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선 연결 오나홀로 따먹기-535화 (535/615)

< 535화 > 535. 대리님 꺼는 안 만져봐서 모르겠는데요?

'차 안에서 먹을 거랑 마실 것 좀 챙기고... 칫솔이랑 치약도 가져가야겠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주섬주섬 하나 둘 채워나가고 있자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대리님한테 온 문자였다.

[이예나 대리님]

우진 씨, 오늘 출장 가는 거 잊지 않았죠?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몇 가지 주의 사항만 알려드릴게요.

1. 오늘은 딱히 정장을 입지 않아도 괜찮아요. 평소에 입는 편한 복장으로 와주세요.

2. 대신 거래처 사람들한테 잘 보여야 하니 옷차림은 깔끔하게 부탁해요.

3. 만약 멀미 있으면 미리 멀미약 먹어요!(중요)

그 외에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배운다는 느낌으로만 따라와 주세요.

그럼 이따 회사에서 뵙고, 확인했다는 답장 하나만 남겨주세요.

'무슨 엄마가 잔소리하는 것 같은 내용이네.'

어떻게 보면 뻔한 내용들. 하지만 첫 출장을 가르치는 상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방치하는 것보단 이게 안전하니까.

나는 꼼꼼히 살펴본 뒤 알겠다는 문자를 하나 보냈다. 그러자 진동이 한번 더 울렸다.

[이예나 대리님]

아, 그리고 사무실로 올라오지 말고 지하 3층 주차장으로 와주세요.

이번에는 답장할 필요 없어요~

그렇단 말이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겠다.

나는 초스피드로 준비를 마치고는 집을 나섰다.

잠시 후, 약속 장소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봤다. 눈에 확 띄는 분홍색 머리카락은 없었다.

아직 위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는 듯 했다.

'차키도 빌리고 팀장님께 보고도 하고 바쁘겠지.'

내가 빨리 온 것도 있으니 여유를 가져야겠다. 옆에 있는 기둥에 등을 기댄 뒤 핸드폰을 꺼냈다.

-끼이이익...끼익...!

날카로운 타이어 소리가 쉴 새 없이 귀를 찔렀다. 대기업이다 보니 역시 사람 하나는 뒤지게 많구나.

바삐 출근하는 차를 쳐다본 뒤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10분 지난 것 같은데 생각보다 늦네.'

이거 너무 빨리 온 건가. 심심한데 스트레칭이나 하고 있자.

팔을 위로 쭉 올리는 순간 누군가 겨드랑이 아래를 쿡 찔렀다.

"오래 기다렸죠?"

"대리님!?"

"응? 뭘 그리 놀래요? 무슨 귀신을 본 것 마냥."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그랬죠. 그보다 언제 오셨어요?"

"방금요."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이예나가 어깨를 으쓱 올렸다. 이어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한번 더 찌르려 했다.

황급히 피하자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건 그렇고 우진 씨 사복 차림은 처음 보네요. 평소에도 이렇게 입고 다녀요?"

"보통 그렇죠. 편한 걸 추구하는 타입이라서요."

"편한 거 좋죠. 저도 그래서 이렇게 입고 왔잖아요."

이예나가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당당하게 허리를 폈다. 빨리 칭찬해 달라는 의미였지만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하얀 스웨터에 청바지.'

몸매에 맞게 딱 붙은 옷은 노출이 하나도 없음에도 야하기 짝이 없었다. 커다란 가슴과 널찍한 골반은 물론, 가느다란 허리까지 말이다.

분명 누가 단정하게 입고 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도 안 볼 수는 없으니 흘끗 곁눈질을 했다.

"잘 어울리시네요."

"그게 끝?"

"음... 엄청 예쁘십니다."

"그거야 당연하죠. 자, 일단 가요."

기분이 좋아진 듯한 이예나가 어딘가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가며 옷차림을 스캔했다.

그제야 왜 가까이 올 때까지 몰랐는지 알 수 있었다.

운동화.

대리님 =또각또각 이라는 공식이 머리에 박혀 있는 나로서는 예상 못한 변수였다. 재빨리 데이터를 추가하며 그녀의 뒷모습을 샅샅히 훑었다.

