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화 > 302. 나름 성경험이 화려한 연예인
뭐든지 카드로 벅벅 긁을 것 같은 사람이 뭔 동전이야.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딱히 태클을 걸지 않았다.
나는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는 그녀를 노려봤다.
그냥 평범하게 인사를 해도 되는데 굳이 기둥 뒤로 숨은 이유가 뭘까?
'내가 채아 누나의 차에서 내린 걸 봐서? 바람 피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 속으로는 나와 한채아의 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새록새록 나오고 있을 게 분명하다.
편의점에서 그녀의 가방에 정액을 한가득 싼 사건도 있으니 100%다.
하지만 박서윤이 뭐라 생각하든 나한텐 아무 타격이 없다.
아무렇지 않은 척 집을 가리켰다.
"동전 찾았냐?"
"깊숙이 들어간 것 같아서 손이 안 닿아."
"내가 꺼내줄게. 비켜봐."
"아니아니아니! 귀찮으니까 그냥 가자."
화들짝 일어난 그녀의 오른손에는 비닐봉지가 하나 들려있었다.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박서윤은 입구를 벌려 내용물을 하나 꺼냈다.
"그냥 편의점에서 커피 좀 사왔어. 입이 심심해서."
절대 자신은 몰래 훔쳐본 게 아니라는 걸 어필했다.
사실인지 봉투 안에는 비슷한 모양의 플라스틱 통들이 가득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박서윤이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마셔."
"잘 마실게. 이래서 돈 많은 친구는 좋다니까."
"...다시 줘."
"장난이지 장난. 착한 친구인데 말이 헛 나온 거야."
나는 피식 웃으며 뚜껑을 땄다.
한 모금 꿀꺽 마시고 있자 박서윤이 궁금함의 눈빛을 보내며 슬쩍 본론을 꺼냈다.
"그때 봤던 점장님이랑 많이 친해 보이네? 주말에 드라이브도 같이 다녀오고 보통 사이가 아닌가봐?"
"어쩌다 만났는데 그냥 집까지 태워다 준 것뿐이야."
"그러기에는 엄청 오래 손을 흔들어주던데...?"
"네 차 태워주면 난 그거의 10배도 더 오래 흔들어줄 수 있어."
이건 진심이다. 10억을 호가하는 스포츠카를 인기 아이돌과 단둘이 탄다?
평생 술안주로 삼아도 될만한 스토리다.
"수많은 스캔들을 감당할 수 있으면 태워줄게."
"나는 상관 없는데 네가 문제 아니냐?"
"그런가?"
보통 네가 문제지.
이미 평생 먹고 살만큼 벌었으니 위기 의식 같은 게 없는 건가?
나사가 하나 빠진듯한 대답에 오히려 내가 더 무안해졌다.
커피를 한 번 더 마시자 박서윤이 지나가듯 불렀다.
"맞다, 우진아."
"왜."
"혹시 그 여자 찾는 건 어떻게 됐어?"
역시나 또 그 질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다음 주부터 제대로 할 생각인데 성격도 참 급하다.
그냥 바빠서 신경을 못 썼다고 말해도 되지만, 역시 골려주는 편이 좋겠지?
나는 저 맑은 눈빛을 어떻게 망가트릴까 생각에 잠겼다.
심각한 고민을 하는 척 인상을 찌푸리며 턱을 매만졌다.
"사실 바로 돌아다니면서 찾아보려고 했는데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
"뭐...뭔데?"
"처녀더라?"
"...응?"
"그 여자 처녀라고. 오나홀 안에 얇은 막이 안쪽을 가로막고 있더라."
대단한 이유라도 있는 줄 알고 긴장했던 박서윤은 그게 개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바로 얼굴이 파래지기 시작했다.
"그... 그게 왜?"
"내 자지를 만진 건 그냥 그렇다고 쳐줄 수 있는데, 처녀는 뭔가 좀 느낌이 다르잖아."
"당연하지! 남자는 몇 번이나 해도 티가 안 나겠지만 여자한텐 일생일대의 중요한 증거라고!"
그녀는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크게 떴다.
이어 내 미묘한 말투에 희망의 끈을 찾았는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게?"
"나를 갖고 놀은 건 혼내주긴 해야 하는데 막상 처녀를 깨면 불쌍하기도 해서 말이야."
"역시 우진이는 착하구나. 자기를 괴롭힌 사람한테까지 그런 자비를 베풀다니."
"내가 좀 착하긴 해. 배려심도 많고."
"맞아맞아, 평소에도 그래 보였어. 막 사람들한테 잘해주고 양보도 하고."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 구라를 치고 있어.
나는 무지성으로 빨아주는 박서윤을 뒤로한 채 1층으로 들어갔다.
그녀도 서둘러 뛰어오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또다시 칭찬세례를 퍼부울 것 같자 먼저 선수를 쳤다.
"나 뭐 좀 하나 물어봐도 되냐?"
"응응. 뭔데?"
"너 처녀냐?"
"...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는 박서윤.
자기가 방금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온몸을 굳히며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물론 나도 경찰서에 끌려가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녀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하기에 한 말이다.
"그냥 별다른 뜻은 없고 주변 사람부터 천천히 조사해나가게. 이런 건 철저하게 해야 하니까."
"아...아! 그렇구나아... "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그녀.
