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04 - 604 럭키 박스와 야외 산책
내 인생 중 이렇게 운이 좋았을 때가 있을까? 물론 최고는 무선 연결 오나홀을 얻었을 때지만, 지금도 그에 못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물어지지 않는 입과 눈을 유지한 채 홈 버튼을 눌렀다. 은행 어플에 들어가자 맨 앞자리가 바뀐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면...'
혼인 신고서는 물론, 반지나 웨딩 드레스까지 전부 구입이 가능하다. 떨리는 손으로 어플에 다시 들어갔다.
여전히 빛나고 있는 상자를 꾸욱 눌러 이벤트 창을 벗어났다. 그 길로 바로 상점에 들어갔다.
[혼인 신고서 - 1억]
빨리 사달라는 듯 최상단에서 반짝이고 있는 혼인 신고서. 침을 꿀꺽 삼킨 뒤 구매를 클릭했다.
-일생일대의 큰 결심을 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설명에도 써 있듯, 아내 1분 당 1000만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갑니다.
지불해주신다면 후처리는 저희가 전부 해드리겠습니다. 그 누구도 의문을 품지 못하게, 완벽하게 말입니다.
언제든지 문의할 점이 있으면 고객센터에 질문 남겨주시고, 이 혼인 신고서는 즉시 박우진님의 핸드폰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ps. 당연히 미래에 아내가 될 분의 사인 및 도장이 있어야 효력이 발생합니다.
읽기 무섭게 다운로드 됐다는 메시지가 하나 떴다. 화면을 크게 확대한 뒤 꼼꼼히 읽어봤다.
미리보기로 봤던 내용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콧바람을 내뱉었다.
'이제 모두에게 허락만 받으면 된다.'
거의 다 온 것 같지만 아직 남은 절차는 한 두개가 아니었다. 일단 제일 먼저 걸리는 건 예나 누나.
그녀와 얼굴을 안 지는 정확히 한 달이 됐다. 그동안 몸을 섞고 서로의 비밀까지 전부 알 정도로 빠르게 친해졌지만.
겨우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결혼을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당연히 내가 아닌, 예나 누나 입장에서. 해결법은 하나밖에 없다.
시간을 들여 신뢰를 보여주는 것.
평생을 함께 해도 되는 동반자가 되도 괜찮을지, 남편으로서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는지를 말이다.
당연히 자신은 있다.
"어차피 지금은 가을이고 곧 있으면 겨울이니까 천천히 해도 되겠지. 결혼은 역시 봄에 하는 게 가장 좋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상점에 들어갔다. 남은 돈으로 다이아몬드 반지 7개까지 구매를 마쳤다.
여전히 웨딩 드레스가 빛나고 있었지만 시기상조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각자 취향에 맞게 골랐다 해도 본인들이 직접 보고 선택하는 게 맞으니까.
나는 인생 최초 및 최고의 지출을 한 뒤 고객 센터에 들어갔다.
[아무도 모르게 몰래 배송해줄 수 있죠?]
-원하시는 시간, 장소만 알려주시면 정확히 배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와... 오빠랑 같이 학교 갔다 오니까 너무 좋은 거 있죠?"
"그렇게 좋았어?"
"네! 외롭지 않게 팔짱 끼면서 다닐 수도 있고, 손도 잡을 수 있고 밥도 같이 먹을 수 있고..."
월요일 저녁. 다같이 밥을 먹으며 혜윤이가 자랑을 했다. 옆에 있는 아영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동안 맨날 혼자 수업 들었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검은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저 얼굴을 보자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쪼옥...쪽...하읍...읏...
-아영아, 수업 안 들어?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해요. 흐응... 읍...
미리 한 발을 빼지 않으면 집중이 안 된다는 핑계로 신나게 펠라를 했던 그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10분이 지나 있었다.
물론 그 뒤로도 더 한 짓을 했다. 은근슬쩍 올라타더니 아래입으로도 정액을 착즙을 시도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보는 교수님의 얼굴은 얼마 보지도 못했다. 잠깐 회상을 하고 있자 채아 누나가 부러운 듯 쳐다봤다.
시선을 마주치며 물었다.
"누나는 오늘 뭐하셨어요?"
"희진이랑 같이 편의점 좀 둘러보고 왔어. 관리는 잘 되고 있는지, 뭐 사고 친 건 없는지 등등."
"문제는 있었나요?"
"아니? 매장도 아주 깨끗하고 물건도 꽉꽉 차 있던데? 딱히 잔소리할 건 없었어."
"다들 시급을 조금 세게 주니까 열심히 하는 것 같네요. 짤리기 싫으니까."
역시 돈이 최고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안부를 묻다 세정이의 차례가 되었다.
"그럼 오늘 혼자 집에 있었겠네. 심심하진 않았어?"
"낮에 짧게 라이브 팬 방송 했어서 그다지? 끝난 뒤에 잤더니 지금이라서 심심하진 않았어."
"그래도 취미 생활 하나 쯤은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서윤이도 학교 다니니까 말이야."
나름 걱정을 해줬지만 그녀는 괜찮다는 듯 손을 휙휙 저었다.
"안 그래도 옥상 좀 꾸며볼까 생각 중이야. 식물이나 쉼터 같은 것도 넣고..."
"그거 아이디어 좋네. 거기서 광합성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게다가 그릴 설치하면 바베큐 파티나 삼겹살도 구워먹을 수 있을 걸?"
"오..."
김세정의 계획에 모두가 눈을 반짝였다. 나도 엄청난 흥미가 갔다.
