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 251. 마스크녀
부동산 근처에 도착했다. 옆에는 아주 멋들어진 스포츠카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다 못해 눈이 부신 회색의 차량.
쉽게 볼 수 없는 디자인에 사람들이 몰려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물론 나도 눈이 절로 고정이 되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저거 아까 본 거 아닌가?'
혜윤이랑 얘기할 때도 스포츠카라는 주제가 잠깐 등장했었는데, 공교롭게도 비슷한 게 옆을 지나가더니 이젠 눈앞에 있다.
저런 차의 주인은 누구일까? 내부가 아예 보이지 않는 진한 선팅을 보고 있자 차체가 잠깐 흔들렸다.
위이이잉...
하늘을 향해 부드럽게 올라가는 문. 외견만큼이나 고급스런 내부가 보이자 안에서 누군가 나왔다.
마스크와 모자를 깊게 눌러쓴 탓에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서는 그녀가 상당한 미녀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신아영과 비슷한 크기의 가슴과 쫙 빠진 허리.
무엇보다 일반 사람들한테서 볼 수 없는, 백금발과 은발이 섞인 신비로운 머리카락이 그 사실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딱 봐도 존나 예뻐 보이네. 역시 부잣집 사람이 잘 꾸미는 건가?'
옷도 상당히 꼴리게 잘 입었으며 재질을 보니 명품으로 도배한 듯했다.
물론 직접 얼굴을 까기 전까지는 모른다. 무엇보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행보를 지켜봤다.
또각...또각...
마스크녀는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어딜 가나 싶더니, 바로 앞에 있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XX 부동산]
'....'
아니겠지. 아닐 거야. 잠깐 머리에 경종이 울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런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싶었지만 일단 따라 들어가기로 했다. 내가 뭐 스토킹 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아, 학생 왔구나. 여기로 들어와."
뭔가 들떠 보이는 부동산 아주머니는 안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방으로 들어가자 방금의 여자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럼 그렇지. 우연이 3번이면 인연이라 했다.
나는 작게 목례를 하며 그녀의 앞에 앉았다.
"인사해요. 여기 잘생긴 학생이 503호에 살고 있는 사람이고, 여기는 전에 말했던 그분이에요. 월세 2개를 원했던."
모자와 마스크 사이로 번뜩이는 눈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도 스캔을 했다.
청순하다? 예쁘다? 그런 감정이 절로 들게 하는 갈색의 커다란 눈.
일단 50%는 합격이다. 하관까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대치하고 있자 부동산 아줌마가 종이 몇 장과 음료수를 테이블에 올려놨다.
몇 모금 목을 축이자 아줌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학생은 이사 갈 생각이 아예 없다는 거죠?"
"네. 개강이 코앞이기도 하고 여기만큼 위치적으로 좋은 곳이 없거든요."
"그렇다는데 어쩔까요? 그냥 이대로 방 하나로 계약 하시겠어요?"
맞은편의 여자에게 의사를 묻는 아줌마. 그녀는 손가락을 타닥거리며 생각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이번엔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원하는 집 있으면 제가 월세 3개월이랑 이사 비용 즉시 지원해드린다고 했는데, 이래도 싫어요?"
맑다 못해 깨끗한 목소리. 고음이지만 결코 쨍하지는 않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톤이었다.
"저는 여기서 나가기 싫어요. 주변에 지인들이 많기도 하고 애초에 돈이 문제가 아니라서요."
"그래요...? 그럼 월세 6개월치. 한 학기에 해당하는 비용인데 어때요?"
"싫습니다."
"공과금 포함."
"싫어요."
"하루 한끼 밥값도 대드려요."
"싫다니까요?"
정말 끈덕지다. 얼마나 돈이 썩어 넘치면 생판 모르는 사람의 밥값까지 선뜻 지원해준다는 걸까?
전부 거절하자 그녀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다시 고민에 잠겼다. 그러더니 우리 둘의 눈치를 보고 있던 아줌마한테 말을 걸었다.
"혹시 여기 말고는 없나요? 방 2개가 연속으로 비어있는 곳이요."
"손님도 알다시피 미래대가 워낙 공부 잘하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공부 기운이 샘솟는다, 머리가 좋아진다 그런 미신으로 인해 주변 방을 구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지금 여기가 남아있는 것도 기적일 정도예요."
"그 정도인가요..."
저 말대로긴 하다. 우리 학교 학생 말고도, 고시 공부나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꽤나 분포하고 있어 나도 겨우 방을 구한 기억이 있다.
생각을 정리하는지 그녀는 괜스레 종이를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째깍째깍.
시계 소리 방안을 지배하고 있을 무렵, 마스크녀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일단 방 좀 직접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학생도 지금 괜찮죠?"
"네."
굽이 있는 샌들을 또각거리며 밖으로 나간 그녀. 타고 온 스포츠카의 문을 열었다.
