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겸 정력 보충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왔다.
"정말 이 날씨에 산책하게요? 더워 죽을 거 같은데 저녁에 하는 건 어때요?"
"괜찮아. 그리고 여기까지 놀러 왔는데 방안에만 있는 건 좀 그렇잖니."
"그렇긴 해요."
가만히 있어봤자 침대에 누워 늘어지거나 또다시 섹스 삼매경일 테니 말이다.
나는 보기만 해도 더위가 느껴지는 태양을 노려본 뒤 한 발자국 내디뎠다.
"와아... 온도 차이가 엄청난데요?"
문을 열자마자 몸의 전면부를 화악 덮쳐오는 뜨거운 공기.
에어컨이 빵빵한 내부에서 나온 거라 그 차이는 더욱 컸다.
잠깐 멈칫 하자 누군가 등을 떠밀었다.
"이 정도로 엄살 피지마. 오빠. 9월 중후반이라 나름 버틸만 한데. "
"엄살은 무슨. 네가 나와봐라."
뒤로 돌아 핀잔을 주는 희진이를 쳐다봤다.
거만한 표정을 기대했던 거랑은 달리 얼굴에는 온갖 악세사리가 달려있었다.
"그거 언제 챙겨왔냐?"
"이건 기본이지. 여행에 왔으면 몸에서 떼면 안 되는 필수템."
"식당 가는데도 가져왔다고?"
"그때는 패션용으로 가져왔지."
"맞아맞아."
맞장구를 치는 쪽을 돌아 보자 똑같은 무장을 하고 있는 3명이 있었다.
분명 방에서 나올 때까지는 없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챙기는 거 못 봤는데.
"하나만 빌려줄 사람?"
"전 머리가 검은색이라 안 될 것 같아요. 열 흡수가 잘되거든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대신 길이가 엄청 길잖아요. 벌써 등이 뜨거워서 죽을 거 같은데, 이것마저 없으면 진짜 녹아버려요."
너무 과학적이라 뭐라 더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아영이는 패스.
"넌 금발이잖아. 상대적으로 덜 덥지 않을까?"
"오빠는 4살이나 어린 동생한테 뺏고 싶어?"
"이럴 때만 나이 들먹이지?"
"사실인 걸 어째."
얘도 패스.
"누나는 조금만 피로해도 픽 쓰러지는 나이라서 말이야."
"지금 나이의 2배는 해야 그럴 것 같은데요."
"한 살 한 살이 10년 같아서 어쩔 수가 없네."
놀리기로 작정했는지 채아 누나마저 배신을 했다.
이 흐름대로라면 혜윤이도 거절하겠지.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잡으며 눈을 마주쳤다.
혜윤이가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모자를 내밀었다.
"이거 쓰세요. 전 선크림도 잔뜩 발랐고, 땀도 잘 안 나는 체질이라 괜찮아요."
"정말?"
천사가 등장했다.
바로 머리에 쓰다듬으며 꼬옥 껴안아줬다.
"고마워."
"에이, 아니에요..."
기분 좋은 목소리를 내면서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그녀.
귀여운 모습에 등까지 토닥여주었다.
"...."
나머지 3명의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다.
아차 하는 얼굴로 혜윤이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부러움이 가득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보란 듯이 허리를 더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날도 더운데 빨리 가죠."
"맞아. 호텔 입구에서 그러면 사람들이 쳐다본다고."
"지금 상점에서 햇빛 가리개라도 사올까? 누나가 좋은 걸로 골라볼게."
바로 질투하는 모습들이 참 귀엽다.
그러게 왜 심술을 부려서.
그래도 공공장소니 5초 뒤에 몸을 뗐다.
"잘 쓸게. 고마워."
"아니에요."
"대신 이따 밤에 좋은 거 해줄게."
엉덩이를 두드려주자 혜윤이가 배시시 웃었다.
마지막 말에 눈을 번뜩이는 그녀들과 함께 산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호텔이 높은 곳에 지어져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에 도착했다.
관광객을 위한 커다란 2층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당연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예쁘다... 바다도 다 보이고..."
"경치 진짜 좋다..."
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간지럽히고.
탁 트인 광경이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었다.
잠시 넋을 놓고 있자 옆에 작은 지도가 하나 있었다.
"여기 보니까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데 가볼래요?"
"바다로 가는 거예요?"
"바다는 바다인데, 모래사장 같은 게 아니라 위에서 구경만 할 수 있는 곳이래."
"왜요?"
"돌도 날카롭고 파도도 강해서 해수욕은 못한다던데? 그냥 구경만 하라는 거지."
"그럼 해안가 따라서 걷기만 해요. 바닷바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래, 10분 후에 출발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다시 멍을 때렸다.
갑자기 누가 옆으로 쓰윽 다가왔다.
아영이였다.
"오빠, 다리 아프죠? 제가 주물러줄 테니 여기 올려봐요."
"별로 안 걸어서 안 아픈데?"
"에이, 그러지 말고."
억지로 다리를 빼앗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리는 그녀.
두 손을 쫘악 피더니 종아리부터 열심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시원하죠?"
"좀 더 세게 하면 좋겠는데."
"알았어요."
요구 사항에 맞춰 바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등 뒤에 물컹한 살덩어리가 닿았다.
"누나가 어깨 마사지 해줄게. 평소에 많이 해준 보답이야."
"그래요?"
아닌 것 같은데.
일부러 상체를 내밀고는 슬며시 비비는 걸 보면 뭘 원하는지 명확하게 보였다.
모른 척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희진이의 목소리가 오른쪽에 들렸다.
