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선 연결 오나홀로 따먹기-548화 (548/615)

< 548화 > 548. 대리님 보지 확인 좀 하겠습니다.

아침은 별 다른 일 없이 흘러갔다. 만원인 엘리베이터 안에서 엉덩이가 비벼지지도 않았고, 어깨 위에 가슴이 눌리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은 얌전한 대리님이었다.

'어차피 점심 같이 먹을 테니까 상관없겠지.'

나는 정리를 마친 파일을 저장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밥 먹기 1분 전.

때마침 옆의자가 드르륵 뒤로 밀려났다.

또각또각또각...

평소라면 밥 먹자고 먼저 말을 걸었을 그녀지만 오늘만큼은 조용했다. 혹시 모르니 조금 더 기다려봤지만 두구 소리는 멀어질 뿐이었다.

도망치는 건지 화장실을 가는 건지 모르겠네.

반반 확률에 배팅하는 것보단 확실하게 물어보는 게 낫겠지. 어차피 칼자루는 내가 잡고 있으니까.

[박우진 : 대리님~ 오늘 점심을 뭘로 먹을까요? 불금인데 맛있는 걸로 먹고 싶어요.]

전송 버튼을 누르자 저 멀리 걸어가던 이예나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내용을 확인하더니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아무래도 도망가는 게 맞았나 보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얼마 가지 못한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부하 직원을 홀로 버려두고 어딜 가려고 하셨어요?"

"저, 저는 뭐 화장실 좀 가면 안 돼요?"

"화장실 갔다가 바로 밥 먹으러 갔을 것 같은데..."

"아니거든요?"

"아니면 말고요."

어깨를 으쓱이자 그녀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찰랑이는 분홍색 머리카락에 대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릴게요!"

"쳇."

잠시 후, 대리님과 함께 골목길로 들어섰다. 맛집이 많다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는 그녀에게 한 간판을 가리켰다.

"저기 저 닭갈비 맛있어 보이는데 어떤가요?"

"음... 일단 킵이요."

"많이 피곤하신 것 같은데 화끈한 거 먹고 기운 차리셔야죠."

"...좋아요. 딱 그 말을 들으니 매운 게 땡기긴 하네요."

잠깐 고민하던 그녀가 앞장 서서 들어갔다. 일찍 왔음에도 불구하고 몇 테이블을 제외하면 꽉 차 있었다.

최대한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물과 수저를 세팅하는 동안 대리님이 메뉴판을 열었다. 쭈욱 둘러보더니 새빨간 사진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전 이거 먹을게요."

"그럼 저도 똑같은 걸로 시키겠습니다."

"우진 씨 먹고 싶은 걸로 시켜요. 일부러 저 따라하지 말고."

"아닙니다. 저도 그게 딱 먹고 싶었어요."

이예나가 흘끗 곁눈질을 했다. 혀를 굴리는 듯 입모양이 살짝 틀어졌다. 그러더니 맑은 목소리로 점원을 불러 주문을 마쳤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림뿐이다.

"...."

"...."

오늘따라 침묵이 많이 이어지는 것 같다. 지루함을 깨트리기 위해 먼저 말을 꺼내려 하자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푸른 눈동자를 뒹굴뒹굴 굴리며 식당 내부를 살피기 바빴다. 그러다 딱 눈이 마주쳤다.

모처럼 잡은 기회인데 놓칠 수는 없지. 바로 입을 열었다.

"혹시 대리님은 출장 갔다 와서 피곤하지 않으셨어요?"

"뭐 별로 한 것도 없어서 그리 힘들지는 않았어요. 애초에 제일 빡센 운전은 우진 씨가 전부 했잖아요."

"흠... 밤에 그렇게 날뛰었는데 힘들지 않았다라..."

"푸흡!"

딱 물을 입에 대려던 그녀가 돌연 분비물을 뿜어냈다. 주변 사람들이 흘끔 쳐다봤지만 가볍게 넘겼다.

대신 아무렇지 않게 휴지를 건네주었다.

"분명 아침만 해도 허리 나가서 앓는 소리 내셨던 것 같은데. 회복력이 상당히 빠르시네요?"

"...제발 목소리 좀 죽여요. 그리고 이건 여기서 대화할 주제도 아니잖아요."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어요? 누가 자꾸 피해 다녀서 기회조차 없었는데."

찔리는 게 있는지 그녀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딴 곳을 바라보며 머리를 비비 꼬더니 이내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하아... 피해 다닌 건 사실이니 인정할게요. 어쨌든 저는 보시다시피 멀쩡하니까 걱정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괜찮다고 하는 것 치고는 다크 서클이 아주 진한데요?"

"이건 그냥..."

"뭐 때문에 잠을 못 잤을까... 혹시 제가 보내준 영상 때문은 아니죠?"

"뭐뭐뭐뭐...뭐요?"

슬쩍 던진 말에 엄청난 반응이 돌아왔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진짜일 줄이야.

나는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몇 번이나 돌려봤어요?"

"도, 돌려보긴 무슨... 아예 봤다는 걸 전제로 얘기하지 마요!"

"후배를 따먹는 자신의 모습은 엄청 대단하죠? 그것도 첫 경험인데 저렇게나 격하게..."

찌릿.

살벌한 눈빛이 쏘아졌다. 일단 여기까지 해야겠다.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때, 이번엔 그녀가 공격을 했다.

"그렇게 치면 우진 씨도 다크 서클 있는데 왜 저한테만 뭐라 해요?"

"제가요?"

"거울 안 봤어요? 눈밑에 아~주 미세하게 있는데."

"아주 미세하게 있는 건 또 뭐예요?"

"어쨌든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 원인은 아침의 그거겠죠?"

