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라면 바로 전화를 걸었겠지만 지금은 신중할 때다.
희진이와 알몸 영상 통화를 해서가 아닌 건강 지킴이 때문이다.
'아마 진심으로 부딪쳐라 이런 말을 해서 밤늦게라도 전화를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설마 당일날 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1시간 뒤에 말이다.
일단 말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 그녀와 대화했던 걸 복기하기 시작했다.
박우진으로서 알고 있는 내용과 건강 지킴이로 알고 있는 내용.
겹치면 안되니 말이다.
뚜르르르...
"여보세요."
"누나, 혹시 전화했어요?"
"으응... 그냥 일과도 끝났으니 우진이 목소리 좀 들을까 해서~"
"잠깐 딴 것 좀 하느라 늦게 봤어요. 미안해요."
"아니야. 이렇게 늦게 전화한 내가 잘못이지."
최대한 밝게 말했지만 목소리의 톤이나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그 속에 어두움이 숨어 있다는 것을.
혹시 다른 걱정이 있나 싶었지만 채아 누나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렇게 별 다른 일 없이 시시콜콜한 일상 애기를 이어갔다.
"오늘 우진이 없으니까 엄청 심심하더라."
"하루 9시간씩 같은 곳에서 계산만 반복하면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근무 시간을 줄여볼까 생각 중이긴 한데... 아니면 우진이가 매일 출근할래?"
"네?"
이게 본론이었나?
"저 학교도 다니는데 알바까지 매일 하면 진짜 죽어요."
"장난이야. 장난. 누나도 알지."
그녀는 잠깐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분위기를 변화시켰다.
뭔가 진지한 얘기가 나올 것 같았다.
"그보다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우진이 혹시 다른 곳에서 알바 하니?"
"...네? 다른 알바라뇨?"
"말 그대로의 뜻이야. 혹시나 돈이 부족해서 다른 곳에서 알바를 하나 싶어서."
저 말이 왜 나오는 걸까?
내가 편의점을 떠날까봐 불안해서 그러는 건가?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켜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에둘러 말하면서 정보를 캐야겠다.
"누나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 말고는 없어요."
"정말이지? 뭐 단기 알바나 이런 것도?"
"네. 아예요."
"그럼 진짜 마지막인데... 편의점 오기 전에 가장 최근에 했던 일은 뭐야?"
"군대 전역 후에 누나 편의점이 처음이에요."
내 확답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본론을 꺼냈다.
"별 다른 건 아니고, 요즘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물어봤어. 혹시나 곧 편의점을 그만두지는 않을까 해서."
"여기만큼 좋은 곳이 어딨다고 제가 그만둬요."
"그치? 누나가 이번엔 정말로 시급 올려줄 테니까 한눈팔지 마."
"그 말 벌써 3번째인 거 알아요?"
"잘 모르겠는데?"
크게 웃으며 아까의 불안한 태도를 전부 날려버린 그녀.
다시 밝아진 걸 보니 별 것 아니었나 보다.
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며 편하게 침대에 누웠다.
"그보다 누나는 뭐하고 있었어요?"
"씻고 이것저것 하다가 자기 전에 우진이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한 게 끝이야."
"그럼 오늘 일하는 중에 별 다른 건 없었죠?"
"응. 없었어. 아! 특별한 일은 있었어."
"뭔데요?"
그녀는 정말 신기한 것을 겪은 어린아이처럼 즐겁게 말을 꺼냈다.
"박서윤 알지? 저번에 소개해줬던 연예인."
"...걔가 뭔 짓 했어요?"
어째 저 이름은 들기만 해도 불안하다.
과연 어떤 짓을 했을지, 한 글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활짝 열었다.
"한창 집중 판매 끝나고 한가한 시간에 모자와 마스크 낀 여자가 들어오는 거 아니겠니? 숨긴다고 숨긴 거겠지만 머리카락 색으로 다 알 수 있어서 바로 알아봤지."
"많이 특이하긴 하죠. 아마 본인만 모를 걸요?"
모자와 마스크를 끼는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게다가 미래대에 다닌다고 소문이 쫙 퍼졌으니 비슷한 인물 또한 없었다.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몇 개 꺼내오더니 고생한다며 나에게 하나 주는 거야.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까 갑자기 칭찬을 늘어놓더라?"
"칭찬을요?"
"응. 이렇게 큰 데를 운영하시는데 힘들지 않냐, 대단하시다, 너무 예쁘신데 이상한 사람은 안 꼬이냐 등등. 정말 듣는 내가 얼굴이 다 화끈해질 정도로 너무 그렇더라."
목소리에 들뜸이 가득한 걸 보니 기분은 좋았나 보다.
그보다 벌써부터 채아 누나한테까지 호감작을 하다니.
생각보다 빠른 속도다.
그래봤자 원하는 정보는 안 나올 텐데.
"뭐 다른 말은 없었어요?"
"음... 우진이 너 열심히 일하냐고 물어보더라. 잘 보면 구석에서 농땡이 피우고 있을 테니 잘 감시하라고도 했어."
역시 내 뒷담도 까먹지 않는구만.
그 정도야 평소 하던 짓에 비하면 애교나 다름없으니 그냥 넘어가주자.
