 내지르는 목소리.
"김세정!"
"으응...!"
처음 들어보는, 한없이 떨리는 목소리.
"이예나!"
"그래...!"
달콤하고 간드러지는 목소리.
모두의 대답을 들은 뒤, 등 뒤의 꽃다발을 내밀었다.
"내가 너희에게 비하면 부족하고 모자란 놈이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줄 자신은 있어! 만약 괜찮다면...!"
주머니에서 비장의 물건을 꺼냈다. 먼지가 묻지는 않을까 매일같이 정성껏 닦았던.
어두운 저녁임에도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대사를 내뱉었다.
"나랑 결혼해주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