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가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 센스 넘치는 각 잡힌 베레모와 섹시함을 증폭시켜 주는 목의 초크.
편의점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오프숄더와 전체적으로 잘 어울리는 작은 핸드백.
거기에 성격을 나타내듯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게 참 희진이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아래 어딜 봐도 완벽한 모습.
터벅터벅...
한 10걸음 정도 남았을 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와 딱 눈이 마주쳤다.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매섭던 눈매가 사르르 풀리며 빨대를 물고 있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동시에 뒤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 씨발 방금 웃는 거 봤냐?"
"나 저렇게 예쁜 여자 태어나서 처음 본다... 개미쳤다.."
"저런 여자는 도대체 누가 만나는 거냐?"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몇 개월간 얼굴을 마주치고 수 없이 섹스를 했던 나도 이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떠겠는가.
거의 핵폭탄을 맞은 듯한 충격일 것이다.
어디 한 번 표정들 좀 볼까?
뒤를 돌자 아까의 나처럼 입을 떡 벌린 사람이며, 넋을 놓고 있는 사람이며, 애인한테 팔꿈치로 찔리고 있는 사람이며.
참 다양했지만 공통점은 한희진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기분 좋네.'
만약 내가 희진이랑 말을 하고 허리에 손을 감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보겠지?
잠깐 옷매무새를 다듬고 나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자신 있게 걸어가 그녀의 앞에 딱 섰다.
"미안, 오래 기다렸어?"
"괜찮아. 내가 늦게 연락한 잘못인데 뭘."
평소보다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한 그녀.
그러면서 옆머리를 슬쩍 넘기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방금까지 그렇게 냉랭하게 있었으면서 날 보자마자 이렇게 수줍은 모습을 보이다니.
"오늘 옷 예쁘다."
"그냥 아무거나 걸치고 온 건데."
"아무거나 입었는데도 예뻐."
"그냥 한 말인 거 다 알아."
"진짠데."
계속 칭찬을 잇자 한희진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귀엽게 슬쩍 눈을 올리더니 되물었다.
"진짜?"
"진짜로. 편의점에서랑은 완전 딴판이야."
"거기에선 별로였다는 뜻이네. 그럴 줄 알았다."
툭 쏘아냈지만 실실 올라가는 입가와 실룩대는 볼까지 숨길 순 없었다.
역시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거기다 각 잡힌 베레모를 보면 새로 산 것 같은데 아무거나 입긴 무슨.'
나는 그녀의 옷차림을 다시 한번 훑어보며 은근슬쩍 옆으로 붙었다.
자연스럽게 팔이 닿게 하며 본론을 꺼냈다.
"그보다 무슨 일이야? 오늘 편의점에 출근 안 해도 된다니?"
"음... 일단 사람 없는 곳으로 가자. 여긴 너무 보는 눈이 많아."
한희진이 불만스런 얼굴로 주위를 휙휙 보더니 갑자기 팔짱을 끼웠다.
물컹한 감촉도 감촉이지만 상당히 적극적인 태도에 더욱 놀랐다.
그렇게 그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자 주변에서 야유 아닌 야유가 쏟아졌다.
"아....씨발 저 새끼 꼬추 3cm 였으면 좋겠다."
"제발 발기부전."
참 살벌한 저주지만 아쉽게도 그 중에 해당되는 건 하나도 없다.
앞으로 그럴 일도 없고.
나는 부러움과 시기를 한몸에 받으며 유유히 빠져나왔다.
"후우... 됐다."
한산한 거리에 들어서자 한희진이 드디어 멈춰섰다.
팔짱을 풀지 않은 채 경계의 눈빛을 쏘아내더니 드디어 표정을 풀었다.
"거긴 불여시들이 하도 쳐다보니 불편했었는데 여긴 좀 그나마 낫네."
"불여시라니?"
"오빠 등장하니까 여자들이 대놓고 쳐다보던데? 눈이나 깔지. 급도 안 되는 것들이 어디서 확 그냥."
