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1화 > 401. 양옆에 연예인을 끼고 술 마시는 남자
끼익...
외출했던 복장 그대로인 박서윤이 문을 열어주었다.
안에는 김세정이 눈을 부라리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진짜 악마가 들린 얼굴이네.
작게 코웃음을 치자 박서윤이 검지를 입술 앞에 두었다.
"저래 보여도 사과 얘기 먼저 꺼낸 건 세정이니까 싸우지 말고 잘 화해해봐."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어휴...말만 그러지 말고. 제발."
그녀가 엄마 같은 잔소리를 하더니 나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싸악 훑어봤다.
놀란 얼굴을 했다.
"근데 이런 모습 처음 보는 것 같다? 평소랑 완전 다른데?"
"데이트룩이지 데이트룩. 아이돌이랑 술 먹는데 그냥 오면 쓰나."
"웬일이야... 네가 그런 생각을 할 줄도 알고?"
"기본이지. 그보다 슬슬 들어가자. 목 빠지겠다."
"아...!"
부스럭거리며 술과 안주를 꺼내고 있는 주황머리를 향해 턱짓을 했다.
박서윤이 까먹었다는 듯 작게 박수를 짝 치며 문을 활짝 열었다.
당당하게 걸어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안녕."
"잘 지냈어?"
"어."
"뭔가 티비에서 보던 거랑은 많이 다르네?"
"그렇지. 그건 티비니까."
대답을 해주긴 해주는데 많이 짧다.
화해하러 온 사람의 태도가 맞나 싶은데.
말 거는 걸 포기하고 남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냉담한 우리의 분위기에 박서윤이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
"자자! 일단 한 잔 마시고 하자."
각자 앞에 종이컵을 하나씩 두더니 소주 뚜껑을 땄다.
팅!
맑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 꼬다리.
그걸 신호로 잔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다.
"내가 그땐 진짜 어이 없었다니까? 갑자기 나한테 고백을 박는데 뭐 어쩌라는 건지."
"맞아, 가끔 그럼 사람이 있긴 해. 근데 차라리 그 정도면 정상이야."
"그렇긴 해. DM 꼬라지 보면 진짜 말도 안 나와."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불만 토로의 장이 되었다.
나야 이런 딥한 연예계 사정은 처음 들어본 터라 가만히 경청하기만 했다.
끼어들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
유명한 이름이 동네 친구처럼 막 나올 때는 정말 신비로웠다.
이렇게 보면 진짜 천상계 사람들이란 말이야.
하는 짓을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는데.
부스럭.
과자를 하나 집어 먹었다.
"그래도 요즘은 좀 낫더라. 회사에서 법적으로 처리해주니까 많이 좀 줄었어."
"다행이네... 나는 요즘 그런 거 다 잊고 살아서 아주 편해. 세정이도 잠깐 활동 쉬는 건 어때?"
"됐어. 지금 인기 많을 때 계속 해야지. 바짝 벌어야 나중이 편해."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침묵이 주위를 감돌았고, 살짝 눈이 풀린 김세정이 고개를 휙 돌렸다.
내 앞에 놓인 종이컵을 가리켰다.
"넌 뭐 없어? 없으면 그거 원샷해."
"나? 갑자기?"
"지금까지 나랑 서윤이만 말했잖아."
불똥이 튀었다.
"그렇긴 해."
"재밌는 거 아무거나 말해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다.
재밌는 거 아무거나.
문제는 할만한 얘기가 없다.
모솔아다로 살다가 무선 연결 오나홀을 얻게 되어 신나게 따먹은 게 내 인생의 전부라도 봐도 무방한데.
근데 지금까지 얘네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웬만한 걸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 같다.
뭘로 하지?
김세정이 힌트를 주었다.
"난 그거 들어보고 싶어. 들어보니까 너 여자한테 인기 많다고 하던데... 첫 사랑이나 첫 경험 얘기 좀 해봐."
"오...! 그거 좋다!"
"설마 없다고는 안 할 거고... 빨리."
"맞아맞아. 나도 궁금하다."
역시나.
술자리에 이 주제가 빠질 리 없다.
나는 두 눈을 반짝이고 있는 김세정과 박서윤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못 알아듣게 각색을 하고 또 하자.