의미심장한 말투로. 그와 어울리지 않는 샐쭉한 표정으로 이예나가 지그시 쳐다봤다.

속뜻은 나를 데려다준 채아 누나와 그렇고 그런 짓을 했냐다.

'내가 쉽게 대답해 줄 리 없잖아.'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보단 어물쩍 넘어가는 게 훨씬 좋다. 그래야 나중에 상상력의 날개를 활짝 펼칠 테니까.

"아침의 그게 뭐죠?"

"...그 채아 누나라는 분이요. 아주 오붓하게 같이 차를 타고 오던데 전날 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거죠?"

"그냥 출근하는 김에 태워다 준 거죠. 별 거 없어요."

"아닌 것 같은데..."

아니면 뭐 어쩔 건데요. 나는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애매하게 말을 흘렸다.

"아무리 저라고 해도 그렇게 막 체력이 넘치지는 않아요. 출장 밤에는 대리님과 뜨거운 밤을 보내고..."

"와악!"

"갔다 온 당일날에 또 채아 누나랑 몸을 섞을 정도로 건강하지 않거든요. 그냥 대리님 머리에 음란마귀가 씌인 건 아닐까요?"

"목소리 작게 하라니까...!"

음란마귀 씌인 건 부정하지 않네. 이럴 때 보면 참 귀엽단 말이지.

조금 더 붉어진 그녀를 감상하고 있자 점원이 다가왔다.

"닭갈비 2인분 나왔습니다."

일단 밥이나 먹자.

*

아닌데아닌데아닌데아닌데!

이예나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로 생각에 잠겼다.

'분명 했을 거야. 분명해.'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채아라는 사람이 매일 데려가 주진 않았다. 그 말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만 차에 태워줬다는 뜻이 된다.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특별한 이벤트.

'누구는 밤에 혼자 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누구는 내 처녀를 깬 당일날에 다른 여자랑 해?'

먼저 덮친 건 자신이지만 뭔가 짜증이 났다. 그리고 확실하게 알고 싶었다.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있는 저 박우진의 입으로 직접.

"대리님 얼른 드세요. 이거 맛있다."

"아, 어.."

근데 눈치를 보니 절대 말해주지 않을 기세다. 그렇다면 거래를 해야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모르겠다. 그냥 아무거나 말해보자.

"우진 씨."

"네."

"우리 진실 게임이나 할까요?"

"...갑자기요? 대리님 절반도 안 드셨잖아요."

"매워서 잠깐 혀를 식히고 있는 중이에요."

물을 벌컥 들이켜자 그가 피식 콧웃음을 쳤다. 뭔가 건방져.

"좋아요. 무슨 진실 게임인데요?"

"서로 묻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거짓 하나 없이 오직 진실만 말해주기."

"좋습니다. 그럼 누가 먼저 할까요?"

"대리님 먼저 하세요."

선선히 대답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지금까지 궁금했던 점을 꺼냈다.

"어제 채아라는 분과 섹스 했죠?"

"그게 그렇게 궁금했습니까?"

"빨리 대답이나 해줘요."

"채아 누나가 메이드복을 입고 주인님주인님 하면서 다가오길래 미친 듯이 박아줬습니다."

진짜 했네? 의문점이 시원하게 풀린 것과 동시에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밥을 듬뿍 퍼 입에 집어넣었다. 우적우적 씹은 뒤 물컵을 단번에 비웠다.

"그럼 이제 제 차례죠?"

"뭐가 궁금한데요?"

"대리님, 어제 영상 보면서 몇 번이나 자위했어요?"

"...."

솔직히 말하면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몇 번이더라...? 5번 정도 가버린 것 같은데...'

대부분 기승위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었지만 뭐라 해야 할까. 술에 취한 얼굴과 거칠어진 말투는 마치 딴 사람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 조금 더 흥분해 버렸다.

근데 5번이라고 하면 뭔가 좀 그렇잖아? 처녀 뗀 지 얼마나 됐다고 막 자위를 배운 원숭이처럼 해버려?

솔직하게 말하면 분명 비웃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조금만 줄여서...

"3번이요."

"...엄청 많이 했네요? 역시 저를 덮친 대리님답다니까."

"뭐...뭐가 많아요! 3번이나 보통이지!"

"대리님은 평소에 3번이나 하시는구나. 역시 체력 하나는 짱이셔."

"와아악!"

2번으로 줄일 걸! 괜히 말했어!

*

요란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대리님은 묘하게 말수가 줄어있었다.

'3번이라고 말할 때 고민한 것 보니까 최소 4번 이상인데...'

발정날 때까지 푹 숙성을 시키려 했는데 생각보다 속도가 빠르다. 원래 이번 주말까지 아무런 짓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약간의 계획 변경이다.

딱 사무실에 들어가기 직전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대리님, 잠깐 이쪽으로."

"...왜요?"

"오면 알아요."

순순히 따라오는 이예나와 함께 비상 계단으로 왔다.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고요한 복도.

누군가 온다면 필시 문소리가 크게 울릴 것이다.

한 마디로 여기만큼 하기 좋은 장소는 없다는 거다. 입술에 침을 묻힌 뒤 그녀를 똑바로 쳐다봤다.

"대리님이 걱정 돼서 뭐 좀 확인해봐야할 것 같아요."

"네? 뭘요?"

"첫경험을 하고 3번이나 자위를 한 보지요."

"...에에엑!? 뭐...뭐요?"

"거긴 매우 약하고 민감한 부위라 거칠게 다루면 안 되거든요. 잠깐만 볼 테니 치마 올려봐요."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하지만 이 다음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걸 잘 안다.

곧 주위를 휙휙 둘러보던 그녀가 손을 아래로 내렸다.

스륵...

"누구 올 수도 있으니까 빨리 해요..."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