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화 > 240. 차 가져왔는데... 누나가 모르고 술 마셔버렸어
"흐으으응.... 재밌게 잘 놀았다."
"누나 덕분에 오늘 호강했어요."
"별 거 아니야. 어울려준 우진이한테 더 고마운 걸."
하나 둘 네온 사인이 켜지기 시작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즐겁게 놀다 보니 밤에 대한 일은 까먹은 지 오래.
하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자 알게 모르게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한채아도 마찬가지였는지 점점 말수를 줄여가며 차로 이동했다.
"마지막은 좋은 곳에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
"예약해뒀어요?"
"당연하지."
한채아는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라고 작게 혼잣말을 하며 차에 탔다.
도착한 곳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 거대한 호텔. 밝게 빛나고 있는 영어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이었다.
"여기 엄청 비싼데 아닌가요?"
"매일 오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야 뭐, 걱정하지마."
그녀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역시 돈을 대하는 단위부터가 나랑 다른 것 같다.
아니면 일생일대의 날이니 그만큼 출혈을 각오한 것일 수도 있고.
주차를 마치고 로비로 올라오자 아주 화려하고 넓은 공간이 우리를 반겼다.
저번에 갔던 펜션이랑 비교하기 미안한 정도.
"누나는 카운터에서 뭐 좀 할 테니 로비라도 돌아다니고 있으렴."
같이 가려고 했지만 그녀는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나를 떨어트리려 했다. 무언가 비밀스럽게 할 일이 있는 모양.
눈치껏 뒤로 돌았다.
또각또각...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자 옆에서 경쾌한 구두 소리가 귀에 꽂혔다. 곁눈질을 하자 황급히 뭔가를 핸드백에 넣는 그녀가 있었다.
'뭘 저리 급하게 숨기냐.'
못 본 척 해주기도 미안할 정도였다. 나는 고개를 완전히 반대쪽으로 돌리며 핸드폰을 꺼냈다.
잠시 딴짓을 하고 있자 누가 등을 쿡쿡 찔렀다.
"오래 기다렸지? 여기 20층에 뷔페 있다고 하니까 얼른 올라가자."
"마침 배고팠는데 잘 먹을게요."
"맛있다고 소문난 곳이니까 기대해도 좋아."
뭐가 그리 좋은지 그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20층입니다.
안내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한 층을 꽉 채우고 있는 커다란 뷔페.
발걸음을 내딛자 정장을 입은 안내원이 한 발자국 나서며 우리를 막았다.
"한채아로 예약했어요."
"확인했습니다. 저기 32번 자리에 가시면 빈 테이블이 하나 있을 겁니다."
"고마워요."
안내원이 가리키는 곳은 야경이 보이는 유리창 바로 옆자리였다.
식탁에는 와인과 잔이 세팅되어 있었으며, 구석에는 작은 꽃이 유리병에 꽂혀있었다.
"오늘 계속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했는데 마지막까지 엄청나네요."
"에이 또 그런다. 알면 누나한테 잘 좀 해줘. 맨날 이상한 생각만 하지 말고."
좋아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일단 한 접시 담아올까?"
"그렇게 해요."
짐을 내려놓은 뒤 뷔페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음식을 반쯤 채우며 한채아가 어딨나 주위를 둘러봤다.
한눈에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독보적이네.'
새삼스레 느껴지는 그녀의 외모 레벨.
나름 고급 호텔이라 상당히 멋지고 예쁜 사람들이 한가득이었지만, 한채아 앞에서는 전부 오징어행이었다.
큰 키와 압도적인 몸매와 얼굴. 그리고 모두의 시선을 끄는 머리색까지.
저런 사람과 함께라니.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여기 먹음직스러운 게 한가득이라 뭘 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
"다음 접시에 담아오면 되잖아요."
"음.... 살 찌니까 안돼. 적당히 먹어야지."
먼저 식탁에 도착해있자 한채아가 맞은 편에 앉으며 와인을 손에 쥐었다. 둥근 잔에 진한 포도 빛깔이 채워졌다.
"맛있게 먹어."
"누나도요."
건배를 한 뒤 식기를 달그락 거리며 배를 채워갔다.
약 1시간 뒤, 적당한 포만감과 알딸딸한 취기가 섞여 더없이 기분 좋은 상태가 되었다.
한채아도 붉어진 얼굴을 숨기지 않은 채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멍한 눈빛에서 색기가 느껴졌다.
잠시 입술을 옴짝달싹 거리던 그녀는 결정한 듯 조심히 말을 꺼냈다.
"맞다, 우진하아... 누나가 잠깐 깜박한 게 있는데에..."
"뭔데요?"
"차 끌고 왔는데 모르고 술 마셔버렸어... 헤헤."
혀를 살짝 내밀며 배시시 웃는 한채아. 그러더니 핸드백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은빛 키 카드. 겉면에는 1605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 하룻밤 자고 가야할 것 같거든? 우진이는 어쩔래?"
한채아는 손에 힘을 꾹 쥐며 나를 기다렸다. 조금씩 떨리는 게 보였다.
지금의 대답 여하에 따라 앞으로의 관계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근데 이미 답을 정해져 있지 않은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그녀의 손에서 카드를 낚아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방까지 부축해줄 테니까 얼른 가요."
"고마워."