처음이면... 그래도 아영이로 하는 게 좋겠지? 그럼 들켜서 내 집에 쳐들어온 걸로 말하자.
그때가 현실에서 했던 진짜 섹스니까.
"첫 사랑 이야기는 가슴 아프니까 첫 경험으로 할게."
"오... 과감하게 오픈하는 거야? 좋아좋아."
주황 머리 변태녀가 씨익 웃으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이어 시원하게 앞머리를 깐 백은발의 여자도 귀를 쫑긋 세웠다.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진실 반 거짓 반이 섞인 스토리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만난 사람인데 서로 눈이 맞아서 사귀게 됐어. 엄청 예쁘고 가슴도 커서 인기 많은 아이였지."
"근데 너랑 만났다고?"
"내가 딱히 어디 빠지지는 않잖아?"
"흐음...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김세정이 초반부터 태클을 걸어왔지만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날은 데이트를 했어. 어두운 밤이 되자 자연스럽게 내 방으로 같이 들어왔지. 똑같은 걸 생각했는지 서로 수줍은 듯이 쳐다보며... 스르륵 하고 옷을 하나씩 벗었어."
"...꿀꺽."
"너무 예쁘더라고. 진짜. 엄청 큰 가슴인데 쳐진 거 하나 없이 탱탱하게 매달려 있는 거 하며, 가느다란 허리와 넓은 골반이며... 예술이었지."
진행될수록 둘의 입이 점점 더 벌어졌다.
완전히 몰입했다는 얼굴에 신이 났다.
'실상은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
뭐 어떤가.
듣는 상대만 즐거우면 됐지.
"알몸이 되자 누구 할 것 없이 바로 키스를 했어. 서로의 몸을 더듬으면서 침대로 천천히 이동했지."
"...."
"털썩. 눕자마자 그녀가 다리를 벌렸고 구멍을 찾아 내 것을 끼웠어. 그리고... 여기서 끝."
박수를 크게 짝 쳤다.
동시에 엄청나게 격렬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아...뭐야아!!!"
"중요한 순간에 끝내는 게 어딨어!!"
피식 웃으며 몸을 뒤로 뺐다.
"어차피 뒷내용은 다들 알잖아? 내가 하나하나 꼭 설명해줘야 돼?"
"아니, 궁금하게 하고는 여기서 멈추는 게 어딨어! 끝까지 해!"
특히 김세정의 반발이 심했다.
저 처녀라면 누구보다 뒷내용이 궁금하겠지.
"그럼 그냥 결과만 말할게. 한 10번 했나?"
"...구라도 적당히 쳐야지. 사람이 어떻게 10번을 해?"
"믿거나 말거나."
어깨를 으쓱이며 박서윤을 슬쩍 곁눈질했다.
실제 경험자라 그런지 아무런 말도 없이 얌전히 앉아있었다.
"하아... 그래,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분위기가 식은 김세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문이 잠기자마자 박서윤이 나를 툭 쳤다.
"그거 누구 이야기야? 혜윤이?"
"아영이."
"그 검은 머리 친구?"
"저번에 미스 미래대에서 우승한 애 기억나지? 걔야."
"그렇구나... 근데 너 말 잘하더라. 무슨 야설 쓰는 작가마냥 아주 술술 나오던데."
"실제로 한 걸 그대로 읊은 것뿐이니까."
"잘났다 진짜."
그러면서 은근슬쩍 엉덩이를 붙여오는 그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과 붉어진 얼굴을 보면 흥분한 게 틀림없다.
엉덩이에 손을 올렸다.
"하읏...! 지금 세정이 있잖아. 안돼."
"안 보일 때 잠깐 만지는 거지."
"방금까지 다른 여자랑 했던 썰 풀었으면서 무슨..."
말은 그렇게 해도 내 손길을 피하지 않는다.
만지는 대로 움찔움찔 떨며 뜨거운 숨을 내뱉기도 하고 말이야.
스윽.
주무르던 손을 점점 아래로 내렸다.
엉덩이골을 스쳐 지나가며 손가락이 아래에 깔리도록 깊게 넣었다.
한층 더 커진 떨림을 느끼며 은근하게 물었다.
"이따가 할래?"
"...뭘?"
"알잖아."
"미쳤어? 오늘 세정이 자고 간다고 했잖아. 그리고 이 좁은 곳에서 어떻게..."
