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선 연결 오나홀로 따먹기-422화 (422/615)

긴 시간 끝에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이제 진짜 퇴근이라 그런지 김세정이 피로하지만 밝은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럼 모두 안녕~ 오늘 와줘서 정말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봐!!!"

"응원할게요!"

손을 흔들며 출구로 향하는 그녀와 그 뒤를 따라가는 수많은 수행원들.

대충 봐도 수 십개에 육박하는 선물 다발을 들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크기부터 32인치 모니터만한 크기까지 다양했다.

실제로 보니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나 빼고 전부 가져온 것 같은데... 뭐라도 챙겨 올 걸 그랬나?'

상관없겠지.

이따 다른 걸 주면 될 테니까.

또각...또각...

그렇게 구두 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마침내 들리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흥분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나한테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

슬쩍 빠져나오며 시계를 봤다.

10시 5분. 찾아가기에는 너무나도 이른 시간.

30분에 들어오라고 했으니 어딘가에서 시간을 때워야한다.

끼익...

내가 선택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5성급 호텔인 만큼 경비가 심할 테니 괜히 얼쩡거리다가 수상한 사람으로 의심받는 것보단 낫다.

궁상맞긴 하지만 잠시 이러고 있어야지.

변기에 주저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일단 소설이 잘 업로드되었나 확인이나 해볼까.

사이트에 들어간 순간 커다란 메시지가 떴다.

'...그새 후원을 했었네?'

그 액수도 더 올라가 있었다.

얼마나 놀랐으면 500코인이나 준 걸까?

이거 완전 마법의 주머니가 따로 없다.

자지를 넣으면 돈이 나오는 보지라니.

피식 웃으며 최대한 신비하게 답장을 남겼다.

-이벤트성으로 한 번 해봤습니다.

노출증에 재능이 있는 김세정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이다.

딱히 심한 짓을 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것저것 시간을 때운 뒤에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탑승했다.

-24층입니다.

눈 깜짝할 새에 도착한 목적지.

체감상 집에 있는 것보다 3배는 빠른 듯한 속도였다.

발걸음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카펫을 지나 똑같은 숫자가 적힌 문 앞에 섰다.

손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벨을 누르려는 순간.

끼익.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화들짝 놀랄 틈도 없이 김세정이 나를 잡아당겼다.

"쉬잇... 빨리 들어와."

"귀신이냐? 어떻게 알았어."

"그냥. 감으로."

문구멍으로 미리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가자, 눈앞에 엄청난 풍경이 펼쳐졌다.

"어때? 죽이지?"

"나 이런곳은 처음 와보는데 미쳤네..."

"당연하지. 일반인은 절대 못 오는 방이거든. 여기 하룻밤에 얼마인지는 알아?"

"얼만데."

그녀가 대답대신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천만 원? "

"소속사가 해준 거라서 정확한 건 모르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비쌀 거야."

"....돈지랄이 따로 없네."

"이제야 내 클라스가 실감나? 나 연예인이야 연예인. 그것도 1티어."

나는 자신있게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갑자기 몸에서 후광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

휘바람을 불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넌 들어온 지 꽤 된 거 같은데 옷 안 갈아입냐?"

"나도 방금 들어왔어. 스태프랑 매니저한테 주의사항 받고 이것저것 마무리하고 온 거라."

"그래? 그럼 이건 내가 1빠네."

후다닥 달려가 침대에 다이빙을 했다.

"야... 야! 그거 아직 나도 못 누워본 건데!"

"먼저 오는 사람이 임자지."

"그딴 게 어딨어!"

"이런 건 좀 나한테 양보해라. 어차피 넌 이런데 언제든지 올 수 있잖아."

보란듯이 뒹굴뒹굴 구르자 주름 하나 없이 말끔해던 시트가 금방 망가졌다.

돌발 행동에 김세정이 경악한 표정으로 달려와 나를 붙잡았다.

"뭐 나는 밥먹듯이 오는 줄 알아? 비켜 빨리!"

"조금만 더. 아니면 너도 옆에 누워."

"됐거든!"

"거 참 속좁네. 알았어."

투덜대며 침대에서 벗어났다.

대신 혼자 쓰기에는 상당히 넓은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고급진 인테리어나 가구들이 시선을 끌긴 했지만 역시 하이라이트는 어두어진 창밖이었다.

작은 감탄을 흘리며 구경하고 있자 김세정이 다가왔다.

"예쁘지?"

"야경 멋지네."

"거의 꼭대기 층이니까. 더 좋은 건 목욕하면서 구경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녀가 텅 빈 욕조를 툭툭 두드렸다.

2명은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큰 크기였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

"부럽지? 그러니까 이런 곳에 초대한 나한테 감사히 여기라고."

"정말 고맙다."

"진심이 안 느껴지는데."

"느끼지 말든가."

순간 김세정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별 말 없이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바깥을 바라봤다.

"...."

"...."

3분 정도 지나자 김세정이 흘러가듯 조용히 물었다.

"근데 너 팬미팅 티켓 진짜 어떻게 얻은 거냐?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말했잖아. 직접 예매했다고."

"서윤이가 도와준 거 아니야? 걔라면 한두 개 정도는 문제없이 얻을 수 있긴 한데."

