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화 > 291. 나도 언니처럼 키스해줘
화내는 포인트가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분명 자기랑 섹스를 했으면서 왜 언니까지 덮쳤냐고 뭐라 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왜 너랑은 안 해주냐고? 채아 누나는 먼저 해달라고 했었거든."
"...그럼 나는 해달라고 안 해서 안 해준 거야?"
"그 이유가 크긴 하지."
몸을 섞는 관계라고 해도 키스는 조금 의미가 특별하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일반 섹스는 쾌락을 위한 행위고, 키스는 교감을 위한 그 이상의 무언가라는 걸.
그렇게 생각하기에 나는 입술을 아껴두는 편이었다.
물론 채아 누나는 먼저 해달라고 원해왔으니 거리낌 없이 한 것도 한몫했다.
나한테 완전히 넘어왔다는 걸 알고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근데 얘는 조금 경우가 다르지.'
한희진이 마음을 어느 정도 열고 있는 건 맞다.
근데 나를 꼬시게 된 계기 자체가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는 것과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게 걸렸었다.
언니가 했으니 나도 해달라라는 단순한 질투심으로 무장한 채 말이다.
어차피 넘어오는 건 시간문제니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다가오다니.
이거 노다지가 굴러들어 왔다.
"내가 뭐 언니보다 못해서 그런 건 아니란 말이지?"
"그렇지."
"흐음..."
원하는 걸 알지만 확실하게 말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지금 당장 하자고 밀어붙여도 마지못한 척을 하며 받아들여 줄 것이다.
하지만 저 자존심 강한 한희진이 먼저 해달라고 조르는 게 먼저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나는 말수를 줄이며 담담하게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그런 나를 여전히 불만인 표정으로 쳐다보는 한희진.
괜히 발을 굴려 관심을 끌어보기도 하고, cctv를 돌려가며 한채아와의 지난밤의 밀회를 반복해서 보기도 했다.
특히나 모니터에서는 키스하면서 열정적이게 박는 장면이 계속 흘러나왔다.
계속 모르는 척을 하자 먼저 신호가 왔다.
"키스하면 기분 좋아?"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흘러가듯 질문했다.
마치 자신은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다는 말투.
점점 미끼를 물고 있다.
나는 최대한 빠져나오지 못하게 장점을 줄줄이 말하기로 했다.
애초에 단점이란 게 없지만 말이다.
"혀를 섞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엄청 좋은데 상대와 더 깊어진다는 정신적인 만족도 있으니까 2배로 좋지."
"그 정도야?"
"거기다 분위기도 절로 달아올라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쉬워지지."
"그래...?"
상상했는지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어 입술을 혀로 핥으며 뜨거운 입김을 내보내기도 했다.
무언가를 원하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지만 일부러 시선을 돌렸다.
매장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자 한희진이 내 팔뚝을 톡톡 쳤다.
"내가 해달라 하면 해줄 거야?"
"뭘?"
"...키스."
"하고 싶냐?"
"그냥 궁금해서 그래. 어떤 기분인지 어떤 느낌인지."
"나는 그런 단순한 이유로는 안 해주는데?"
저건 진심이지만 서비스를 한 번 해주기로 했다.
나는 그녀에게 점점 다가가 얼굴을 천천히 내렸다.
"자...잠깐. 왜 그렇게 부담스럽게 와!"
"점장님이랑 비슷한 경험은 하게 해줄 생각은 있는데 어때?"
살짝 떨리고 있는 턱을 잡았다.
눈을 마주쳤지만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먼저 돌렸다.
"싫어?"
"아...아니! 할 거면 빨리 해."
부끄러움을 숨기려 하는 기색이 전부 보인다.
나는 코가 닿을락 말락 할 때까지 고개를 숙였다.
한희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지 입술을 미세하게 떨었다.
그러더니 결국 눈을 감고 앞으로 살짝 내밀었다.
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며 머리를 살짝 돌렸다.
"하읏...흐으으..."
결코 혀를 넣지는 않으며 말 그대로 입술 박치기의 수준으로 부딪쳤다.
촉촉하고 말랑한 것을 가볍게 스쳐 지나가며 묻어있던 체액을 핥았다.
미약한 레몬 맛이 입안에 퍼졌다.
전부 샅샅이 빨아먹고 싶은 걸 참으며 부드럽게 움직임을 이었다.
"읏...응흣..."
소심하게 조금 튀어나와 있던 한희진의 입술이 더 앞으로 나왔다.
그걸로는 모자랐는지 먹이를 원하는 아기새처럼 까치발을 들며 나를 원해왔다.
"흐으으응...! 읏..."
입술을 완전히 덮자 그녀는 몸을 떨며 알 수 없는 신음을 냈다.
인생 처음으로 맛보는 키스의 달콤함에 빠져버린 듯했다.
나는 한희진의 허리를 살짝 잡아주며 몸을 붙였다.
가슴이 닿는 걸 느끼며 그 상태를 쭉 유지했다.
5초 정도 지났을 무렵 나는 입가를 닦으며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아..."
한희진은 숨을 오랫동안 못 쉬었던 사람처럼 깊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쉬움의 감정을 듬뿍 담긴 것을 내보내자 현실이 보인 듯했다.
