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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연결 오나홀로 따먹기-476화 (476/615)

< 476화 > 476. 할래요? 말래요?

수업 끝나기 30분 전. 몰래 핸드폰을 꺼내 책상 아래로 가져왔다.

들어간 건 은행 어플이었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얼마더라...'

백화점에 갈 것 같으니 미리 확인해봐야지. 나는 로딩 시간 동안 앞과 옆의 눈치를 슬쩍 봤다.

교수님은 무언가를 설명하기 바쁘셨고, 아영이도 진지한 표정으로 필기를 하고 있었다.

-팟.

화면이 바뀌고 등장한 숫자. 절로 만족스런 미소가 지어졌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오늘은 아예 내가 데이트 비용을 내버릴까?

"오빠, 뭘 그리 보고 있어요?"

그때, 옆에서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영이가 턱을 괸 채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핸드폰 각도를 틀며 주머니에 넣었다.

"그냥 시간 확인."

"확실히 지루하긴 하죠... 근데 오빠는 지금 설명하는 거 다 이해했어요?"

"반 정도?"

"표정 보니까 아닌 것 같은데."

"사실 나도 잘 몰라. 요즘 공부를 안 해서."

어깨를 으쓱이며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아영이가 의자를 스윽하고 땡겼다.

더욱 가까워진 얼굴. 특유의 눈매가 장난스럽게 휘어졌다.

"만약 우리 이사 가게 된다면 매일매일 같이 공부할 수 있겠네요? 엄청 기대된다."

"좋긴 좋은데 과연 공부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러게요. 짐승 같은 오빠가 갑자기 화악 덮쳐버리면 곤란한데..."

"내가?"

"네."

뭐 자기는 아니라는 듯 말하네. 너무 당당해서 오히려 내가 벙쪄버렸다.

"그럼 우리 각방 쓰자."

"네에? 어떻게 하면 그런 결론이 나와요?"

"공부해야 하는데 하루 종일 해버리면 곤란하잖아. 아무리 좋아도 할일은 미루지 말아야지."

"어... 그런가요?"

좀 세게 나가자 그녀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영이가 저러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속으로 몰래 웃음을 터트리자 갑자기 허벅지 위로 손이 턱 올라왔다.

"제가 조금만 참을게요. 각방은 절대로 죽어도 안돼요."

"그렇게 진지하게 쳐다보지마. 나도 그냥 해본 소리였으니까."

"정말요?"

"정말."

"하아... 반 정도 진심인 것 같아서 놀랐다고요..."

눈동자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장난으로 툭 내뱉은 건데 저렇게나 심각하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평소라면 몰래 쳐들어가면 되죠~ 라고 했을 텐데.

"아무리 공부가 중요해도 설마 아영이보다 더 할까. 걱정 하지마."

"히힛... 그 정도예요?"

"당연하지."

비행기를 띄워주자 아영이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붉은 입술 안쪽의 가지런한 햐안 이빨이 시선을 끌었다.

역시 예쁘네.

잠시 넋을 놓고 바라봐버렸다. 그 모습이 좋았는지 그녀가 몸을 더 붙여 다가왔다.

"그럼 제가 하는 말은 다 들어줄 거예요?"

"당연하지."

"뭐든지?"

"응."

"그럼... 우리 지금 나가요."

그녀가 내 손을 살포시 잡더니 바깥쪽으로 수 차례 당겼다. 조르는 듯한 행동이 참 귀여웠다.

더 느끼고 싶어 가만히 있자 이번엔 뱀처럼 휘감아오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 어느새 깍지가 껴져 있었다.

"1초라도 더 빨리 오빠랑 데이트하고 싶어요. 어차피 못 알아듣는 수업은 유기해버려요."

"그래, 그러자."

마침 따분했었는데 잘 됐네. 나는 허락과 동시에 활짝 웃는 아영이를 보며 조심히 가방을 챙겼다.

맨 뒷자리는 우리의 암묵적인 좌석이었기에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교수님이 있으니 카모플라쥬는 사용하고.'

보험 하나 정도는 들어놔야지. 나는 어느새 정리를 마친 그녀와 강의실을 몰래 빠져나왔다.

시원한 바깥 공기를 맡자 아영이가 쭈욱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하아아아... 역시 오빠랑 있으면 합법적으로 땡땡이를 칠 수 있어서 좋아요."

"어째 내 능력을 나쁜 쪽으로만 쓰는 것 같다?"

"오빠도 내심 바라고 있었으면서 뭘."

그녀가 신경쓰지 말라는 듯 와락 팔짱을 꼈다. 물컹한 감촉에 하려고 했던 말을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

솔직히 나도 수업듣기 싫었으니 괜찮겠지.

"그럼 바로 백화점이나 갈까? 아까 옷 산다고 했는데 정해둔 거라도 있어?"

"음... 딱히 정해둔 건 없는데, 코트랑 바지랑 목도리랑... 그냥 다?"

"일단 가서 정하자. 막상 가면 바뀔 수도 있으니까."

"네에~"

곧바로 택시를 불렀다. 15분 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높디높은 백화점. 아영이가 뭔가 그리워하는 듯한 얼굴로는 올려다봤다.

"오빠 혹시 여기 기억나요?"

"무슨 기억?"

"저 여기서 엄청 괴롭혔잖아요."

"...그랬지?"

"버스 타는데 갑자기 자지 의자를 하질 않나, 매장 탈의실 안에서 몰래 박아대질 않나... 전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해요."

오나홀을 얻은 지 별로 안된 극초반 얘기네. 마침 반투명 모드가 열려서 약간 주체를 못하긴 했지.

조용히 혼잣말을 듣고 있자 그녀가 흥 하고 콧바람을 내뱉었다.

