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8화 > 378. 누가 미래대에서 가장 예쁠까요?
"오빠! 여기에요 여기!"
"여기 있었구나. 오래 기다렸어?"
"아니요? 저도 일 끝내고 방금 왔어요."
정문으로 가자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빙그레 웃는 혜윤이에게 손을 흔들며 옆으로 다가갔다.
"배고프지? 점심부터 먹을까?"
"다른 사람들은요?"
"채아 누나랑 희진이는 주차할 곳이 없어서 좀 걸린다고 했어. 생각보다 사람이 엄청 몰린 모양이야."
"그렇긴 하죠. 주변 학교에서도 전부 왔을 테니까요. 게다가..."
썩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가리키는 그녀.
"어디 사는 서윤 언니의 남자 친구 덕분도 있을 걸요?"
"그거 정정 기사가 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러냐..."
"말만 그렇지. 사람들 머릿속에는 그대로일 텐데요? 그래서 축제도 즐길 겸, 누군지 얼굴도 보고..."
"그만! 불안한 소리는 그만하고 일단 움직이자."
"네에~"
혹시 모르니 오늘은 뒷통수를 조심해야겠구만.
괜히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인파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거의 놀이 공원 수준으로 꽉 차 있는 캠퍼스.
어딜 봐도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 학교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었나?"
"작년엔 이 정도로 많이 오진 않았어요."
"그럼 올해가 특이한 거네."
고개를 휙휙 젓고 있자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카똑이 도착해있었다.
채아 누나 : 점심 미리 너희들끼리 먹을래? 우린 따로 먹고 갈게.
박우진 : 주차 공간이 없었어요?
채아 누나 : 응. 좀 일찍 나올 걸 그랬다.
박우진 : 알았어요. 그럼 1시에 미스 미래대 대회 있으니 거기서 봐요.
아쉽구만.
확실히 이 난리면 누나의 중대형차는 들어오기 힘들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끼리 먹어야 할 것 같다."
"음... 그러면 저기 핫도그나 햄버거 같은 거 사서 아영이 언니한테 갈래요?"
"좋은 생각이네. 그럼 3인분으로 사가자."
대회 출전 40분 전이니 아마 대기실에 있겠지.
깜짝 찾아가면 좋아할 게 분명하다.
그렇게 양손에 가득 음식물을 들고 대회장 건물로 향했다.
[출전자 대기실]
"들어가도 되겠지?"
"되겠죠. 친구가 놀러 왔다는데 누가 막겠어요."
"근데 다 여자잖아? 막 벗고 있고 그런 거 아니야?"
"오빠, 이상한 걸 너무 많이 봤어요. 여긴 탈의실이 아니라고요."
혜운이가 샐쭉하게 입술을 내밀며 나를 쿡 찔렀다.
그 말에 자신감을 얻어 문을 열었다.
끼익.
"어...?"
사람이 있었다.
문고리를 잡으려 손을 내밀고 있는 아영이.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디 가려고?"
"잠깐 화장실 좀 가려고 했죠. 근데 웬일이에요?"
"배고플까 봐 왔지."
손에 든 걸 보여주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이어 스멀스멀 올라오는 맛있는 냄새에 킁킁거렸다.
"들어와요. 어차피 다들 뭐 먹으러 나가서 마침 혼자였거든요."
"딱 좋네."
화장실에 갔다 오는 동안 테이블에 짐을 풀었다.
손을 탈탈 털며 다가온 아영이가 메뉴를 보더니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먹으면 살찌는데..."
"어차피 대회 40분도 안 남았잖아. 그냥 먹어."
"조금이라도 얼굴 탱탱 부었다간 손해라고요."
"부어도 돼. 그래도 예쁘니까."
"에이, 벌써 아부하기는. 그래도 상금 안 줄 거예요."
싫지는 않은지 미소를 띠며 햄버거를 드는 그녀.
바로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우물우물 먹는 걸 보니 내심 배고팠던 모양이다.
어쩌면 아침도 굶었던 게 아닐까?
나는 감자 튀김을 천천히 씹으며 기세가 줄어들 때까지 조용히 있었다.
잠시 후, 콜라로 입가심을 하고 나서야 만족한 얼굴이 되었다.
그제야 혜윤이가 질문을 했다.
"언니, 근데 참가자들은 총 몇 명이에요?"
"응... 대충 20명 정도? 정확히는 안 세어 봤어."
