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선 연결 오나홀로 따먹기-349화 (349/615)

"여기로 가자. 아까  예약해놨어."

"오... 신경 좀 쓴 티가 나는데? 웬일이야?"

"연예인을 아무 데나 데려갈 수는 없으니까."

주변에서 나름 유명한 레스토랑의 간판을 보자 박서윤의 입꼬리가 높이 올라갔다.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며 어깨를 툭툭 쳤다.

"난 또 김밥지옥 같은 곳에 데려갈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이야."

"그럼 거기로 갈까? 여기서 1분도 안 걸리는데."

"빨리 들어가자. 나 배고파."

조금이라도 꾸물거리다간 진짜로 갈 것 같았는지 박서윤이 휙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피식 웃으며 뒤따라갔다.

그렇게 종업원의 안내를 따라 2인용 방에 착석을 했다.

박서윤이 메뉴판을 쓰윽 훑어보더니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난 A세트. 이게 제일 맛있어 보이네."

"너 점심 굶었다며? 더 양 많은 거 시켜도 돼."

"됐어. 그러다 살 쪄."

다른 것도 많았지만 내 지갑 사정을 고려해서인지 그나마 저렴한 걸 고른 박서윤.

배려심 넘치는 모습에 괜히 미안해졌다.

정말 더 비싼 거 골라도 되는데.

이왕 먹는 거 더 맛있는 거 먹지.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빙긋 웃으며 점원을 불렀다.

그렇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저녁을 해치웠다.

"배부르다...맛집 고르는 눈 좀 있나봐? 내 혀를 만족시키는 곳은 별로 없는데."

"내가 좀 능력자긴 해."

"하여간 칭찬을 해주면 안 된다니까. 바로 우쭐해져서는, 으... 표정 재수 없어."

한 발자국 멀어진 그녀.

장난이었는지 이내 다시 붙으며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디저트는 내가 살게. 아이스크림으로 괜찮지?"

"좋지."

"그럼 소화도 시킬 겸 저기서 먹고 가자."

비싼 가게를 향해 먼저 앞서가는 그녀.

가벼운 발걸음을 보니 꽤나 신난 듯하다.

'이렇게 보면 데이트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은 같이 있었다 해도 헬스장이나 편의점 정도가 다였는데 저녁도 비싼 걸로 먹으면서 단 둘이 있다니.

괜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얘가 좀 이상하긴 해도 예쁘긴 존나 예쁘기도 하고, 남들은 털끝 하나 못잡아볼 연예인이니까.

"이거랑...저거랑...아! 이것도 넣어주세요."

"네에~"

자주 먹는 맛이 있는지 그녀는 능숙하게 손가락으로 냉동고 속을 가리켰다.

좋아하는 걸 다 시켰는지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근데 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말만 해."

"난 초코만 들어가 있으면 괜찮아. 지금 이대로 시켜도 되고."

"진짜 입맛 단순하네."

"까탈스럽지 않은 거라 해줘."

작게 콧웃음을 친 그녀는 초코가 들어가 있는 것을 몇 개 더 주문했다.

행동은 저래도 참 착하긴 착하다.

"여기에 앉자."

커다란 통이 꽉 차도록 한가득 담아 테이블로 가져왔다.

앉자마자 박서윤이 초록색 아이스크림을 듬뿍 푸더니 입안으로 넣었다.

"으음~ 맛있다. 역시 이건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린다니까."

"그건 무슨 맛인데?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겠지?"

"네가 생각하는 게 뭔데?"

"알잖아."

먹으라면 먹을 수는 있지만 굳이 찾아서 먹지는 않는 맛.

민트 초코랑 매우 비슷한 색깔을 가진 아이스크림을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 보자 그녀도 똑같이 행동했다.

"멜론맛이니까 그렇게 좀 쳐다보지 마라."

"다행이다. 순간 테이블 엎을 뻔했잖아."

"...야, 너 혹시 김서정 알아?"

"알지."

박서윤 못지않게 예쁘다고 소문난 아이돌인데 모를 리 없다.

거기에 얘랑 같은 그룹 멤버이기도 하니 더더욱.

"걔는 민트초코 엄청 좋아해."

갑자기 튀어나온 폭탄 발언.

환상이 와르르 깨져버렸다.

"정말 끼리끼리 잘 노네."

"그거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의 뜻이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박서윤이 내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그리고는 또다시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가득 퍼 입안에 넣었다.

이번에도 초록색이었다.

'과일 중에 멜론을 가장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이스크림에서까지 먹을 정도일 줄은 몰랐네.'

덕분에 네 보짓물이 맛있어졌다.

고마워.

말 못할 비밀을 속으로 되새기고 있자 갑자기 머릿속에 무언가 울렸다.

위잉위잉위잉!

3번의 사이렌 소리.

동시에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며 관음 모드가 자동으로 켜졌다.

갑작스러운 상황 발생에 당황스러웠지만 바로 침착하게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일단 관음 모드부터.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잖아? 이게 왜?'

마냥 행복한 얼굴로 오물오물 씹고 있는 박서윤을 보면 나한테만 들린 소리인 것 같은데.

이번엔 핸드폰을 확인하자 짧은 메세지가 도착해 있었다.

[박서윤 님에게 위기가 감지되었습니다. 서둘러 확인해 주세요.]

위기?

이번에 업데이트된 알람 기능인 것 같은데.

'뭐 지진이라도 나나? 아니면 배탈이라도 나서 병원행?'

혹시 몰라 아바타를 하나 꺼내 주위를 경계하자 무언가를 눈에 띄었다.