핑크색 머리카락, 하얀 스웨터, 청바지. 3개의 조합은 밝다 못해 빛이 나는 듯했다.

역시 예쁘긴 엄청 예쁘다. 아마 데이트를 하면 저런 옷을 입고 나오지 않을까?

괜히 침을 꿀꺽 삼키며 얼른 따라갔다.

"대리님. 차키 주세요."

"여기요, 그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잠은 충분히 잤죠?"

"잠이요? 걱정 마세요. 졸음 운전은 절대 안 하니까."

"다행이네요. 저는 뭐 어제 그 친구랑 했... 아니에요. 빙금 건 잊어주세요."

이예나가 손사래를 치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행동만으로 질문의 의도가 전부 파악됐다.

'어제 봤던 아영이와 좋은 밤을 보내느라 잠을 설친 건 아니냐고 묻는 거겠지.'

이걸 이렇게 유도 심문을 하네. 역시 5년차 대리는 다르다니깐.

속으로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저야 체력이 워낙 강해서 웬만한 정도로는 끄덕 없어요."

"아...예."

뭔가 움찔하는 그녀의 뒤로 둔 채 운전석을 열었다. 시동을 걸자 이예나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바로 표정을 찡그렸다.

"어우... 앞으로 땡겨져 있는 것봐. 허리 아프게."

의자를 팡팡 치더니 옆으로 몸을 숙였다. 드륵하는 소리와 함께 조정이 시작됐다.

나는 상태를 점검하는 척 옆을 흘끗흘끗 쳐다봤다.

"흣...으응... 좀 뻑뻑하네. 왜 이리 안 움직여?"

의자와 똑같이 무빙을 치는 가슴 때문이었다. 분명 브래지어로 고정되어 있을 텐데 뭐 저리 움직임이 큰 건지 모르겠다.

오늘 진짜 사고 나면 저거 때문일 게 100%다. 나는 머리를 저으며 안전벨트를 멨다.

그렇게 본격적인 출장이 시작됐다.

부우우웅...

회사를 빠져나온 지 어연 20분, 신호등에 멈춰섰다. 작게 콧노래를 부르던 대리님의 흥얼거림도 멈췄다.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무언가를 내밀었다.

"혹시 뭐 먹을래요? 탕비실에서 챙겨온 건데."

"초콜렛인가요?"

"네."

"그럼 아 해보세요. 운전하는 중이니 제가 넣어드릴게요."

"아뇨, 괜찮은데요."

"운전 중이잖아요. 까닥하다 사고나면 어쩌려고."

내 의사는 듣지도 않은 채 그녀가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어차피 지금 빨간불이라 손은 여유로운데.

하지만 다가오는 대리님의 팔에 입을 크게 벌렸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궁금한 게 있는데요. 어제 봤던 과 후배..."

-빠아앙!

신호등이 바뀜과 동시에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얼른 엑셀을 밝자 이예나가 뒤를 뱀눈으로 흘겨봤다.

콧바람을 흥 내뱉더니 다시 창문을 노려봤다.

유리창에 반사되는 그녀의 입은 열심히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오늘따라 왜 저리 귀엽게 행동하냐?'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의자에서 냄새 맡으면서 자위했던 사람이 맞나? 그렇게 대담한 짓을 했으면서 여기서는 쭈구리라니.

결국 타이밍을 잡지 못한 그녀는 30분 더 꿍해있었다. 그리고 출발한 지 1시간이 되던 때, 드디어 입이 열렸다.

"우리 저기서 좀만 쉬었다 가요. 마실 것 있으면 마시고."

"오른쪽에 있는 카페 말씀이신가요?"

"네. 여기 빵빵한 법카가 있으니 비싼 거 막 사먹어도 돼요."

"그거 그렇게 사용해도 되는 거 맞죠?"

"직원 사기를 올려주는 용도로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요? 어차피 이 정도는 아무도 신경 안 써요. 알아도 다들 알음알음 넘어가지."

그렇구만. 역시 대리님이 짱이야.