그녀도 빙긋 웃으며 따라 일어났다. 나는 비틀거리는 그녀의 허리에 손을 올린 뒤에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철컥.
깨끗하고 넓고 야경이 아름다운 방. 이곳에 들어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었다.
"방 좋지?"
"살면서 와본 것 중에 가장 좋아 보여요."
"다행이네..."
퀸 사이즈로 보이는 침대에 그녀를 내려놨다. 얼마나 푹신한지 매트리스가 크게 출렁이며 주름을 만들어냈다.
"흐으으응.... 졸리다아..."
한채아는 눈을 감으며 뒤로 벌렁 누웠다. 감촉이 좋은지 팔다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침대 위를 헤엄쳐 다녔다.
분명 저렇게 태연한 척을 해도, 속으로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고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낮의 약속을 생각하며 먼저 리드해주기로 했다.
최고의 경험을 위해서.
"저 땀 좀 났는데 먼저 씻고 와도 괜찮을까요? 누나는 힘든 것 같으니 쉬고 계세요."
"어... 응!? 아...그래..."
"먼저 잠들면 안 돼요. 절대."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지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
화장실 문이 닫히자마자 한채아는 벌떡 일어나며 자신의 입가를 가렸다.
'진짜 하는 거야? 오늘 진짜 우진이랑 하는 거야아아아???'
물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그나마 진정되었던 몸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괜히 열이 나고 하복부가 뜨거워졌다.
"이럴 때가 아니지. 거울이 어딨더라..."
조금이라도 이상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어차피 우진이가 나온 다음에 씻을 예정이니 나머지는 그렇다 쳐도, 화장이 이상하면 고쳐야 하고 머리가 망가졌다면 빗질을 해야 한다.
그녀는 실루엣으로 보이는 그의 몸을 흘끗 보며 티비 옆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진짜 크긴 크다...'
매일 보는 자신의 가슴이지만 매번 감탄이 나온다. 그에 대비되는 가느다란 허리와 튼튼한 골반.
재빠르게 원피스를 벗으며 혹시 몸에 잡티라도 나지 않았나 확인을 했다.
'아침이랑 똑같다. 이상 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착용을 했다. 이번엔 침대에 던져둔 핸드백에 시선을 뒀다.
미리 챙겨둔 그 물건. 잘 있을까?
한채아는 가방 안을 뒤적거리며 맨 아래에 숨겨뒀던 네모난 박스를 꺼냈다.
아직 포장조차 뜯지 않은, 0.01mm 라는 아주 노골적인 숫자가 적힌 것을 말이다.
근데 그 크기는 편의점에서 파는 보통 콘돔보다 훨씬 컸다. 그도 그럴게 3개입이 아닌 8개입이었기 때문.
'우진이 정력을 생각하면... 3번으로는 부족하겠지? 이 정도면 충분할 거야.'
8개를 다 쓰지 않더라도 최소 3번 이상 사용할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자신의 몸이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꿀꺽.
그렇게 큰 자지가 여기에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상상을 하고 있자 저 멀리 들리던 물소리가 조용해졌다.
한채아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얌전히 침대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이제 술 좀 깼어요?"
"아...응."
"화장실 아주 깨끗하던데 지금 바로 들어가세요. 안에 수건이랑 가운 다 준비되어 있더라고요."
방금 샤워해서 그런지 붉은 얼굴을 한 채 가운을 입고 있는 우진이. 저 안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누나는... 좀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심심하면 티비라도 보고 있어."
"괜찮아요. 안에서 잠들지만 마세요."
"아...안자!"
도망가듯 화장실로 들어왔다.
"하아... 냄새."
달콤한 바디 워시 향이 내부를 지배하고 있었다. 저게 우진이 몸에서 날 걸 생각하니 아래쪽이 지잉거렸다.
만약 자지에서도 저런 맛이 난다면 하루 종일 빨아줄 수 있을 텐데...
입안에 가득 차는 걸 혀로 돌리며 쪼옥하고 있으면 달콤한 정액이 나와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샤워를 시작했다. 양치는 기본, 몸 구석구석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씻었다.
특히 보지에 손가락을 계속 넣어보며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 확인까지 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자 우진이가 했던 것처럼 알몸 위에 새하얀 가운을 입었다.
사이즈가 작은 탓에 가슴골이 빤히 드러났지만 뭐 어떤가? 이제 그보다 더한 짓을 할 텐데.
한채아는 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을 진정시키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불이 꺼져 있는 방. 대신 분위기 있는 무드등이 침대 주변만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옆에는 우진이가 침대에 걸터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편하게 누워있지, 왜 그렇게 앉아있어?"
"누나 샤워하는 거 보고 있었어요."
"벼...변태. 훔쳐보는 건 나쁜 짓이야."
"티비보다 누나 실루엣 보는 게 더 재밌던데요?"
그는 씨익 웃으며 자신의 옆을 툭툭 쳤다. 앞섬을 여미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곁에 앉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먼저 데이트 신청도 하고, 대딸도 쳐주고, 펠라나 파이즈리까지 해줬지만 본방은 얘기가 다르다.
지금까지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실전 그 자체.
어떻게 해야 연상의 품격을 보여줄까, 어색해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고 있자 우진이의 손이 허벅지 위에 올라왔다.
"그럼... 깨끗하게 씻었는지 확인해봐도 될까요?"
시작 신호. 고개를 끄덕였다.