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6화 > 376. 폭풍을 몰고 다니는 복학생 박모씨
새로운 아이템?
그보다 이제야 해금되는 거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 걸까.
일단 박서윤의 치료부터 도운 뒤 확인하기로 했다.
쾅.
"나 왔어."
"나 죽어... 빨리.."
진짜 사람 죽어가는 목소리에 재빨리 들어갔다.
뒷면을 훤히 드러낸 채 누워있는 그녀.
허리를 두드리고 있었지만 안색은 멀쩡했다.
"엄살은."
"진짜 확 그냥. 내가 다 나으면 넌 죽어."
"죽기 싫으니 난 이만 갈게."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그래. 그래야지."
빠른 태세 전환은 환영이다.
웃음기를 띠며 그녀의 옆에 자리 잡았다.
부드러운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물었다.
"정확히 어디가 아픈데? 짚어봐."
"여기랑 여기. 그리고..."
"뭐 그리 아픈 데가 많아? 할머니야?"
"누구 때문에 그렇지."
"집 갈게."
"미안해애..."
바로 내 옷깃을 붙잡는 박서윤.
놀리는 맛이 상당하지만 환자니 이쯤에서 그만두자.
찌익.
가져온 파스 하나를 뜯어 그녀가 처음 가리켰던 부위에 붙였다.
"흐으읏...!"
"시원하지? 그럼 하나 더 갈게."
"하흐으으!"
그렇게 총 3개를 붙였다.
계속 흐느끼는 목소리를 내는 박서윤을 쉬게 두며 핸드폰을 들었다.
'그보다 150점이 넘었다고 했지? 언제 그렇게 많이 올랐지?'
라고 생각한 순간 어제가 떠올랐다.
질내 사정을 그렇게 많이 해댔으니 당연한 결과다.
현재 박서윤의 게이지는 166(+100)점입니다.
나이 : 24살
키 : 166.3cm
몸무게 : 49.2kg
쓰리 사이즈 : 93 - 61 - 94
성향 : M
약점 : 클리토리스, G스팟, 질 내, 자궁, 가슴, 귀, 목.
좋아하는 자세 : 정상위, 대면 좌위, 기승위, 뒷치기.
현재 감정 : 부끄러움.
점수를 자주 확인하는 편이 아니라 정확한 변화는 모른다.
하지만 12시간 만에 거의 50점 정도 오른 건 확실하다.
휘파람을 불며 상점으로 들어갔다.
"...."
최상단에 위치한 한 물건.
대놓고 여기를 봐달라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 이름과 금액도 아주 아름다웠다.
[혼인 신고서 : 1억원]
동사무소에 가면 그냥 뽑을 수 있는 문서가 왜 저렇게나 비싼 걸까.
비싼 정도가 아니라 그냥 고급차 한 대 값인데.
하지만 사진을 확대하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남편(부) 칸은 1개.
아내(처) 칸은 공백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양식이었지만 무선 연결 오나홀을 만든 회사니 무언가 있을 것이다.
상세 정보를 눌렀다.
일부다처제.
지구상의 많은 생물들이 선택하고 있는 생존 방식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허락되지 않는 제도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해당 문서를 작성할 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산 시스템에 정식으로 올려드립니다.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본가가 1억이며, 여성 한 분당 1000만원씩 추가됩니다.
구매 조건 : 총 점수 1800점 이상.
*
"오빠, 듣고 있어요?"
"어어? 미안, 무슨 얘기 중이었지?"
"이번 주 금요일에 학교 축제 있다는 얘기 중이었어요."
아침에 봤던 혼인 신고서 때문에 잠시 멍을 때려버렸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조건이 상당히 그랬기 때문이다.
'아영이, 혜윤이, 희진이, 채아 누나, 서윤이.'
마지막은 아직 모르지만 이러면 최소 1억 5천.
근데 총 점수 1800점 제한을 보니 1000만원이 더 추가될 듯 싶다.
