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0화 > 520. 합석
궁금해 미칠 것 같다. 도대체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온몸에서 러브젤 냄새를 풍기는 건지. 그리고 저 치마 안에는 어떤 상황이 펼쳐져 있는 건지.
몰래 곁눈질했다.
스윽스윽...
손을 비벼 물기를 털어내고 있는 대리님. 여느 때와 똑같은, 별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겉모습뿐이지. 저 옷 안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게 분명했다.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근데 어떻게 확인하지?'
치마속을 들춰볼 수도 없고. 물론 아바타를 쓴다면 어찌어찌 할 수는 있다.
책상 아래 들어가야 한다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는 걸 빼면 말이다.
흠.
나는 밝게 켜진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부터 추리를 해보자.
-첫 번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에서 자위를 하고 나왔다.
저 변태 대리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가 자리를 비운 건 단 5분.
왔다갔다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다. 애초에 러브젤의 용도가 무엇인가?
야한 짓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그걸 피부 이용이니 뭐니 하면서 썼을 리는 절대 없다.
누가 봐도 100% 자위한 상황이지만 5분이라는 시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분위기 잡고 달아오르는 게 하는 데에만 그만큼 소요될 것 같은데.
나는 의자에 딱 붙은 그녀의 엉덩이를 지그시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관심을 끄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어차피 지금 알아낼 수 있는 건 없다. 그리고 만약 애널에 딜도를 넣고 있는 거라면 다음 화장실에 갈 때까지 빼낼 수 없다는 뜻이니 괜찮다.
몰래 아바타로 미행하면 되니까.
그렇게 점심시간 전까지 대리님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
점심시간 1분 전, 이예나가 몸을 틀었다. 손을 흔들어 내 주의를 끌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우진 씨, 오늘 뭐 먹을래요?"
"저는 대리님이 드시는 거 먹겠습니다."
"맨날 제가 메뉴 골랐으니 한 번 골라보세요. 저도 딱히 가리는 건 없어서요."
제일 맛있는 게 눈앞에 있는뎁쇼. 꽁꽁 싸맸지만 안쪽이 훤히 보이는 듯한 몸에 절로 침이 고였다.
"일단 나가면서 생각해 볼게요. 지금 당장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요."
"좋아요. 그럼 슬슬 가볼까요?"
그녀가 겉옷을 챙긴 뒤 의자에서 일어났다. 똑같이 엉덩이를 떼자 이예나가 앞서나갔다.
살랑이는 포니테일을 따라가고 있자 그녀가 갑자기 비틀거렸다.
"흐읏..."
"괜찮으세요?"
"아... 네, 잠깐 헛디뎌서. 별 거 아니에요."
무안한지 빠르게 치마를 툭툭 털며 똑바로 섰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또각또각또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힘차게 걸어가는 그녀. 하지만 집중 관찰을 하고 있던 내겐 전부 보였다.
무언가 어정쩡한 걸음걸이라 걸. 특히 엉덩이에 굉장히 힘을 주고 있는 듯했다.
'아까 생각했던 게 맞는 것 같은데.'
수상하다 수상해. 점점 더 커지는 의심을 유지한 채 밖으로 빠져나왔다.
딱 첫걸음을 내딛으려는 순간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김세정]
일단 대리님께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안녕~ 바로 받는 걸 보니 점심시간인가 보네?"
"이제 막 회사에서 빠져나온 참이야."
"잘됐다. 심심한데 나랑 같이 먹자."
이럴 줄 알았다. 제안은 매우 고맙지만 지금의 나는 특수 상황이다.
"저번에 봐서 알겠지만 대리님이 전담마크 중이라 그건 힘들 것 같아."
"뭐 어때, 내가 한 턱 쏠 테니까 동석하는 건 어떠냐고 한 번 물어봐봐. 그리고 너한테 줄 선물도 있고."
"선물?"
"만나면 가르쳐줄게."
"알았어. 잠깐만."
뭔가 귀를 활짝 열고 있는 듯한 이예나한테 다가갔다. 그냥 말해도 될 만도 하지만 혹시 모른다.
김세정의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으니까.
살짝 몸을 숙여 귓가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가 뒷걸음질치며 어깨를 흠칫 떨었다.
"뭐, 뭐예요?"
"그... 저번에 봤던 제 친구 김세정 아시죠? 오늘 자기가 점심 쏜다고 같이 먹자고 하는데 어쩔까요?"
"정말요? 그 김세정이요?"
"네. 어떻게 할까요?"
"연예인이 초대하는데 당연히 가야죠. 마침 메뉴도 골라야하는 판이었는데 잘 됐네요."
쉽게 허락이 나왔다. 고개를 끄덕인 후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괜찮다고 하시네. 그럼 어디로 가면 될까?"
"저~기 000 중국집 알아? 네 회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데인데, 카운터에 내 이름 대면 알아서 안내해줄 거야."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빨리와~"
짧은 대답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리님께 목적지를 전했다.
"좋네요. 거기 고급 중화집이라 쉽게 못 가는 곳인데."
"비싼 곳인가요?"
"가격도 가격이지만 예약을 미리미리 해야해서 평소에는 잘 못 가죠."
그렇구만. 하긴, 0티어 아이돌이 가는 곳인데 평범한 음식점일 리가 없지.
그 쪽을 향해 몸을 돌리자 이예나가 옆으로 다가왔다.
팔꿈치로 나를 쿡 찌르더니 흘러가듯 말했다.