당연히 이미지를 생각하면 처녀라고 말하는 게 당연하지만, 지금 박서윤에겐 1차 수사망을 피하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애초에 직접 확인할 길도 없고, 처녀막이 없다고 하면 범인에서 제외되는 거니 말이다.
저울질을 끝냈는지 그녀는 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올렸다.
"내가 이 나이 먹고 경험 하나 없겠니? 나름 학창 시절 때부터 하루 1 고백을 받았던 사람인데."
"그래 보이긴 한다. 남자한테 인기 엄청 많았을 것 같긴 해."
"당연하지! 내가 한창 때는 엄청 잘 놀았다니까? 막 남자들이 들이대는데 거절하기도 힘들었어."
그때를 상상했는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역시 박서윤이다!' 라고 생각할만한 말이지만, 나한텐 그저 가소로워 보일 뿐이다.
'진짜 경험 하나 없는 게 뭐라는 건지 모르겠네.'
처녀막이 떡하니 있는 걸 다 아는데, 의심을 피하기 위해 경험이 많다고 어필하다니.
이게 진짜 처녀빗치인가?
생각해보면 박서윤도 나름 성경험이 화려하긴 하다.
1. 무선 연결 딜도랑 싸우면서 온몸에 정액칠하기.
2. 처녀막 안 깨지게 질내 사정당하기.
3. 옆집 남자 성 처리 담당으로 대딸 쳐주기.
4. 처녀면서 경험 많다고 거짓말 하기.
'나열하니 진짜 괴물이 따로 없네.'
하나하나가 인생 업적에 비견될 정도인데 그걸 4관왕이나 하고 앉아있다.
나보다 더한 여자가 굴러 들어왔다.
물론 원인 제공은 내가 했지만, 이런 결과를 만든 건 그녀 본인이다.
나는 어이없음이 섞인 조소를 내뱉으며 1층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부러 그녀에게 들릴 크기로 중얼거렸다.
"그럼 일단 얘는 아니고..."
바로 박서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걸 지금은 모를 것이다.
나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일단 올라가자."
"그래."
그렇게 집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자 어느새 밤 10시 직전이 되었다.
슬슬 출발하기로 했다.
*
툭툭.
"이게 대체 무슨 뜻이지?"
한희진은 핸드폰을 노려보며 괜히 엄지 손가락을 휘저었다.
한희진 : 오빠, 잘 들어갔어?
한희진 : 들킨 건 아니지?
박우진 : 반반?
한희진 : 설마 들켰어???
박우진 : 아래에서 어쩌다 마주쳤는데 어물쩍 대충 넘어가긴 했어.
그녀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대화 내용을 읽었다.
들킨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저 문장.
'애초에 들켰으면 아침에 언니가 엄청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었겠지.'
솔직히 '우진 오빠랑 내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 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신음을 크게 냈던 것도 있다.
과시라고 해야 하나?
자신이 언니보다 못한 게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기에 했던 행동이었다.
약간의 아쉬움을 삼키고 있자 손님이 왔다는 종이 울렸다.
서둘러 화면을 끄며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서... 아, 언니. 고생했어."
"후우... 본사 사람들은 참 깐깐하네. 잠깐 문 좀 닫을 수 있지.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지 모르겠어."
"그... 그러게."
지친 표정을 하고 있는 언니.
무엇을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꽤나 시달리고 온 모양이다.
"맞다, 희진아."
"응?"
혹시 우진 오빠랑 마주친 것에 대해 언급할까 심장을 졸였다.
괜히 시선을 마주치기 힘들어졌다.
빨리 손님이 들어오기를 빌었지만 다행히 흘러나온 말은 별 것 아니었다.
"언니가 일이 좀 바빠서 지금 또 나가봐야 되거든? 아마 오늘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할 것 같아."
"그 정도야 괜찮아. 일도 익숙해졌으니까."
"올 때 연락할 테니까 오늘 잘 부탁해~"
"응."
아마 깨진 것 때문에 일이 발생한 모양이다.
한희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혼자 남은 매장을 둘러봤다.
"근데 진짜 모르는 것 같네. 이거 나중에 또 불러도 되겠는데?"
*
띠링띠링.
"우리 희진이가 많이 컸네... 언니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 척도 다 하고."
한채아는 바로 눈을 가늘게 뜨며 뒤를 흘겨봤다.
뭔가 혼을 내주고 싶었지만 당장 시간이 없었기에 빠르게 주차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기서 매장까지 약 한 시간... 이것저것 고르는데도 오래 걸릴 테고, 직접 입어보기도 해야 하니까... 바쁘다 바빠."
그녀는 미리 검색해봤던 가게를 떠올렸다.
주말 낮이라 도로가 막히는 걸 생각하면 더 걸릴지도 모른다.
부우우웅...!
시동을 걸자 기분 좋은 배기음이 온몸에 울렸다.
한채아는 안전벨트를 가슴 사이에 집어넣으며 전원이 켜지기 시작한 내비게이션을 쳐다봤다.
검색 기록이 쫘르륵 떴다.
[코스프레 가게]
[성인용품 가게]
[야한 옷 파는 곳]
"메이드 코스프레? 겨우 그걸로 되겠어?"
그녀는 콧웃음을 한 번 치고는 액셀을 밟았다.
당장 오늘 밤에 무엇을 입을지 생각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