그건 그거고.
한 명을 더 추가하라고?
"또 멍 때리고 있네. 아까 2교시 수업에도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무슨 일 있어요?"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랬어. 별 건 아니야."
"혹시 여행의 피로가 다 안 풀린 거예요?"
아영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훑어봤다.
괜찮다 손사래를 쳤다.
"어쨌든 축제가 왜? 계속 얘기해줘."
"저번에 학과 단톡에 공지 떴었는데 못 봤어요?"
"그건 잘 확인을 안 해서 몰라."
"음... 일단 작년처럼 여러 가지 부스나 먹을만한 간이 식당이 생기기도 한데요."
난 작년에 군대에 있어서 잘 모르는데.
어쨌든 1학년 때 겪었던 걸 떠올리면 대충 이미지가 그려졌다.
"그게 끝이야? 특별한 건 없어?"
"있죠!"
아영이가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더니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대회 같은 걸 한다는데요?"
"...대회?"
"미스 미래대랑 천하 미래 노래 대회요."
뭐야, 그 촌스럽기 짝이 없는 작명은.
듣기만 해도 거북한 이름이었지만 대충 뭔 뜻인진 알 것 같았다.
"미스 미래대는 제일 예쁜 학생을 선발하는 거고, 뒤는 말 그대로 노래 잘하는 사람 뽑는 거지?"
"네! 정확해요."
"설마 출전할 거야?"
"당연하죠. 어차피 제가 여기서 가장 예쁘잖아요? 게다가 상금까지 주는데 이걸 안 나가면 바보나 마찬가지죠."
엄청난 자신감이다.
그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후보로는 여러 명이 있긴 하다.
근데 혜윤이는 성격상 무대 앞에 서는 걸 싫어하니 안 나올 것 같고, 서윤이는 조용히 생활하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 제외.
미래대 학생이 아닌 희진이랑 채아 누나는 참전 자체가 불가능.
이렇게 따지니 아영이밖에 우승 후보가 없었다.
진짜 상금은 프리 패스겠는 걸?
"그보다 이번 주 금요일이면 4일밖에 안 남았네? 오늘 월요일이니까."
"그렇죠. 참가 신청은 이미 해놨어요."
"응원할게."
"기대할게요."
배시시 웃는 그녀와 함께 다음 수업으로 향했다.
캠퍼스 거리를 걷고 있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영이의 미모 때문에 쳐다보는 건 익숙하지만, 오늘은 뭐라 해야 하나.
유명한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늘따라 많이 쳐다보는 것 같네."
"제가 그만큼 예뻐서 그런 게 아닐까요? 아니면 오빠 또 뭐 사고 쳤어요?"
"최근에 사고 친 건 없는데."
"그건 오빠 기준이고요."
그렇게 말하니 뭐라 반박하지 못하겠다.
굳이 따지자면 채아 누나랑 학교 안에서 데이트한 것도 있고, 서윤이랑 붙어 다닌 적도 상당히 많았다.
"생각해보니 좀 많은 것 같다."
"사고 뭉치."
"빨리 다음 수업이나 들어가자. 여긴 너무 등이 따갑다."
"그러게 적당히 좀 하지 그랬어요."
그 길을 따라 강의실 앞까지 도착했다.
끼익.
문을 열면 언제나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누가 들어왔는지 흘끗흘끗 확인하는 미어캣족.
그중에서도 계속 쳐다보는 사람과 바로 관심을 끄는 사람으로 나눠진다.
근데 오늘은 달랐다.
"오빠, 좀 많이 큰 사고를 친 거 같은데요?"
"굳이 말 안 해도 느끼고 있어."
"뭐 어디 뉴스에 흉악범으로 수배 뜬 건 아니죠?"
"진짜 그랬을까 봐 무섭다."
모두가 쳐다본다.
그것도 침묵을 일관하다 핸드폰을 보기를 반복한다.
진짜 수배서 떴나?