"술에 취한 척 그냥 드르렁 누워버리면 되잖아."
잠깐 고민하는 표정.
설득이 먹히긴 먹히고 있다.
"그럼 네 방에 가서..."
"역시 하고 싶었구나? 아까 조금만 해서 부족했지?"
"네가 야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 거잖아!"
그녀가 애교를 부리듯 내 어깨를 툭 쳤다.
귀엽기도 하지.
"만약 그러다가 김세정이 중간에 깨면 어쩌게? 우리 둘 다 사라진 걸 보면 무조건 의심하지 않겠어?"
"그건 여기서 해도 마찬가지잖아."
"쟤는 침대에서 자게 내버려 두고, 나는 기절한 척 그냥 바닥에 누울게. 그 다음엔... 적당히 상황 보면서."
박서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친구 바로 옆에서 한다는 스릴감과 배덕감.
그리고 들키면 좆된다는 이성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듯했다.
그래봤자 답은 정해져 있다.
저 거칠어진 숨소리를 들어보면 말이다.
결국 달아오른 몸이 이겼다.
"네가 하고 싶다니까 딱 한 번만 하는 거야."
"그걸로 충분하지."
뒷거래가 끝나자마자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바로 손을 빼고 아무 일 없는 듯 핸드폰을 들었다.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김세정의 시선을 무시하며, 종이컵에 가득 소주와 맥주를 채웠다.
"그럼 2차전 갈까? 아직 9시도 안 됐다고."
*
"드르렁...푸흐..."
김세정은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박우진을 어이 없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지가 제일 먼저 뻗어버렸네?"
"그러게... 완전히 골아떨어진 것 같은데 그냥 내버려둘까?"
바로 깨워서 보내버려! 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오늘의 목표는 서윤이가 밤에 어떻게 변하나 지켜보는 것.
저놈이 남아있어야 성립이 된다.
찜찜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냥 바닥에 대충 이불깔고 두자."
"그래."
서윤이가 침구류를 챙겨주는 동안 나는 정리나 하자.
수많은 빈 병과 안주들을 부엌으로 옮겼다.
마무리가 되자 슬슬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나마 아까 숙취 해소제를 먹어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잠들고 있는 건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잡자 서윤이가 등을 툭 쳤다.
엄청 걱정스럽다는 눈빛이었다.
"세정아, 피곤하면 바로 잘까?"
"그래. 그러면 우리 둘이 한 침대 쓰는 거야?"
"내가 내려가서 잘까? 세정이는 손님이니까 편하게 쉬어."
"아니야! 괜찮아. 같이 자자."
옆에 둬야 안전하지.
같이 두는 건 절대 용납 못해.
그렇게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웠다.
무리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새액...새액..."
그럼 그렇지.
서윤이가 쟤랑 좋아서 했을 리가 없어.
혹시 모르니 조금만 더 지켜보다 자자.
박우진 저놈이 갑자기 일어나서 서윤이를 덮칠 수도 있으니까.
졸린 눈을 비비며 버텼다.
하지만 한계는 금방 찾아왔다.
'그냥 잘까...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 중간에 깨어날 리 없지.'
응징하는 건 내일 정신이 멀쩡할 때 하자.
지금은 나도 졸리니까...
서윤이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을 감았다.
삐걱...
딱 잠에 들려는 순간, 갑자기 침대가 크게 출렁였다.
동시에 몸을 데워주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졌다.
혹시 화장실이라도 가는 건가?
곁눈질을 했지만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래에서 아주 조용하고 은밀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애 태워놓고 진짜 잠든 건 아니겠지...? 야...야..."
몇 번 몸을 흔드는 기척이 나더니 뭔가가 스르륵 움직였다.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잠이 확 깼다.
슬쩍 고개를 들어 확인을 했다.
거기엔.
"자는 척하지 말고 일어나. 안 일어나면 이거 확 깨물어버린다?"
"그럼 바로 소리질러 버릴 건데?"
"뭐래... 그보다 술을 그렇게 마셨으면서 자지는 왜 이렇게 단단해? 원래 안 서지 않아?"
"네가 그렇게 만져대는데 안 서겠냐."
"별로 만지지도 않았구만..."
아까 봤던 거대한 자지와.
그걸 빨려는 듯 입을 크게 벌린 서윤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