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화 > 290. 보지는 자지를 이기지 못한다
탁.
내밀어진 손에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닿았다.
나보다 훨씬 작은 손이었지만 강한 의지가 여과 없이 전해져 왔다.
"꼭 나한테 말해야 돼? 몰래 혼자 하면 절대 안돼?"
"알았어. 뭔가 신호가 오면 바로 말할게."
"저번에 내가 번호 줬지? 나 웬만하면 전화나 문자 같은 건 다 보니까 까먹지 말고."
박서윤은 위아래로 팔을 흔들면서 2번이나 재확인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손을 떼려고 했지만 그녀는 힘을 주며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직접 대답하기 전까지는 놓아주지 않을 모양인 듯하다.
"까먹지 않을게."
"좋아."
안도의 숨을 몰아쉬는 박서윤.
처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저런 건 알고 있지만 괜히 놀리고 싶어졌다.
"근데 우리 서로 다른 수업 중이면 어떡해?"
"응?"
"아니다, 그땐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가방으로 가리고 싸면 되겠지."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말하자 얼굴이 바로 하얗게 되었다.
사실 그럴 생각까진 없지만 이렇게 경고를 했으니 어설프게 만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먼저 손대지 않는 한, 내가 오나홀을 꺼낼 일은 없으니까.
'그럼 일단 밖에서 쌀 걱정은 없어졌네.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했던가.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는 몰라도 아주 잘 만든 명언이라 생각한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강의실을 가리켰다.
"이제 슬슬 들어가자."
"그...그래."
둘이 같이 나가고 같이 들어오니 학생들의 눈빛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연예인인데 일반인이랑 이상한 짓을 했겠어? 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어서 그런 듯했다.
이런 점은 참 편하다.
아무런 의심 없이 즐길 수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편안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가끔씩 손을 가방 속에 넣으면 움찔거리는 박서윤의 귀여운 반응을 보며 말이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고생하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수업이 있는 공대로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박서윤이 내 옆에 착 달라붙어 따라오기 시작했다.
"너도 수업 있냐?"
"나도 바로 다음 수업이 있어. 마침 가는 길이 같아서 좋네."
말은 참 예쁘게 했지만 표정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희번덕 뜨며 내 행동을 하나도 놓치기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아무리 봐도 내가 몰래 오나홀을 쓰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스토킹 집착녀도 아니고 참.
공대와 음대는 붙어있는 사이라 떼어낼 수도 없었다.
터벅터벅.
그렇게 나란히 걸어가고 있자 박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진아, 내가 좋은 방법을 몇 가지 생각해봤는데 들어볼래?"
"무슨 방법?"
"오나홀은 너무 위험하니까 대신 사용할만한 걸 떠올려봤거든."
"그래?"
나는 다른 거 말고 네 보지를 사용하고 싶은데 말이지.
어차피 뭘 말하든 거절할 거지만, 성의를 봐서 들어주기로 했다.
머리를 끄덕이자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검지를 척 들었다.
"첫 번째는 콘돔이야. 어때?"
"콘돔? 실제로 보고는 나서 말하는 거냐?"
"있지! 내가 이 나이 먹도록 한 번도 안 봤을 것 같아?"
"사용해본 적은 없지?"
"...그거 여자한테 묻는 건 실례야."
그럴 줄 알았다. 그냥 자지에 씌울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 저렇게 만든 것이다.
아무래도 한 수 가르쳐 줘야 할 듯하다.
"동갑인데 이렇게나 지식이 없는 걸 보니 정말 부끄럽네. 어디 가서 내 친구라 하지 마라."
"뒤질래?"
"장난이고, 넌 콘돔을 언제 낄 거 같아? 커졌을 때? 작아졌을 때?
"당연히 클 때겠지."
"그럼 나보고 24시간 커진 상태로 있으라는 말이냐?"
아무리 정력이 증가했다 해도 그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다.
물론 섹스하고 있는 중이라면 반의 반까지는 가능하겠지만, 일상생활에서 그러고 있으라는 건 절대 불가능이다.
"갑자기 그게 왜?"
하지만 박서윤은 그 이유를 모르는지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커질 때 끼웠는데 작아지면 어쩌게? 헐렁해지면 금방 빠져서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데?"
"아... 그냥 끼우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게 아니구나..."
첫 번째 방도가 막히자 그녀는 뒤룩뒤룩 눈알을 굴렸다.
"그럼 내가 더 좋은 오나홀을 사주..."
"어머, 두 분 정말 사이가 좋네요? 잘 어울린다."
누군가 말을 끊으며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소리가 난 곳으로 눈을 돌리니 신아영이 걸어오고 있었다.
밝게 웃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나한테는 전부 보였다.
저 뒤에 불편한 기색이 있다는 것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신아영은 서둘러 내 반대쪽에 서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친함을 과시하기 위함인지 팔짱을 끼며 말이다.
그 의도를 눈치챘는지 박서윤은 손을 저으며 몸을 조금 떨어트렸다.
"저희 바로 전에 같은 수업이라 만난 거지, 별 다른 의도는 없어요."
"알죠. 알죠. 그냥 아는 얼굴이라 인사한 것 뿐이에요."