"생각보다 많네요?"
"대충 과에서 한 명씩 나온 모양이던데? 게다가 다들 한 가닥 하게 생겼더라."
아영이 입에서 저런 평가가 나오다니.
참가자들의 수준이 정말 많이 높나 보다.
이거 기대되는 걸?
혹시 박빙의 대결을 볼 수 있는 건가.
"근데..."
입가를 티슈를 닦으며 뜸을 들인 그녀.
별 거 아니라는 듯 툭 내뱉었다.
"다 나보다 못생겼어."
그럴 줄 알았다.
"엄청난 자신감이네."
"사실인 걸 어떡해요. 그리고 나름 객관적인 평가를 한 거라 거짓말은 아니에요."
"...그럼 그나마 예쁜 애는?"
"제 전력의 80%?"
"아영이의 80%면 많이 예쁜 거 같은데."
"근데 가슴이 뒤지게 작아요. 눈 가리면 여자인지도 모르겠던데. 그 껌딱지."
피식 비웃음을 날리며 콜라를 쪽쪽 빠는 그녀.
너무 당당한 태도에 한 마디를 해주려는 찰나, 갑자기 문이 열렸다.
"여기까지 들어올 필요는 없는데..."
"윤서 힘내라고 해주는 거지."
"우리 윤서면 꼭 이길 수 있을 거야."
한 무리의 남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확실히 이름 좀 날렸겠네. 예쁘긴 하다.'
하지만 딱 그 정도.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나에게는 그 이상의 감흥을 주지 못했다.
"오빠, 방금 제가 말했던 껌딱지예요. 어때요? 진짜 작죠?"
"...제발 목소리 좀 죽여라."
일단 몹쓸 소리를 하는 저 입술을 툭 때렸다.
이어 사실인지 몰래 스캔을 실시했다.
쓰윽.
진짜 없네.
아영이가 괜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구나.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전 거짓말 안 한다고 했잖아요."
"솔직히 저건 제쳐둔다 해도 아영이가 더 예쁘긴 하다."
"히히... 그것 봐요. 1등은 제 꺼라니까요."
"그래, 이제 슬슬 사람들 돌아오는 것 같으니까 나가볼게. 응원할 테니까 열심히 해."
"네에~"
자신만만한 아영이를 뒤로 대기실에서 빠져나왔다.
"저기 앉자."
반원형 모양을 하고 있는 대회장.
정면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있자 누가 등을 툭툭 쳤다.
"우진이 찾았다. 여기 있었네?"
"아, 채아 누나랑 희진이 왔어요?"
"응. 1시에 시작이라 해서 얼른 왔어. 다행히 시간 딱 맞춘 모양이네."
볼 때마다 새로운 옷을 입고 있는 둘과 인사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로 보이는 사람이 무대로 올라왔다.
"아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 미스 미래대 사회자를 맡은 김성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와아아아아!!!"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함성.
열렬한 반응에 그는 밝게 웃으며 룰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대회에는 총 24분의 참가자가 있습니다. 한 번에 2분씩 나와 미모를 겨루게 될 텐데요, 마음에 드시는 분께 소리를 치면 됩니다."
사회자가 뒤에 있는 전광판을 가리켰다.
"저거 보이시죠? 여기 무대에는 고성능 소음 측정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데시벨이 높은 분이 이기게 됩니다! 간단하죠?"
과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이지 않은 투표 방식.
근데 이만한 인원이 모였으니 왜 저렇게 하는지도 이해가 갔다.
그리고 분위기를 달구는 데엔 이것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고.
"일단 성능 테스트. 다같이 소리 한 번 질러 볼까요? 하나, 둘, 셋!"
"와아아아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청난 굉음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전광판의 숫자가 바뀌기 시작했다.
70, 80, 90.
"95데시벨 나왔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럼 테스트도 마쳤으니... 바로 미스 미래대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빠른 진행 좋다.
사회자가 몸을 빙글 돌리며 다음 대본을 넘겼다.
"일단 출전자들 소개부터 해야겠죠? 모두 나와주세요!"
뒤편에서 24명이 차례대로 걸어 나왔다.
카메라가 빠르게 훑으며 모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자세히 볼 시간은 없었지만 누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아영이는 14번이네요."
"13번이 불쌍하다. 그냥 탈락하게 생겼네."