검은 후드티를 입고 있는 익숙한 체형의 남자.

저 멀리서 우리를 노려 보고 있었다.

'저거... 어젯밤에 마주쳤던 사람 아니야? 집 주변에서 수상하게 얼쩡거리더니 여기에도...'

우연도 3번이 겹치면 필연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봐도 박서윤의 스토커가 확실하다.

집까지 쫓아온 꼬라지를 보면 이미 주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우리 동선까지 따라온 거면 상당히 위험하다.

애초에 평범한 팬이었다면 어플이 경고장을 날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할까?'

고개를 저었다.

이미지 관리를 위해 좋은 말로 돌려보낼 수도 있으니 별로 효과는 없어 보였다.

'일단... 지켜보자.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아야지.'

아바타가 있으니 위험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호위 무사처럼 주변을 경계하고 있자 박서윤이 입에 있던 걸 꿀꺽 삼키며 물었다.

"넌 왜 안 먹어? 배불러?"

"이빨이 시려서 말이야."

"...진짜 가끔 보면 나랑 동갑이 맞는지 의심이 가. 나빠지기 전에 빨리 병원이나 가라."

"시간 날 때 갈게."

"으음..."

숟가락을 입에 물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카운터로 갔다.

"이거 포장해주세요."

"네에."

드라이 아이스가 든 팩을 받고 나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고 하늘은 어두웠다.

"갈까?"

"그래."

아침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지 긴장하고 있는 투가 역력했다.

하지만 떠오른 홍조를 보면 기대하고 있는 것도 분명했다.

뚜벅뚜벅뚜벅...

말없이 조용히 이동을 하면서 아바타의 시야로 계속 뒤를 살폈다.

여전히 스토커도 쫓아오고 있었다.

일단 증거를 잡아야지.

나는 능청스럽게 주머니를 뒤지며 연기를 시작했다.

"나 식당에 뭐 두고 온 거 같은데 갔다 올게. 먼저 들어가 있어."

"같이 가줄게."

"아니야, 집까지 거의 다 왔는데 먼저 쉬고 있어."

"...잊지 말고 와. 안 오면 초인종 무한으로 누를 거야."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식당 쪽으로 뛰었다.

스토커를 지나 몰래 구석에 숨자 그의 행동이 달라졌다.

산책하듯 천천히 움직이던 몸체의 속도가 점점 높아졌다.

이젠 전력으로 달리기까지 했다.

나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다시 돌아갔다.

"저...저기요! 저기요!"

아니나 다를까 남자가 박서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자기한테 한 말인 줄 모르고 계속 걷던 그녀였지만 계속된 고함에 뒤를 돌아봤다.

"네? 저요?"

"네! 그... 박서윤 맞죠? 아이돌 박서윤!"

"읏... 맞는데 무슨 일이시죠?"

헉헉대며 무릎에 손을 올려놓은 남자에게 경계의 눈빛을 쏘아내는 박서윤.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물러섰다.

"오래전부터..허억! 팬이었는데 사진 좀... 같이 찍어주세요! 싸인도 여기다 해주시면 감사하고...! 허억...허억..."

하얀 옷과 네임팬을 꺼내더니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숨이 차는지 계속 헉헉대며 박서윤에게 다가왔다.

"자..잠깐만요. 지금은 제가 피곤해서 그러니 내일 학교에서..."

"안돼요! 제가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이제야..."

"많이 늦기도 했고... 사진도 잘 안 찍힐 거예요. 밝을 때 찍어요."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는지 침착하게 달래는 그녀.

하지만 막무가내로 옆으로 다가온 남자 때문에 결국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이쯤이면 됐다.

재빨리 뛰어가 박서윤의 옆에 섰다.

"본인이 싫다는데 밤늦게 이런 곳에서 뭐하시는 거예요."

"너...너는 아까...!"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삿대질을 했다.

하지만 무서운 내 얼굴과 근육을 보더니 얌전히 꼬리를 말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도망쳤다.

"하아... 무서웠어."

"괜찮아?"

"덕분에 살았어."

등 뒤에 숨어있던 박서윤이 크게 한숨을 쉬며 나왔다.

아직도 진정이 안 되는지 이마를 짚으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저런 사람 자주 있냐?"

"극성팬은 가끔 있지. 안 된다고 해도 억지로 다가와서 이곳저곳 만지고 그래서 엄청 기분 나쁜데, 옛날에는 보디가드들이 바로 막아줬거든."

"지금은 일반인이라 힘들겠네."

"그렇지... 고마워. 진짜 고마워."

지금 바로 움직이긴 힘들 것 같으니 잠시 그대로 놔두었다.

그리고 나도 할 일이 있지.

스토커를 스토킹하고 있던 내 아바타.

체력이 딸리는지 머지 않은 곳에서 쉬고 있던 그의 뒷통수를 세게 가격했다.

"끄헉!"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보일 리가 있겠는가.

2번 더 때려준 뒤 회수했다.

복수를 끝내자 박서윤의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와 있었다.

손을 내밀었다.

"이제 갈까?"

"응."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는 그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에 도착하자 박서윤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 아침에 네가 말한 거 안 까먹었지?"

"뭘?"

"1억 대신 내가 해달라고 하는 거 해주기."

"그거 가슴 보여줘야 성립하는 거 아니었냐?"

그녀는 대답 대신 자신의 방 비밀번호를 눌렀다.

끼익.

박서윤 특유의 향이 화악 풍겨왔다.

그녀는 문을 닫지 않은 채 신발을 벗더니 슬쩍 뒤를 돌아봤다.

"벌레 들어오니까 빨리 문 닫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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