"근데 우진씨 되게 인기 많네요? 김세정이 점심을 사준다고 오라고 하질 않나... 박서윤이랑 친한 사이라고 하질 않나..."
"다 친구인데요 뭘."
"흐응... 그것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의미심장한 톤으로 말끝을 흐리는 그녀. 잠깐 입술을 삐쭉이더니 본론을 꺼냈다.
"엄청나게 예쁜 보랏빛 머리의 여성분도 있잖아요? 아는 누나라고 했나?"
"채아 누나요?"
흠칫.
이름을 말하자 또다시 그녀가 몸을 떨었다. 진짜 이거 반응 알기 쉽네.
"채아... 인가요. 이름 예쁘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얼른 가요."
대리님이 획하고 몸을 돌렸다. 설마 자기 이름은 예쁘다고 안 해줘서 삐진 건 아니겠지?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어.
피식 웃으며 뒤따라갔다. 잠시 후, 룸 하나를 잡고 있는 김세정을 만날 수 있었다.
"어, 왔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직접 얼굴 뵙는 건 처음이네요."
형형색색한 포니테일들이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원형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는 의자에 착석했다.
"바쁘실까봐 미리 시켜놨어요. 여기는 음식 나오는데 좀 걸리서요."
"아, 괜찮습니다. 이렇게 좋은 걸 사주신다는데 오히려 감사히 먹어야죠."
"일단 코스 A로 통일했어요. 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얼마든지 시켜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아, 맞다. 전 잠깐 화장실 좀..."
대리님이 미소를 지으며 탈주했다. 덜컥 하고 문이 닫히는 순간 김세정이 상체를 들이밀었다.
"여어, 오랜만이네? 요즘 아주 얼굴 보기 힘들어 죽겠어."
"그러게. 너는 콘서트 준비 잘 돼 가냐?"
"연습에 연습에 또 연습이지. 덕분에 자유 시간이 많아서 나쁘진 않아."
"2주 뒤 주말이라 했었나?"
"응. 티켓팅은 했어? 그 잘난 손가락이면 당연히 했을 것 같은데."
아직 안 했는데. 사실 홈페이지에 들어가지도 않았어.
어차피 어플 상점에서 팔 텐데 뭐.
"당연히 했지. 내가 누구인데."
"다행이네. 혹시 몰라서 여분 좀 가져오긴 했는데 필요 없게 됐네."
"마음만 받을게."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이거 특등석이야."
"감사히 받겠습니다."
재빠른 태새전환에 그녀가 깔깔 웃었다. 눈물이 맺힌 눈가를 닦더니 한 쇼핑백을 건네주었다.
"그래... 이것도 같이 받아놔라."
"아까 말한 선물이야?"
"선물이라기 보다는... 돌려주는 거지."
안쪽을 열어보자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저번에 빌려줬던 옷들이었다.
"세탁까지 전부 깨끗이 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렇게 안 해도 됐었는데 아깝네. 김세정의 보짓물 범벅 에디션이 더 끌리는데."
"...뭐라는 거야."
"어쨌든 고마워. 근데 여기 팬티도 있지?"
"있... 겠지?"
"내놔."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었네 이거. 나는 어색하게 볼을 긁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로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회수했다.
"그건 기념으로 가져도 돼. 평생 집안 가보로 여겨도 되고."
"누가 네 팬티를 가보로 쓰냐. 정신 나간 사람도 아니고."
"혹시 모르지. 미래에는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이 되어 있을 수도 있는데."
"참 잘도 그러겠다."
김세정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더니 슬쩍 문을 쳐다봤다.
굳게 닫힌 걸 확인하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 밤 안 바쁘지?"
*
"흐읏...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곳을 찌르네..."
엉덩이에 잔뜩 힘을 주고 화장실로 향하던 이예나가 멈춰섰다. 아침에 넣어놨던 딜도의 각도가 틀어졌는지 자꾸 벽을 찔러댔기 때문이었다.
일단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변기 칸에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철컥.
문을 잠그기 무섭게 치마를 풀어헤쳤다. 살짝 젖어있는 팬티도 무릎까지 내린 뒤, 엉덩이를 뒤로 잔뜩 내밀었다.
뿌리까지 들어가 있는 딜도를 천천히 빼내기 시작했다.
"흐으으으...응흣...."
몇 시간 동안 들어있던 터라 쉽게 빠지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위치 수정을 마쳤다.
'하아... 근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전날밤의 꿈이 문제였다. 인턴의 그 큰 자지가 뒷구멍에 들어와 마구 쑤셔댔던 꿈.
손발이 오그라드는 엄청난 쾌감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는 듯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못 참고 해버렸다. 조금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절정하는데는 성공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정리하려는 순간,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그 자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저런 걸 넣으면 찢어질 게 분명한데.
만약에, 진짜로 만약에 하게 되면 미리 대비해두는 게 낫지 않을까?
괜히 뜨거워지는 하복부를 문지르며 딜도를 들었다. 몰래 가방에 넣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을 시작하게 된 게 바로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근데... 이게 맞나?'
이예나는 괜히 머리를 긁적이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현실에선 아무런 관계도 아닌데 혼자서 이러고 있다니.
갑자기 현자 타임이 왔다.
일단 빨리 빼내고 가서 밥이나 먹자. 다시 엉덩이를 내밀다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보관할 곳이 없다.
결국 다시 팬티를 올린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