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 267. 무선 연결 딜도
박서윤은 오늘도 뒹굴거렸다.
정말 오랜만에 배달음식도 시켜먹고, 멍하니 침대에 누워 핸드폰과 노트북을 하고 낮잠도 잤다.
아침에도 곰돌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낸 탓에 컨디션은 최상.
감시나 관리가 없는 생활을 맛보니 정말 행복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산책까지 마치고 오자 택배가 복도에 쌓여있었다.
어찌나 많은지 통로의 절반을 막고 있는 짐들.
"이제야 택배가 다 왔나 보다."
박서윤은 호다닥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큰 상자 3개, 중간 상자 2개, 그리고 뭔가 이상하게 길쭉한 상자 하나.
처음 보는 것도 있었지만 멤버들이 짐 싸는 걸 도와줬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상자를 썼을 수도 있으니까.
서둘러 문을 열고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복도를 막고 있는 민폐 덩어리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송장을 하나하나 확인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한 번에 배달이 온 듯 다같이 쌓여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방안으로 전부 이동시켰다.
본격적으로 정리를 하기 전, 그녀는 머리를 묶어 방해될 요소는 전부 제거했다.
먼저 첫 번째 큰 상자. 테이프를 뜯자 화려한 가을 옷들이 가득했다.
"이거는 저번에 못 챙겨 온 옷들이네. 냄새 베기 전에 빨리 넣어야겠다."
하나하나가 명품에다 디자인이 좋은 것만 추려왔기에 빡센 관리는 필수.
그녀는 조심스럽게 옷장에 넣으며 다음 상자를 바라봤다.
찌익...찌익...
하나, 둘, 셋, 넷.
정리를 거의 다 마쳤다.
그녀는 낮보다 훨씬 꽉 차 보이는 방안을 둘러보며 기지개를 켰다.
어디에 두는 게 예쁘고 편할까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흐으읏....! 거의 다 끝났다. 이제 진짜 마지막."
박서윤은 뭔가 다른 상자들보다 꽁꽁 싸매져 있는 기다란 상자에 손을 댔다.
크기로나 모양으로나 무언가를 보관하기에는 비효율적인 형태.
혹시 멤버들이 몰래 보내준 선물인가? 기대를 안고 열어봤다.
".....에?"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에 상자를 잡은 자세 그대로 멈췄다.
이상한 소리를 낸 건 덤.
잘못 본 건 아닐까 싶어 눈을 비볐지만 아주 길쭉하고 단단해 보이는 막대기는 그대로였다.
그녀도 24살이나 먹은 성인이니 당연히 어떤 용도의 물건인지는 알고 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외견.
이게 여자의 거기에 들어갈까 의심이 드는 엄청난 크기와 두께.
박서윤은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상자를 다시 봉인했다.
그리고 집안을 빠르게 휙휙 둘러보며 혹시 몰래카메라는 아닌지 확인을 했다.
본인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엄청난 유명인인 자신이 이런 걸 샀다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끝이다.
대학 생활을 즐기기도 전에 그런 불상사는 절대 사양이다.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으니 다시 한 번...'
누가 볼세라 작게 열었다. 제대로 본 게 맞았는지 딜도는 얌전히 누워있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부여잡으며 생각에 잠겼다.
왜 이게 여기 있을까? 혹시 누가 장난으로 보낸 건가? 스토커?
수많은 감정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눈은 딜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도 여자인 이상 호기심이 동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핏줄이 울긋불긋하게 나 있는 살색의 외형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홀린 듯 손을 뻗어봤다.
"읏...!"
귀두에 손가락 끝이 닿은 순간 머리가 찌릿했다.
강한 정전기가 통한 느낌에 빠르게 손을 뗐지만 몸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과민 반응이 일어났나 보다.
이번엔 과감하게 똑바로 세워봤다.
"크긴 크다... 20cm는 되려나?"
상자를 뚫고 나오는 기다란 높이. 누워있을 때보다 2배는 더 위압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조금 거칠어진 숨결을 내뱉으며 천천히 기둥을 감싸 쥐었다.
움찔.
순간 멈춰있던 딜도가 움직인 것 같았다. 왠지 뜨겁기도 하고 부풀어 오른 것 같기도 하고.
기분 탓이겠지 하며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동시에 내부에서 빠른 흐름이 느껴지며 끝부분이 벌어졌다.
"어...어!?"
뷰르르릇...!! 뷰르르르...!! 뷰르르릇....!!
뭐라 할 틈도 없이 공중을 날고 있는 하얀 액체.
화산이 폭발하듯 거세게 뿜어져 나온 것은, 안쪽을 향해 상체를 숙이고 있던 그녀의 몸에 젤리처럼 달라붙었다.
절반은 손에, 절반은 옷에.
박서윤은 3초 동안 얼어붙어있다 집이 떠나갈 듯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잠시 후, 그녀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상황 파악에 나섰다.
그 와중에도 딜도는 끝없이 움찔거리며 하얀 걸 질질 흘리고 있었다.
어찌나 끈적한지 기둥을 타고 내리는 속도는 느렸다.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광경.
그녀는 몸에 묶는 걸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지난 1분 동안의 기억을 되돌아봤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봤음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만 주변에 진동하고 있는 진한 밤꽃 향만이 현실이란 걸 알려주었다.