쯧 하고 혀를 찬 그녀.
하지만 내겐 방금 말한 문장이 더 신경 쓰였다.
"사람들이 날 왜 쳐다봐. 널 본 거겠지."
"...됐어. 오빠는 모르겠지. 그냥 모르는 채로 있어. 그딴 년들한테 눈길도 주지 말고."
한희진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으며 탁탁 발을 굴렸다.
아까의 상황을 되짚어보는 듯 침묵을 유지했다.
'질투하는 건가? 이거 참 오늘 새로운 모습 많이 보네.'
마치 내 건데 어딜 넘보냐는 듯한 귀여운 행동에 머리카락을 살포시 쓸어주었다.
"애초에 여기서 희진이보다 예쁜 여자는 없잖아. 그런 걱정을 왜 해."
"흥, 또 입 발린 소리."
"진짜라니까? 좀 믿어라."
몇 번이고 반복하고 나서야 마음이 풀렸는지 그제야 미소를 짓는 한희진.
본론을 꺼내봤다.
"그래서, 오늘 여기로 온 이유는 뭐야? 땡땡이 치는 것 같은데 나 시급은 제대로 나오는 거 맞지?"
"걱정마. 이미 언니랑 협의된 사항이니까."
"그게 대체 뭔데."
"나랑 즐겁게 놀아주는 것. 간단하지?"
왠지 그럴 것 같더라.
저렇게 꾸미고 온 것도 그렇고, 협의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걸 보니 데이트할 시간을 따로 만든 것 같은데.
눈치를 보아하니 내일은 채아 누나랑 이러고 있을 듯하다.
"그러니까 데이트하자는 거지?"
"그...그런... 셈이지."
직접적으로 언급하자 한희진이 무안한 듯 고개를 휙 돌렸다.
떨쳐내기 위함인지 괜히 옷 이곳저곳을 툭툭 털어내며 정리를 했다.
"이번 주에 놀러 가면 둘이 있을 시간도 별로 없으니까 이럴 때 짬 내는 거지. 왜. 싫어?"
"내가 여행에 가는 건 기본 전제였구나."
"어차피 오빠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갈 거잖아."
"그건 맞지."
동시에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한층 부드러워진 분위기가 되자 팔을 벌려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래서 따로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생각해보면 우리 제대로 데이트 해본 적은 없잖아."
예전에 희진이랑 같이 놀이 공원에 가긴 했지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즐기지도 못했다.
덕분에 현실에서 처음으로 이어지긴 했어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나 영화 보고 싶어."
"영화? 어떤 거?"
"사실 20분 뒤에 예매해뒀는데 괜찮지? 이게 미리 예약 안 하면 자리 없을까봐 내가 보고 싶은 거 해버렸어. 미안."
"난 장르 안 가려서 괜찮아. 보고 싶은 걸로 봐."
안심이 됐는지 그녀는 기분 좋은 목소리를 내며 똑같이 나를 껴안았다.
동시에 은은한 향이 코를 찔렀다.
'향수까지 뿌렸구나. '
완전히 밀착하자 더욱 진해지는 농도.
정말 첫 데이트를 위해 제대로 준비했다는 게 절실히 느껴졌다.
오늘은 기억에 남도록 잘해줘야겠다.
다시 몸을 떼며 작고 부드러운 손을 잡았다.
깍지를 끼고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후, 눈앞에 아주 황당한 광경이 펼쳐졌다.
"...자리 없다며. 아주 텅텅 비었는데?"
"그...그러게에...? 왜 이러지? 다들 취소했나?"
"옆쪽인데 잘못 들어온 건 아니지?"
몇 번이나 표를 확인했지만 여기가 맞았다.
이상함에 째릿하고 한희진을 노려봤지만 그녀는 딴청을 피우며 모른 척을 했다.
'일부러 그랬네. 왠지 영화 제목부터 이상하다 싶었더니.'