바로 방향을 틀어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흐음...! 날씨 좋다. 이렇게 좋은 날 회사에 박혀있으면 그것만큼 손해가 없죠."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출장 나오는 걸 좋아해요. 거래처 상대하는 건 귀찮지만 뭔가 해방되는 느낌이라서요."

이예나가 팔을 위로 쭉 피며 다가왔다. 가슴을 한껏 내밀고 있어 시선이 절로 집중됐다.

잠깐 눈을 감은 사이 몰래 훔쳐봤다.

"흐으응...흣...!"

정말이지 폭력적인 몸매다. 입을 둥글게 말며 신나게 구경을 했다.

하지만 어느새 떠진 푸른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

"...."

이건 좀 많이 곤란한 상황이네. 화를 내진 않겠지만 직접적으로 들킨 건 큰일이다.

일단 사과부터 박자.

"죄송..."

"빨리 들어가요. 저는 달콤한 걸로 부탁할게요~"

이예나가 내 말을 끊고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팔을 뒤로 뻗었다.

내밀어진 손가락 사이에는 카드가 끼워져 있었다.

얼른 받은 뒤 그녀의 뒷를 바라봤다. 빠르고 가벼운 걸음걸이.

누가 봐도 신난 듯한 모습이었다.

'못 본 척 해주겠다는 건가?'

도대체 알 수가 없네. 분명 트집을 잡아서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페에 들어갔다.

"그래서 말이죠, 갑자기 지갑이 없어져서 엄청 당황했어요. 왔던 길도 꼼꼼히 뒤져봤는데 없어서 회사에 갔더니 책상에 딱 있지 뭐예요?"

"찾아서 다행이네요."

"츕...츄읍... 하아... 맞아요, 근데 야밤의 회사는 정말 무섭더라고요?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라 얼른 빠져나왔어요."

"불이 다 꺼져 있으면 참 무섭죠."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대리님을 상대하는 중이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가슴.

아까부터 계속 저 부위를 강조하는가 싶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이건 정말 볼 수도 없고 안 볼 수도 없고. 참으로 곤란하네.

괜히 눈길을 돌리자 대리님이 상체를 내밀었다. 턱을 괴더니 흘러가듯 물었다.

"맞다, 어제 만났던 과 후배랑은 무슨 사이예요? 둘이서 팔짱 잘만 끼고 다니던데."

"아영이요?"

"네. 아영이요."

이게 범인이었네.

"저는 과 1등이고, 걔는 과 2등인 친구죠."

"흐음... 엄청 친해보이던데요? 친구 이상으로."

"그런 면이 없지는 않긴 해요.

두루뭉실하게 말을 흐렸다. 여자 친구라고 당당하게 말해도 되지만 대리님의 반응이 더 궁금했기 때문.

흥이 식었는지 그녀가 커피를 들고 일어섰다.

"이제 슬슬 가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차 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안전벨트를 메려는 순간 이예나가 몸을 돌렸다.

물끄러니 쳐다보는가 싶더니 폭탄 발언을 했다.

"그러면 제 가슴이랑 후배 가슴 중에 누가 더 좋아요?"

"...네?"

"한두 번이면 봐주려 했는데 아까부터 계속 쳐다 봐서 말이에요. 너무 노골적이라서 모른 척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사과는 됐고 누가 더 좋아요?"

대답하기 전까지는 출발하지 않을 기세다. 당연히 사회 생활을 위해서는 대리님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아주 큰 오류가 있었다.

"그게... 대리님 꺼는 안 만져봐서 모르겠는데요?"

"에?"

"공평하게 만져봐야 비교를 하지, 그냥 대답만 하라고 하면 매우 곤란합니다."

어차피 뭐 알 거 다 아는 사이인데 숨길 게 뭐가 있어.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자 그녀가 슬쩍 가슴을 내밀었다.

"그럼 만져봐요."

"...정말요?"

"저도 여기에 자부심이 되게 큰데 그러면 자존심 상하죠. 어디 한 번 만져보고, 제대로 대답해보세요."

하늘 높이 승천하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부여잡았다. 이거 호박이 넝쿨 채로 굴러들어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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