"그보다 아까 모습 그대로인데요? 하나도 안 꾸민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해도 우승할 자신이 있다는 거지."
나는 도도하게 서있는 그녀를 쳐다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때, 아영이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휙휙.
똑같이 손을 흔들며 답장해주는 아영이.
앞에 있는 남자가 흐억 소리를 질렀다.
너한테 한 거 아닌데.
"그보다 어떻게 찾았을까요? 여기 사람만 수천 명은 있는 거 같은데."
"왜 못 찾겠어. 여기 뒤에 확실한 신호판이 있는데."
나는 뒤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레몬과 포도를 흘끗 봤다.
성능 확실하구만.
"그럼 1,2번 후보 빼고는 전부 들어가 주세요!"
경기는 바로 진행됐다.
긴장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1번이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후보 1번 영문학과 2학년 이지아라고 합니다."
"영문학과? 혜윤이 동기 아니야?"
"아... 맞아요. 예쁘죠?"
"혜윤이보다 한참 모자란데? 그냥 등 떠밀려서 대타로 나온 거 아니야?"
"에이, 그러지 마요."
그러지 말기는.
대충 봐도 클라스 차이가 보이는데.
무관심한 태도로 지켜 보고 있자 결과가 정해졌다.
"1번 후보의 데시벨은... 87.4! 2번 후보의 데시벨은...88.3! 근소한 차이로 2번 후보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아까 모든 경기장의 인원이 소리쳤을 때 95 데시벨이 나왔으니.
약간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빨리 아영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게요."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 아까 봤던 그 껌딱지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와아아아!!! 윤서다 윤서!!!"
앞에 있는 남자가 거의 발광 수준으로 소리를 쳤다.
그와 별개로 확실히 경기장의 분위기가 한층 올라간 게 느껴졌다.
확실히 유명 인사인가 보다.
"안녕하세요. 12번 후보인 경영학과 3학년 이윤서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자기소개를 마치자마자 또 엄청난 굉음이 귀를 강타했다.
사회자도 놀란 표정으로 점점 올라가는 전광판을 바라봤다.
"92 데시벨...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크네요. 네, 그럼 다음 후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아영이가 말한 에이스가 쟤였으니까.
그렇게 12번 후보가 올라가고, 마침내 아영이 차례가 되었다.
터벅...터벅...
2명이 걸어 나왔다.
체념한 얼굴을 한 13번과 가면을 쓴 14번.
사회자가 관심을 보였다.
"아니, 14번 후보는 왜 가면을 쓰고 나오셨죠?"
"이래야 기대감이 커지지 않겠어요? 과연 이 뒤에 뭐가 있을지."
"...아, 그렇군요. 그럼 13번 후보부터 소개를 해주세요."
아영이의 목소리에 잠시 넋을 놓았던 그가 퍼득 정신을 차렸다.
마이크를 건네주자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13번 후보인 화학과 3학년 김하린입니다!"
"와아아아아!!!!"
꽤나 예쁜 사람이었다.
그에 맞게 전광판 숫자도 빠르게 올라갔다.
"90.8 데시벨!! 90을 넘은 건 이번이 3번째인데 대단하네요. 그럼..."
말없이 사회자의 마이크 건네받은 의문의 가면 여자 .
또각또각 모델 워킹을 하며 무대 가장 앞쪽까지 걸어 나왔다.
턱.
멈춰 서더니 허리에 손을 올려 포즈를 취했다.
"...."
작게 떠들던 소리마저 없어졌다.
아직 얼굴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장내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겉에서 보이는 몸의 라인부터가 장난 없었기 때문.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끝에서 끝까지 훑어본 뒤 가면에 손을 댔다.
스륵.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고, 가면이 바닥에 떨어졌다.
검은 머리카락을 크게 찰랑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14번 후보인 신아영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침묵.
소개가 끝났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들 충격을 먹은 건가?
그럴만하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갑자기 아영이가 활짝 웃음꽃을 폈다.
동시에.
"우와아아아아!!!!!!!!!!!!"
귀가 찢어질 정도의 엄청난 함성.
지금까지 그 어떤 것보다 훨씬 큰 소리였다.
"...오빠, 저거."
"고장난 건 아니지?"
혜윤이가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툭툭 쳤다.
물론 나도 같은 얼굴이었다.
[101.2]
나는 세자리를 넘어가고 있는 전광판을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미쳤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