"그래도 마침 심심했는데 연예인이 말도 걸어주고 칭찬도 해줘서 엄청 기분은 좋았어."
"좋았다면 다행이네요. 혹시 행패 부리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설마 유명인이 그러겠어~"
서로 한참을 웃고 나자 다시 조용해졌다.
슬슬 끊을 타이밍을 느꼈는지 한채아가 목을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누나는 이만 쉬러 가볼게. 밤늦게 말동무 해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누나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부담 없이 전화 해요."
"으응. 고마워."
쪽 하고 뽀뽀 소리와 함께 끊어졌다.
괜스레 볼을 문지르며 나도 잘 준비를 했다.
*
"일단 다른 알바는 아니라는 거네..."
펜션에 간 건 방학이었으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한채아는 전화를 끊자마자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av촬영을 했다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그렇게 예쁜 애들이 왜? 어째서?
나온 결론은 총 2가지였다.
남이 봐주는 걸 즐긴다거나 돈이거나.
'요즘은 연인과의 섹스 영상을 파는 게 짭짤하다 해서 슬쩍 떠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우진이의 반응을 봤는데 진짜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증거가 있는 이상 그냥 넘어갈 순 없다.
그녀는 복잡해진 머리를 벅벅 긁으며 에어컨 앞에 섰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생각을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역추적을 해보자. 일단은 저거. 저게 제일 문제야.'
한채아는 침대에 얌전히 놓여있는 vr기기에 다가갔다.
장갑을 끼면 영상의 물체를 직접 만질 수도 있는 초월적인 물건.
저걸 사용하고 나서부터 건강지킴이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저걸 쓰는 걸 신호로 등장하기도 했고.
누가 봐도 저 모든 것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문제는 우진이가 껴있다는 정도.
'이게 언제 왔더라... 한 2달 됐나?'
그녀는 기억을 더듬으며 어느 날 집 앞에 배달되어 있던 택배를 떠올렸다.
분명 성인 사이트에서 랜덤 룰렛을 돌렸는데 1등으로 걸려서 왔다고 했다.
'내가 샀던 더블 로터... 그 사이트부터 뒤져봐야겠어. 가입한 곳은 거기 하나뿐이니까.'
한채아는 바로 컴퓨터를 켜 모든 항목을 눌러보기 시작했다.
룰렛 관련 이벤트가 있었는지도.
*
"하아... 오빠 또 보고 싶다. 아직 부족한데..."
한희진은 종료된 통화 화면을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며 몸을 꿈틀거렸다.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하복부가 원인이었다.
가슴으로 한 번, 보지로 한 번.
총 2번 가버렸지만 손가락으로 한 거라 만족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수요일까지 참으라고... 그나마 영상 통화를 했으니까 버티는 거지."
요즘 따라 성욕이 크게 증가한 느낌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우진 오빠랑 할 때마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기분이 좋다 보니 이젠 몸에 쾌락이 새겨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처럼 명령하는 거... 좋아.'
언제부터였을까.
복종하면서 남에게 봉사하는 게 그렇게 좋다는 걸 깨달은 게.
그녀는 뜨거운 하복부를 지그시 누르며 슬쩍 손을 내렸다.
"흐읏...하아아..."
조금만 만져도 온몸에 전기가 짜릿하고 흐르는 이 기분.
손을 떼고 싶어도 떼지지가 않는다.
특히 엉덩이를 맞거나 지배당하는 말을 들으면 더 민감해진다.
'아마... 그 새끼 때부터였지? 강제로 뭐 시키고 억지로 내 처녀 뚫고...'
억울하다.
내가 존나 예쁘고 꼴리는 건 아는데 이상한 능력으로 그 짓거리를 하다니.
그것도 타이밍이 아주 절묘해서 더 짜증난다.
우진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기 딱 두 달 전에 찾아와서는 이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빠드득.
마침 분위기 좋았는데 다 망가졌다.
그녀는 보지를 문지르던 손을 멈추고는 핸드폰을 들었다.
오랫동안 들어가지 않았던 계정에 접속했다.
'그 새끼가 안 오면 나야 좋긴 한데... 언제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고, 하필이면 그때 찍은 영상도 트위따에 업로드 되어 있어서...'
코스프레 하면서 거실에서 딜도 자위 하기, 첫 경험 영상, 화장실에서의 알몸 사진 등등.
변태 중에서도 초변태들이 할만한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물론 전부 삭제하고 계정을 폭파하면 되지만 그러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갑자기 왜 삭제했냐고 찾아오면 시즌2 시작이잖아? 이번만큼은 절대 싫어.'
주먹을 꽉 쥐며 다짐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다시 시작된다면 강하게 저항하기로.
"그나마 나한테 흥미를 잃은 것 같아서 다행이야."
정체를 밝히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대로 영영 바이바이해도 나쁠 건 없다.
조그마한 단서라도 있으면 당장 사설 탐정이라도 고용해 찾아내겠지만.
몸의 형태나 목소리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아, 모르겠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언젠가 오면 확 잡아버려야지.'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를 흔들었다.
일단 다시 카메라 어플에 들어가 포즈를 취했다.
오빠의 딸감으로 몸 사진 몇 개만 더 보내고 씻기로 하며 말이다.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