둘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아주 보기 좋은 광경이었지만 얼마 가지 못 했다.
우리 사이를 잘 알고 있는 박서윤이 몸을 반대쪽으로 튼 것.
"나중에 보자. 난 이쪽 방향이라서."
"그래. 나중에 봐."
눈치껏 빠진 박서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신아영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오빠, 벌써 저 언니도 꼬셔버린 거예요?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엄청 친해 보이던데요..."
"동갑에다 옆집이다 보니 친해진 거지. 꼬신 건 절대 아니야."
"으음... 그런가요?"
수상하게 쳐다보는 신아영.
무선 연결 딜도에 관해 눈치채기 전에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딱 좋은 소재가 바로 옆에 있었다.
"근데 헤어스타일 바꿨네?"
"잘 어울리죠? 이미지 체인지 해봤는데 괜찮아요?"
"앞머리 깐 거 엄청 예뻐. 잘 어울린다."
"고마워요. 사실 서윤 언니가 하는 머리 보고 따라 해본 거예요."
여신 머리라고 부르는 헤어 스타일.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 채아 누나랑 박서윤이 하고 있는 머리였다.
그럼에도 신아영이 한 것은 느낌 자체가 달랐다.
저 둘은 원래부터 저 머리였으니 그러려니 하는데, 아영이는 앞머리를 내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잠시 넋을 놓고 있자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윙크를 했다.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요? 부끄럽게."
"예쁘니까 보지."
"그러면 계속 보세요. 참고로 비용은 1초마다 예쁘다 말해주는 거예요."
"많이 비싸네."
"눈까지 마주쳐 주는데 이 정도면 싼 거죠."
혀까지 살짝 내미는 게 진짜 요물이 따로 없다. 지금 학교가 아니었다면 바로 덮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옷도 상당히 꼴리게 입은 터라 인내심 테스트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살짝 보이는 가슴골을 훔쳐보며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얼른 가자."
"네에."
사이좋게 자리를 잡고 교수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멍을 때리고 있자 신아영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오빠, 오빠."
"응?"
고개를 돌리자마자 잠깐 숨이 멈출 뻔했다.
턱을 괸 신아영이 부드럽게 웃으며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그녀의 뒤를 후광처럼 비추고 있어 신비함을 한층 더해주었다.
"저 이거 머리 한 거 있잖아요. 서윤 언니랑 저 중에 누가 더 예뻐요?"
각자의 매력이 있어서 누구 하나를 선택할 순 없지만, 내밀어진 가슴이 자기를 선택해달라 졸랐다.
'그리고 박서윤의 머리를 따라 했다고 했지? 급속도로 친해진 것 때문에 질투하는 건가?'
귀엽기도 하지.
"당연히 아영이가 더 예쁘지."
"정말이요?"
진심으로 기쁘게 웃는 신아영.
전염이 됐는지 괜히 나도 웃음이 나왔다.
"어제 할까말까 고민 많이 했었는데 한 보람이 있네요."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고마워요."
그렇게 연속된 수업을 마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경직된 목을 돌리며 밖으로 나오자 옆 건물이 시끌시끌했다.
"저 언니는 진짜 어디에 있는지 알기 쉽네요."
"그러게. 어떻게 사람이 몰린 곳을 찾으면 다 쟤가 있냐?"
"아직 학기 초반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한 달만 지나도 그냥 일반인 취급할 것 같은데."
"내가 봐도 그래."
우린 한 무리의 군중이 저 멀리 떠나는 걸 보며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로부터 7시간 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편의점 문을 열었다.
"어서... 오빠 어서와."
"안녕, 많이 바빴어?"
"그렇게 바쁘진 않았어. 아, 언니는 1호점에 가 있으니 걱정마."
저 말이 왜 이렇게 불안하게 들릴까.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카운터로 들어가자, 한희진이 내 팔을 쑤욱 잡아당겼다.
거의 넘어질 듯 끌려가자 그녀는 내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댔다.
"cctv 다 봤어. 엄청나더라?"
"그래?"
"언니랑 저런 사이인 줄은 예상했는데, 저렇게까지 헌신적일 줄은 몰랐어."
한희진은 모니터로 다가가더니 cctv의 날짜를 어제로 돌리기 시작했다.
"집중 판매 시간인데도 여기 아래에서 계속 빨아주더라? 그리고 끝나자마자 바로 30분 동안 짐승같이 박기까지. 진짜 절대 잊지 못할 장면이었어."
초단위 시간까지 외웠는지 그녀는 한채아가 카운터 아래로 기어가는 곳에서 정확히 멈췄다.
그리고 중요 장면들을 딱딱 돌리며 해설을 이었다.
"여기서 한 번 쌌고... 언니는 그걸 다 받아먹었고,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지."
영상이 빠르게 돌아갔다.
"사람이 없어지자마자 물고 빨고...그래, 거기까진 괜찮아. 근데!"
갑자기 나를 찌릿 노려보는 한희진.
매우 불만인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불안한 눈빛을 보내며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입술을 혀로 핥으며 몇 번 입을 옴짝달싹하더니, 이내 부끄러운 듯 눈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근데 왜... 나한테는 키스 안 해줘? 언니 하고는 잘만 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