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6화 > 396. 박서윤이 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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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급해보이네."
나는 김세정이 보낸 후원을 보며 피식 웃었다.
방송국에서 노출 플레이를 한 지 이틀이 지난 토요일.
벌써부터 저런 메세지가 오고 있다.
울상이 된 표정이 상상됐지만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다.
원래 이런 건 기간이 오래될 수록 효과가 좋다.
아마 휴재가 끝난 뒤에는 스스로 더 심한 짓을 해달라고 졸라오겠지.
'그땐 뭘 시켜볼까...'
벌써부터 즐겁다.
내 앞에서 고고하게 고개를 세우던 그녀가 뒤에선 말을 잘 듣는 강아지꼴이라니.
말 나온김에 알몸 강아지 산책이나 해볼까?
전에 아영이가 했던 것처럼 목줄 채우고 네 발로 기어가게 하는 거 엄청 꼴렸는데.
다리 한쪽 올린 뒤에 오줌 싸게 하는 것도 좋았고.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올라갔다.
빨리 5일이 지났으면 좋겠네.
'그럼... 몸도 근질근질한테 헬스나 갔다올까?'
운동할 때는 시간이 뚝딱 흐르니 아주 좋은 선택지다.
바로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끼익.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맑은 공기가 나를 반겼다.
거기에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과 붉게 물든 단풍들.
정말 가을이라는 게 확 느껴지는 날씨다.
나는 평소보다 걸음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경치를 구경하면서 이동했다.
그렇게 헬스장으로 향하고 있자 앞에 익숙한 인형이 보였다.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한 여자.
푹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 백은색의 긴 머리카락을 보면 누군지 뻔하다.
잠시 멈춰서자 눈이 마주쳤다.
흠칫.
고양이를 본 생쥐처럼 어깨를 크게 떨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도둑도 아니고 저게 뭐야.
이번엔 손을 흔들었다.
이거라면 못 본 척 할 수 없겠지.
휙.
예상과는 달리 고개가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정말 이를 악물고 마주치지 않으려는 모습에 허탈한 감정이 올라왔다
'아직까지도 저러네.'
저번 금요일의 축제 이후, 즐겁게 몸을 섞어 놓고는 쭉 저런 상태다.
그건 이번 주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스캔 일 때문에 몸을 사리나 싶었는데 지금까지 이러는 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다른 사건이 벌어진 게 틀림없다.
확실히 물어봐야겠다.
나는 박서윤이 스쳐 지나가기 직전, 어깨를 툭 쳐 멈추게 했다.
일단 밝게 스마일.
"어디 갔다 와?"
"산책."
"요즘 얼굴 보기 힘든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어?"
내 말에 그녀가 잠깐 뚱한 표정을 지었다.
불만인 얼굴로는 툭 내뱉었다.
"누가 또 파파라치 짓하면 어떡해."
"진짜 그거 때문이야? 아닌 거 같은데."
"그거 맞아. 어쨌든, 넌 어디 가는데?"
"운동가는 길이지. 같이 갈래?"
"방금 산책 갔다 왔다고 했잖아. 다리 아파."
박서윤이 손사래를 치며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아무래도 헬스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삐진 게 확실하니 풀어주는 게 급선무.
바로 몸을 돌려 같이 걷기 시작했다.
"뭐야, 운동 간다면서 왜 따라와."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각나서 말이야."
"나도 이따 중요한 일 있으니까 따라오지마."
그렇게 말하면 더 궁금해진다.
나는 오랜만에 잡은 대화의 물꼬를 놓치지 않고 몸을 가까이했다.
"뭔데?"
"내가 왜 알려줘야 돼."
"말하면 나도 알려줄게."
"너껀 안 궁금해."
철통방어네.
그래도 계속 대꾸해주는 거 보면 원하는 게 있는 것 같긴 하다.
계속 하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나는 대화가 끊기지 않게 계속 말을 걸며 따라갔다.
결국 집 복도까지 와버렸다.
띡띡띡...
그녀가 비밀번호를 푸는 동안에도 뒤에 서 있었다.
잠금장치가 풀리자 박서윤이 눈을 무섭게 부라렸다.
"어디까지 오게? 나 이제 들어가서 쉴 거니까 네 할일 해."
"심심한데 집들이나 하지 뭐."
"야...야!"
그녀의 방으로 슬쩍 발을 내밀자 박서윤이 급하게 나를 막았다.
하지만 은근히 내가 들어오길 바라고 있는지 저항은 상당히 약했다.
신발을 벗으며 안쪽을 빠르게 스캔했다.
'딱히 달라진 건 없네. 정리도 잘 해놨고... 좋은 냄새도 나고.'
마음의 병 같은 건 아닌가 보다.
가방을 내려놓은 뒤 자연스럽게 마루바닷에 엉덩이를 붙였다.
"...아주 제 집처럼 들어오네.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
"싫으면 경찰에 주거침입죄로 신고하든가."
"진짜 한다?"
박서윤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정말로 할 것 같은 기세에 서둘러 일어났다.
"에이, 장난인 거 알잖아. 그보다 중요한 일 있다면서? 내가 도와줄 테니까 말만 해."
허둥지둥대는 내 모습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도와준다는 말에 기분이 풀렸는지 작게 입을 열었다.
"사실 그렇게 준비할 건 없어... 이따 8시쯤에 세정이가 놀러온다는 게 다거든."
"세정..? 그 주황머리 싹바가지?"
찌릿.
사실인데 뭐.
그보다 김세정이 갑자기 왜 여기서 튀어나오는 거야.
내가 아는 세정은 딱 한 명밖에 없는데.
"왜 오는데?"