"아니아니아니... 후우...그래."
심호흡을 크게 했다.
떨리는 몸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이 상황의 원흉인 딜도를 노려봤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정과 움찔거리는 기능이 들어있는 신비한 물건.
슬슬 움직임이 줄어들자 다시 손을 대봤다.
움찔.
"뭐...뭐야? 왜 움직여?"
살아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딜도. 이젠 호기심보단 공포가 앞섰다.
혹시 위험한 물건을 집에 들여버린 건 아닐까? 그보다 이게 왜 여기 있을까?
그녀는 잊고 있었던 사실을 하나 깨달으며 재빨리 송장을 확인했다.
"....502호, 박우진님? 나 설마...!"
*
라고 소리치는 박서윤의 행동이 전부 머릿속에 재생됐다.
그녀가 무선 연결 딜도에 손을 댄 순간, 마치 관음 모드처럼 주변 광경에 전부 보였기 때문.
'분명 오나홀에서 파생된 거니 기능이 엄청 한정적이라 했지?'
혹시 박서윤도 어플이 깔리며 관음 모드, 반투명 모드, 점수 등등 이런 게 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접어둬도 될 듯하다.
한시름 놓았다. 그보다 저거 아영이의 생일 선물로 주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회수하지?
문앞에 있던 택배 못 봤냐고 문을 두들기기도 애매하다.
그러면 그녀가 직접 건네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소리인데...
복잡해졌다. 고민에 잠겨있자 스피커에서 한희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인니임... 거기 있나요? 화면이 하얘서 안 보여요..."
"아, 기다려봐."
옆집에 대한 일은 잠깐 미뤄두기로 하고 일단 한희진이 먼저다.
나는 휴지와 물티슈를 가져와 내 정액을 빡빡 씻어냈다.
끈적하게 휴지와 화면에 달라붙어 실을 이루는 장면은 정말이지 내가 봐도 감탄스러웠다.
물론 닦고 있는 지금은 매우 극혐이다.
지금 바로 혜윤이한테 가면 깨끗하게 빨아먹지 않을까라는 헛된 상상을 하며 청소를 끝냈다.
"이제 보이지?"
내 모습이 나오자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한희진이 활짝 웃었다.
"잘 보여요. "
"사실 여기에 쌀 생각은 없었는데 실수해버렸네."
"그만큼 제가 야했다는 뜻이죠? 저는 주인님이 싸는 걸 가까이서 봐서 좋았어요."
"그럼 다행이고..."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싱글벙글인 한희진.
나는 핸드폰을 들어 얼굴이 나오게 했다.
"이제 만족했어?"
"조금은요."
"조금은? 보지 보여줘봐."
그녀는 위치를 바꿔 자신의 사타구니에 카메라를 댔다.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완전 젖어있었다.
얼마나 쑤신 건지 투명한 애액은 하얀색으로 물들어 거품이 나 있었다.
뻐끔거리면서 즙을 내보내는 게 마치 질내 사정을 한 것 같았다.
자세히 보고 있는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한희진은 손가락으로 구멍을 벌렸다.
"아직 만족 못했다 했지?"
"네에..."
"오늘 더 이상 보지 만지지마. 화장실 갈 때 빼고."
"윽....알았어요."
"몰래 하다 걸리면 영원히 자지 없다."
"대신 나중에 엄청 해주세요."
"그래. 일단 시간 늦었으니까 먼저 자라. 희진이는 낮부터 일해야 하잖아?"
"네에~"
이름 불리는 게 좋았는지 그녀는 흥겨운 콧소리를 내며 통화를 종료했다.
위이이잉.
30초가 지나자 진동이 울리며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한희진 : 사진.
-한희진 : 주인님한테 박히는 상상하면서 자위했어요.
자위 전 사진이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같은 보지가 맞나 의심이 들기에 충분했지만, 저 빛나는 금색의 보지털이 동일인이라는 걸 증명해주었다.
나는 잘 자라는 까톡을 하나 남겨준 뒤, 머릿속에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는 박서윤한테 시선을 돌렸다.
정액 묻은 옷은 세탁기에 넣었는지 다른 색깔의 반팔을 입고 있는 박서윤.
꼿꼿이 서있는 딜도를 쳐다보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으음... 갖다 줄까? 근데 택배도 말없이 열어버렸고, 뭔진 모르겠지만 이미 사용까지 해버렸는데..."
그러면서 손을 뻗었다 회수했다를 반복했다. 일말의 양심은 있는 모양이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지금 갖다 주는 건 실례겠지? 이미 뜯은 흔적까지 다 있는데 몰래 문 앞에 두는 건 무리고."
심지어 이런 물건인데라는 사족을 덧붙인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냥 죄송하다고 말하면 끝날 일인데 뭐 저리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유명세가 있다 보니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는 건가?
소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조심스러운 박서윤. 이내 좋은 생각이 났는지 박수를 짝 치며 일어났다.
"그래! 어차피 이미 써버린 거 더 만진다고 뭐 문제 있겠어? 택배를 착각했다고, 나중에 죄송하다고 하면 누가 뭐라 해?"
아주 범죄자스러운 말을 한 그녀는 딜도를 향해 네발로 기어갔다.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을 번뜩이며, 나지막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어디 무슨 원리로 작동하나 구경 좀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