"거짓말 1도 안 보태고 진짜 혼자 했어."

"웬일이야?"

그녀가 팔꿈치로 나를 툭 찌르며 대견스럽다는 미소를 보냈다.

그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뭔가 끈적하면서도 같은 걸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 아닌 느낌.

"저번 일이 미안해서 그렇지. 겸사겸사 얼굴도 보고."

"흥... 참 빨리도 말한다."

"타이밍이 애매했지."

"그건 변명이고."

사실 몇 번 말하긴 했다.

꿈에서 한 거라 실제로는 아니지만.

괜히 뻘쭘하게 있자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화해의 악수였다.

"어쨌든 뭐, 오늘 내 사인회에 와준 건 사실이니 감사 인사는 할게. 고마워."

"고맙다고? 갑자기 사람이 변하면 죽는 징조라는데...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넌 그냥 입 열지 마라. 영원히 닥치고 있어."

김세정이 내 볼을 쿡 찔렀다.

그걸로 멈추지 않고 빙글빙글 돌리며 후벼파기 시작했다.

"모처럼 스위트룸에 초대해주고 좀좀 해보려 하니까 계속 기어오르네? 바로 나가고 싶어?"

"장난인데 그걸로 삐지긴, 가슴은 뒤지게 크면서 속은 좁아."

"뭐...뭐!?"

이번엔 내가 공격을 가했다.

왼쪽 유두가 있는 위치를 정확히 검지로 꾸욱 눌렀다.

"흐윽...! 이젠 그냥 대놓고 만지는 것 봐라?"

"가장 앞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찌른 것뿐이야."

바로 손을 빼자 그녀가 가슴을 살살 문지르며 몸을 뒤로 뺐다.

잠깐 노려보더니 등짝 스매쉬를 날렸다.

짜악!

"윽!"

짧은 비명을 지르자 김세정이 통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옆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무언가를 꺼내왔다.

"어쨌든 일로 와. 모처럼 이런 곳에 왔는데 싸우지 말고 이거나 마시자."

"뭔데? 와인?"

"유명한 거야."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자리에 앉는 그녀.

반대쪽에 따라 앉자 코르크를 따기 시작했다.

뽀옹!

시원한 소리와 함께 내 잔에 보랏빛 액체가 출렁이며 천천히 올라왔다.

비싼 게 사실인 듯 냄새는 달콤했고 색깔은 영롱했다.

'애초에 이런 스위트 룸에서 싸구려를 둘리가 없지.'

그렇게 양쪽 잔을 모두 채웠다.

"짠."

"짠."

쨍그랑 하는 맑은 음과 함께 한 모금 목구멍으로 넘겼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맛이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캬... 역시 좋네."

그녀도 작게 감탄을 흘리며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남은 것을 쭈욱 들이켰다.

탁!

김세정이 식탁 위에 빈 유리잔을 내려놓고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겨우 저걸 마시고 취했을 리 없는데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러더니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진짜 이렇게 가만히만 있으면 참 괜찮은 친구인데... 왜 이렇게 날 괴롭히는지 모르겠네."

이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다.

바로 미끼를 던졌다.

"내가 뭐 최근에 괴롭히는 게 있었나?"

"...됐어. 넌 모르는 얘기니까."

"방금 내가 괴롭혔다고 말 꺼냈으면서 왜 갑자기 끊어?"

"됐다, 됐어... 얼마나 징글징글하면 꿈에서도 나타... 아, 방금 건 못들은 걸로."

황급히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내 꿈 꿨냐?"

"아니."

"거짓말 하네."

상체를 숙여 다가갔다.

가뜩이나 좁은 테이블이라 금방 얼굴이 가까워졌다.

부담스러웠는지 그녀가 몸을 뒤로 뺐다.

"네가 잘못 들은 거야. 그냥 꿈에서 나올까봐 무서울 정도라고 말하려고 한 거였어."

"그래? 아닌 거 같은데..."

떨리는 검은 눈동자.

피식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님 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유롭게 와인을 꿀꺽 넘겼다.

그리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이만 갈게."

"어...어? 어딜가?"

"내일 학교 수업도 있고, 너도 내일의 스케줄이 있잖아. 아직 못 씻은 거 같은데 이제 편히 쉬어."

미련 없이 문으로 향했다.

반쯤 가자 뒤에서 크게 덜그럭 소리가 났다.

"야...! 난 괜찮으니까 좀 더 있다가. 이렇게 넓은 곳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기도 하고 뭐..."

우물쭈물거리며 다가오는 그녀.

괜히 시선을 돌리며 내 옷깃을 살짝 잡았다.

"내가 나중에 택시비 줄게."

"야간 할증이라 비싼데."

"괜찮아."

"그렇다면야... 조금만 더 있을게."

못 이기는 척 몸을 빙글 돌렸다.

순간 김세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주 잠깐이라 금방 사라졌지만 분명 봤다.

내심 그런 걸 바라고 있는 것 같으니 슬슬 유도를 해볼까.

나는 아까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욕조를 바라봤다.

비싼 입욕제와 온갖 목욕 용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저기서 이어서 마실까?"

"그래..."

서로 눈치를 보며 겉옷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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