고개를 푹 숙이며 입술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여전히 까치발을 세운 채 말이다.
"어때? 빠져들만하지?"
"...."
대답이 없었다.
아까의 감촉을 되새기는 듯 오물거리기를 잠시,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더 빨개진 얼굴을 들며 손 부채질을 시작했다.
"그...그냥 할만하네."
"이 정도는 키스한 것도 아니지."
"방금 했는데 무슨 소리야."
"입을 크게 벌리고는 혀를 섞으며 침을 교환하는 게 진짜 키스지."
상대의 가슴을 만지며 말이지.
이 말은 쏙 뺐다.
"그...그럼."
-띠링띠링.
무언가를 말하려던 한희진을 저지한 건 한 무리의 학생들이었다.
그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째려보더니 이내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네..."
"그래서 첫 경험의 소감은?
"아직 진짜는 하지도 않았다면서 무슨 소감이야."
괜스레 틱틱거리더니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렇게 언니처럼 진하게 하는 게 진짜라며?"
"궁금해서 하는 거면 안돼. 난 꽤 비싼 몸이거든."
"잘도 비싼 몸이겠다."
콧웃음을 치는 한희진.
저래봤자 본심을 숨기기 위한 귀여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옷에 맞게 딱 달라붙어 있는 그녀의 엉덩이를 한껏 손에 쥐었다.
탱탱하면서도 부드러운 살덩어리를 주무름에도 한희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허리를 내밀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평소의 얼굴로 돌아온 그녀는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맞다, 그리고 언니랑 몰래 섹스하던 대가를 받아야겠어."
"갑자기?"
"이래 봬도 여기 2호점의 점장은 나거든? 내 영역에서 그런 짓을 한 벌은 받아야지."
아직 채아 누나가 대부분 운영을 하던 것 같은데.
이 꼬마 사장한테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랐지만 억지로 눌렀다.
"어떤 벌인데?"
"오늘은 목요일이니 넘어가 주는데, 대신 내일 우리 집으로 와."
알바가 끝나면 11시인데 집으로 오라니.
심지어 내일 오라는 건 다음날이 주말이니 하룻밤 자고 가라는 뜻이 아닌가?
"내일?"
"알바 끝나고 언니 몰래."
"너도 몰래 하고 싶다는 거지?"
"그것도 있지만 여기같이 좁고 불편한 데보단 딴 곳이 낫잖아?"
그렇게 말하는 한희진의 눈에는 기대감으로 잔뜩 차 있었다.
불안한 느낌이 잠깐 들었지만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몰래 가는 거기도 하고, 둘은 토요일에도 출근을 하니 2시 이후에 빠져나오면 완전 범죄가 가능하기도 하니까.
"알았어."
"내가 택시비는 따로 챙겨줄 테니까 알바 끝나고 뒤따라와. 주소는 알지?"
"알았어."
그로부터 알바가 끝나는 시간 동안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다.
가끔씩 즐거운 듯이 핸드폰을 이리저리 두드리던 한희진을 빼면 말이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우진이도 고생했어."
따뜻하게 웃어주는 한채아와 한결 부드러워진 한희진의 인사를 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우진아, 우진아!"
한 10 걸음 정도 갔을까?
누군가 급하게 다가오며 나를 불렀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는 괴한.
하지만 어두운 밤임에도 밝게 빛나는 금발과 은발이 섞인 머리카락은 자신이 누구요 라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아... 그냥 기다리고 있었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응. 너 11시에 알바 끝난다고 해서 잠깐 얼굴이나 볼까 해서."
박서윤이 이리도 급하게 오는 건 딱 한 가지 일밖에 없다.
오나홀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건 아닌데, 그냥 오늘 하루는 편안하게 지냈나 걱정이 돼서 찾아왔지."
"괜찮아. 아침에 잠깐 만진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어."
"다행이다... 그럼 집이나 같이 갈까?"
"그래."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집까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와 마무리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박서윤은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우진아, 나 잠깐 궁금한 게 생겼는데 말해도 돼?"
"뭔데?"
"그 오나홀이라는 거 구경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지금?
*
아침에 정액받이가 된 경험을 한 박서윤.
두 번 다시 겪기는 싫었기에 딜도는 가방 깊숙이 봉인한 상태였다.
'내가 먼저 안 만지면 괜찮긴 하겠지만... 진짜로 괜찮은 걸까?'
오나홀을 맛본 성욕이 강한 남자애.
쓰지 말라고 말은 했지만 과연 들을지는 미지수였다.
차라리 우진이가 밖에 계속 있다면 다행이다. 사람들의 눈이 있으면 함부로 사용할 수 없으니까.
근데 위기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특히 사람의 성욕이 강해지는 야심한 밤과 혼자 있는 공간의 콜라보가 그렇다.
'나라면 호기심에서라도 써볼 거 같아. 무조건이야.'
한 발 빼고 잔다.
남자애들이 아주 흔하게 쓰는 말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불안해졌다.
안일하게 집에서 놀고 있다가는 푹 하고 자지가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
남한테 맡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직접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그녀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따라다니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오나홀을 회수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