"뭐... 그것도 다 추억이네요. 지금이야 괜찮지만."

"그땐 내가 너무 날뛰어서 힘들었었지?"

"아~주 많이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미안미안, 대신 사과의 의미로 오늘 내가 사고싶은 거 다 사줄게."

"어? 정말요?"

눈을 크게 뜨는 그녀에게 핸드폰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빵빵하니까 다 골라."

그 말을 후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

'뭔 코트가 70만원이야? 이건 100만원을 훌쩍 넘기네?'

세상에 이렇게 비싼 게 존재할 줄이야. 물론 지갑은 충분하지만 갑자기 자신감이 사라진다.

그래도 티를 내지 않고 아영이가 고르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곧 3개의 옷걸이를 들고 왔다.

"오빠오빠, 이거 예쁘지 않아요?"

"예뻐."

"이거는요?"

"예뻐."

"이거 색깔도 괜찮지 않아요?"

"그러네. 예쁘다."

진심을 담아 대답했지만 그녀한텐 아니었나 보다.

갑자기 도끼눈을 뜨며 다가왔다.

"뭐 다 예쁘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아니, 진짜로 다 예쁜 걸 어떡해."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입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다.

근데 거적떼기를 입어도 빛이 나는 아영이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흐음... 생각해보니 질문이 잘못된 것 같네요. 잠시만요."

내 생각을 읽었는지 그녀가 옷을 하나씩 들어 몸에 대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가장 예쁜 거 하나를 골라주세요."

"나는 3번째 꺼."

"그럼... 이것 중에서는요?"

"2번째."

"역시 오빠가 보는 눈이 있네요. 저도 그게 가장 좋았었는데."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이나 휙휙 돌리며 살펴보기 바빴다.

그럼 계산이나 할까?

손을 내밀어 건네받으려는 참, 돌연 그녀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맨살이 보이기 직전에 카모플라쥬를 사용했다.

"야야, 뭐하냐?"

"일단 시착을 해봐야지요?"

"그걸 왜 여기서 해. 저기 탈의실 있잖아."

"갖고 들어갔다 나오기 귀찮잖아요. 그냥 오빠가 가려주세요."

이게 무적인 줄 아나. 사실 무적은 맞지.

피식 웃으며 옷을 갈아입는 아영이를 구경했다.

곧 첫 번째 걸로 갈아입은 그녀가 살짝 불만인 표정을 지었다.

움직이기 불편한지 이리저리 팔을 휘두르기도 했다.

"으으응... 이건 다 좋은데 가슴이 좀 꽉 끼네요?"

"그러게 그만 먹지 그랬어."

"오빠가 하도 만져대니까 커진 거잖아요."

"크면 좋지 뭐."

"원래도 컸는데 더 커진 것 같아요."

나는 아슬아슬하게 잠길락 말락 하는 단추를 보며 응원을 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하지만 결국 포기했다.

"이건 안 되겠네요. 한 사이즈 더 큰 거 입어야겠어요."

"근데 사이즈 더 큰 거 입으면 허리 쪽이 헐렁하지 않아?"

"나중에 줄이든 해야죠."

"옷 한 번 사기 참 힘드네."

"제 몸매가 워낙 좋은 걸 어떡해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그녀가 다시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 짓을 수 없이 반복을 했고, 결국 딱 하나가 손에 들려있었다.

'저걸로 결정인가?'

디자인도 좋고 색감도 좋은데 잘 골랐네. 미리 계산이나 할 겸 건네받으려 했다.

하지만 옷걸이가 향한 건 내 손이 아닌 원래 있던 자리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툭툭 터는 그녀에게 의문의 눈길을 보냈다.

"안 사?

"나중에요."

"...저거 마음에 든다고 했잖아."

"일단 킵이에요. 다음 매장에서 더 좋은 게 나오면 손해라고요~"

아무래도 쇼핑이 상당히 길어질 것 같다. 신나게 발걸음을 옮기는 아영이의 뒤를 따라갔다.

쇼핑이 끝난 건 한참 뒤였다.

"후아... 오늘 사줘서 정말 고마워요. 예쁘게 잘 입고 다닐게요."

"나한테 제일 먼저 보여줘야돼."

"당연하죠. 애초에 보여줄 사람이 오빠 말고 누가 있겠어요."

에스컬레이터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자 딱 눈에 띄는 게 있었다.

한 층을 가득 채운 가구 코너.

그러지 않아도 박서윤이 침대가 좁다고 했었는데 어디 좋은 게 없으려나?

평소에 없던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랐다.

"우리 저기도 둘러보자."

"오... 혹시 신혼집에 둘 것들 미리 사는 거예요?"

"신혼집은 무슨..."

"에이, 무슨 목적인지 다 보이는데 뭘 숨겨요. 자, 빨리 가봐요."

나보다 더 신난 그녀와 함께 정면에 있던 매장에 들어갔다.

침대 전문점이었다.

-털썩.

"으음... 이거 엄청 푹신하네요...?"

"확실히 자취방에 있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긴 하다."

"혹시 오빠는 어떤 게 취향이에요? 딱딱한 거? 아니면 푹신한 거?"

"나는 중간이 좋아. 너무 쑤욱 들어가면 박는 맛이 없거든."

허리를 살짝 끌어안자 그녀가 허벅지를 밀착시켰다.

"그럼 어디 한 번 해볼까요?"

"뭘?"

"이런 건 원래 직접 사용해본 다음에 결정하는 거거든요. 집에 다 설치했는데 환불하기는 어려우니까..."

아영이가 끈적하게 눈길을 보내더니 스르륵 겉옷을 벗었다.

그러더니 털썩 침대에 누워버렸다.

"할래요? 말래요?"

당연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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