꽉 찰까 봐 미리 예약을 했다고 한 말과는 달리 상영관 내부는 아주 고요했다.
앞자리나 중간쯤에나 몇몇 사람들이 있을 뿐, 전체적으로 보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어쩔 수 있나.
목적이 있으니까 이런 걸 예약했겠지.
"일단 앉자. 맨...뒷자리였지."
"응."
팝콘과 콜라를 들고 신나게 걸어가는 한희진.
그렇게 좌석에 앉자 곧 광고와 함께 영화가 시작되었다.
콰콰과광...!
시작은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등장한 외계인이었다.
그러더니 도시와 인간들을 마구 때려잡으며 초토화를 시켜버렸다.
'전형적인 외계 침공 영화네.'
아주 흔하지만 흥미가 돋는 소재에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점점 어이없는 헛웃음만 튀어나왔다.
cg가 조잡해서 몰입을 깨트리는 것도 한몫 했지만 무엇보다 스토리가 산으로 가다 못해 우주로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
혹시 희진이는 이런 병맛을 좋아하는 걸까?
곁눈질로 옆을 봤다.
"진짜 좆같이도 만들었다... 제작비로 매일 소고기 처먹었나."
나랑 별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대로는 시간 낭비인 것 같은데 어쩌지.
나가서 다른 걸 하자고 말하려고 할 때 딱 눈이 마주쳤다.
같은 기분이었는지 머쓱한 웃음을 지은 그녀.
갑자기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찌익.
"뭐하냐."
"영화 재미없으니 이거나 하자."
"애초에 이게 목적이었구만."
"그런 로망 하나쯤은 있잖아. 어두운 영화관에서 야한 짓하기."
하고 싶다는데 어쩌겠나.
물론 나도 하고 싶기도 하니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허락으로 받아들였는지 다시 한희진이 손을 움직였다.
능숙하게 자지를 밖으로 꺼내더니 아직 물렁한 것을 주물럭거렸다.
커플석이라 중간의 경계는 없었다.
게다가 사람도 없는 터라 그녀는 아무런 제약 없이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오빠도 벌써 커진 거 보니까 사실은 하고 싶었나 보네?"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뜨거운 숨결과 목소리의 톤으로 그녀도 흥분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헤읍...응...쪼옥...쪽..."
발기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기둥을 핥고 있다.
까슬까슬한 혀가 뒷힘줄을 따라 기어 올라오고, 다시 뿌리까지 내려가며 골고루 침을 묻혀댔다.
마치 자신의 영역이라 표시하는 것처럼 그녀는 한참을 고개를 왔다 갔다 했다.
평소보다 훨씬 길고 끈적한 움직임에 신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좋아?"
"엄청 좋아."
"내가 더 좋은 거 해줄게."
신났는지 배시시 웃으며 완전히 내 허벅지에 누운 그녀.
크게 숨을 들이키고서는 그대로 입을 크게 벌렸다.
"하응...응...쭈웁...쭙..."
초반부터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흡입력에 영화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거센 펠라를 받고 있자 갑자기 저멀리 앞쪽에서 사람이 한 명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는 건가?'
일단은 고개를 바싹 들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영화를 뚫어져라 보며 그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뚜벅뚜벅...
이제 5초 뒤면 뒤에 있는 출구로 빠져나갈 것이다.
나는 불청객 가까워질수록 한희진의 머리를 눌러 최대한 모습이 보이지 않게 했다.
그녀도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얌전히 혀를 움직이며 가만히 있었다.
'이제 지나간...'
콰과과광!
그때, 스크린에서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섬광을 뿜어냈다.
덕분에 어두웠던 내부가 밝게 빛났고,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마저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
"...."
모자와 마스크로 꽁꽁 싸맸지만 매우 익숙한 얼굴이었다.
저 맑은 눈도 눈이지만 특히나 저 머리카락.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어어어...?"
나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걸 느끼며 조용히 가라는 손짓을 했다.
왜 여기서 영화를 보고 있는지 모를 박서윤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