"그럼 거기서 뵙도록 해요. 아쉽게도 이 차는 2인용이라 모두 타고 갈 수가 없어서요."
"알겠어요. 금방 갈게요."
웅장한 시동 소리와 함께 사라진 차.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있는 부동산 아줌마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저 사람이 누군데 그래요? 뭔가 알고 있는 눈치이신데?"
"하... 그게 말이지. 말해도 되나 모르겠네..."
어쩔까 저울을 재던 아줌마는 손가락을 들어 집 방향을 가리켰다.
"일단 가면서 얘기해 줄게요. 어차피 학생은 이사 갈 생각이 없어 보이고, 딱히 사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 것처럼 보이니까."
사심이라니? 단어 선택이 조금 이상한 것 같긴 했지만 잠자코 기다렸다.
"혹시 아이돌에 대해 잘 알아요? 요즘 엄청 인기 그룹인 xx아이돌이요."
"알죠. 완전 핫하던데."
"그 멤버 중 한 명이에요."
"...네?"
설마설마하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진짜였을 줄이야.
기억상으로 멤버 수는 4명이지만, 학교에 간다고 뜬 사람은 딱 한 명이다.
직접 들으니 색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진짜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아줌마는 긴가민가 하며 추가 설명을 이었다.
"사실 말하지 말랬는데... 내가 말했다는 거 모른 척해줘요."
"당연하죠."
"당연하겠지만 옆집에 연예인이 산다는 걸 알면 그 어떤 누가 이사를 가겠어요? 오히려 계속 붙어있고 싶고 뭐하나 지켜보고 싶고 그럴 것 아니에요? 아, 물론 학생이 그런다는 게 아니라 예시일 뿐이에요."
그렇게 긴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방을 구하고 싶단 전화가 걸려왔다. 특이한 손님이겠거니 했는데, 매물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만났는데 티비에서 본 사람 같았다는 것.
심지어 이름도 같아 슬쩍 물어보니 본인이 맞다고 인정했다는 사실까지.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박서윤 정도의 인기라면 충분히 이해가 갈만한 행동이었다.
"살면서 이런 일도 일어나고. 참 신기하네요."
"저도 여기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미묘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대화를 하고 있자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보안문 앞에는 마스크녀가 서 있었다.
키는 약 165cm 정도 되어 보였다. 하지만 다리가 상당히 길어 전체적인 비율은 감탄이 나오기 충분했다.
"기다리셨죠? 저희는 걸어와서 조금 늦어버렸네요."
"아니에요. 그보다 이 건물은 관리가 잘 되어 있네요? 깨끗한 것도 마음에 들고..."
외관은 합격인가 보다. 어쩌면 이 연예인이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으며 문을 열었다.
나는 이 건물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는 부동산 아주머니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멍을 때렸다.
정확히는 마스크녀의 몸매를 구경하고 있었다.
'저 정도면 한 95cm는 되려나? 확실히 영상에서도 크긴 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 커 보이네.'
초인기 아이돌의 몸. 그동안 열애설이나 비스무리한 소문 자체가 나지 않았으니, 만진다면 아마 내가 첫 번째가 아닐까?
-띠링. 5층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 방문 앞에 서며 인사를 했다.
내가 옆집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옆집 사람일 뿐. 박서윤이 계약을 하든 말든 관련할 여지는 없기에 빠지는 게 맞았다.
"전 들어가 볼게요."
"아, 네. 고생하셨어요."
관심 없는 척 무심하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창에 박서윤을 검색해봤다.
역시 유명인인 만큼 뭐 어릴 적 얘기부터 최근 동향까지 전부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건 또 어떻게 아는 건지 참.
"고등학생 때 길거리 스카웃을 받아서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재능이 있어서 2년 만에 데뷔했는데 포텐이 터져서 바로 대박이 났다라."
그냥 재능충 이야기구만. 그 뒤는 딱히 읽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나오는 앨범마다 잘 팔리고, 온갖 광고나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해 돈을 쓸어 담았다는 스토리.
대충 인생사를 확인한 뒤에 이미지 칸에 들어갔다. 혹시 최근에 역변이라든가 하진 않았겠지?
스크롤을 드르륵거리며 빠르게 훑어봤다.
무대 짤, 공연 짤, 예능 짤 등등 수많은 사진들이 게시되어 있었지만 내 눈을 확 끄는 건 따로 있었다.
"맞네.. 이 차 아까 봤던 거랑 똑같은 거네."
느낌상 10억은 호가할 것 같은 외견. 그리고 화보를 찍은 듯한 아주 멋진 포즈를 잡은 그녀의 사진.
확대를 해보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까 봤던 것과 모든 게 일치하는 가슴 크기,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
마스크를 끼고 있는 사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남심을 사로잡기는 충분했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예쁘긴 존나 예쁘네."
내 손은 어느새 저장하기를 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