"같이 놀면서 스트레스 좀 풀자고 하던데?"
"일주일 전에 왔으면서 또? 너네 사실 백수지? 일감 없어가지고 팽팽 노는."
"걔 통장에 0이 몇 개인줄은 알아? 너보단 최소 3개는 더 많을 걸."
최소 3개라.
내 잔고가 100만원이라 치면 10억인데.
거기에 앞자리가 바뀌거나 0하나가 더 붙으면...
부자네.
좀 많이.
"그 정도면 좀 놀아도 되지. 연습생 시절부터 고생 많이 했잖아?"
"그렇지... 20대인 지금 놀아야지, 나중에 또 언제 이러겠어."
박서윤이 털썩 침대에 주저 앉았다.
다리를 주무르는 모습에 슬쩍 옆으로 다가갔다.
손목을 잡아 멈추게 했다.
"내가 해줄게."
"종아리 위주로 해줘. 많이 걸었더니 힘들어."
"알았어. 다리 이쪽으로 돌려봐."
그녀가 선뜻 내게 몸을 맡겼다.
그것도 침대에 위에서 이러는 건 이주 좋은 신호다.
주물주물...
조용히 마사지를 하고 있자 박서윤의 입에서 기분 좋은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지나가듯 말을 꺼냈다.
"근데 너랑 친하게 지내는 여자애들 있잖아."
"정확히 누구?"
"4명 다."
아영이, 혜윤이, 희진이, 채아 누나를 말하는 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약간 힘빠진 목소리로 질문했다.
"솔직하게 말해봐. 나랑 너랑 섹스하는 거 그 사람들 다 알고 있지?"
"알고는 있지."
"역시..."
박서윤이 콧바람을 픽 내쉬며 한결 편해진 얼굴을 했다.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더니 천장을 멍하니 쳐다봤다.
"사실 마음에 좀 걸렸거든... 그동안 몰래몰래 하고 다녔는데, 이젠 나한테 경고를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그게 무슨 소리야. 웬 경고?"
"저번 주 금요일 기억하지? 무대 끝나고 세정이랑 술 마시고난 뒤, 너랑 한 거."
"당연히 기억하지."
역시 그때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무엇 때문일까? 귀를 쫑긋 세웠다.
"내 방에서 하룻밤 자고 갔잖아.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아!"
퍼즐이 전부 맞춰졌다.
박서윤과의 섹스 소리에 흥분했던 혜윤이가 내 집에 쳐들어왔고.
벽을 뚫고 넘어간 새로운 신음에 오해를 했던 게 분명하다.
남의 남자를 뺏지 말라는 경고로.
'타이밍이 아주 절묘하긴 했지. 실상은 전혀 아니지만.'
그래서 헬스장에도 잘 안 나오고 거리를 뒀던 거구나.
이거 좀 귀엽네?
종아리를 주무르고 있던 손을 서서히 올렸다.
"흣! 거기는 안 해도 돼."
"허벅지도 뭉친 것 같은데 다 풀어줘야지."
"자...잠깐!"
"왜?"
"우리 또 이러면 안돼..."
"안되긴 뭐가 안돼."
무선 연결 딜도로 실컷 괴롭히던 용기는 어디 갔다 버렸나.
겨우 이런 걸로 쫄고나 말이야.
나는 점점 손에 힘을 주며 상체를 가까이 했다.
커지는 박서윤의 눈을 똑바로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때 혜윤이가 왜 왔는지 알아?"
"그러니까 경고로..."
"너랑 섹스하는 소리 듣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데."
"...응?"
"네 신음이 너무 기분 좋아보여서 자기도 그렇게 해달라고 찾아온 거였어."
"그게 무슨..."
머리가 안 돌아가는지 잠시 눈살을 찌푸린 그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입을 떡 벌렸다.
비밀을 하나 더 말했다.
"자위도 몇 번 했데."
"거짓말하지 마. 옆옆방인데 어떻게.."
"네 목소리가 그만큼 컸다는 거지. 애초에 옆방 정도는 쉽게 뚫리잖아?"
벽을 탁탁 쳤다.
방음이 잘 되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듯한 벽.
앞으로 더 다가가자 그녀가 침을 꿀꺽 크게 삼켰다.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서, 혹시 너도 했냐?"
"뭘 해."
"혜윤이랑 하는 소리 듣고 자위했냐고."
"미친놈아!"
박서윤이 빼액 소리를 지르며 옆으로 탈출했다.
그래봤자 침대 안이다.
그리고 이미 다리는 내 손에 붙잡혀 있고.
"어쨌든 오해는 다 풀린 거지?"
"...거짓말 아니지?"
"있는 그대로 100% 실화지."
나는 새빨개진 얼굴을 한 박서윤을 보며 씨익 웃었다.
동시에 쫙 달라붙어 있는 레깅스를 훑으며 골반까지 손을 올렸다.
바지 윗단을 잡았지만 저항은 없었다.
오히려 내려달라는 듯 은근슬쩍 엉덩이를 들었다.
"흐읏... 변태 새끼... 오자마자 이런 짓이나 하고."
"너도 일주일 동안 참았잖아? 아니면 혼자 해결했어?"
"미친 새끼... 진짜아..."
내 가슴팍을 툭툭 치는 그녀.
애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스륵...
레깅스가 무릎까지 내려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박서윤의 새하얀 피부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김세정 8시에 온다고 했지?"
"으응..."
"그때까지 할까?"
"마음대로...해. 어차피 싫다고 해도 억지로 할 거잖아."
"억지는 무슨."
피식 웃으며 레깅스를 마저 내렸다.
이제 팬티밖에 안 남은 하체를 보며 나도 바지를 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