도망갈까?
수많은 생각과 함께 빈자리로 향하자 수군거리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저 사람 맞지?"
"맞는 거 같은데? 미래대 박우진이 저 오빠 말고 누가 있겠어."
"키도 비슷하고... 옷차림도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아."
"그래, 최근에 둘이 자주 붙어 다니긴 했잖아. 워낙 유명 인사기도 하고."
"근데 설마 그런 사이였을 줄은..."
"저번에는 편의점 언니랑 있더니..."
확실하다.
무조건 내 얘기다.
대충 흐름을 보니 여자랑 관련된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솔직히 찔리는 게 워낙 많아서 말이다.
그래도 알고 당하는 게 모르는 것보다 훨씬 낫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옆옆 자리 사람에게 물어보려는 찰나.
핸드폰을 뒤적거리던 아영이가 화면을 내밀었다.
"오빠... 대형 사고인데요?"
인기 검색어.
1위 : 박서윤
2위 : 미래대
3위 : 박서윤 스캔
4위 : 박서윤 남자 친구
아침까지 몸을 섞었던 사람의 이름이 아주 화려하게 검색어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건 좀 어지럽네.
*
위이이잉....위이이잉...
"흐음... 안 받네... 진짜 사실인가?"
고급진 소파에 누워 인상을 쓰고 있는 한 여자.
계속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자는 중인가? 이거 빨리 알려야 되는데."
다시 초록색 버튼을 누르며 거칠게 앞머리를 털어냈다.
휘릭.
주황 계열의 머리카락이 허공을 날았다.
동시에 기다란 포니테일이 작게 흔들렸지만 전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때, 뚝하고 전화가 걸렸다.
"응, 세정아."
"야아아아! 너 학교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깜짝이야... 왜, 무슨 일인데?"
"네가 직접 확인해봐. 온 커뮤니티를 불태우고 있는 초인기인 박서윤 씨."
잠시간의 침묵.
그동안 어느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들을 떠올렸다.
원룸에 어떤 남자랑 즐겁게 들어가는 박서윤.
같은 남자랑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는 박서윤.
동일 인물이랑 밤에 같이 돌아다니고 있는 박서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선명하게 찍혔다.
'학교 간다고 했을 때 대충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건 알았지만...!'
김세정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다시 전화가 걸려오길 기다렸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진동이 울렸다.
바로 받았다.
"세정아,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겠는데 진짜 그런 거 아니야."
"비슷한 짤이 엄청 많은데 뭐가 아니야."
"내가 미쳤다고 그렇게 대놓고 남자랑 돌아다니고 그러겠어? 걘 그냥 옆집 사는 애야."
"옆집?"
"동갑이고, 같은 학교고, 옆집 살고. 덕분에 제일 먼저 사귄 친구야."
"남자 친구가 아니고?"
"아니야."
단호한 말투에 마음이 한결 진정됐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럼 빨리 입장문 내든가 해. 알잖아, 아이돌은 꿈과 환상을 파는 직업이라는 걸."
"알긴 아는데 지금 내가 허리가 좀 아파서..."
"죽을래? 일단 내가 급한 대로 주변 사람한테 전할 테니까 너도 수습 좀 해봐."
"알았어. 고마워~"
뚝.
"하아... 대학 처음 가서 사귄 친구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제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터라 알 수 있었다.
얼마큼 연예계 생활을 지겨워했고, 얼마큼 대학 생활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그렇게 아는 사람들한테 전화를 돌렸다.
"그보다... 미래대라."
검색해보니 이번 주 금요일에 축제를 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참에 서윤이 얼굴도 볼 겸, 그 남자의 정체 좀 확인하러 가볼까?
이상한 놈이면 미리 떼어놔야지.
여차하면 경고 좀 날리고.
다짐을 하며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아, 매니저님. 이번 주 금요일 스케줄 전부 비워주세요. 네, 싹다요. 안되면 아프다고 해서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