"아까 할 때 계속 손가락 사용하던데 아프지 않아?"
"좀 관절이 쑤시긴 하네."
"밤에는 더 많이 쓸 테니 미리 찜질해줄게."
이런저런 핑계를 들며 내 손을 만지기 시작한 그녀.
예상은 했지만 제대로 찜질을 하지 않았다.
슬쩍 깍지를 끼고 손을 잡으며 나랑 손장난 하기 바빴다.
그래봤자 상을 주는 건 이미 정해져 있는데 말이다.
나는 10분이 지난 걸 확인한 뒤 천천히 그녀들의 손길을 뿌리쳤다.
"덕분에 시원해졌어요. 이제 슬슬 내려가 봐요."
길을 따라 가자 산 중턱 쯤에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산책로가 있었다.
중간중간 쉼터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소도 있는 잘 만든 길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찰팍찰팍.
푸른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세기도, 빈도도 상당했기에 왜 못 내려가게 막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파도가 세네요."
"그러게... 발이라도 담그고 싶었는데 아쉽네."
"어차피 방 안에 수영장이랑 온천 있으니 거기서 놀아요."
"으음... 그래. 어쩔 수 없지."
바다가 눈앞에 있는데 들어가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만큼의 시설이 호텔 내에 있으니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났다.
긴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아 오니 어느새 태양의 색깔이 바뀌어 있었다.
마지막 쉼터로 아까 쉬었던 정자에 주저앉았다.
"산책 좀 하니까 머리가 맑아진 것 같다."
"그러게요. 은근 땀도 나서 기분도 좋고요."
"난 다리 아픈데..."
저마다 한 마디씩 벌러덩 눕는 그녀들.
나는 딸기, 복숭아, 포도, 레몬의 다양한 땀 냄새를 맡으며 눈을 감았다.
"진짜 잘 때는 이리도 얌전하고 귀여운데... 밤만 되면 짐승이 되는 게 참 신기하긴 해."
"그게 더 꼴리지 않아요? 평소엔 가만히 있다가 섹스만 하면 돌변하는 매력."
"맞아요. 아까처럼 막 껴안아 주면서 머리 쓰다듬는 것도 좋은데, 할 때는 제대로 하는 거. 너무 좋아요."
"평소에도 계속 야한 얼굴로 쳐다보던데..."
두런두런 얘기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잠깐 잠에 들었었나.
눈을 뜨자 3명이 원형으로 둘러싼 채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제일 먼저 눈치 챈 아영이가 이마에 손바닥을 올렸다.
"일어났어요?"
"왜 자는데 뒷담 까."
"에이, 그런 거 안 했어요. 계속 칭찬만 했는데."
"밤만 되면 짐승이 된다고 하던데."
"그건 칭찬이죠. 그리고 아침에도 낮에도 짐승이면서 무슨..."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없는 한 명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근데 희진이는?"
"오빠가 딱 잠들었을 때 같이 자던데요? 많이 피곤했나 봐요."
"그럴만하지."
아까 3번이나 가버리고 10km 넘게 걸었으니 멀쩡할 리가 있나.
이 저질 체력이.
나는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희진이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제 가자. 그만 일어나."
"으응...?"
"가서 저녁 먹고 쉬자."
"나 힘들어."
"업어줄까?"
"응."
기다렸다는 듯 팔을 뻗는 그녀.
동시에 일어나고 있던 3명이 와르르 무너졌다.
"...."
"...."
"두고 갈 거예요."
"장난이었지~"
무안하게 웃는 그녀들과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다들 발코니에 붙어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 온천이나 할래요?"
"지금?"
"땀도 쫙 뺐으니 여기서 나른하게 쉬는 거죠."
"저녁은 안 먹어?"
"어차피 밤늦게까지 하는데 조금만 하다 가요."
내심 하고 싶었는지 채아 누나가 먼저 창문을 열었다.
보글보글 공기가 올라오는 물에 발을 담그더니 획 돌아봤다.
"근데 여기 밖에서 보이지 않을까?"
"매직 미러라 안 보인데요."
"다행이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녀는 걸치고 있던 겉옷을 사르르 벗었다.
스타트를 끊자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옷을 벗기 시작했다.
"빨리 들어와요."
"물 따뜻해요."
"와서 얼른 몸 담가봐. 진짜 좋다."
"빨리 벗고 와."
태어날 때의 그대로의 모습을 한 4명이 손짓을 했다.
유혹하는 얼굴로, 딱 가운데 자리를 비어둔 채.
그것도 저무는 해를 배경으로 저러고 있으니 감히 내가 들어가도 될까 의심이 들었다.
생각과는 별개로 내 손은 이미 팬티를 내리고 있었다.
"바로 갈게."
*
"음... 슬슬 저녁인데 시킬까? 근데 무슨 치킨을 시키지?"
흘끗흘끗 계속 시간이 가기만을 바라며 시계를 보던 박서윤.
오후 6시라는 숫자를 보자마자 배달앱을 켰다.
"일단 여긴 찜해두고... 이거 평점이 좋네... 이것도 맛있다고 했었고..."
열심히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다 손가락을 딱 멈췄다.
결정했는지 주문하기를 눌렀다.
"됐다! 맥주는 아까 사놔서 냉장고에 시원하게 하는 중이고... 남은 건."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화장실을 바라봤다.
큰 결심을 한 얼굴로, 천천히 옷을 벗고 들어갔다.
'드디어... 그걸 할 수도 있으니 깨끗하게 구석구석 씻어야지.'
쾅.
샤워기는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