"아, 근데 아직 생각 중이라 정확히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 너무 부담은 주지마."
"부담은 무슨, 재밌어 보이는데 나중에 구체적인 계획 좀 짜보자."
"좋아. 아, 그리고 학교 얘기하니까 생각난 건데."
그녀가 숟가락질을 멈추더니 나를 빤히 바라봤다. 무언가 바라는 얼굴이었다.
"나도 구경 좀 해보고 싶어."
"우리 학교? 그러고 보니 너 와본 적 딱 1번밖에 없지?"
"응. 저번에 축제 때 말고는 없어."
"그럼 내일 같이 가자. 마침 수업 별로 없어서 공강이 많거든."
"근데 내가 가면 어그로 엄청 끌리잖아. 나는 좀 조용히 둘러보고 싶어서 말이야."
이해는 간다.
이젠 학교의 명물이 된 박서윤도 여전히 엄청난 인기 몰이를 하는 중인데, 여기서 막 은퇴 선언을 한 김세정이 나타난다?
사람들과 카메라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그야말로 폭풍의 눈 그 자체.
구경은 커녕 피곤한 상황만 연출될 게 뻔했다.
"조용히는 안 될 것 같은데? 한다 하면 방학이나..."
"저는 될 것 같은데요?"
아영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목소리에는 아주 자신이 가득 차 있었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물어봤다.
"어떻게?"
"당연히 사람이 적을 때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게 안 되잖아."
"밤에 가면 되잖아요. 그때는 산책하는 몇 명 빼고는 텅 비기도 했고, 게다가 우리 학교 야경은 낮 못지 않게 꽤 예쁘잖아요?"
"그거 괜찮네!"
김세정이 열렬히 환영을 했다. 박수를 짝 치더니 나를 쳐다봤다.
누가 봐도 바로 오늘 가줄 수 있냐고 하는 얼굴. 저걸 보고 거절하기란 참 힘들다.
"소화도 시킬 겸 이따 갈까? 내가 학교 구경 좀 시켜줄게."
"좋아. 조금만 더 어두워지면 나가자."
결정이 되자 다른 사람들을 스윽 둘러봤다.
"혹시 같이 갈 사람?"
"음... 저는 과제가 남아서 방에 있을게요."
"혜윤이는 안 가고... 서윤이는?"
"나는 지금 좀 피곤해서 자려고. 이따가 밤에 하려면 미리 체력을 보충해놔야 되잖아?"
무서운 소리를 하며 윙크를 하는 그녀. 동시에 예나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입술을 핥는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이제 회사에서 못 하니까.'
어쩌면 오늘 제일 적극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마지막으로 자매를 쳐다봤다.
"누나는 아까 좀 많이 돌아다녀서 산책은 안 해도 괜찮아."
"나도 동감. 지금은 그냥 욕조에서 땀 좀 쫙 빼고 싶어."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쉰다는 사람 억지로 붙잡고 나갈 수는 없다. 그렇게 멤버가 결정됐다.
나, 아영이, 세정이.
*
잠시 후, 적당히 챙겨 입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영이야 평소처럼 입었지만 세정이는 달랐다.
"...그렇게까지는 안 가려도 될 것 같은데?"
"요즘 파파라치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데 안심할 수 없지."
"모자까지는 이해가는데 선글라스는 좀 너무하지 않냐? 지금 밤이야 밤."
"그렇게 안 진한 거라 괜찮아. 자, 어쨌든 빨리 가자."
본인이 하겠다는데 뭐 어쩌겠나. 나는 코트로 둘둘 무장을 한 둘과 함께 학교로 향했다.
딱 입구에 도착하자 불이 활짝 켜져 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꽤나 멋진 광경이었다.
'이게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건가?'
한 유명인의 말을 떠올리며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김세정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확실히 미래대라 그런지 공기부터 다르네."
"다르...나?"
"뭔가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랄까? 역시 1등 대학이야."
"그런 건 없는 것 같은데..."
어깨를 으쓱이며 아영이를 봤다. 웃음을 참고 있는지 입가를 실룩이고 있었다.
그래도 김세정이 좋다 하면 좋은 거다. 별 반박없이 산책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어느 정도 둘러본 후 어떤 자판기 앞에 멈춰섰다.
뽑은 음료수를 건네며 물었다.
"근데 알아보는 사람 아무도 업던데 이제 슬슬 벗어도 되지 않아?"
"그럴까? 그럼 선글라스만..."
"아영이도 단추 조금만 풀어. 날씨 그렇게 춥지도 않은데."
"저는 얇게 입어서 지금이 딱 좋아요."
"뭐 반팔이라도 입고 나왔어?"
"음... 아니요?"
아영이가 씨익 웃더니 음료수를 입에 붙였다. 꿀꺽꿀꺽 목울대를 울리며 크게 마시더니 시원한 탄성을 내뱉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눈을 크게 뜨자 아영이가 옷깃을 살짝 내렸다.
"혹시 궁금해요?"
"매우."
"그럼 살짝만 공개할게요...♡"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함께 맨 윗단추가 풀려나갔다. 그건 아영이뿐만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던 세정이도 똑같이 행동하더니, 곧 깨끗한 앞면을 드러냈다.
말 그대로 깨끗한, 아무것도 안 입은 몸을 말이다.
바니걸 요청이 많아서 오랜만에 하나 뽑아봤습니다. 일단 채아 누나로 해봤고, 다른 애들은 시간이 나면... 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